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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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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언제나와 같이 짤막한 감상 전에 작가에 대해 말해보고 갈까요. 미미여사로도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입니다. 상당히 다작하는 작가인데 전 아직 세 작품(<용은 잠들다>, <크로스 파이어>, <브레이브 스토리>)밖에 안 읽어봤네요. 작가 이름만 봐도 믿음이 간다는 분들도 많다네요. 다작만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어느 정도 평작은 쳐주는 보증수표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단순히 미스터리만 쓰는 작가인줄 알았건만 판타지나 SF, 시대극까지 손을 댈 줄 아는, 능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이 부러워. 그런 분이 쓰신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화차> 역시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굳.

  얼마 전에 개봉한 한국 영화 '화차'의 원작소설인데 무려 1992년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역대 20년 총결산에서 1위를 했다는군요. 개인적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나오키나 아쿠타가와 상보다 좋아하는 타이틀입니다. 역시 꾸준히 많은 책을 봐야겠어요. 진짜 작품은 의외의 곳에서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책은, 무릎이 총알에 다쳐 휴직한 형사 혼마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내의 사촌오빠의 아들(사실 이 책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이 사람이 육촌인가 아니면 다른 호칭인가!) 이 갑작스레 혼마를 찾아옵니다. 결혼하려는 여자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주려 했더니 파산한 여자라고 카드 발급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런 소식을 알릴 새도 없이 여자는 잠적해버렸답니다. 의아한 마음으로 친척의 부탁을 받은 혼마는 여자의 파산을 맡았던 변호사를 찾았고, 변호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혼마가 알고 있던 여자와 변호사가 알고 있는 여자는, 이름만 같지 생김새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다른 여자의 신분을 사칭해 살고 있던 거지요.

  혼마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게 이 시점입니다. 책을 나흘에 걸쳐 천천히 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흐름이 늦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당신은 나에게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부분이 겨우 80쪽밖에 안 되는 거 있죠. 남은 400쪽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두꺼운 책을 만지며 한숨을 쉬었는데 웬걸, 몰입도가 엄청납니다. 한번 책을 펼칠 때마다 적어도 100쪽씩은 읽고 덮었습니다. 행방불명된 한 여자를 찾는 데서 시작한 사건은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심각해져갑니다. 자잘한 증거를 모으고 여러 인물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실체를 파악하는 혼마. 여타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듯 증거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증거들은 하나씩 꿰어맞추다 보면 그럴 듯하게 들어맞지요. 조금 구식인 듯하면서도 오히려 직설적인 이 장치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는 정말 슈슈슉.

  물-론 모든 작품은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중간에 변호사가 신용카드와 카드돌려막기와 신용불량자에 대해 말하는 긴 부분은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면서 무척이나 지루했습니다. 아니, 스토리진행은 하나도 없고 무려 30쪽에 걸쳐 사회현상과 짜잘한 이론에 대해 말한다면 어느 누가 지루해하지 않고 버팅기겠습니까.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만.

  흔히들 우리나라와 일본은 10년의 시대차가 난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카드대란이 있었지만 일본은 조금 더 이른 때에 이런 심각한 일이 대두됐나봅니다. 카드 때문에 부채가 생긴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긴 이유는 사람 자체보다 부(한자로 부)라는 허상의 이미지를 덧씌워 이익만을 좇는 사회, 그리고 그런 것을 제대로 인지시키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권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뱀이 탈피하는 이유는, 껍질을 벗다 보면 언젠가 다리가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라고, 작중 인물이 말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뱀들은 생기지도 않을 발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거울을 사고 싶어합니다. (346, 347쪽) 보통 신용불량자를 보는 시각은, 그거지요. 네가 못났고 돈을 그리 헤프게 쓰니 신용불량자가 되지, 쯧쯧쯧.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뿐 아닌가요. 남보다는 아니어도 남만큼은 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욕구를 가지면서요. 그런데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마치 마술쇼의 거울처럼 우리 모습을 왜곡시켜 착각하게 만듭니다. 네가 바라는 행복은 다른 게 아냐, 바로 무언가를 갖는 거야. 다들 착각에 빠져 살게 말입니다.

