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시작되던 6월 초의 어느 날 저녁
맞바람 들어오라고 열어 놓은 창문에서는 기대대로 살랑 살랑 바람이 드나들었다.
그 날, 엄마는 마루에 눕고 나는 벽에 등 기댄 채로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YTN, 장례문화 캠페인. '국토가 묘지강산이 되어간다. 우짤거여?'
이어지는 납골당 분양 광고. (이건 참..아파트 분양광고와 비슷하다. 당연한지도.)
' 빨리 예약해라. 우리 시설 끝내준다.'
광고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무심하게 한 마디 하신다.
-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딱히 볼 것도 없지만 텔레비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나.
- 왜, 엄마는 납골당 싫어? 묘하는 게 좋아?
- 아니..납골당 말이지. 그냥 화장해서 훨훨 뿌리면 안되나? 그것도 공해된다고 못하게 할라나..?
- 글쎄..
엄마는 나즈막히 읊조린다. 마치 엄마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 뼛가루랑 밥이랑 섞어서 들짐승, 날짐승 먹이고...
-그러니까... 엄마는, 화장이 좋다고?
- 응, 밥이랑 잘 섞으면 짐승들도 잘 먹지 않겠나..?
- 그랄라믄, 깊은 산중에 뿌려야겠네. 공기 좋고. 물 좋고. 짐승들도 많이 살고..
내 나중에 꼭 그런 데 찾아 줄게.
- 나는 그런 데는 싫다.
- 깊은 데는 싫다고?
-응. 물도 많고, 산도 있고.. 확 트인 데로 해 도. 답답한 데는 싫다. 그냥 훨훨.. 가믄 안 좋겠나.
엄마는 왜 벌써 거기까지 생각해 둔 걸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벌써'가 아닐까봐 더럭 겁이 난다..
나는 이 대화를 깊이 끌고 가고 싶지 않아 장난스레 언성을 높인다.
- 아이고~ 아줌마. 주문도 까다롭네. 그런 데 찾을라믄 한참은 걸리겠다!!
그러니까.. 오래 살라고.
나, 아직 변변한 데 취직도 못하고 이렇게 있는데.
아직이야..아직.
심각해지기 싫어서 억지로 삼킨 말.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
김선우
저 여자는 죽었다.
죽은 여자의 얼굴에 生生히 살아 있는 검버섯
죽은 여자는 흰꽃무당버섯의 훌륭한 정원이 된다.
죽은 여자, 딱딱하게 닫혀 있던
음부와 젖가슴이 활짝 열리며
희고 고운 가루가 흰나비 분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반짝거리는 알들
내 죽은 담에는 늬들 선산에 묻히지 않을란다
깨끗이 화장해서 찹쌀 석 되 곱게 빻아
뼛가루에 섞어달라시는 엄마 바람 좋은 날
시루봉 너럭바위 위에 흩뿌려달라시는
들짐승 날짐승들 꺼려할지 몰라
찹쌀가루 섞어주면 그네들 적당히 잡순 후에
나머진 바람에 실려 천. 지. 사. 방. 훨. 훨
가볍게 날으고 싶다는
찹쌀 석 되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엄마는 이 괴상한 소망을 품게 된 걸까
저 여자, 흰꽃무당버섯의 정원이 되어가는
버석거리는 몸을 뒤척여
가벼운 흰 알들을 낳고 있는 엄마는
아기 하나 낳을 때마다 서 말 피를 쏟는다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처럼
수의 한 벌과 찹쌀 석 되
벽장 속에 모셔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다려온 것이다
요즘, 김선우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보고 있다.
그러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엄마들은 다 다르면서도..이렇게 비슷한 데가 있는 걸까.
그네들의 삶이 그렇게 힘겨웠기 때문인 걸까.
모든 껍질 내려놓고..훨훨 떠나기를 언제부터 꿈꿔왔던 걸까.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되고 엄마들은 서서히 바람이 되어가는구나.
(그리고, 이게 시인의 눈이구나..이렇게 말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