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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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괴테의 출세작이자 사랑 이야기의 대표 소설. 베르테르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컸던 소설. 짝사랑의 절절함을 너무나도 잘 그려낸 소설. 이라지만 2012년에 읽었을 때에는 큰 감흥은 없었다. 진짜 사랑을 하고난 후에는 다르게 읽힐 거라는 조언으로 묵히고 묵혀서 다시 꺼내들었는데...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아직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건지 이번에도 크게와닿지 않았다. 1774년, 무려 200년도 더 된 사랑 이야기를 읽는 느낌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하는 게 없구나 싶다가도 이미 이런 류의 소설은 수도 없이 나왔으니 괴테의 불세출의 출세작이라는 문학사적 의미 말고 크게 의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나 지금이나 먼 미래에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 표현 방법만 달라질 뿐이지 사랑과 호감의 감정, 그리고 짝사랑이 혼자 애태우고 쩔쩔매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지 않을까?

> 또 날씨가 너무 좋을 땐 그것을 핑계삼아 발하임으로 가는 것이다. 일단 발하임까지만 가면 로테가 살고 있는 곳은 불과 반시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로테를 느낄 수 있는 대기속에 너무 가까이 온 거다. 그래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벌써 나는 그곳에 가 있는 거다. 나는 할머니에게 자석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가 그 산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갑자기 쇠붙이란 쇠붙이는 그리로 빨려가 버리고 못 같은 산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리하여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허물어져 떨어지는 널빤지 조각에 깔려서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이다. _69쪽

> 신께선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그대들을 축복하시고, 내게 베풀어주시지 않았던 좋은 나날을 그대들에게 내려주시기를! _115쪽

>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곩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_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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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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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1. 나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책이다. 2003년 학원 지하에 있던 동네 서점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다 읽고서는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도 이렇게 재밌구나, 했던 책. 자주는 아니지만 2-3년에 한번씩은 꼭 읽는 책.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등 큰 출판사에서 출간한 판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 정말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책.

2.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 어릴 적에는 그저 테스트를 좇고 끝을 보기 위해서 책장을 넘기기 바빴는데 커가면서 각 인물들의 모습과 성격이 매번 달리 보인다. 개츠비는,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토록 순수해보였는데

>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라는 문장을 읽고나니, 이제는 이 인간이 순수해서인지 멍청해서인지 정말 얼탱이가 없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가 데이지를 정말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데이지가 속해 있는 상류사회와 그 속에서 나른하게 퍼질 수 있는 분위기(그런 점에서 개츠비의 연정의 대상이 꼭 데이지가 아니어도 됐으리라)를 열망한 건지 헷갈린다.

데이지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순수한 인물로 기억됐는데,

> (개츠비의 저택을 둘러보며)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그녀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같은 문구를 보니 돈과 여유만 밝히는 미련퉁이에 엄청나게 수동적인 인물의 이미지로 바뀌었다(전형적인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3. 닉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부도덕적인 사실은 이번에 다시금 느껴졌다. 톰 뷰캐넌(폭력과 거친 말투를 쓰고, 배우자가 있음에도 정부를 둬서 시시덕거림), 조던 베이커(골프 경기 중 반칙을 쓰는 등 부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짐) 등이 보여준 모습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자질을 가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흘러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하루 걸러 하루 성대한 파티를 열었던 당시의 미국이 이겨내지 못한 도덕적 해이를 아주 뚜렷이 보여준다.

4. 디카프리오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서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면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개츠비요.”라는 대사와 함께 뒤에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나, 강렬한 색감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파티 장면은 책이 묘사하지 못한 미국의 ‘황금시대’의 색채를 얼마나 잘 옮겨놓았는지, 나에게는 책과 영화 모두 만점짜리 작품들이다.