  큰 줄기의 이야기 외에 아주 작은 이야기로 혼마의 아들, 사토루가 잠깐 등장합니다. 사토루와 친구 갓짱이 귀여워하던 강아지가 있는데, 다른 또래 친구가 이 강아지를 때려 죽입니다. 사토루는 그 사실에 대해 화를 냈지만 가사도우미의 말을 듣고 화를 삭힙니다. 가사도우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한테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그러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이지요. (413쪽) 아주 짧은 대목인데요, 이 책이 그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전체적으로 꿰뚫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캬, 역시 일류 작가는 달라도 뭐가 다르단 말예요.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모습만 보이던 범인도 뒤지다보니 인간적인 면도 있더이다. 그래서 혼마는 범인을 잡아 실상을 밝히겠다는 마음보다, 안다 네 마음 다 안다 그러니까 얘기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겠지요. 범인이나 자기나, 세상이 주는 헛된 상상에서 영원히 맴도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하여간, 간만에 만난 수작입니다. 한동안 사회파 미스터리보다 본격이나 정통을 많이 봤는데, 역시 일본 장르문학 하면 사회파 미스터리 네가 최고야 하고 엄지손가락 척 올립니다. 읽을거리뿐 아니라 생각할거리까지 함께 제공한 이 책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너무 긴 장편이라 중간중간 솎아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영화는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고 결말과 세세한 설정이 조금 다르다 하니, 책 한번 펴보시라우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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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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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심각한 주제를 가진 인문서인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심리학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내용 자체는 거진 교양수업 때 배운 수준이어서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재밌었습니다. 기억을 복기한 것 외에 제 자신을 어떻게 리프레임(re-frame)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레임이란 말 그대로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를 규정하는 틀이지요. 사고는 곧 마음가짐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프레임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프레임이 있는 반면 너무나도 당연히 부정적인 프레임도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프레임을 타파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게 이 책의 모토입니다. 사실 이 책의 뼈대는 20쪽 정도의 7장 「지혜로운 사람의 10가지 프레임」뿐이어서 간단히 발췌독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긴 합니다. 프레임을 바꾸기 전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위해 앞의 장들을 봤습니다. 각종 예시로 꾸며진 각 장은 프레임이 미치는 영향을 재밌는 예시들입니다. 사실 경험이 풍부하고 독서기술이 좋다면 예시들을 대충 훑으며 나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 하고 생각해도 괜찮을 듯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기에 열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아마 책을 읽다 보면 어, 나도 이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하며 놀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특히 3장 「자기 프레임」 부분이 그랬는데요, 자기중심 편파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시에서 그린 놀이를 그대로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려 노래 제목을 맞추는 놀이었어요. 민요 아리랑을 손가락으로 표현했는데, 음의 높낮이나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을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쉽게 맞추지 못하지요. 이 쉬운 걸 왜 못 맞춰 이 바보야, 하고는 순서를 바꿉니다. 이젠 제가 바보가 될 차례지요. 사람은 항상 자기 중심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개떡 같이 말하면 개떡 같이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학원에서 보조선생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전 아주아주아-주 쉽게 집합을 알려주었지만 어린 친구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이런 멍청이들! 나는 예전에 이 정도 개념은 쉽게 알아들었다고! 하며 가슴을 쳤습니다. 기억 속의 전 어릴 때 정말 똑똑했거든요. 초3 때, 수학 문제집을 처음 접했는데 문제를 손쉽게 풀었다든가, 중1 때 처음 접한 영어 독해집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든가, 고3 때 한눈 팔지 않고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만 했다든가. 과거 열심이었던 기억만 남기고 싸그리 날려버린 왜곡된 기억. 내가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하는 현재 프레임을 디미는 순간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은 변하고 행동과 태도도 따라 변하겠지요.

  이름 프레임이라는 재밌는 장도 있습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 돈 5만원은 가치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길에서 주운 공돈 5만원과 내가 힘들게 일해 번 일당 5만원은 느낌이 확 달라지죠. 돈을 함부러 쓰지 않으려면 돈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봐요.

  우리는 절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말이죠.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겠죠. 이렇게 프레임을 던져버리지 못한다면 프레임을 바꾸는 게 차선책이 아닐까요. 지금 여기를 중시하며 과거나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모습을 가지면서 말이지요. 후회하기 전에 해 보고 말하는 태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면서 기뻐하고 이름 프레임을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고요.

