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이 영화같았다. 굉장히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와 문장들. 아마도 작가 김영탁이 영화감독이라서 그런지 몰입감이 최고이다. 근데 나는 왜 1권을 읽고 2권을 이제야 읽었는가! 솔직히 그냥 가독성 좋은 SF영화같은 소설은 재미는 있지만, 의미를 찾기에는 힘들다. 그래서 2권을 반납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왜냐? 읽을 책이 너무 많은데, 이 『곰탕』까지 2권째 읽어야 하는가? 아참,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syo님 추천이다. ㅎㅎ
-syo님 허락도 안 받고 캡쳐해서 올립니다. 불쾌하셨다면, 더 좋은 책을 추천해주소서! ㅋㅋ
그런데, 이 『곰탕』이 나를 울컥하게 한다.
“저는 2009년 3월 23일생입니다.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255p)
작가 장강명이 ‘곰탕 맛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라는 말을 했는데, 그도 이 『곰탕』을 읽고 나서 칭찬을 금치 못했다. 내가 2권을 읽지 않았다면, 진짜 『곰탕』의 맛을 몰랐을 뻔 했다.
2 김영탁 작가는 마흔을 앞둔 12월에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서 남인도를 지나 스리랑카에서 내려가서 콜롬보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이 『곰탕』을 집필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영화감독인 그가 쓸 작품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그날부터 꼬박 40일 동안, 출국 당일 오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거침없이 써 내려간 작품이 바로『곰탕』이다. 40일 동안 식사시간만 챙기고 줄곧 이 작품을 집필해 『곰탕』의 초고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써 내려간 작품이기에 가독성이 이토록 탁월하구나 싶기도 하다. 시큼한 감동 또한 있다! 추천한다.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아버지도 곰탕 참 좋아하셨는데, 시간 여행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살아 계셨을 때로 돌아가 이 곰탕 드시게 하면 좋겠다.”(365p, 작가의 말 中에서)
곰탕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3『곰탕』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읽은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책이 생각난다. 말 그대로, 97살의 이옥남 할머니가 쓴 일기를 책을 펴낸 것이다. 시골에서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할머니의 시종일관 관심은 자식들이다. 그게 아주 따뜻하고 솔직하게 글에 스며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시청하게 되었다. 책이 나왔다고 해서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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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3일 흐림
오늘은 마을 회관에 가서 하루 해를 즐겁게 보내고
저녁까지 먹고 이제 집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밖은 조용하다. 오늘 아침에는 작은 딸 전화 받고
저녁에는 막내아들 전화 받았다.
그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늘 그렇게만 살고 싶었지.
자식이 뭔지 늘 봐도 늘 보고 싶고 늘 궁금하다.(57p)
1999년 6월 6일...
.....그래도 손자가 형광등을 사서 달아줘서 대낮같이 밝다. 손자가 가까이 와 있으니 든든하고 즐겁다(75p).
2002년 6월 9일
....그리고 아이들이 용돈을 돈북이가 십만 원 큰 딸이 오만 원 또 작은 딸이 오만 원 그래서 전부 이십만 원이 된다. 고마우면서도 맘은 아프다. 즈의들도 빚을 지고 살면서 돈을 주니 말이다(80p).
2004년 6월 20일 비
남편은...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녔지. 시어머님이 가라고 머리끄대이를 내끌어도 친정아버지가 무서워 못 가고 그냥 거기 붙어서 살아온 것이 이때까지 살아왔다. 꿈같이 살아온 것이 벌써 나이가 팔십셋이 되었구나. 그러나 지금은 자식들이 멀리 살지만 다 착해서 행복하다(91p).
2007년 7월 24일 흐림
아래 콩밭을 다 매고 도랑을 매다가 못 매고 말았다.
금년에 생일은 너무 즐겁게 보낸 것 같다.
며느리가 용돈을 오만 원 주고 또 증손녀 둘이 다 공책과 연필 두 개나 사왔네.
너무 오래 살다보니 증손녀한테 선물을 다 받아보는구나(102p).
2008년 7월 24일 비
...엊그제 막내녀석이 왔다가 갔는데 가서는 전화 한 통도 없구나. 자식이 그저 든든할 뿐 애책 서럽게 키워봤자 괜히 부모 맘만 걱정이지 자식은 부모 생각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을 쓸데없이 부모 혼자 생각뿐이지. 그래도 왠지 잊혀지지 않는 자식이 다 뭔지....(105p)
2010년 8월 3일 흐림
...오늘은 딸도 와 있다가 가고 집이 텅 비는 것이 허전해서
맘자리가 안 잽힌다.
손녀딸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지 기다려지기만 하다(119p).
2003년 9월 13일 맑음
추석명절 다 지내가고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제 가고
딸들은 오늘 가고 손자는 와서 엄마 가는 것 배웅하고
겨우 점심 해 먹고는 금방 간다.
손자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꼬 난다.
왜 그리도 섭섭한지.
이제는 자꼬 외로운 생각이 들면서 슬프다.
밖에 나가봐도 시원한 마음은 하나도 없고 먼 산을 바라봐도
괜히 눈물만 날 뿐이지 즐거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비감한 마음은 어디다 하소연하리.
자식들 있어도 다 즈의 생활에 맞추어서 다 가고
나 혼자 남으니 앉아봐도 시원찮고 누워봐도 늘 그식이고
이웃도 적막강산이고
비는 왜 그리 오는지 앞마당에는 큰 봇도랑 만치
물이 내려가고 뒤란에도 보일러실에도 전부 물 개락이고
밭에도 전부 샘이 터져서 발 딛고 들어서면 진흙에
풍덩 빠져서 어떻게 나올 수가 없네.
물 복은 왜 그리 많이 탔는지 여느 복도 좀 탔으면 좋으련만(134-135p).
....
‘진작에 저 세상 갔으면 그런 드러운 꼴을 안 봤을 것을 생각할수록 분한 마음 간절하구나.
자식들이 먼 데 사니깐 별 개새끼가 다 날 만만하게 보고 꼴값을 하네.‘(159p)
할머니가 진짜 열받으셨나보다. '개새끼'라고 욕까지 하시고. 얼마나 웃었는지....ㅋㅋㅋ
.....
삼척 손자 내외가 왔다. 반가웠다.
그런데 용돈 오만 원까지 준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 뭣에다 비하리.
저의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즐거워하실까 생각하네.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구나 하고 느껴지네.
저 산 넘어 해질 무렵에는 한없이 외롭고 쓸쓸한데
오늘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인 것 같구나(185p).
2002년 2월 15일
9시 50분에 전화가 온다.
막내 전화다.
그래서 오랜만이다 하니까 왜 전화 할 때마다 오랜만이라
한다고 도로 나를 원망한다.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186p).
5‘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
그런 마음이 『곰탕』에도 나타난다.
깊이 고아서 우려낸 곰탕 맛처럼 『곰탕』도, 『아흔일곱 번의 ....』도 가족이 주는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뜨거운 맛을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부모의 사랑은 곰탕의 깊은 맛 보다 더 깊은 그 무엇이 아닐까!
아들은 쉰여덟이 되었겠구나, 생각한다. 그런 눈이 오늘도 내리고 있다. 길이 미끄러웠다. 노인이 된 순희는 느린 걸음으로 눈길을 뚫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따뜻한 국물이, 이왕이면 곰탕이 먹고 싶었다. 맛있는 곰탕을 먹고 싶었다. 소문난 곰탕집을 사람들이 알려줬다.(곰탕 2권, 355-3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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