부끄럽지만 난 오정희 작가님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한국의 여성들이라 이런 책 참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여성, 젊은 여성, 결혼하여 애를 키우는 여성, 중년 여성... 그녀들의 스산한 삶을 보며 왠지 서글퍼졌다. 그녀들의 모습에서 나 역시 언젠가 겪었고 또 가슴 시리게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리라.
특히 '중국인 거리' 가 정말 좋았는데,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낸 동네가 배경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중국인 거리'에 등장하는 어쩔 수없이 비참하게 살아야만 하는 여성들과 어린 주인공 화자를 보며 같은 한국 여자로서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중국인 거리'는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한국 단편 소설 중 한편이 될 것 같다.
모국어로 쓰인 소설을 읽은 게 참 오랜만이었는데 모국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 생각 외로 엄청나서 앞으로 한국소설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고 잠시 다짐했으나, 사실 오정희 작가님 소설처럼 한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감명받은 적이 거의 없어서... 앞으로 어떨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책을 아예 멀리하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어휘 능력이 딸릴 줄이야? 나 조금 충격 받았다. 특히 '유년의 뜰' 읽을 때 모르는 단어 너무 많이 나와서 한 페이지 보면서 사전을 한 서너 번 찾아봤나봐. 그동안 너무 번역소설만 읽어서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중국인 거리'만 언급했지만, '유년의 뜰', '겨울 뜸부기' 도 좋았고,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인 '어둠의 집'을 읽으면서는 평생 강간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하는 여성의 운명에 참담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중국인 거리'는 수능 언어영역에 출제된 적이 있다고 하여 심심풀이로 풀어보았는데, 멍청이같이 한문제 틀렸다. ㅜ_ㅜ 심심하신 분들은 한번 풀어보시라고 같이 올린다. (답 궁금하신 분은 비밀댓글 달아주세요.)
P.S '중국인 거리'에 등장하는 자유공원 사진을 몇 장 올린다. 사진을 찾다보니 난 여름이나 봄보다 겨울에 자유공원을 자주 갔네. 혼자 이어폰 끼고 자유공원을 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안타깝게 날 쳐다보셨는데, 그 혼자만의 시간이 지금까지도 큰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