  지혜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는 알면 알수록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결국 한계는 없다는 말과 같군요. 인생을 조금 더 밝게 살고픈 사람들, 여기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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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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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페이스북 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죠. 한 회원분이 '책을 동시에 여러권 읽는다'고 하시면서 초병렬 독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더군요. 저는 집중력이 그리 좋지 않아 책을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읽는다는 게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독서에 관한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의외로 이 독서법에 대한 말이 많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번 이 책, 펼쳐봤습니다.

  초병렬 독서란 말그대로 병렬적인 독서입니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게 아니라, 전혀 상관 없는 책들을 예서제서 짬짬이 읽는 거지요. 정말 재미있는 책이 아니고서야 읽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지지요. 그 짧은 집중력을 매번 다른 책에 쏟아붓는 거라는군요. 아무련 관련 없는 지식들이 조금씩 뒤섞이면서 조금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한층 격이 높은 사유도 할 수 있다네요.

  그러니까, 책 산 돈이 아까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텍스트를 씹어 먹을 정도로 열심인 저와는 정 반대인 독서법이지요. 바로 전에 읽는 박경철의 <자기혁명>에서도 독서법에 대해 잠깐 말했는데요, 눈에 띄는 게 바로 간독과 발췌독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속독처럼 휙휙휙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속독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지요. 간독과 발췌독은 책을 장난으로 읽나 하며, 처음엔 정말 싫어했던 독서법이었는데 한번 실행하고 나니 꽤나 유용한 방법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 방법을 처음 실행했던 책이 아이러니하게도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였지만요.

  문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 실용서인 경우에야 정독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 분야의 책이란 건 인정합니다. 예시는 거의 필요 없고 저자의 주장과 책의 큰 줄기만 파악하면 되지요. (물론 그 뒤엔 실행 단계가 필요할 겁니다) 읽을 책도 많은 요즘, 숙독과 발췌독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일에
선 빨리빨리를 외치며 효율을 중시하는데 독서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다만, 이 방법은 비문학 책에나 써야 할 테고, 문학에 들어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이건 제 의견일 뿐인데요, 문학에도 단어 단위로 봐야 할 책이 있고 문장, 문단 단위로 봐야 할 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제 경험이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네요.


  이상은 책 읽기에 대한 제 생각이었고,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을 평해보자면 사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정말 도움이 되지 않을 책 아니면 사지 않는다'고 했는데 적어도 이 말에는 전격적으로 위배되는 책이었죠. 우선 이 책의 주요 줄기는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요, 책 앞 부분만 조금 봐도 초병렬 독서법이 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독서에 대한 저자의 잡담입니다. 독서에 관한 책에서 말한 대부분의 내용인데다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언가'가 보이지도 않은 책이었습니다. (뭔가 보였던 책으로는 김열규의 <독서>가 있겠네요) 문학은 책 읽기에서 아예 배제하는 모습도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하여간 메시지는 단 몇 장인 이 책 자체엔 별 영양가가 없었습니다.

  어찌됐든, 초병렬 독서와 간독, 발췌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실행해보세요. 개인에 맞는 독서법이 분명 존재하지만 나와 다르고 이상해 보이는 방법이라고 무조건 밀어내는 건 새로운 가능성을 죽여버리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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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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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저는 보통 서점이 아니라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르곤 합니다. 추천받는 책을 사기도 하지만 때론 직접 책을 볼 때가 있지요. 소설은 절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지 않습니다. 원하지도 않는 대중소설의 틀에 끼워맞춰지는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반면  인문서나 교양서는 베스트셀러를 신뢰하곤 합니다. 이쪽 책을 고르는 눈도 그리 좋지 않거니와 수준은 엄청 낮아서 남들이 즐겨 보는 책이나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는 정도니까요.

  그래서 베스트셀러 1위에 줄기차게 뿌리박혀 있던 이 책을 골랐습니다. 베스트셀러 교양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처음이네요. 개인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는 초심자인 저에게 어려웠지만 그쪽 분야를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한 책으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요 책도 꽤나 기대했습니다. 협상에 관한 책이라는, 기대와는 다소 다른 분야의 책이었지만 조금의 망설임 없이 구입했습니다. 중고책으로요.

