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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의 꽃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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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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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2004-03-0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절에는 안 맞는 듯하지만...좋아하는 시를 서재에 옮기고 있어요.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부제(副題)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 창간호, 19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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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살에는 

 이외수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선잠결에 스쳐가는
실낱같은 그리움도
어느새 등넝쿨처럼 내 몸을 휘감아서
몸살이 되더라
몸살이 되더라



떠나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세상은 왜 그리 텅 비어 있었을까



날마다 하늘 가득
황사바람
목메이는 울음소리로
불어나고
나는 휴지처럼 부질없이
거리를 떠돌았어
사무치는 외로움도 칼날이었어



밤이면 일기장에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의 숫자만큼
사랑
이라는 단어를 채워넣고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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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2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아한 시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이 구절만으로도 괜시리 눈물이 확 쏟아질것 같은 기분입니다.

*^^*에너 2004-02-2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에는 그냥 행복했던 것 같은데..... (-- )( --)(-- )( --) 도리~도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스무살.. 스무살.. 쭈욱 스무살처럼 살고 싶습니다.

listen 2004-02-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곳에서도 이 글을 봤는데..^0^
어렴풋한 추억이..

불량 2004-03-0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에너님. 스무살이라.. 전, 행복했던가..열심히 기억중입니다.
태권소녀님..추억이라하심은 스무살의 추억?? ㅋㅋㅋ (농담)
 

 

   ■ 琵 琶  行 (비파행) ■

 

深陽江頭夜送客  심양강두야송객  심양강 나루에서 밤중에 손님을 보내려 하니

 

楓葉荻花秋瑟瑟  풍엽적화추슬슬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 바람 소슬하네

 

主人下馬客在船  주인하마객재선  주인이 말에서 내리니 손님은 배에 있어

 

擧酒欲飮無管絃  거주욕음무관현  술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이 없구나

 

醉不成歡慘將別  취불성환참장별  취해도 즐거움이 없어 슬픈 마음으로  이별을 하려하니

 

別時茫茫江浸月  별시망망강침월  때마침 망망한 강물 위엔 달빛만 젖어 드네

 

忽聞水上琵琶聲  홀문수상비파성  홀연히 물 위에서 비파 소리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  주인망귀객불발  주인도 돌아갈 일을 잊고 손님도 떠나지 못하네

 

尋聲暗問彈者誰  심성암문탄자수  소리를 따라 그윽히 비파 타는 이가 누구냐고 물으니

 

琵琶聲停欲語遲  비파성정욕어지  비파 소리는 그쳤는데 대답이 늦어지네

 

移船相近邀相見  이선상근요상견  배를 옮겨 가까이 가서 만나기를 청하여

 

添酒回燈重開宴  첨주회등중개연  술 따르고 등을 밝혀 다시 술자리를 열었네

 

千呼萬喚始出來  천호만환시출래  천 번을 부르고 만 번을 불러서야 비로소 나타나는데

 

猶抱琵琶半遮面  유포비파반차면  가슴에는 비파를 안고 얼굴은 반쯤 가리웠네

 

轉軸撥絃三兩聲  전축발현삼양성  축을 돌리고 채를 줄에 넣어 두 세 번 퉁겨보니

 

未成曲調先有情  미성곡조선유정  곡조를 이루기 전에 정이 먼저 흐르네

 

絃絃掩抑聲聲思  현현엄억성성사  한 줄 한 줄마다 감정을 억누르고 소리 소리마다 마음을 실어

 

似訴平生不得志  사소평생부득지  평생에 못 다한 뜻을 하소연하는 듯하네

 

低眉信手續續彈  저미신수속속탄  눈썹을 내리 깔고 손이 가는대로 비파를 타니

 

說盡心中無限事  설진심중무한사  마음속 끝없는 사연을 모두 털어 놓는 듯하네

 

輕롱慢撚撥復挑  경롱만연발부조  가벼이 누르고 비벼 뜯고 또 다시 퉁겨내니

 

初爲霓裳後六요  초위예상후육요  처음은 예상곡이오, 뒤에는 육요곡이네

 

大絃조조如急雨  대현조조여급우  큰 줄은 소란스런 소나기 같고

 

小絃切切如私語  소현절절여사어  작은 줄은 가냘픈 속삭임 같이

 

조조切切錯雜彈  조조절절착찹탄  소란함과 가냘픔 섞어서 타니

 

大珠小珠落玉盤  대주소주락옥반  큰 구슬 작은 구슬 옥 쟁반에 떨어지듯

 

間關鶯語花底滑  간관앵어화저활  때로는 꾀꼬리 소리 꽃 가지 사이 흐르듯

 

幽咽泉流氷下灘  유열천류빙하탄  샘물이 얼음  밑을 흐느끼며 흐르는 듯하네

 

氷泉冷澁絃凝絶  빙천냉삽현응절  찬 물이 얼어 붙듯 줄을 잠시 멈추니

 

凝絶不通聲漸歇  응절불통성잠흘  멈추는 그대로 소리 또한 멎었네

 

別有幽愁暗恨生  별유유수암한생  문득 깊은 근심과 남 모를 한스러움이 그윽히 생겨나니

 

此時無聲勝有聲  차시무성승유성  소리 없음이 있음보다 애절하네

 

銀甁乍破水漿병  은병사파수장병  갑자기 은병 깨져 술이 쏟아져 나오듯

 

鐵騎突出刀槍鳴  철기돌출도창명  철기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딪쳐 울듯

 

曲終收撥當心畵  곡종수발당심화  곡이 끝나 비파 안고 한번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  사현일성여열백  네 줄이 한 소리로 비단 찢는 소리를 내네

