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AR MINI 마이 카, 미니 - 나를 보여 주는 워너비카의 모든 것
최진석 지음 / 이지북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041.


  나이 스물 여덟에 운전면허를 딴 지 벌써 세 해가 지났건만 면허증은 지갑, 그것도 뜯어져서 미사용 중인 카드를 모아둔 지갑에 고이 모셔져 있다. 전북 정읍의 할아버지 댁에 가는데도, 부천 친척 집에 가는데도, 가까운 마트 가는데도 항상 예순 가까이 되신 아버지가 차를 몰아야 한다. 심지어 같이 면허를 딴 네 살 어린 '여'동생도 차를 몰고 마트에 가는 마당에 말이다!


  면허를 따면 운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든다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면허를 딸 때나 지금이나 차를 몰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기숙사에 살고 근무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여행은 싫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BMW(Bus, Metro, Walking)이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 대신 차를 몰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을 볼 때조차 돋보기 안경을 쓰시는, 노안이 오는 아버지가 운전할 때 도로가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상상할 길이 없지만, 시력에다 체력까지 나빠지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니 조수석에 앉아 꾸벅 졸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여동생에게 뒤쳐진다는 생각까지 드는데다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오너(owner)인 걸 보면 뭔가 아쉽다.


  운전을 하지 않은 이유는 기회가 적은 것도 있지만 원체 차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댓 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자동차 바퀴만 보고 브랜드를 척척 맞춘다고 하는데, 나는 차 모델을 맞추기는 커녕 어떤 회사에서 나온 차인지도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외모와 달리 섬세하게(?) 작은 기기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 큰 차를 왜 좋아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MY CAR MINI>(이하 마이카)를 만났다. 미니라곤 미니쿠페밖에 모르고, 실제론 거의 보지 못했으며 그나마 카트라이더에서 무료로 증정했던 미니쿠퍼로 게임을 즐겨본 기억밖에 없다. 그저 '예쁜 차'로만 알고 있던 미니였고, 사실 난 미학보다 효율을 더 중시하기에 책도, 미니도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전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면서 힘들게 운전하시는 아버지를 보고는 차 구입을 잠시 생각하였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이 미니와 <마이카>였다. 집으로 온 후 얼른 책을 펼쳤다.


  국내에서만 연간 최대 6천 대 이상 팔리는 미니는 이미 소형차의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다. 하지만 차 한 대로 책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그저 차일 뿐인데 말이다. 책은 미니가 어떤 차인지부터 읊는다. 'MINI is mini, MINI is not min'라는 소제목에서 미니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겉으로 보이기엔 작은 차지만 안을 들어다보면 의외로 넓고 수납공간도 꽤 된다고 한다. 처음 기아 SOUL을 탔을 때가 기억난다. 아마 미니는 그것만큼 충격적(?)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한 가지 놀란 점은 미니가 무려 7종의 라인업을 가지고 있고 차의 심장인 엔진은 5종이라는 것이다. 즉 이리저리 조합하면 35종의 많은 미니가 탄생한다. 엔진은 숫자가 가득하고 관심(사실 지식)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지만, 미니의 7종 라인업은 아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본형인 해치백부터 오픈형인 컨버터블, 속도감의 쿠페, 대형미니인 컨트리맨까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한다.


<미니 7종 라인업과 종별 특징>



  연간 판매량이 30만대에 불과한(BMW의 한 해 판매량은 196만대) 미니지만 고유의 매력 때문인지 유명인들도 미니를 많이 몰았다. 비틀즈 멤버인 조지 해리슨은 미니의 외관에 비틀즈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식을 했고 마가릿 대처도 미니를 타고 다녔다. 이미지 매칭은 잘 안 되지만 축구선수 웨인 루니도 미니 쿠퍼S 해치백을 탔단다. 우리나라도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진다. 미니 런 인 코리아나 미니 유나이티드 코리아 등 큰 행사도 개최됐다.


