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잘 팔리는 책들의 비밀
한승혜 지음 / 바틀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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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통 서평집하면 스테디셀러나 좋은 책, 고전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런 책도 있습니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의도에서 쓰인 책이니 명작이라 불리는 책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 특이하게도 이번 책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이하 ‘한번’)은 베스트셀러를 리뷰한다.  유튜브의 국내 최초 망한 영화 리뷰 채널인 ‘거의없다’와 비슷한 컨셉이랄까.



2.  책을 웬만큼 읽어온 독서가들은 베스트셀러(이하 베셀)를 말하면 진저리치곤 한다. 출판사의 마케팅일뿐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안 좋은 책이다, 트렌드에 맞춰서 만들어진 책이다, 등등. 저자는 이런 현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베셀를 단순히 하나의 기준으로 범주화가 가능할까? 단순히 베셀라는 이유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와 <사피엔스>를 어떤 공통점으로 묶기 힘들다(12쪽).



3.  고오오오급 취향을 가진 이들은 종종 베셀를 사고 읽는 독자를 도매금으로 ‘저급 독자’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저자는 베셀가 받는 비난에 맞서기 위해 글을 썼다. 단순히 비난만 하지 말고 그 책이 어째서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 좋지 않은 평을 받는지 설명해야 독자도 납득이 가능하다(20쪽). 단순히 베셀를 나쁜 책이라고 취급해버리면 가뜩이나 작은 독서 시작은 양극화되어 불모지가 될 것이다.



4.  책은 최근 5년의 베셀 28권을 크게 자기계발서, 힐링도서, 대중소설, 유명 작가의 소설, 일반도서로 목록화했다. 대부분 독서가 취미인 사람뿐 아니라 책 읽기를 시작하려 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제목이다.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언어의 온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미 비포 유>, <82년생 김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Q84>, <사피엔스>, <팩트풀니스>


평소 읽던 서평집과는 전혀 다른 목록들이잖아.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5.  1장 ‘자기계발서’의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자기계발서를 이렇게 변명해준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100퍼센트 쓸모없고 무용한 행위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특정 자기계발서를 읽고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책을 읽고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으려면, 무엇이 납득 가능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책에서 어떤 부분은 유용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지를 판가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_32쪽


자기계발서는 모두 쓰레기라는 말을 서슴치않게 하는 이들이 있지만, 저자의 말처럼 무의미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열정을 찾아내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저자는 여기서 더 들어가 각 책마다 어떤 점이 좋고 나빴는지를 말한다. 자기계발서라는 큰 범주를 비판하지 않고 개별 도서를 분해하고 소감을 말했다는 점이 <한번>을 깊게 만들어주는 큰 요인이다.



6.  저자가 <언어의 온도>를 다루는 장에 오면, 어쩌면 나와 이렇게 생각이 비슷한지 읽다보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언어의 온도>를 재밌게 읽으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체 이 책이 왜 잘 팔리고 심지어 몇번을 표지갈이하면서까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마케팅이 승리라는 지인의 말에 200% 동의한다). 해당 꼭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본문 중 저자가 글쓰기 강의를 하러 다니는 내용도 종종 나오는데, 수강생들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계실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가의보다 마케팅이나 세일즈 강의 쪽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다.  _95쪽


이외에도 비슷한 평을 내놓은 책이 많다. 공감력은 폭발하나 단지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잠재독자를 사라지게 만드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줄거리는 평이하고 인물들은 전형적이지만 현실을 텍스트로 옮겼다는 의미가 있는 <82년생 김지영>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평이 대다수다.



7.  물론 해석이 다른 글도 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다룬 글에서, 주인공이 화학적 거세를 당해서 성욕을 비롯한 모든 욕망에 초연해졌기 때문에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는 해석이다. 나는 이 책을 '사람이 빠진, 오로지 이데올로기만의 대립'의 역사의 폭력과 불행으로 해석했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뜻밖의 부분에서 함부로 사람을 예단하면 안된다는 뜻깊은 교훈(?)을 얻기도 했다.



8.  다독가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많이 줏어들은 보람이 있다. 분석을 잘 하고 글 잘쓰는, 발전된 ‘나’를 보는듯한 기분이여서(저자께 죄송합니다…) 디테일보다는 크게 줄기만 읽었다. 전체적으로 조금 뻔하게 느껴지면서도, 지식이 모자라서 못한 말들을 반듯하게 잘해주어 의미 있는 책이다.



