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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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검은 바탕의 표지에 한 사내의 주먹이 들어찼다. 사내의 주먹은 보라빛으로 짓물렀다. 표지만으로 작품을 대변하고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표지에 대한 극찬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작품소개로 넘어가 보자. 제목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맞다. 이 작품은 데이빗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영화 <파이트 클럽>의 원작이다. 쉽사리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영화이니만큼, 영화와 원작의 관계를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영상보다는 텍스트에 우위를 두는 활자예찬론자이자, 영화와 소설이 불가분 관계에 놓이는 소설원작 영화에 대해선 원작을 만나기 이전에는 영화를 미루는 룰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다. 물론 이 작품 속에서 룰은 중요한 장치다. 영화를 먼저 만나고 원작을 접하신 분은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는데 지장이 없겠지만 대신 재미가 반감될 것이고, 필자처럼 원작을 처음 접하신 분은 작품 속 장면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었을까에 주안점을 두고 보시면 즐거운 독서를 만끽하시리라 본다.

 필자 역시 처음엔 따라가기 버거운 작가의 문체 덕에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보면 영화의 컷 단위로 장면이 전환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품의 전반적인 색채가 폭력과 반사회를 그리고 있다보니 받아들이는 것도 고욕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거절한 출판사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썼다는 이 작품은 내면 깊숙히 자리잡고 또아리를 튼 검은 응어리 그 자체다. 그러나 원래 초고로 구상한 단편인 여섯 번째 장을 통해 '나머지 남자들의 모임'보다는 '파이트 클럽'이 훨씬 낫다는 의견을 끌어냈으니 대단하다.

 타일러는 더이상 "자기 개선은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 파괴가 해답일 수도" 있다며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란 우리가 완벽해지기 위해 필요한 존재일지도 몰랐다"며 자신이 그들의 신이자 아버지가 된다. 시대의 젊은이들은 "우리에게는 영혼의 대전이 있어요. 문화에 대항하는 대혁명도 있지요. 대공황은 바로 우리의 삶이에요"라며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자신의 몸 안에서 폭발시킨다. 그러나 필자로썬 메이헴 작전만큼은 절대 긍정할 수 없었다. 이것도 또 하나의 망상일지 모르지만.

 작가의 서술상 특징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 것은 '나'이다. 작가는 그의 발언에 따옴표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는 어딘가 희미한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마치 투명인간 같은. 그리고 하이쿠를 즐겨 읊고 종종 자신을 인체의 각종 기관에 비유하는 것도 블랙 유머의 백미를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동명의 영화 때문에 빛을 못보고 사라졌던 <파이트 클럽>이 랜덤을 통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앞으로 랜덤에서 척 팔라닉의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이 기회로 그가 재조명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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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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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히가시노 게이고를 조롱하는 말로 '소설 쓰는 기계'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평에 다작(多作)작가에 대한 시기가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필자는 오히려 어거지로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최신작보다 인간미 떨어지지만 재미를 갖춘 그의 초기작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그래서 비교적 초기작에 해당하는 이 작품을 선택했고, 아쉬움은 들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는다.

 우선 표지를 보면 키이라 나이틀리를 닮은 한 여자가 전면에 있다. 우리의 타란툴라 양 되시겠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전직 스포츠 스타 네 명이 닥터 센도의 저택에 침입하여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그 광경을 목격한 타란툴라 양께서 복수를 다짐하며 그들을 추적한다는 내용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 가장 인간미가 부족한(막판 반전이 있지만) 타란툴라는 더 많은 희생을 일으키며 그들을 찾는다.

 그로 인해 항상 뒷북만 치는 경찰이 개입한다. 쉽게 복수를 다짐한 여자는 네 명의 범인을 쫓고, 경찰들은 그 여자를 쫓는다는 식이다. 장신에 초인적인 힘을 지닌 그녀에게 키이라 나이틀리의 미모를 얹기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복수를 위해서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그녀에겐 더더욱. 다른 작가에 비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초음속으로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이 작품에서 속도감 있는 전개는 더 빛을 발했다.

