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그의 정체를 처음 보았다
발 밑에 떨어진 가랑잎 한 장이
바르르 떨다가 끝내 조용히 숨을 거두자
갑자기 자취 없이 떠돌던 적막의 조각들이
앞산만한 무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그리고 바람이 겨울 새떼처럼 스산한 몸짓으로
큰길을 건너가는 것을
이윽고 차가운 비가 몇 줄기 후득이고
마른 가랑잎 냄새가 분향처럼 한 솔기 피어오르고
마침내 그 작은 집 일각문 안에서
누군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 들리더니
세상이 생매장당한 듯 조용해졌다
나는 까맣게 눈뜨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 홍윤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