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의 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31.


  늑대. 동물이 나오면 흔히들 쉬운 내용을 담은 책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영화 '파이 이야기'에는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등장한다. 단지 '호랑이'가 출현(?)한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대동한 부모들이 영화관에 꽤 몰렸고, 아이들은 인간과 신앙에 대한 주제를 가진 '파이 이야기'에 금세 질려 앞 좌석을 발로 뻥뻥 차는 바람에 앞 좌석에 앉은 어른은 한숨을 푹 내쉬며 개탄했다는 에피소드가 들려오기도 했다. 웬 횡설수설인가 하겠지만, 사실 이 책을 든 이유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의 정원>,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읽다보니 잠시 쉬운 책을 들 필요를 느꼈다. 이 책이 쉽게 다가온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늑대, 즉 동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늑대 같아 보이지 않는 뚱한 실루엣과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그려진 표지가 참 귀엽다. 부제(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마저 단순한 에세이나 논픽션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저자가 마크 롤랜즈라는 게 가장 흠이었다. 나는 장르문학을 사랑해 마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마크 롤렌즈의 전작 <SF 철학>은 제목부터 딱 꽂히는 책이었다. 소재가 SF인데다가, 무엇보다도 두께가 얇아 부담없이 그 자리에서 책을 폈다. 그리고 50쪽도 못 읽고 다시 서가에 꽂아두었다. 그저 즐기는 소재로만 생각했던 SF를, 저자 마크 롤랜즈는 참… 꼬기도 많이 꼬았다. 평소에 '정말 재밌게 읽었던 철학자'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철학자와 늑대>를 읽은 후로는 진실이 되었다. 다만, '재밌지만 어렵게'라고 고치고 싶다.


  이 책은 또한 생물학적 독립체로서가 아니라, 그 어떤 존재와도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을 고찰하고 있다. (14쪽)


  단순히 철학자와 늑대가 함께 살았다는 내용이었다면 호평은 커녕 책 출간도 어려웠을 테다. 사실 '동거 일기'라고는 되어 있지만 브레닌에 대한 이야기가 반밖에 되지 않는다. 실상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1장의 두번째 쪽에서 바로 알 수 있다. 단순히 사람과 늑대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가 아닌, 늑대를 아래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놓인 개체라 생각하고 그에 우리 인간을 비춰보고 사색하는 내용이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새, 브레닌이 몰래 음식을 먹은 후 주인에게 딱 걸렸다. 동물은 몸으로 말을 한다. 주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자기도 어쩔줄 몰라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해도 거짓말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음식을 먹은 게 늑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당황하기는 커녕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거짓말이라는 소재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월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영장류는 늑대에 비해 뇌의 크기가 20% 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영장류가 늑대보다 지능이 더 높고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월'의 기준은 특정한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영장류는 지능이 발달했기 때문에 집단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 정반대로 집단생활을 하기 위해 지능이 발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남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료를 이용하여 적은 비용으로 집단 생활의 혜택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에 앞서 우월의 증거로 내세운 거짓말은 사회 체제에서 유리하게 살기 위한 위한 덕목 중 하나가 된다. 곧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이고, 우리가 늑대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근거가 바로 이 '속임수와 계략'이 되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이 끝없이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재밌는 견해도 내놓는다. 매일 산책이 끝난 후 빵집에 들러 똑같은 빵을 산다. 사람이라면 또 이 빵이냐며 불평을 하겠지만 브레닌은 매일 혀를 내밀고 빵이 얼른 자신의 입에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시간이란, 늑대은 원의 형태로 인식하지만 인간은 직선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있단다. 시간이 지나 삶의 끝에는 결국 '죽음'이란 무서운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한정된 삶에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인간은 끝없이 목표와 욕망을 만들어낸다. 직선의 시간이 주는 두려움을 피하고자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곧바로 다른 목표를 만들어낸다. 결국 인생은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이다. 삶은 목표와 목표가 연결된 단순한 선이고 인간의 시간은 그저 앞으로만 가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지금의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인간에게 매 순간은 끝없이 유예되며 진정한 순간이란 없다. 한없이 투명한 순간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들의 메아리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를 비출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감정은 단 한 순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인간에게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최고의 순간은,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고 희망도 없을 때라고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삶의 목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최고의 순간은 강렬한 쾌감과 환희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최고의 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일 수도 있다. 시간이 아닌 순간의 존재에게는 최고의 순간이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때이며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끔찍하고 불쾌한 순간을 감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줄곧 착각한다. 우리는 논리를 토대로 행동하고 스스로 선악을 구별할 줄 안다. 이성과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자유의지를 앞세워 행동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이런 근거로 우리가 지구 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동물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사실 동물이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일 중에서 실은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우리는 말을 할줄 알고 노래를 부를줄 알며 사랑할줄 안다. 동시에 거짓말과 계략에 능숙하고 남을 속일줄도, 시기할줄도 안다. 인간은 단지 특정한 측면에서 우월할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를 품은 달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훤아, 훤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의론
존 롤즈 지음, 황경식 옮김 / 이학사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은 고전의 이유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의 기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31.