  그러니까, 중고로 산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요. 요새 하버드나 와튼 같은 미국의 유수 대학 강의를 모아 책으로 많이 발간하더군요. 거진 대박이지만 때론 무지한 대중들에게 팔아먹겠다 나에게 돈을 달라 호갱님들이여- 하는 책도 있단 말이죠. 아쉽게도 이 책은 후자에 약간 치우친 놈이라고 느꼈습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협상주제에 대한 배경지식도, 긴박한 상황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다. 이런 짤막한 한 줄을 말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소비했습니다. 아아, 삼림의 종이여, 불타올라라. 이런 책의 대부분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책은 예시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보는 독서가 필요하지요. 출판사도 그걸 알았는지 책 제일 뒤에 요약본을 넣었습니다. 물론 협상이란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요약본에 나온 내용으로만은 제대로 된 협상을 펼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요약본 제목인 ESSENCE처럼, 필요한 내용은 다 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베스트셀러 목록에 속은 느낌, 와튼의 전설적 명강의란 광고에 속은 느낌.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책 가득히 생각할 화두리도 던져줬으면 말을 안해요. 어휴. 요약본을 보시되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본문을 보시길 바랄게요. 사실 이런 기술을 키우기 위해서는 실패도 중요하기에 본문에 있는 실패담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될 겁니다' 입니다. 며칠 전에 면세점에서 "전에 예외는 없었습니까?" 스킬을 발동했다가 정신병자 보듯이 절 쳐다본 아주머니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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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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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안철수와 더불어 20대의 새로운 멘토로 급부상한 박경철의 책입니다.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 주식 관련 글을 몇 편 쓰시길래 그쪽으로나 좀 명석하신 줄 알았는데 엄청난 독서광이시기도 하더군요. 이 책은 <자기혁명>이라는 자기계발서 비스무리한 제목을 달았지만 다른 책들과 확연히 다르더군요.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책이 몇 권 있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86쪽)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내용에 고취되면서 박경철이란 사람에 존경심 비스무리한 것까지 품게 되더군요. 단순히 경제학을 공부한 의사 수준에서 벗어나 그 많은 독서경력이라니. 수많은 철학 인문학적 사유를 펼치고 장황하게 말을 건냅니다. 강연과 대담에서 했던 말들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라 내용이 약간 이리저리 튀어다니긴 하지만,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통찰에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문장들을 쌓다보면 단 한 문장으로도 수많은 생각과 의문을 품습니다. 일기도 1천 자를 겨우 쓰는 저에게 '가치관이란 무엇인가'라는 저 질문은 무려 3천 자가 넘는 잡문을 만들게 합니다. 아무리 앞뒤 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더라도, 모두 어디서 들어본 문장 같더라도 말예요.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93쪽)


  이런 간단한 문장에도 가슴 깊숙히 아려오는 패배감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난 그동안 저리도 어려운 질문을 너무 쉽게 넘긴 것은 아닌가, 인생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는 남들과 다르다는 헛된 생각에 너무 자만한 건 아닌가, 깊은 후회가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 20대, 그러기에 자만심과 자신감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정말 중요한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박경철은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진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고 실패했던 것을 말하면서 저에게 너무나 큰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래요, 질문이요. 답이나 교훈이 아닌, 죽을 때까지 고심해야 할 질문. 그래서 참 뜻깊었던 책입니다.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공익재단을 만들고 사회사업을 하고 문화사업을 지원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사회적 기여가 없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이유는 그것이 sympathy이기 때문이다. 모 방송사의 사장과 아나운서, PD와 기자가 달동네에서 연탄배달 봉사를 하며 얼굴이 온통 시커매졌지만, 그 장면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sympathy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면서 단식까지 불사하지만, 그것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 역시 sympathy이기 때문이다. (empahty여야 한다) (347, 348쪽)


  책 제목처럼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고 발전시키려 한다면 그저 그런 책들과 다를 바 없겠지요.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생각하자고 합니다. 덕분에 정의론이라든가 자유시장주의 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풀어나가면서 폭넓은 사고를 제시합니다. 독서가답게 참 여러 책을 말하는데요, 다양한 책 읽기를 지향하는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책들을 찾아볼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잊고 있엇던 <프레임>이라든가 존 롤스의 <정의론> 같은 책들이요. 이외에도 전혀 관심이 없던 책들도 마구 읽고 싶어지게 한, 마술 같은 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많은 질문에 성실히, 또 야물차게 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 쉽게 쓸 수 없지만 제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까지 치열하게 사고하고 노력하겠습니다. (200쪽) 방황하는 그대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오 지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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