9.  "베스트셀러 읽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 책도 읽어보시는 건 어떠세요?"라면서 더 좋은 책을 권해주는 일. 이게 북 큐레이션이고, 진짜 독서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잘난척 하지 마시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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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잘 읽는 방법 - 폼나게 재미나게 티나게 읽기
김봉진 지음 / 북스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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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책이 안 잡히고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다. 몇 개월마다 찾아오는 독서권태기다. 이럴 때는 책을 놓고 전혀 다른 행위(영화, 게임)를 한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겠다 싶을 때는 책과 독서에 관한 책(메타북)을 읽는다. 어렵지 않고 의욕을 다시 불태우기 때문이다.

<책 잘 읽는 방법>의 저자 김봉진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스타트업 ‘배달의 민족‘의 창업자다. 성공한 기업인은 보통 엘리트의 이미지를 가지기 일쑤지만 (미안하지만)김봉진은 그런 아우라는 없다. 공고-전문대의 학력은 물론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도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단다.

이런 저자가 <책 잘 읽는 방법>을 통해 책을 조금 더 쉽게 접하는 방법과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크게 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법부터 꾸준히 책을 읽고 어려운 책을 넓혀가는 훈련법, 혼자 읽기가 아닌 함께 읽기를 위한 응용 방법등을 이야기한다.

책은 크게 특별하지는 않다. 이미 비슷한 내용의 책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근래에는 이동진과 북튜버 김겨울의 책이 있었고,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같은 주제의 책이 많다. 게다가 내용마저 유사하다. 책을 함부로 다뤄보기, 처음에는 질보다 양, 많이 사고 눈에 띄는 곳곳에 책 두기, 베스트셀러 말고 자신만의 책을 읽기, 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기, 재밌는 책도 좋지만 어려운 고전도 도전해보기... 수도 없이 들어본 내용이어서 저자가 중간에 소개한 목차와 머리말 놓치지 않기를 적극 활용해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의 절반, 아니 80%는 읽은 셈이다.

책도 인문서 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저자의 독서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고과학서적은 눈을 아무리 씻어봐도 없다. 문학은 아예 배제하지 않고 일부러 찾아 읽는다고말하는데, 저자를 포함한 인문서를 즐겨 읽는 이들이 과학 분야를 소홀히 다루는 태도는 매우 아쉽다. 독서 분야로 한정지어보면 이 책은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와 겹친다. 홍대리가 명확하게 자기계발서를 표방했다면 <책 잘 읽는 방법>은 인문서를 가장한 자기계발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독자는 자기계발서를 읽음으로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행동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자기계발서의 단점이 절대 아니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독서법을 긍정한다. 대부분이 이미 생각해오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저자와 나의 결과물이 이리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워낙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책의 깊이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실상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작다. 3장을 제외하면 김봉진만의 노하우가 거의 없고 부록으로 붙은 ‘김동진의 도끼 같은 책‘도 내용이 조금 부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 아직 낯설고 두려운 이에게는 다른 독서법 책보다 이 책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판형이 작고 책도 얇다. 결정적으로 한 쪽의 절반이 여백이어서 수월하게 책을 넘기기 수월하다. 저자가 말하듯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으면 통쾌함과 자신감이 붙는다. 그 느낌을 가지고 더 좋은 책 더 재밌는 책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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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독서 매너리즘에 빠질 때 책 읽기를 주제로 한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이런 책을 읽으면 독서 욕구가 다시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

양손잡이 2018-03-19 00:13   좋아요 0 | URL
제가 능력과 끈기가 부족해 요런 책을 자주 읽는데, 너무 자주 읽어서인지 이제 그 내용이 그 내용인 것 같네요. 제 한계에 대한 푸념이었습니다 ㅠㅠ
 
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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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세계에서 인간은 더이상 성교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오로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볼 수 있다. 주인공 아마네는 이런 세계에서 부모의 ‘교미’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왜 자신만 이상한 걸까? 그녀는 자신의 진짜 본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사랑과 섹스에 몰입한다.


성인이 된 아마네는 남편 아마미야와 함께 실험도시 지바로 들어간다. 지바에서는 아이를 낳기까지만 하고 키우는 것은 국가기관이 담당한다. 동시에 시민 모두가 ‘엄마’가 되어 공동육아를 한다. 아마네 부부는 아이를 낳아도 센터에 보내지 않고 몰래 키우자고 하지만, 인공자궁을 달고 아이를 품은 남편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자 위화감을 느낀다.



어쩌면, 유토피아.