6. <위대한 개츠비>는 첫문장뿐 아니라 마지막 문장도 정말 유명한데,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다소 알 수 없는 문장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방해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계속 손을 뻗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저택을 구경할 때 개츠비가 느꼈던 감정에서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일 겁니다. 당신 집의 부두 끝에는 항상 밤새도록 초록빛 불이 켜져 있더군요.” 개츠비가 말했다.
>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그 엄청난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어떤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한낱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 중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라는 문장에서처럼, 과거를 애타게 그리다가 그것을 기껏 잡고나니, 그것은 그저 미화된 기억을 두르고 반짝였을 뿐이었고 실상은 별거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보았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일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기고 책은 다시 덮혔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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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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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엄청 기대했던 책이다. 허세와 잘난 척의 상징으로 짬짬이 철학서적을 읽고 개념을 언급했던 나다. 철학의 어떤 개념을 삶의 무기로 활용할까?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일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은 무엇일까? 부제인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처럼 과연 어떤 이야기와 소재가 튀어나올까? 나도 이 책을 토대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철학의 기초에 대한 책은 대부분 철학사를 다룬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은 저자의 말대로 다소 지루하고 현대와 맞지도 않는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금세 지루해지도 흥미를 잃고는 두꺼운 철학사 책을 덮어버리고 만다.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처럼 말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하 ‘삶의 무기‘>는 과감히 철학사를 지워버렸다. 개념과 사상만을 가져와서 간단히 소개하고 이를 비즈니스와 경영, 삶의 태도에 접목시킨다. 지리멸렬한 철학사에 지친 이에게, 여러 개념을 쏙쏙 뽑아서 소개하는 류의 책은 철학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에 좋다.

하지만, 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사를 훑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철학의 역사는 ‘제안 - 비판 - 재제안‘이라는 흐름이 연속으로 이루어졌다(11쪽)고 말한다. 철학사를 배제한다는 저자의 말이 여기서 모순을 일으킨다. 철학사를 모르면 이 흐름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한다. 철학의 개념을 쉽게 풀어쓰고 현실에 적용한 점은 좋지만, 이 책은 개념 변화의 흐름이 보이지 않아 철학사조의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없다. 맥락 없이 동떨어진 철학 개념은 그저 지식을 위한 단순한 단어로 치환될 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그리스 철학을 험하기만 하고 경치는 별 볼 일 없는 산으로 묘사한다(28쪽). 철학사를 공부하면서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그리스 철학의 어려움과 복잡함을 생각하면 100% 수긍하지만, 이데아를 언급하는 39장의 부제 ‘이상은 이상일 뿐,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지어다‘를 읽는 순간 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철학적 사고와 철학사의 논조를 완전히 폐기해 이데아를 그저 구식 이론으로만 치부하는 것이다. 철저히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저자의 목적에는 100% 부합하지만, ‘철학서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저자의 자의적 해석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물론 저자는 이 책을 철학서적이라고 하지 않았다).

철학을 중심으로 계속 이야기해보자면, 저자는 철학 물음의 종류를 ‘What‘(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과 ‘How‘(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로 나누었다. 간략히 후려쳐보자면 전자는 형이상학을, 후자는 윤리학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라? 뭔가 되게 중요한 게 빠졌는데? 나는 How 부분을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인식론으로 설명할 줄 알았는데 저자에게 한 방 얻어맞았다. 저자는 자신의 집필 목적대로 인식론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영리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많은 철학 개념이 독자에게 소개되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가장 어이없는 점은 책 제목에는 ‘철학‘이 들어가면서 챕터별로 소개하는 개념은 심리학, 사회학, 언어학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제목을 인문학과 사회학은, 아니 아예 <공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고쳐야 할 판이다. 인문학과 사회학은 넓게 펼치면 서로 영역이 겹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의 학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학문 분류가 너무 구시대적이어서일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은 거의 제목팔이 수준이다. ‘철학‘과 ‘삶의 무기‘라니, 너무 멋지고 그럴 듯해 보이잖아.

챕터별로 들어가도 할 말은 많다. ‘예정설‘을 말하면서 저자는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고 쓴다. 이러면서 올라갈 사람이 올라가는 현대 인사 평가 제도를 말하는데, 예정된 인사평가에 불만이 사라지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정설 개념의 껍데기만 가지고 되도 않는 걸 붙인 셈이다.