 타란툴라라는 거대한 살상무기와 궁지에 몰린 범인들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최고조에 달하며 저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너무나 힘의 균형이 한 쪽으로 치우친 듯한 전개가 이어질 즈음 배신과 반전이라는 역전의 상황이 벌어진다. 타란툴라는 범인의 숨통을 조여왔지만 작가는 독자의 숨통을 쥐었다 놓으며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그러나 안타까운 결말과 마주하면 다시 숨통을 조이는 듯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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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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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보일드'라 하면 다른 장르보다 작가의 문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문체에서 주인공의 성격이나 작품의 분위기가 발현되니 어떤 장르가 문체를 중요시하지 않으랴마는, 장르의 특성상 '하드보일드'는 문체가 작품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본다. 작가의 개성있는 문체가 매력적인 캐릭터와 냉혹하고 비정한 분위기를 잘 살리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장르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 작품을 만나고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과작으로 유명한 작가의 글이니만큼 필자 또한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가며 읽었다. 특히 필자가 높이 평가하는 이 작품의 가치는 앞서 말한 장르적 특성뿐만 아니라 정교한 플롯에 있다. 어느 하나가 완벽하게 갖춰지면 무언가가 턱없이 부족해서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상쇄하는 반면에, 이 작품은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면서 이제 나올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까지 한껏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둔다. 앞으로 비채에서 하라 료의 모든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라 하니 더욱 기대되고 흥분된다.

 물론 탐정 사와자키의 매력이 일품이었지만 그 외에도 투덜투덜대며 사와자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니시고리 경부나 어디선가 나타나 종이비행기를 훌쩍 날려서 사와자키를 돕는 와타나베, 노래방 취미를 지닌 조폭 하시즈메 같은 캐릭터도 매력 만점이다. 작가에게 간곡한 부탁이 있다면 이 셋이 총출동하는 과거 이야기를 '프리퀼 형식'으로 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5년 전, 수사를 돕는다며 경찰과 조폭의 뒤통수를 치고 1억엔과 마약을 강탈해서 도피 중인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동료인 사와자키의 시각에서 말이다.

 역자후기를 읽어보면 이 작품의 제목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소개된다. 작가가 처음 출판사에 보낸 원고에는 <밤은 다시 되살아난다>라는 가제를 붙였는데, 편집자가 단어가 중복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여 후보로 생각한 것이 지금의 제목과 전혀 상반되는 의미의 <되살아나지 않는 밤>이라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에는 고심 끝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을 참고하여 '그리고'라는 조사를 넣은 지금의 제목이 최종 제목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정말 재밌는 일화다.

덧) 뒤의 단편을 읽으니 작가의 챈들러에 대한 경의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챈들러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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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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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소개글과 줄거리를 보고 같은 출판사의 <열세 번째 이야기>와 비슷할 거라 예상했는데, 엄밀히 말해 비극의 강도는 보다 약하지만 매우 흡사한 분위기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전체적인 묘사만 놓고 보자면 <새비지 가든>의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다. 특히 아내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의 묘사는 일품이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과 제목에서처럼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야만적인 분위기는 정원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색다른 황홀경을 불러 일으킨다.

 캠브리지 출신의 작가답게 저자는 많이 알려진 작품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했다. 우선 주인공 애덤은 '아담과 이브'의 그 아담으로 발음할 때마다 혀가 말릴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다소 우유부단하고 밋밋한 주인공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의미를 성장소설로서의 가치에 두기 때문에, 후에 있는 애덤의 성장과 성격적 변화가 작품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이것으로 인해 결말이 주는 느낌을 비롯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주인공까지 긍정적으로 보이는 효과를 냈다.

 여기에 그친다면 인용의 인자도 꺼내가 어려울 것이다. 가장 중요하며 작품의 맥을 관통하는 인용이 필자가 극찬하던 정원 묘사에 등장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한 그리스 신화를 본 떠서 만들었다고 생각한 추모 정원이 사실은 단테의 <신곡>, 그것도 '지옥편'대로 배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그 많은 인용들이 분출하는 동시에 머리 속에서 차곡차곡 정리되며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정원의 비밀에 그치지 않고 가문에 얽힌 의문의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비극이 꿈틀댄다.