<소멸세계> 의 세계는 유토피아의 면모를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성이 간단한 시술만 받으면 생리 시 고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피임시술도 쉬운 일이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으니 생리와 피임이라는 필요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만이 가능했던 임신은 남성도 가능하다. 아직 개발 중이지만 인공자궁을 달면 남성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여성만 느끼던 출산의 불편함을 남성도 분담함으로써 생리적인 면에서 남녀 차이는 거의 사라졌다. 출산에 따른 남녀격차도 분명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양육의 불편함도 사라진다. 국가에서 모든 양육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의 ‘엄마’로서 아이를 볼 때도 있지만 우리 사회와 같은 크기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전통적인 가족관계도 해체되면서 고부갈등 따위는 옛말사전에 오를 것이다.



어쩌면, 디스토피아.


소설 속 세계는 고도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과학은 다소 비효율적이던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합리성으로만 가득한 세계에서 인간은 유전자 캐리어로 격하된다. 우리는 균일하고다루기 편한 ‘인간’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셈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후손을 위해 잠시 이 세상에 머무르는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그저 미래로 생명을 이어가는 매개체일 뿐이라니, 인간 진화의 긴 연대기 안에서는 맞는 말이겠지만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인간이 후손을 위한 매개체로 전락하면서 모두 개성을 잃는다. 지바 실험도시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생김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단발머리에 웃을 때 같은 근육을 쓴다. 아이들은 이름이 있을까? 개개인이 가진 특별한 능력도 특별히 발현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그저 후대를 위해 아이를 낳는 기계이자 소모품이 되어버린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편의점 세계>로 신선한 충격을 줬는데, <소멸세계>는 신선하다 못해 과하다 싶을 정도다. 재밌는 점은 두 작품 모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뒤로 갈수록 점차 작가에 설득당한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흔들어 지금 우리가 부르는 상식에 의문을 들게 하는 점이 무라타 사야카가 작가로서 가진 힘이다. <소멸세계>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금이 진화의 세계에서는 짤막한 한순간이라는 허무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정상, 비정상, 상식을 언급했는데 추가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극도의 합리와 이성이 만든 <소멸세계>에서 인간의 존재는 위태위태하다. 인간이 유전자 캐리어와 사회적 기능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인간 종이라는 넓은 풀에 개인이 파묻힌다면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가장 뛰어난 종도 아니고 이 세상에 한 때 사는 존재지만 자기 성찰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로서 동물과 다르다. 우리는 최고는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아마네의 남편 아마미야는, 지금 시대에는 가족이라 명명한 존재가 남과 어떻게 다른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미래에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마미야의 말에 반박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소 보수적인 사고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사회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마지막에서 아마네는 어머니를 버림으로서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와 같은 구시대적 관습을 끊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와 육체적 성교를 하면서 다시 세상의 돌연변이가 된다. 아마네의 이런 행동은 정적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새로운 원동력이 될까? 아마네의 눈물겨운 발악이 이 세계에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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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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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 일본의 떠오르는 작가. 한국에 출간된 작품으로는 <편의점 인간>과 <소멸세계>가 있는데, 둘 다 읽다보면 정신이 없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뒤흔드는 두 작품을 읽다보면 누구 말마따나 혼이 비정상이 되는 기분이다.

주인고 후루쿠라는 서른 여섯으로, 무려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능력이 좋은데 정직원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에 만족한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공감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남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모양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정상으로 진입하려는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한다. 같은 서른 중반의 시라하다. 돈도, 능력도 없는 그는 결혼을 통해 다수의 무리에 끼려고 한다. 후루쿠라와 시라하는 남들이 보는 정상의 범주에 끼기 위해 동거를 시작한다.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시라하의 궤변에 편의점을 가장 편하게 느끼는 후루쿠라는 아르바이트를 관둔다. 편의점 말고는 삶의 목적이 없었던 후루쿠라의 삶은 무료하게 흐른다.

시라하는 후루쿠라와 동류의 캐릭터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시라하의 능력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보면서 말이다. 시라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로 다들 자신의 인생을 강간한다고 주장한다. (105쪽)

충분히 수긍가는 말이다. 후루쿠라와 시라하의 인생은 오롯이 그들의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든 남이 신경쓸 일이 아니다. 타인이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다수와 주류에 끼지 못하면 우리는 그를 비정상의 범주에 넣어버린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소수를 재단하고 비난한다. 진심이라고 생각한 충고는 고심해보면 스테레오타입의 지독한 폭력이 되는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시라하는 대척점에 서 있기도 하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그곳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회사 면접을 포기하고 편의점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하는 후루쿠라에게, 시라하는 말한다. 편의점 인간 따위는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무리의 규정에 어긋나 모든 사람에게 박해당하고 외로운 인생을 보낼 뿐이라고. (189쪽)