  책이 내 사고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한 해에 백 권이 넘는 책을 읽어도 얼마 꼽지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관심도 없던 분야의 책인 <마이카>가 차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었다. 무조건 효율과 연비, 예쁜 것보다 투박한 게 진리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미니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28년만에 처음으로 차 가격을 검색해보았다. 오 마이 갓. 2013 미니 쿠페가 3천 후반에서 4천 초반까지다. 입이 떡 벌어진다. 비슷한(그렇다고 생각한다) SOUL이나 i30, 벨로스터의 두 배 가격이라니…. 그럼에도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미니를 볼수록 탐난다. 겉으로 보이는 미적감각에 주행성과 안정성까지 꽉 잡은 미니. 아, 당신은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아버렸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좌의 게임 1 얼음과 불의 노래 1
조지 R. R. 마틴 지음, 서계인 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035, 038.


  벌써 세번째로 읽는 책이다. 군대 가기 전, 전역 후, 그리고 이번. 작년 10월에 맹장 수술로 입원했을 때 읽으려고 전자책으로 사두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사실 이번에도 읽으려고 일부러 핀 게 아니라, 워낙 할 게 없고 손에는 핸드폰밖에 든 게 없어 심심풀이 땅콩으로 폈다.


  4월 초부터 계속 본 기록이 있으니 거진 2주가 걸린 듯하다. 예전에는 에픽 판타지의 최고봉이라고 치켜세우며 빠져들었는데 4부까지의 내용을 모두 아니 호기심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리고, 문장이 생각보다 평이하다. 원서 문체는 꽤나 칭찬받는 듯한데 아무래도 번역의 입김이 서리다보니 평범한 문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화된 기억과는 정반대로 서술과 묘사 또한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의외의 곳에서 늘어지거나 쓸데없는 곁가지가 꽤나 있다.


  번역은… 말 않겠다. 소설 하나에 역자가 세 명이 달라붙는 게 말이 되는가. 다만 번역을 문제삼아 이 책을 보지도 않고 까는 건 참을 수 없다. 번역 덕분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부분이 더러 있지만 그정도는 감안하고 봐도 매력적인 소설이다. 제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원서를 권해서 제풀에 포기하게 하지 말고. (원서, 상당히 어렵다)


  고유명사의 번역 오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Jaime를 자이메로 번역하였는데 실상 발음은 제이미란다. 그런데 제이미라니, 이게 킹 슬레이어에게 마땅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가? <드래곤 라자>의 제미니가 퍼뜩 떠오른다. 저런 나약한 이름은 허용할 수 없다! 셉타 모르다네는 실제론 모르데인, 니메리아는 나이메리아다. 아직 드라마를 1부 3화까지밖에 못 봐서 이정도밖에 모르겠다. 허나 번역서의 선택이 더 옳아 보인다. 자이메는 물론이거니와 모르데인은 과거 킹스가드였던 아더 데인이 떠오르고(조용한 그녀가 말이다!) 나이메리아는 우리나라 정서상 잘 맞지 않는다. (헤르미온느와 마찬가지 느낌이랄까) 다만 서자-바스타드, 반역자(찬탈자)-우스르페르의 혼용은 피해야 했다. 우스르페르는 원서에서 고유명사화해서 사용하는 단어라 우스르페르로 칭했을지도 모른다. 뭐, 사실상 발음은 유서ㄹ퍼에 가깝다. 번역에 대해선 엔하위키 같은 곳에 자료가 많으므로 참고바람.


  책과 드라마를 같이 보고 원작 팬인 나로선 드라마가 영 재미없게 다가온다. 소설의 영상화가 항상 그랬듯이 아쉬운 부분이 매우 많다. 워낙 긴 호흡의 소설이기에 많은 부분을 쳐냈겠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나 싶다. 드라마에서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은 바로 시리오 포렐ㄹㄹㄹㄹ의 등장이다. 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ㄹㄹㄹㄹ발음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들려준다.(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얼음과 불의 노래>를 판타지라고 일반문학보다 한 수 아래에 두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그들이 판타지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의심된다. 당신들이 높게 치는 일반문학도 사실 현실을 바탕으로 짜낸 판타지라는 걸 알랑가몰라.


  오늘은 일기를 끼적였다. 크하하하하! 참, 산도르는 생각보다 멋진 놈이고, 자이메도 그렇다. 하지만 티리온을 따라갈 사람은 없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34.


  그냥, 잡담. 책에 대한 내용은 얼마 없다.