 여기서도 또 다른 콤비가 등장하는데 그것을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와 다름없는 행동이라 밝힐 수 없고, 형제간의 비극과 관련된 인물들이라는 힌트만 살짝 흘리고 간다. 주인공의 성격이 썩 끌리지 않았지만, 막돼먹은 줄 알았던 그의 형이 마음에 들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봐선 정적인 인물은 아닌데, 자기 주장 없이 몸을 사리는 모습이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막판에 나오는 그의 변화와 성장에 기특함마저 들더라. 반전이 결말을 까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전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덧) 많은 작가가 깊은 감명을 받고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단테의 <신곡>을 꼭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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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본즈 모중석 스릴러 클럽 16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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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득적으로 피를 무서워하는 필자는 법의학 스릴러에 거리를 둔다. 그래서 그 유명한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를 접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녀 콤비가 나오는 소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드시 첨가되는 애정씬과 러브라인이 지겹기 때문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취향을 지닌 필자에게 <본즈>는 여타 법의학 소설의 비릿한 묘사와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후자에 관해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라이언 형사가 없었다면 독자는 감정이입할 캐릭터가 없어서 배회할 뻔했다.

 사건은 한 유대 상인의 살해와 한 장의 유골 사진에서 시작한다. 사진 속 유골의 정체는 마사다 유적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유골을 숨기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유골(맥스로 통칭)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헤치는 것은 뼈를 맞추는 여인, 법의학자 브레넌 박사(템피로 통칭)의 역할이다. 모든 초점이 유골을 향할 때,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그녀의 연인 라이언 형사의 역할이다. 거기에 그녀의 친구인 고고학자 제이크가 등장하여 템피-라이언 콤비를 이스라엘로 불러들인다. 이스라엘에는 또다른 음모가 기다린다.

 앞에서 라이언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템피와 제이크의 대화 때문이다. 전문적 지식을 갖춘 그 둘의 대화는 필자에게 생소한 분야였고, 그들은 서로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마냥 쏟아냈다. 그런 그들 사이에 적당히 모르는 라이언이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감정이입을 템피에서 라이언에게로 갈아탔다. 철저하게 무신론자인 필자에게 그들의 대화는 지겨울 뿐이었지만, 유골과 무덤의 정체가 종교사를 뒤엎을 만한 것이란 대목에선 꽤 흥미로웠다. 물론 마지막에 저자가 안전주의 노선으로 갈아탄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크게 세 가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사실은 1960년대 이가엘 야딘 발굴팀의 마사다 유적 발굴에 관한 내용이고, 이것은 도노반 조이스의 <예수 두루마리>와 궤를 같이한다. 두 번째는 본문에 실린 1980년에 발견된 탈피오트 무덤이고, 세 번째는 제임스 타보르 발굴팀에 의해 발견된 힌놈 계곡 무덤과 수의이다. 둘다 예수의 가족 무덤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맥스는 마사다 유적의 알려지지 않은 유골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소설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족무덤은 힌놈 계곡 무덤을 가리킨다.

 아무래도 두 번째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 같아 조사해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에 의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의 근거지가 바로 두 번째 사실에 실린 탈피오트 무덤이다. 그 무덤을 발굴한 이스라엘 출신의 고고학자 요제프 가트는 무덤의 성격을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나, 미망인인 루스 가트 여사가 '남편이 종교계의 반발과 반 유대주의 촉발을 우려해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현실에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여타 법의학 소설과 달리하는 부분은 고고학을 차용해 <다빈치 코드>와 같은 종교 팩션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종교사에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대목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입장에 걸쳐 설명했다. 미드로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하고, 벌써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 출간됐을 정도로(이 작품은 여덞 번째 작품이다) 사랑받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은 작품들과 후속작이 하루 빨리 번역 출간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더욱 사랑받는 시리즈로 정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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