시라하는 정상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반면 후루쿠라는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나대로인 게 좋다며 마이웨이로 산다. 다수의 정상성에서 벗어나려면 후루쿠라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해야 하는 걸까? 미쳐야만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후루쿠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는 우리 세상에서 비정상으로 치부되지만 오히려 세상을 똑바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나면 후루쿠라에 대한 답답함이 일 수밖에 없다. 능력이 그렇게 좋으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만족하는가? 왜 남들과 교류하지 않고 혼자 살려고 하는가? 더 나은 삶과 직장을 찾을 생각은 없는가? 이런 질문은 폭력적이다. 다들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는 마냥 행동하기 때문이다. (70쪽) 대체 왜 그러고 살아,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다수를 등에 업은 가해자로 전락한다.

정상 세계에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98쪽)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된다. 같이 미쳐야 할까? ‘정상인‘들과 함께 범주 바깥에 있는 이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으면 될까? 서로를 가르는 선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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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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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한 병원에서 시작한다. 경찰인 뤄샤오밍은 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 다섯을 병실에 불러모은다. 병실에는 뤄샤오밍의 스승이자 간암 말기 환자인 관전둬가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 뤄샤오밍은 관전둬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운다. 머리띠는 관전둬의 뇌파를 읽어 Yes와 No의 간단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뤄샤오밍은 살인 사건에 대해 말하고 관전둬에게 질문하면서 범인을 찾는다.


명색이 추리소설인데 사건을 해결하는 관전둬는 혼수상태고 뤄샤오밍은 지위에 맞지 않게 사건에서 많은 것을 놓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무고개하듯 질문을 던지고 뇌파를 읽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는, 기존 추리소설에서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양상이라기보다는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예상 외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독자의 뒷통수를 여러번 친다. 뤄샤오밍의 이야기에 홀리는 순간, 우리는 작가 찬호께이에게 말려든다.


<1367>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이뤄진 소설이다. 각 이야기마다 독립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집으로 생각해도 좋겠다. 모두 기승전결이 탄탄해 완성도가 높고 (반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스포일러지만) 반전 또한 기가막히다.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단점 - 작가와 독자가 증거를 100%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은 피하지 못하지만, 작가는 이야기에서 서술한 모든 소재를 철저히 이용해 독자를 납득시킨다. 범인을 찾는 과정의 즐거움과 뒤로 갈수록 점점 다른 사건으로 변모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사건을 파헤치고 생각치도 못한 뒷처리까지 완벽하게 하는 관전둬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구성 또한 특이하다. 소설집이라 하면 각각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순차적인 시간대를 갖기 마련이다. <1367>은 2013년부터 1967년의 사건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전개된다.(1367은 처음과 마지막 장의 년도에서 따왔다) 역행하는 시간대는 뒤로 갈수록 관전둬의 과거와 뤄샤오밍의 성장을 보여준다. 거기에 각 시간대는 저마다 의미를 가진다. 60년대의 좌파혁명, 70년대의 염정공서(당시 경찰 내부의 부패를 조사하던 기관), 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까지, 작가는 홍콩의 역사를 이야기의 배경과 디테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 <1367>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모를 띈다.


마지막 6장은 다른 장과 달리 1인치의 화자가 등장한다. 전체 이야기 중 전개의 힘은 다소 느슨한 편이다. 하지만 이조차 작가가 노린 점이리라. 화자인 ‘나’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책의 맨 앞을 펼칠 수밖에 없다. 6장은 독립적인 여섯 편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역행하는 시간대 구성은 단순히 흥미를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소설 전체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관전둬(와 그의 수제자 뤄샤오밍)의 다크 히어로적인 면모다.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떤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협박은 기본이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건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함정수사는 불법이 아닌가 싶다가도 시민을 지키고 더 큰 악을 처단하기키기 위해서 저 정도 거짓말은 눈감고 완벽하게 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불온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장은 큰 의미를 가진다. 관전둬가 불법적인 행동까지 하면서 시민을 보호하려고 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단순히 말을 잘 듣는 조직원으로 살 것인가,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 것인가. 관전둬는 이 사건을 통해 한층 성장한다. 동시에 작가는 선과 악은 한끗 차이라고 말한다. ‘나’의 이름이 밝혀지는 순간, 하나의 단순한 선택이 인생의 무한한 가지를 만들어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할 것이다.


아주 기막힌 소설이다. 650여 쪽임에도 아주 재밌게 읽힌다. 각 시간대를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문장을 꽤나 할애했지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인물, 사건, 구성, 사건, 메세지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감히 올해의 추리소설로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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