 

東船西舫초無言  동선서방초무언  강 위의 모든 배가 숨죽여 말을 잊고

 

唯見江心秋月白  유견강심추월백  오직 강위에는 휘엉청 가을 달빛만 보이네

 

沈吟放撥揷絃中  침음방발삽현중  한숨 짓고 채를 놓아 줄 사이에 끼워두고

 

整頓衣裳起斂容  정돈의상기렴용  의상을 정돈하고 일어나 자세를 고치고서

 

自言本是京城女  자언본시경성녀  스스로 말하기를 본래 서울에 살던 여자인데

 

家在蝦마陵下住  가재하마능하주  집은 하마릉 아래에 있었다네

 

十三學得琵琶成  십삼학득비파성  열세살에 비파를 모두 배우고

 

名屬敎坊第一部  명속교방제일부  이름이 교방 제일부에 속해 있었는데

 

曲罷曾敎善才服  곡파증교선재복  곡을 끝내면 악사들이 탄복을 하고

 

粧成每被秋娘妬  장성매피추랑투  화장하면 미인들이 질투를 하였다 하네

 

五陵年少爭纏頭  오릉소년쟁전두  오릉의 젊은이들 다투어 선물을 주어

 

一曲紅초不知數  일곡홍초부지수  한 곡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었고

 

鈿頭銀비擊節碎  전두은비격절쇄  자개 박은 은 빗은 박자 맞추다 깨뜨리고

 

血色羅裙飜酒汚  혈색나군번주오  붉은 비단치마 술로 얼룩졌었다 하네

 

今年歡笑復明年  금년환소부명년  웃고 즐기며 한 해 한 해 보내느라

 

秋月春風等閑度  추월춘풍등한도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는데

 

弟走從軍阿姨死  제도종군아이사  동생은 군대 가고 양어머니마저 죽고

 

暮去朝來顔色故  모거조래안색개  어느덧 나이 들어 얼굴빛이 변하니

 

門前冷落車馬稀  문전냉락안마희  문 앞은 쓸쓸하고 찾는 손도 드물어

 

老大嫁作商人婦  노대가작상인부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상인의 아내 되니

 

商人重利輕別離  상인중리경별리  상인은 이익을 중시하고 이별을 가벼이 여겨

 

前月浮梁買茶去  전월부량매다거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갔다 하네

 

去來江구守空船  거래강구수공선  강어귀에 왔다 갔다 빈배만 지키자니

 

繞船月明江水寒  요선월명강수한  배 주위의 달빛은 휘영청하고 강물은 차가웠다네

 

夜深忽夢少年事  야심홀몽소년사  밤이 깊어 문득 어린시절 꿈을 꾸니

 

夢啼장淚紅欄干  몽제장루홍난간  꿈결에 울음 울어 눈물이 난간을 적셨다네

 

我聞琵琶已嘆息  아문비파이탄식  내가 비파 소리를 듣고 이미 탄식했는데

 

又聞此語重즉즉  아문차어중즉즉  여인의 말 듣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나네

 

同是天涯淪落人  동시천애윤락인  우리는 똑같이 하늘가를 떠도는 불행한 신세

 

相逢何必曾相識  상봉하필증상식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

 

我從去年辭帝京  아종거년사제경  나는 지난 해에 서울을 떠나

 

謫居臥病심陽城  적거와병심양성  심양성에 귀양와서 병들어 누웠다네

 

심陽地僻無音樂  심양지벽무음악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終歲不聞絲竹聲  종세불문사죽성  한해가 다가도록 악기소리 못 듣고

 

住近盆江地低濕  주근분강지저습  분강 가까이 살아 땅이 낮고 또 습해

 

黃蘆苦竹繞宅生  황려고죽요택생  갈대와 대숲만 집을 둘러 무성하다네

 

其間旦暮聞何物  기간단모문하물  그 간 아침 저녁 들은 소리라고는

 

杜鵑啼血猿哀鳴  두견제혈원애명  피맺힌 두견새와 원숭이의 구슬픈 소리

 

春江花朝秋月夜  춘강화조추월야  봄 강의 아침 꽃과 가을 밤 달빛 아래

 

往往取酒還獨傾  왕왕취주환독경  가끔 술을 얻어 홀로 잔을 기울이고

 

豈無山歌與村笛  기무산가여촌적  어찌 산 노래와 시골의 피리 소리가 없으랴만

 

嘔啞嘲절難爲聽  구아조절난위청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어주기 어렵다네

 

今夜聞君琵琶聲  금야문군비파성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  여청선악이잠명  신선 음악 들은 듯 귀 잠시 맑아졌다네

 

莫辭更坐彈一曲  막사갱좌탄일곡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 들려주오

 

爲君飜作琵琶行  위군번작비파행  내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니

 

感我此言良久立  감아차언양구립  나의 말에 느꼈는지 한 동안 서 있더니

 

객坐促絃絃轉急  객좌촉현현전급  물러앉아 줄 울리니 곡조는 점점 급해져

 

凄凄不似向前聲  처처불사향전성  슬프기 그지 없어 앞의 곡과 다르니

 

滿座重聞皆掩泣  만좌중문개엄읍  듣는 모든 사람 소리 죽여 흐느끼네

 

座中泣下誰最多  좌중읍하수최다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는가

 

江州司馬靑衫濕  강주사마청삼습  강주사마의 푸른 적삼 흠뻑 젖어 있구나

 

관련링크 : http://www.dongduk.ac.kr/%7Ekhs1376/china/lushan/lushan07.htm

                   http://www.dol.pe.kr/peom/china_poem/baeknakcheon_lis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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