  책에도 분명 교묘한 마케팅이 존재한다. 사재기 따위의 허섭한 수 말고, 은근히 얼굴을 내비치면서 책을 홍보하는 방법이다. 영상의 시대답게 책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자신을 홍보한다. 별그대에서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달빛 프린스에서는 <꾸뻬씨의 행복여행>이었다. (오, 제목은 왜 이리도 긴가) 드라마셀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데다 책 내용에 맞춰 각본까지 수정할테니 마케팅 비용 좀 대라는 요청까지 있었다니 방송이 책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영상만 있느냐, 조금 아날로그적이어도 듣는 홍보수단도 있다. 라디오는 한물 간 지 한참 됐고 이제 그 자리는 팟캐스트가 꿰어찼다. 김영하가 책을 읽어줄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던 팟캐스트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여러 매체의 홍보 의지(?)가 결합하여 많은 소통 채널을 만들었다. 책에 관련돼 가장 인기가 좋은 팟캐스트는 역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다. 저번 회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다루었는데 때마침 알라딘에서 <속죄> 반값 세일을 하면서 이 책이 반짝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어쩌면 우연을 빙자한 마케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차저차 잡담이 길어졌는데 뭐, 잡담하려고 쓰는 포스트니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결국 하고픈 말이 무언가 하면, 빨책을 듣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샀다는 거다. 빨책을 듣기 전에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고, 아마 알았던들 별로 땡기진 않았을 것이다. 에세이류는 웬만하면 피하는데다 워낙 재미없게 읽은 <죽음>도 한몫 한다. 책에 대한 에세이도 싫어하는데 죽음이라고 좋아할 성싶더냐. 하지만 빨책 신봉자에다가 팔랑귀인 난 이 책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빨책에선 정말 좋은 책이라고 썰을 풀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책이란 건 취향을 워낙 타는 것이고, 게다가 남들이 좋다고 말한 책을 읽었지만 크게 피를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띠지에 적힌 정재승의 추천사가 매우 거슬렸다. 읊어보자면


  매력적인 책이다. 우리의 몸과 삶에 대해 쏟아내는 과학적 통찰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총널살인 같은 명언들에 취하고, 몸의 변화에 공감하며 읽다가, 결국 감동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는 책!

(이것은 감성 마케팅이 분명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알라딘과 예스24는 이 책을 에세이와 교양인문학으로 분류하였다. 에스콰이어 리뷰에서는 회고록, 에세이, 인문서를 언급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결국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 이 책은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일단 인생을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의 4장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나이대에 해당하는 과학·생물학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를 말하면서


  우리는 뼈를 350개 가지고 태어나는데(긴뼈, 짧은뼈, 납작뼈, 불규칙뼈), 자라면서 뼈끼리 붙기 때문에 어른의 몸에는 206개만 남는다. 우리 몸무게에서 70퍼센트쯤은 물이다. 지표면에서 물에 덮인 부분의 비율과 비슷하다.


라는 식이다. 과학적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뭔 재미일까. 저자는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첫째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는 볼기분만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해서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다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한 후 그 꿈은 접어야 했다. 젊었을 적부터 머리가 벗겨졌고, 허리가 매우 좋지 않다. 등등.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저자가 말하는 과학적 사실에 재미라는 양념을 쳐준다. 자신의 강점이었던 농구 이야기를 하면 독자는 자연히 농구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자신있어 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에세이의 소감이 굉장히 사변적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이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참 다행이다. 저자와 아버지의 다소 상반된 모습(저자의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한단다. 97세인데도 말이다)도 흥미롭다. 다만, 앞선 과학적 사실과 개인의 이야기가 너무 얼개 없이 서술되는 방식이 많이 발견된다. 빨책에선 이런 뜬금없음이 굉장히 위트 있다고 말하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어색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논리적 전개에서 너무 벗어나는 부분도 있고 대체 왜 이 에피소드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책을 전체적으로 넓혀준다면, 삶과 인생, 죽음에 대한 수많은 명언은 책에 깊이를 더해준다. 주옥같은 말들이 워낙 많아 이것만 다 옮겨도 꽤나 많은 양이 될 듯싶다.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이번 책은 갈무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당장 책을 피면 좋은 글귀들이 많다. 몇 장만 펴보자.


