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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1부 세트 - 전4권 - 지리산의 작두 ㅣ 허영만 타짜 시리즈
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따지고 보면 사랑도 구라야! 사랑은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상대방을 들었다 놓았다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거든... 난 무식한 놈이라 잘 모르지만 사랑보다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소! 의리란 놈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니까! 당신이 나와 결혼하면 한 평생 남편으로서 의리를 지킬 거요!"
타짜 고니가 화란이에게 프로포즈하면서 한 말이다. 정말 만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사이고 전혀 세련되지 않지만 왠지 사랑의 본질을 조금 담고 있는 듯한 그 말에서 나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심심풀이로 집은 만화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감동을 한 줌 건져 올리는 순간이었다.
'식객'을 읽고 작가 허영만의 장인정신에 감탄했던 나는 요새 개봉한 영화 '타짜'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만화 읽는 재미가 쏠쏠하여 타짜 2부 '신의 손'까지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화투판. 무언가 꼬이고 뒤틀리고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음지에서 놓고 벌이는 놀이판이라기엔 너무 살벌하고 무서운 화투판. 그 속에서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타짜'이다.
빨치산에게 사살당하는 형의 죽음, 성폭행 당할 뻔한 누나,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성실하게 살아보지만 자전거 하나 사기 힘든 현실에 고니는 좌절한다. 그러다 화투판의 유혹을 알게 되고 종내는 5년 만에 모아온 누나의 전 재산을 하룻밤에 노름으로 다 날리게 된다.
하지만 화투판 생리에 대해 아는 철물점 아저씨가 지게 된 상황분석을 해주고 스승을 소개해 주자 더욱 화투판에 몸을 담그게 된다.
마치 소림사에 들어가 무술을 배우는 초보자처럼 타짜 평경장에게 사사받으며 화투 기술을 전수 받고 스스로 깨우치는 고니의 노력을 따라 가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화투에 전혀 문외한인 나이지만 안쪽장 달기, 호구, 개평 등등 화투판 속어들의 뜻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고 속고 속이는 그들의 한 판 승부와 전재산을 다 걸다 나가 떨어지는 그네들의 과욕을 보며 인간의 욕망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첫사랑인 은지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몰라 전전긍긍하는 고니와, 결혼해서 정착해 보려는 고광열의 눈물겨운 사랑도 이 만화의 한 줄기를 이루었다. 그 세계의 고수 경상도의 짝귀를 알아 보는 고니가 전라도의 아귀를 박살내는 장면은 스릴 만점이었다.
'타짜'는 작가 허영만의 능수능란한 그림과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콕콕 찌르는 김세영의 글솜씨가 잘 어우러져 탄탄한 구성을 갖추었고, 도박판 타짜들을 소재로 하면서도 부유하는 인생살이, 천태만상의 나약하고 비열한 인간군상들의 모습,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무모한 싸움들, 인생의 허무함 등등 인생의 어둡고 음습한 이면을 잘 보여준다.
군데군데 살짝 삽입된 우리 현대사의 일그러진 모습도 놓치지 말기 바라며 심심해 하는 사람들에게 만화 한 편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