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드보일드'라 하면 다른 장르보다 작가의 문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문체에서 주인공의 성격이나 작품의 분위기가 발현되니 어떤 장르가 문체를 중요시하지 않으랴마는, 장르의 특성상 '하드보일드'는 문체가 작품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본다. 작가의 개성있는 문체가 매력적인 캐릭터와 냉혹하고 비정한 분위기를 잘 살리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장르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 작품을 만나고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과작으로 유명한 작가의 글이니만큼 필자 또한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가며 읽었다. 특히 필자가 높이 평가하는 이 작품의 가치는 앞서 말한 장르적 특성뿐만 아니라 정교한 플롯에 있다. 어느 하나가 완벽하게 갖춰지면 무언가가 턱없이 부족해서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상쇄하는 반면에, 이 작품은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면서 이제 나올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까지 한껏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둔다. 앞으로 비채에서 하라 료의 모든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라 하니 더욱 기대되고 흥분된다.

 물론 탐정 사와자키의 매력이 일품이었지만 그 외에도 투덜투덜대며 사와자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니시고리 경부나 어디선가 나타나 종이비행기를 훌쩍 날려서 사와자키를 돕는 와타나베, 노래방 취미를 지닌 조폭 하시즈메 같은 캐릭터도 매력 만점이다. 작가에게 간곡한 부탁이 있다면 이 셋이 총출동하는 과거 이야기를 '프리퀼 형식'으로 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5년 전, 수사를 돕는다며 경찰과 조폭의 뒤통수를 치고 1억엔과 마약을 강탈해서 도피 중인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동료인 사와자키의 시각에서 말이다.

 역자후기를 읽어보면 이 작품의 제목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소개된다. 작가가 처음 출판사에 보낸 원고에는 <밤은 다시 되살아난다>라는 가제를 붙였는데, 편집자가 단어가 중복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여 후보로 생각한 것이 지금의 제목과 전혀 상반되는 의미의 <되살아나지 않는 밤>이라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에는 고심 끝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을 참고하여 '그리고'라는 조사를 넣은 지금의 제목이 최종 제목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정말 재밌는 일화다.

덧) 뒤의 단편을 읽으니 작가의 챈들러에 대한 경의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챈들러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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