  소설의 존재 의의에 대한 글을 볼 때면 매번 가라타니 고진이 떠오른다. '문학은 이미 죽었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동시에 쭉정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그것 또한 마음이 아프다. 마음과 영혼을 흔들 정도의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진즉에 잃었다는 것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한때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회고발적 소설은 단지 내용이 충격적이어서이지,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던 '살아 있는 문학'이 가진 힘 때문은 아니다.


  데뷔작 <농담>부터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웃음과 망각에 관한 책>까지 숱한 소설을 써온 세계의 문호 밀란 쿤데라에게 소설이란 어떤 의미일까. 소설에 대한 에세이,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소설가(카프카, 헤르만 브로흐 등) 평론, 자신의 소설론, 대담, 연설문으로 잘 짜인 <소설이 기술>에서 쿤데라는 여전히 소설의 힘을 믿는다. 기술의 발전속도만큼 세상은 빠르게 진화했다. 지식이 진보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시야에서 총체상을 잃어버리고 결국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 우리는 매스미디어와 함께 살지만 끝없이 증식하는 매스미디어와 달리 한없이 작아진다. 소설의 존재 이유가 우리를 '존재의 망각'로부터 지키는 것이라면 오늘날 소설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하다고, 쿤데라는 역설한다.


  <소설의 기술>은 쿤데라를 쿤데라를 새로 읽게 하는 힘을 가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물과 장(章)이 가진 약호나 상징을 찾아볼 수 있다. 몇 개의 단어는 그것들이 상징하는 인물과 여러 개의 사건이 함께 뒤섞인다. 그러면서 작가의 손에서 창작된 게 아닌 실존의 본질적 문제를 포착하는 실존적 약호로 탈바꿈한다. 테레자는 '현기증'이란 열쇠어가 있다. 이는 토마시와의 사랑에 지쳐 그녀의 원래 출신의 '저속한' 곳으로 돌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테레사와 쿤데라에게 현기증이란 피로에 지쳐 느껴지는 단순한 증상이 아닌,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고 그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하며 종말에는 땅바닥보다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으로 진화한다.


  쿤데라는 소설의 열쇠어뿐 아니라 다른 열쇠어도 소개한다. 다소 생소한 체크어(체코, 보헤미아 등의 모국어)로 쓰인 쿤데라의 소설은 타국어로 번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번역가들은 프랑스어 판을 놓고 중역을 하기도, 하나의 문단이었던 긴 문장을 짧게 조각내기도 했다. 이에 번역가들이 쿤데라에 대해 '고민'하도록 쓴 것이  쿤데라 자신의 열쇠어와 그가 좋아하는 단어들에 대한 사전이다. 쿤데라를 대표하는 '가벼움'이란 단어를,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공허의 무거운 가벼움을 느꼈다'고 표현하여 읽는 이를 묵상하게 만든다. 또한 그의 존재 이유인 '소설'은, 작가가 실험적 자아(인물)를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를 끝까지 탐사하는 위대한 산문형식이다.


  <소설의 기술>의 한 축을 쿤데라와 그의 소설이 담당한다면 다른 한 축은 그가 존경하는 소설가들이다. 특히 <몽유병자들>의 헤르만 브로흐, <변신><성><소송>의 카프카를 각각 한 장에 배치하였다. 보로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결정에서 비합리적인 것이 맡는 역할에 대해 탐구한다. 카프카는 요제프 K에게 아무 이유 없이 벌을 줌으로써 벌이 잘못을 만드는 부조리함을 표현한다. 두 작가의 작품 모두 비합리적 체계를 다루면서 모든 행위의 바탕에는 혼동의 체계인 비합리적 체계가 한 사람이 아닌 정치적 생활까지도 지배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쿤데라의 소설이 사회주의 체제와 부조리함에 대한 풍자적 내용을 담은 것으로 보아 앞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들과 정신적 유대감이 강했으리라고 감히 추측할 수 있다.


  <소설의 기술>은 쿤데라에게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그를 새롭고 다르게 보여주는 반면, 그와 친해지기 위해 막 악수자세를 취하는 이들에겐 다소 소화하기 힘든 책이다. 쿤데라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판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글이 주는 지적 매력을 느꼈다면 반드시 펴볼 만하다. 쿤데라와 더불어 보로흐, 카프카도 함께 탐독한다면 <소설의 기술>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소설이 그려낸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