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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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오랜만의 르포다.

책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으로 시작한다. 바둑은 체스, 장기와 달리 수가 무한대에 달하기 때문에, 바둑만큼은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알파고는 인간을 압도했다. 바둑은 인공지능에 철저히 무너졌고, 그 시점부터 바둑사의 흐름은 180도 바뀌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둑계는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연습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 사이의 실력은 현전히 벌어져다. 한때 명수, 신의 한수라 불리던 수들은 AI의 승률 계산 앞에서는 허술한 수, 떡수로 전락하기도 했다. AI는 바둑을 철저히 해체했다. 예술성, 기풍, 정신수양이라는 가치 대신 승률을 앞에 내세운다. 과연 바둑은 예술인가, 승부가 전부인 스포츠인가? 이런 질문들은 바둑 프로기사들을 끝없이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장강명은 이 문제를 바둑에 국한하지 않는다. 소설가로서 그는 좋은 소설이 무엇이며, 작가라는 직업의 효용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묻는다. AI의 도입은 특정 분야만이 아닌 인간의 모든 일에 영향을 줄 것이며, 우리의 삶 전반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AI에 다소 회의적이다. AI가 낳은 부를 인류가 평화롭게 나눠가진다?(AI세).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는 없었고, 오히려 경쟁이 심회되어 인간을 더욱 옥죌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책은 8장까지 바둑과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다가, 9장과 10장에서 저자의 개인적 성철과 사회적 전망을 설파한다. 전반부가 르포라면, 후반부는 저자의 사회와 미래를 읽는 시선을 담은 강한 선언에 가깝다. 앞의 여덟 장이, 마지막 두 장을 위한 빌드업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결이 다르다. 내용은 좋으나, 내 입장에서는 두 부분의 결이 너무 달라 이질감이 느껴졌다.

바둑계의 변화에서 시작해 우리의 일과 존재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난 사실 기술적 낙관론자로서 계속되는 기술의 발전과 그에게서 오는 많은 일들을 낙관하기만 했는데, 저자의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접하니 다가올 미래를 만힝 고민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저자의 아내이자 ‘그믐‘의 대표인 김새섬씨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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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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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년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 미국이 내부 갈등과 분열로 두 개의 국가 - 자유와 복지를 중시하는 진보적 국가 ‘연방공화국‘, 기독교 원리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적 국가 ‘공화국연맹‘ - 로 나뉜 미래를 그린다.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보수와 진보 간의 균열이 깊어졌고, 이러한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나라가 두 개의 국가로 쪼개졌다는 설정.

연방공화국 정보국 요원인 샘은, 공화국연맹의 경찰국 요원인 케이틀린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알고보니 샘과 케이틀린은 이복자매...! 둘은 어떻게 만나고 싸울 것인가. 이복자매라는 데에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두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 아닐까...!

라지만, 사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는 설정과, 이복자매이나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인물들은 꽤나 흥미로우나, 전개가 아쉽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지점까지 페이지를 너무 많이 할애하고, 결말은 너무나 허무하다. 결말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끝낼거면 소설이 전체 설정이나 앞에서 쌓은 서사가 무너지게 된다.

원서가 2023년에 출간돼서, 2024년 대선 결과는 예측을 못한듯. 까딱하면 정말 소설의 설정처럼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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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 각자의 현실 너머, 서로를 잇는 정치를 향하여
권성민 지음 / 돌고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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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꽤 화제가 되었던 예능 프로그램 ‘더 커뮤니티‘. 이 프로그램의 피디인 저자가 전공을 살려 사회학 서적을 썼다. ‘더 커뮤티니‘를 보진 않았지만, 커뮤니티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봐왔기 때문에, 대략 어떤 흐름인지는 알고 있다. 프로그램의 비하인드를 다룰 거라 예상했는데, 그 비중은 적다. 오늘날의 사회가 왜 극단과 혐오, 서로의 배제의 흐름에 놓여 있는지 사회학적 개념으로 풀어쓴다.

저자는 사회를 바라보는 네 가지 축 - 정치, 계급, 젠더, 개방성 - 을 제시한다. 예능을 시청함에 앞서 시청자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태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테스트해보는 ‘사상검증 테스트‘의 네 축이기도 하다. 단순히 말하면 MBTI식 분류이지만, 저자는 이에 ‘스펙트럼‘을 말한다. 좌파-우파, 서민-부자 등의 단순한 이분법보다는,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함을 뜻한다. 또한 각각의 성향이 혼합되어 부자이지만 좌파이고, 페미니스트이지만 보수적인, 여러 경향이 혼합되어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네 개의 축 중에는 젠더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그만큼 요즘 사회에서 민감하고 첨예하게 갈라진 주제이다. 정치, 계급, 젠더는 양극단을 제외하면 정규분포도를 그리는 반면, 젠더는 이상하리만치 양극단의 목소리만이 들린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다소 진보적인 태도를 가졌는데, 그래도 양쪽의 상반된 주장과 이야기를 최대한 공정하게 다루려는 노력한다.

또한 ‘개방성‘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기존 규범을 얼마나 중시하느냐, 새로운 규범을 얼마나 수용하느냐의 차이가 결국 소수자와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진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었다. 더 나아가 ‘무지의 장막‘과 같은 사고 실험을 인용하면서,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대화와 교류를 통한 점진적 개선임을 강조한다.

책의 장점은 사회과학의 여러 주제를 대중적이고 간결한 언어로 정리해냈다는 데 있다. 사회과학 입문자에게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고, 이미 사회과학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지금의 사회 현상을 되짚어보는 개괄서 역할을 한다. 다만 주제의 폭이 넓은 만큼 각각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저자가 말하는 최저점이 단단히 보장된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선함이 유지될 수 있는 공동체의 비전은 이상적이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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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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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소설이다. 보통 ‘본격‘이라 하면 추리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인데, 대개는 사람을 어떻게 기발하고 색다른,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죽일 것인지를 고민하는 작품들이 많다.

이 소설은 그 트릭을 서로 게임하는 데 활용한다. 그것도 아주 기발한 방식으로 말이다.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며, 트릭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트릭 자체만 놓고 본다면 네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마음에 든다. 반면 속임수에 또 다른 속임수로 대응하는 방식의 에피소드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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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눈이 내리다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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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보영과 정보라를 자꾸 헷갈릴까? 이름이 비슷하다기엔 가운데 ‘보’ 하나 빼고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데 말이다.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는 다소 아쉬웠지만, 김보영의 <고래눈이 내리다>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다시 <너의 유토피아>를 읽고 평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가가 서로 달랐다니, 허허.

완전한 하드 SF는 아니다. 김초엽의 작품보다는 조금 더 문제의식이 뚜렷하고 문체가 단단한 편이다. 두 작가의 작품은 호불호를 가리기보다 각자의 매력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좋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고래눈이 내리다>다. 대멸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세계의 훌륭한 SF 선집>에 수록되었고 로제타상 후보작이기도 했다. 읽다 보면 기후 위기를 다룬 <여섯 번째 대멸종>이 자연스레 연상되는데, 흥미롭게도 그 책의 번역가 역시 김보영이라는 동명이인이다.

앞서 읽은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세 편과 <종의 기원담>에 이어 이번에 만난 <고래눈이 내리다>도 만족스러웠으니, 이쯤이면 나와 잘 맞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오래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7인의 집행관>을 읽을 차례다. 2013년 출간 직후부터 무려 10년 넘게 보관함에 잠들어 있던 책이니, 드디어 꺼내들 순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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