*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_프랜시스 톰프슨 (33쪽)

* 나는 33세이다. 급진 혁명가였던 예수의 나이와 같다. 혁명가들에게 치명적인 나이다. _카미유 데물랭 (145쪽)

*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없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_윌리엄 오슬러 (163쪽)

* 노인들에게는 접촉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키스와 포옹이 필요한 인생 단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의사 외에는 누구도 그들을 만지지 않는다. _로널드 블라이스 (251쪽)

*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것이었다. _엘리자베스 1세 여왕 (287쪽)


  죽음을 다루는 책은 결국 삶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더욱 가열하게 살라고 역설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사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시간이 참 느리다는 생각도 든다. 1초 1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1초가 모이고 모여 1달, 1년이 되면 시간이 참 안 간다고 느끼기도 한다. 시간의 화살과 시합에서 결국 지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아직 남은 시간을 보면, 아니 당장 바로 앞만 봐도 우리 인생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빛을 가지는가! 마지막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본문을 옮기고 잡담을 닫는다.


  내가 이제껏 지지부진 늘어놓은 이야기는,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당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물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유전자가 불멸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_본문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한도시 no.6 #1 무한도시 no.6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031.


  흠. 이 책을 왜 보고자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산 책은 거의 왜 샀는지, 어디서 샀는지, 어디서 추천받았는지 기억하는 편인데 이 책만은 도무지 기억이 없다. 아마 영 어덜트 소설 중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루었다고 해서 한켠에 적어두었나보다. 구입은 민음사 리퍼브도서전에서 반값으로. 만약 이걸 제값주고 샀다면 아마도 땅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했을 듯싶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 이상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중 하나가 'no.6'다. 뭔가 심오한 이유는 없다. 그냥 여섯번째 도시이기 때문에 no.6일 뿐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완벽해 보이는 도시는 사실 허상이고 뒤에선 구린내가 풀풀 풍긴다. 다들 그걸 모를 뿐. 엘리트 소년 시온은 교정시설에서 탈출하는 부상당한 생쥐(캐릭터 별명이다)를 응급처치해주고 그때문에 계급이 박탈당한다. 몇 년 뒤, 공원 관리일을 하던 시온은 사람에게 기생하던 벌이 숙주를 죽이고 부화하는 것을 본다. 평소 no.6에 의문을 가지던 시온은 이 사건에서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되지만 생쥐가 그를 구한다. 쓰레기더미 서쪽 구역으로 피신한 시온은 no.6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가 단순한 스토리. 재밌는 인물이 나오고 인물들끼리 과거에서부터 얽히는 스토리도 있지만 정도가 매우 미미하다. no.6와 교정시설을 무너뜨리는, 어떻게 보면 매우 큰 도시를 붕괴시키는 게 메인스토리인데 그에 비해서 인물의 폭이 너무 좁다. 지금 손으로 꼽아보니 소설에서 많이 다뤄지는 인물은 꼴랑 다섯이고 서브캐릭터를 해봐야 스물 되려나. 실상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소설도 인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캐릭터성에 치중한 <무한도시>는 그 깊이가 매우 얕다.


  깊이의 단점은 묘사와 진행에서도 드러난다. 세계관으로만 따진다면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멋진 신세계>는 고전다운 서술 - 즉, 다소 고루하고 장황하지만 서사에 기댄 서술을 보여준다면 <무한도시>는 철저히 캐릭터에 의존한 서술이다. 청소션 소설을 표방하지만 라이트 노벨의 노선을 그대로 밟는다. 세계관도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고 권마다 다루는 이야기도 매우 적다. 9권의 시리즈는 대략 장편소설 2권 정도로 압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라이트 노벨의 공식(한두 권에 이야기 완결)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서쪽 구역에서 슬렁슬렁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권이 있는가 하면 급박하게 교정시설로 들어가는 권도 있다. 즉, 이건 9권 분권해서는 안될 책이었다! 이건 명백하다. 교정시설이 무너진 후의 전개와 결말은 분량조절 실패로 허무하고 허무하다. 어쩌라는겨?


  아무리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문장에 깊이가 있어야 할텐데 글솜씨도 그닥 좋지 않다. 이러니 청소년 소설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 아닐까. <아가미>만 봐도 이렇지 않단 말이지. 아무리 세부 장르가 다르지만. BL 요소를 첨가한 두 캐릭터(시온과 생쥐)의 매력도 그리 와닿지 않는다.


  여튼 끝. 3일에 걸쳐 읽었는데 나중엔 메인스토리만 파악하려고 문장은 읽지도 않고 넘겼다. 머리에 남을 것도, 배울 것도, 재미도 없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요일 - 개정판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29.