챕터 37 ‘공정한 세상 가설‘에서는1999년에 명예퇴직을 권고받은 과장이 사장실로 뛰어들어 할복한 일화를 언급한다. 저자는 회사에 모든 걸 받쳐 일한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한 인생이라고 말하며 명퇴를 권고한 회사의 태도에 분개한 사람을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세상이 100% 공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개념에서 실례로 가는 비약이 꽤나 심하다. 이 부분만은 딱 일본 저서라는 분위기가 풍긴다.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러한 세상에서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싸워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다˝라는 긍정적인 문단이 바로 뒤를 잇지만 찜찜한 생각은 쉬이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책에도 배울 점은 있는 법. 챕터 43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서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개념에서 ‘사고의 폭을 넒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라는 주장을 한다. 이전에 나는 이 개념을,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신어제작을 언급하듯이 언어 사용과 금지, 의미의 고착화가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원론적인 의미로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휘력을 길러야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내게는 큰 역발상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철학사를 버리고 개념만 취한 책은 겉핥기밖에 될 수 없다. 간단한 철학사 입문서로는 디테일은 버렸지만 후려치기로 뼈대를 파악할 수 있는 <지대넓얕>이 더 좋다고 본다. 오류도 많고 후려치기는 정말 위험하지만 입문서로 ‘즐기기‘에는 훨씬 낫다(단, 정말 입문의 개념이지 <지대넓얕>으로 철학을 파악했다고 보면 큰일난다. 나처럼 뭣도 모르고 허세만 가득한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이 독후감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설로 쓰인 철학사 <소피의 세계>와 만화로 그려낸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도 재밌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처럼 개념만 쏙쏙 뽑아낸 책 중에는 <철학의 13가지 질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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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


1. 근래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흔들렸다. 낮 시간에 회사에 머무르는 동안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퇴근하고서 집에서 혼자 의자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침울하고 때론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 흔들림이 겨우 맘춘 나에게 <감정의 성장>이란 책이 말 그대로 성장이 될지, 아니면 내 한계와 무력감을 깨닫게 해 독이 될지 모를 책이었다. 이미 비슷한 주제의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어왔고 다들 핵심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런 책들은 여러 예시와 그것을 다룬 태도는 조금씩 다르기에 그 ‘다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2. 


> 언젠가 가방을 샀는데 그 안에 ‘사용 및 취급 주의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설명서를 읽으며 우리도 각자에 대한 취급 설명서를 갖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_7쪽


하지만 우린 이런 설명서 따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을 대할 때 무례하게 굴기도 한다. 아니, 남이 아니라 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애먹고 스스로 속상할 때가 많다. 이 책은 직접 이런 설명서 역할을 해주지는 못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달리 사람은 모두 같은 설명서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독자에게 설명서를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하나의 가이드를 제시해준다고 해야 할까?



3. 사람은 이성과 감성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짧은 세월이라도 여러 경험을 해보니 실상은 감성(감정)이 주로 나를 이끄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바른 마음>에서처럼 감정은 커다란 코끼리고 이성은 그 위에 앉은 기수다. 이성이 아무리 채찍질해도 감정은 뭔가 충족되지 않으면 커다란 덩치로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다.



4. 책은 마음속에 자기 삶을 이끌어온 감정인 핵심감정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이 부분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의 확장판이자 해설편을 읽는 느낌이다. 감정의 토대가 되는 핵심감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무너지는 핵심감정의 섬이 떠올랐다. 내 핵심감정은 무엇일까? 이것들은 어떻게 형성됐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는 나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만약 그 길이 잘못됐다면 핵심감정이 이끄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5.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매번 내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날 있었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떠올라 끝없이 후회하고(41쪽) 고통은 반드시 혼자 힘으로 극복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168쪽).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무서워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다거나(185쪽) 대인관계로 고민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을 고립의 늪에서 건져내주기를 바라는 식이다(231쪽). 이런 고민을 말한 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많은 사례를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고 다소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만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건 아니었구나, 라고 말이다.



6. 하지만 이런 사례를 읽고 안도감을 느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로 한참 잘 팔렸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지만 사실 ‘공감’ 그 자체로 끝맺음났다는 것이 아쉽다. <감정의 성장>에서도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이론이 마음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지적 만족으로 끝나거나 자기 이해를 위한 내면 탐구가 현실도피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자기 위안과 공감도 좋지만 더 나아가 현실과 단절되지 않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생각해보기도 해야 한다.



7.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개인은 물론 자신의 주변과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내가 아닌 주변으로 돌리거나 나를 구원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한없이 기다린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아야 할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다(231쪽).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아도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풀어나가느냐의 시발점은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안이 무엇이든 결국 해결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8. 항상 안되는 것.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고 그 감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127쪽).”



