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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끄겠습니다.

핸드폰 건전지도 뽑아버리겠습니다.

 

연락 없이 약속 없이

대문을 열어 두겠습니다.

 

찬비 내리는 촉촉한 밤중

소금 같은 흰 눈이 천지를 덮을 때

또렷하고 푸르른 오전 시간

 

흙 묻은 신발 그대로

술 한 병 들고

언제든 오세요

 

불현듯

 

당신의 숨결과 뜨건 국밥 한술, 같이 먹고 싶습니다.

 

--- 유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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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5-06-26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기다리기 전에 전화라고 하지..싶네요. 그리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혼자만의 생각??
 

 

좋은 친구와 가벼이 술 한잔하고..

옛노래도 목터져라 부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친구의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걸어야겠다... 생각했다.

가방을 손에 쥐고 흔들흔들.

봄바람은 살랑살랑.

집으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먼 길 향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밤 새가 고요히 울어댄다.

나는 왜.. 오늘 같은 밤에

마음아프도록 그리워할 사람도 없는걸까.

갑자기 고요해서 사랑스럽던 내 시간들이 조금 섭섭해진다.

봄에는, 특히나 이렇게 날씨좋은 밤에는

조금 슬퍼야 제 맛인데.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김억, <봄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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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1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슬퍼야 제 맛인데......ㅠ,.ㅠ
마음 아프도록 그리워할 사람이 빨리 생기시기를......

nrim 2005-04-21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같은 심정이어요......

불량 2005-04-2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느림님.. 술 한 잔 하죠.. 후후후...
 


 

나는 오늘
그의 정체를 처음 보았다
발 밑에 떨어진 가랑잎 한 장이
바르르 떨다가 끝내 조용히 숨을 거두자
갑자기 자취 없이 떠돌던 적막의 조각들이
앞산만한 무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그리고 바람이 겨울 새떼처럼 스산한 몸짓으로
큰길을 건너가는 것을

이윽고 차가운 비가 몇 줄기 후득이고
마른 가랑잎 냄새가 분향처럼 한 솔기 피어오르고
마침내 그 작은 집 일각문 안에서
누군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 들리더니
세상이 생매장당한 듯 조용해졌다

나는 까맣게 눈뜨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 홍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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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2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생매장당한 듯......
늙은 여성시인의 시가 정말 적막하군요.
사진 좋아요.^^

불량 2004-10-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붙일까 말까 고민했었는데..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에잇.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야. 라고 생각하며 올려버렸답니다.
 

스무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를 낳고 먼 섬에 있는 친구나,
소풍날 빈방에 홀로 남겨진 내 짝 홍도,
애인도 아니면서 삼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남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삼촌...
추억이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잊고 있다가 문득 가슴 저려지는 것이다.

이따금 다락 구석에서 먼지만 풀썩이는 낡은 가방을 꺼낼 때마다
나를 태운 기차는 자그락거리며 침목을 밟고 간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주워온 돌들은 어느 강에서 온 것인지,
곱게 말린 꽃들은 어느 들판에서 왔는지.

어느 외딴 간이역에서 빈자리를 남긴 채
내려버린 세월들.
저 길이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외길로 뻗어 있는 레일을 보며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는 혼자이고 이제 어디로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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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2004-09-1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않았다. 나는 다만, 스물 세살이 되고 싶었다.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세수를 하다가, 이를 닦다가.. 문득문득 스무 살부터 스무 서너살까지의 추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저려'지기도 하고, 하많은 실수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다. 바보같이...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
지금도 내 소원은 빨리 서른을 넘겨버리는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기억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잊어버린다해도 그 누군가가 그 기억들을 들고 있을 거라는 것을.. 싫다. 귀찮다.

superfrog 2004-09-1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모토 바나나의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를 보니 다름아닌 몸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는 제 인생에 스무살이 안 올 줄 알았어요.. 지금은 스물은 황금빛의 시간처럼 보이지만 서른도 마흔도 쉰도 황금빛으로 보여집니다..^^

불량 2004-09-1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니..절대로 도망따위 갈 수 없겠네요..아이고.
아아..금붕어님 멋져요. 황금빛..
 

먼 훗날

 

 

아침이 되면 담배를 피워물고

블랙커피 한 잔을 들다

그리고 세계 파멸을 위한

나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검토한다

 

밤이면 내 빈 방에 호젓이 앉아

세계와 전인류의

말살 계획을 보류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큰 사건들이

바닷가 무위한 바위와 조약돌에 밀려드는 파도 같이

인류에게 포효하는 걸

다시 발견하며

희랍과일 행상들이

미팀나 좁은 골목을 누비며

외치는 소리

'물건 좋아요

좋은 물건 가지고 왔어요'

 

그러나 내 생각을

딱 멈춰 버린건

털로 만든 작은공처럼

햇빛에 몸이 휘말려든

검정색 고양이 새끼였다

 

-어빙 레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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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8-2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mira95 2004-08-2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653 앗!! 1등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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