  문학을 주로 다루고 감상도 정말 맛깔나게 쓰는 블로그 이웃의 별 다섯 개 리뷰를 보고 책을 고르곤 한다. 더러는 익숙한 책도 있지만 거의 처음 듣는 책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이다. 문장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와 달리, 이 블로거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는 타입이다. 번역에서도 매끄럽고 참신한 번역을 찾고, 나와는 영 안 맞는 은희경, 코맥 맥카시, 이언 매큐언을 최고로 꼽는다. 세 작가의 대표작(<소년을 위로해줘>(은희경), <속죄>(이언 매큐언), <로드>(코맥 맥카시))을 읽어본 결과 아, 난 역시 좋은 독서가는 못 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모두가 극찬하는 <속죄>는 묘사 덩어리에다가 판본 때문에(그렇게 믿고 싶다) 더욱 읽기 힘들었다. 한 30쪽 읽고 덮었던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사실, 구매계획이 전혀 없던 책이었다. 친구들과 홍대 카페 꼼마에 들렀다가 나 책 좀 읽어라는 으스대는 자세로 고르고 고르다 평소 읽지도 않을 책을 서가에서 꺼낸 게 화근이었다. (덕분에 친구는 김영하의 <검은 꽃>을 구입했다) 읽자니 전의 경험 때문에 버겁고, 안 읽자니 들인 돈이 아까웠다. 며칠간 다소 읽기 쉬운 책들을 읽었기에 어려운 난도에 한번은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으면 되지.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확실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은 주인공 퍼론이 토요일 하루 동안 겪는 일을 장장 500쪽에 걸쳐 이야기한다. 묘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폐허>(스콧 스미스)에서도 며칠 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여기선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다. 잠 자다 읽어나고 창밖을 보는데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고 무슨 일이지 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간다. 이 단순한 상황에 작가는 수많은 글자를 넣는다. 인물이 겪는 상황의 단순묘사는 물론이요, 갑자기 아들과 아침에 대화를 했다거나 딸과 장인어른이 과거에 싸웠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일하는 병원과 가장 친한 동료에 대해 줄줄이 소세지로 말한다.


  스토리의 방향성은 아주 미미하고 곁가지로 계속 빠지고 다시 돌아올 듯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빠지는 모양새가 답답할 만하지만 이상하게도 <토요일>은 재밌다. 서술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듯한데 자칫 잘못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나아갈 이야기의 리듬감이 매우 좋다. 읽기 지루하고 너무 나갔다 싶으면 얼른 제자리로 끌어오는 느낌이랄까. 단 하루에 일어난 일로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알 수 있고 그덕분에 인물 간 대화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풍부하다 못해 넘칠 듯한 서술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모든 감상에서 평범한 토요일에 퍼론 가족에게 닥치는 사건을 통해 일상에 갑자기 스며드는 폭력을 말하던데, 솔직히 그런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서술과 묘사에 불안한 이미지를 은밀하게 삽입하는 건 역시 디테일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남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 눈에 띈다.


  퍼론의 서술 중 편안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온다. 아내가 곤히 자는 침실, 태곳적 진화의 딜레마(잠은 자야겠고, 그러다 잡아먹힐까봐 두렵고)를 생각하며 차 문을 잠근 차 안, 병원 동료 제이와 함께 있는 스쿼시코트, 가족과 모인 집은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든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동시에 타인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타인을 진정으로 배려한다거나 사랑하는 느낌이 아니다. 새벽의 비행기 사고를 아들과 대화할 땐 그저 단순한 사고로, 속으로는 흉폭한 테러이길 은근히 바란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을 넘어 완전히 밀어내려는 수준으로 강화된다. 벡스터와의 첫 마찰에서 퍼론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금만 상대에게 맞췄다면 저녁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의사의 권위를 이용하여 심리적으로 그를 갖고 놀아버리고 만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벡스터의 눈에서 원망이 아닌 슬픔이 보이는 마지막 장면과도 대치된다. 인류의 성공과 우위의 비결이자 핵심은 선택적으로 발휘하는 자비심이라고 생각하는 퍼론에게 평화는 오직 그만의 평화일 뿐이다.


  사실 퍼론의 집에 예정치 않은 손님이 하나 더 있다.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밝히지 않겠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퍼론의 집에는 또 다른 타인이 껴들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퍼론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타인은 무조건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