9. 많은 책에서 봐온 내용들이어서 큰 울림은 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환기시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나름 좋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어떤 핵심감정에 영향을 받는지, 그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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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


매번 말로만 듣고 온갖 영화와 연극, 그리고 각종 사랑 이야기의 모티브로만 접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드디어 희극 형태로 읽었다. 희극은 고등학생 시절 문학 교과서에서 접한 <인형의 집> 이후로 처음이다. 희극은 시 다음으로 어려운 장르이다. 상상력이 부족해 장면을 보여주고 말하는 소설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대사와 지문만으로 무대를 상상해야 하는 희극은 내게 정말 쥐약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체 줄거리는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사실 100% 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어릴적 축약본이나 만화로 이미 접한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렸다. 본래의 작품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라도 들어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다.


작품에는 유치하면서 오글거리나 대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대사들을 문자로 읽으려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려나? 아니면 2019년에 이미 닳을대로 닳은(?) 내 감정이 그런 감정을 불러오는 걸까?


로미오   그렇게 해봤자 절묘한 그녀 미를 더 곱씹게 할 뿐이야.

고운 숙녀 이마에 입 맞추는 행복한 가면은

검기에 뒤에 감춘 흰 살결을 떠올리지.

갑자기 실명한 사람은 잃어버린 보물인

소중한 시력을 잊을 수 없는 거야.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여 줘 봐.

그녀의 미모는 누가 그 빼어난 미녀보다

더 빼어난지를 알리는 주석밖에 더 되겠어?

잘 가, 넌 내게 잊는 법을 못 가르쳐.  _1막 1장 230-238행


줄리엣   수천 번 좋은 밤 보내세요!   (위에서 퇴장)

로미오   그대 빛을 잃고 나니 수천 배나 더 나빠요.  _2막 1장 154, 155행


줄리엣   꼭 그리할게요. 그때까지 이십 년 같아요. 그대를 왜 도로 불렀는지 잊었어요.

로미오   기억날 때까지 서 있게 해 줘요.

줄리엣   그대를 거기 있게 하려고 잊겠어요, 얼마나 같이 있고 싶은지 기억하며.

로미오   이 집 말고 다른 집은 모두 다 잊으면서 그대가 계속 잊게 계속 서 있을게요.  _2막 1장 170-175행


으으, 옮겨적으면서도 내 열 손가락이 펴지지가 않아! 하지만 이 대사를 연극 무대에서 읊는다면, 원본 그대로 영어의 운율을 살려 읽는다면 분명히 느낌이 다를 것이다(연극 전체의 대사가 하나의 시로 읽힐 수 있다고 한다). 또 서로에게 푹 빠진 이들에게는 이 느끼함마저 사랑스러움으로 다가오겠지? 지금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지 못해도 이런 내용을 통해서 메마른 감성을 좀 일깨워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는 아주 질 나쁜 생각을 해본다.


많이 알려졌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초중반이다. 둘의 나이야 16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해할만하다… 라지만 저 나이의 인물들이 서로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독약으로 죽음을 위장할 생각까지 하다니. 게다가 캐풀렛 가문의 파티에서 눈이 맞은 후 죽기까지 겨우 5일 남짓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첫눈에 반해 데이트도 거의 안한 것 같은데(적어도 작 중 묘사는 거의 없음) 두 가문 사이의 반목이 둘의 사랑을 더 불붙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참 대단하고 과감하고 불같고 낭만적인 인물들이었구나. 부럽다아-.


군주   이 원수들 어딨느냐? 캐풀렛! 몬터규!

하늘이 당신들의 기쁨을 사랑으로 죽였으니

당신들의 미움에 어떤 천벌 내렸는지 보라.

나 또한 당신들의 불화에 눈 감은 대가로

한 쌍의 친척을 잃었다. 모두가 벌 받았다.  _5막 2장 290-294행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는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반목하는 두 가문 사이에서 유일하게 순수했던 이들의 희생으로 서로 화해하는 이야기로 읽는다면, 세속적인 세상에 저당잡힌 순수한 이들의 존재 자체를 더럽히는 게 될까? 몬터규 가문과 캐풀렛 가문, 베로나의 군주까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이들의 희생 아닌 희생으로 서로의 갈등이 봉합됐으니, 어른의 사정에 휘말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구한 운명에 애도를 표한다. 그래도 둘의 사랑이 한여름의 햇볕처럼 뜨겁고 강렬했음을 알기에, 나는 당신들은 아름다웠다고 감히 이야기를 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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