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그의 정체를 처음 보았다
발 밑에 떨어진 가랑잎 한 장이
바르르 떨다가 끝내 조용히 숨을 거두자
갑자기 자취 없이 떠돌던 적막의 조각들이
앞산만한 무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그리고 바람이 겨울 새떼처럼 스산한 몸짓으로
큰길을 건너가는 것을

이윽고 차가운 비가 몇 줄기 후득이고
마른 가랑잎 냄새가 분향처럼 한 솔기 피어오르고
마침내 그 작은 집 일각문 안에서
누군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 들리더니
세상이 생매장당한 듯 조용해졌다

나는 까맣게 눈뜨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 홍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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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2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생매장당한 듯......
늙은 여성시인의 시가 정말 적막하군요.
사진 좋아요.^^

불량 2004-10-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붙일까 말까 고민했었는데..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에잇.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야. 라고 생각하며 올려버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