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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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은 우울하다. 밑바닥 인생의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침울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면서도 다시 그녀의 글을 찾게 되는것은 나를 되돌아보게하는 그녀만의 글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p.15)라는 <외딴방>의 시작을 읽었지만 난 왠지 이 글이 모두 사실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녀의 글 속에서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떠오를때면 나 또한 숨기고 싶었던 나만의 외딴방을 들여다 보게된다. 그리고 열여섯의 그녀도 나처럼 부끄러운 마음에 그때의 얘기를 꺼내는게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친구 하계숙이 얘기했던것처럼...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열여섯의 그녀는 무료한 시골집에서 나와 서울의 오빠에게 가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진 가운뎃집의 딸이었던 그녀의 서울 생활은 최하위 계층에 속하는 고단한 삶이었다. 서른일곱개의 방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가리봉동의 작은 방에서 스물셋이라는 어린나이에 가장 노릇을 해야하는 큰 오빠, 사진 찍기를 즐겨하며 대학 문턱이라도 가보고 싶다던 외사촌, 문학을 좋아하지만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수 없기에 법대에 입학해 데모를 하고 다니는 셋째오빠,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그녀가 함께 생활한다. 낮에는 동남전기주식회사의 스테레오과 1번으로 적은 임금을 받아가며 기계와 같은 노동을 해야했고, 밤이면 학교라는 곳을 가지만 그녀가 꿈꾸는 글쓰기와는 상관없는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그녀와 같은 열여섯에 나는 무엇을 했던가? 중학교 3학년... 학교에서 꽤나 우수한 성적으로 선생님들께 촉망받는 인재였으나 가정형편상 대학을 포기하고 상고 진학을 결정하며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등학교 3년동안 장학금을 준다는 집근처 학교로 진학하는게 맞는 거였는데, 마지막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서울에서 알아준다는 여상으로의 진학을 결정했었다. 뱀의 머리가 되기보다는 용의 꼬리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결정한거였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받아들었던 성적표에 씌여있던 등수는 나를 열등감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점점 떨어져가는 나의 성적은 나와 맞지 않는 수업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그녀 나이 열일곱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직장에서 겪는 또 다른 고충이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깎이는 임금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노조가 결성된다. 그러나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로 노조 탈퇴서를 쓰고 잔업거부에 함께 동참하지 못하며 수치심을 느껴야 했고,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노조지부장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가하면 그녀의 외사촌과 그녀가 직장상사에게 유린을 당하고, 동료 중에는 임신도 하고 도둑으로 몰려 직장을 그만둔 이가 있다는 얘기도 듣게된다.

나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나의 이름보다는 미스O으로 불리며 커피심부름과 복사심부름, 다른 사람의 문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정도의 일을 하며 회사생활을 맛 보았다. 그러던 중 컴퓨터를 조금 잘 다루었던 내가 좀더 좋은 직책으로 자리를 옮겨 나만의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었다. 하지만 어느날 낙하산처럼 떨어진 대학을 나온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여자가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학벌 지상주의에 상처를 받은 나는 그를 계기로 스물셋의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다. 나도 그녀처럼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이른 퇴근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야간대학을 다녔다. 그 4년이 온전히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때도 있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낙하산처럼 떨어진 그 여자가 원망스러웠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나를 자극해준 그 여자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와 나는 살아온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겪어온 과정이 다르지만 없는 것에 대한 서러움과 그 시대에 걸맞는 쓴 맛도 보아온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그때의 얘기를 꺼내기 힘들어 하는 것은 나와 같이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책의 말미에서 알게된다. 가끔씩 희재언니의 얘기를 꺼내며 얘기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을 느꼈지만 설마 아니겠지 하며 페이지를 넘겨갔다. 하지만 그녀가 희재언니의 자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조하게 되어버린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외딴방을 떠나오고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고 생각조차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소설 <외딴방>을 통해서 그녀가 잊고자 했던 열여섯에서 열아홉의 시절을 다시 회상하고 희재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로서 그녀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인정하며 그녀의 잊혀졌던 4년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게된다. 그녀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크기가 다를뿐 각자의 숨기고 싶은 외딴방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모든 것을 털어내고 인정했던 것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 작고 마른 체구에 조금은 예민한 성격탓에 부자집 외동딸로 자란듯이 보이는 나지만, 나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었고 힘들게 이겨낸 시절도 있는 털털한 사람이라고 내보이고 싶다. 그리고 그녀가 힘든 공장생활에서도 작가가 되기 위한 꿈을 펼치기 위해 공부를 했던것처럼 나도 아이 둘을 키운 이제사 또 다른 꿈에 대한 도전을 시작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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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09-08-09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슬픈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책을 읽어도 리뷰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하겠지만 집에 있어서 읽어보고 싶네요.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 구입한 책인데,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님처럼 저도 나의 꿈을 찾고 도전할 기회가 되면 좋겠는데요.

같은하늘 2009-08-10 08:11   좋아요 0 | URL
가슴 한켠이 저린 이야기...
부모님의 야이기, 언니,오빠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꼭 읽어보세요...

마노아 2009-08-0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여다보면, 저마다 아팠고 힘들었던, 서러움의 외딴방이 있어요.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나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외딴방이 된다면, 그건 또 나름의 고마움이 될 테죠. 리뷰 잘 읽었어요.^^

같은하늘 2009-08-10 08:12   좋아요 0 | URL
그때는 힘들다 생각했는데 그로 인해 내가 성숙됨을 이제사 알게 되지요...
아마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