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최고 형태와 최저 형태는 둘 다 자서전의 양식이다
.............................................................by oscar wilde....
더 이상 영웅이 존재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시대!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신화는 필요한 것일까?
최초의 인류가 배덕의 이름으로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원죄라는 짐승의 낙인을 가진 채, 이브의 후손들은 거친 황야에서 모랫바람을 입 안 가득 씹어가며, 호시탐탐 신의 권좌를 노려왔다. 신의 또 다른 배덕자(背德者) 프로메테우스는 그들에게 신에게 대항할 최초의 무기인 불을 가져다주었고, 그 후 인류의 신을 향한 복수의 창끝은 더욱 매섭게 변해갔다.
불로 달구어진, 이성과 과학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배덕자들은 수많은 신들을 죽여 나갔고, 어느덧 더 이상 죽일 신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 중 한 선각자는 드디어 “신은 죽었다”라는 말과 함께 복수의 종언을 외쳤다. 그랬다. 그 이후 신은 죽었고,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영웅도 그들과 함께 죽었다.
창조주의 파멸과 함께 신의 권좌는 비어있었지만, 그 권능을 이어받을 자는 우리 인류에겐 있지 않았다. 그저 그 빈 공간을 지켜볼 뿐 그 누구도 창조주의 권능을 대신할 순 없었다. 한 선각자가 외쳤던 신의 대리자 <초인>은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신을 살해하기 위해 겨누었던 칼날과 창끝은 우리에게 겨누어 졌다. 그 이후 대지는 낙인을 가진 짐승의 피로 물들어 갔다.
서로를 향한 끝없는 피의 보복이 연이어졌고, 그 전쟁의 승리자는 아무도 없었다.
“영웅이 필요하다!”
피를 부르는 광기를 멈추어 줄, 신의 권능을 대신해 줄 영웅이 필요하다! 영웅이 이미 그들과 함께 죽었다면 다시 영웅을 만들어 내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다시 창조해 낼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신의 권능을 대신 부여하면 될 터이다. 짐승들은 텅 빈 천공을 향해 울부짖었고, 영웅은 때로는 전사가, 때로는 예술가가, 때로는 광대가 영웅을 연기해 내었다.
Mahler가 창조해 놓은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작품은 교향곡 5번,6번,7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엔 입구도 출구도, 그 어디에도 아무런 표제가(언어화된)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견고하게 완성된 음악적 건축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예술은 그 자체로 삶을 반영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에게 삶의 의미만을 던질 뿐이다.
말러의 교향곡 또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복잡하게 구조화되고, 다원화된 음향의 중첩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관념이 혹은 영감이 그곳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말러의 교향곡에 내재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금> 듣고 있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영웅이 상실된 시대에 영웅을 창조하는 것은 영웅 그 자신이 아니라, 이른바 그의 추종자라고 부르는 부류에 의해서이다. 예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사후 그를 신격화한 것은 예수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비극적 죽음에서 철저한 배덕자였던, 그의 사도(使徒)들에 의해서였다.
말러 또한 여기서 자유스러울 순 없었다.
말러의 교향곡 6번 <Tragic>을 통해 조작된 신화적 code를 한번 파헤쳐 보도록 하자.
1. 표제 <Tragic>의 기원은?
말러의 교향곡 6번은 1903년 여름 마이어니히(Maiernigg)에서 처음 작곡에 착수하여, 이 여름 기간 내에 2개의 악장을 완성해 내었고, 그 다음해 여름에도 역시 마이어니히에서 여름 휴가기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 동안 나머지 악장 모두를 완성해 내었다. (마이어니히에는 Wörther 호반근처에 말러의 별장이 있어 말러는 그곳에서 여름 휴가기간을 자주 보내었다.) 하지만 그의 자필 악보 어디에도 Tragishe라는 부제는 어디에도 붙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부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비극적> 이라는 말의 이 Tragic이라는 부제는 어디까지나 말러의 사후, 그의 추종자임을 자부했던 부르노 발터가 그의 자서전에서 말러가 1906년 에센에서 벌어진 교향곡의 초연에서 비극적이란 말을 언급했다라고 하는 단 한 줄의 글귀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발터의 이 진술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말러 자신이 교향곡 1번에 <Titan>이란 제목을 붙인 적이 있었다. 말러 자신이 거창하고 대담한 표제를 바란 마음에서 붙인 이 <거인>이란 부제는 많은 사람들이 말러의 바람과는 달리 당시 유행하던 장 파울의 소설 <거인>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와 연관시켜 그의 음악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를 싫어한 말러는 그 이후 이 <거인>이란 표제를 지워버렸고, 자신의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붙였던 프로그램의 여러 부제들 또한 함께 지워버렸다. 말러는 자신의 음악이 하나의 틀 안에서 정형화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초연에서 <비극적>이란 말을 언급했다라고 하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2. 1악장에서 코랄 풍의 제 2주제는 알마를 신격화한 것이다?
이 신화 코드 또한 교향곡 6번의 해설을 살펴보면 항상 등장하는 선전 문구이다.
행진곡 풍의 제 1주제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영웅> 말러를 상징화한 것이고, 목관이 표현해내는 우수적인 선율의 코랄 풍의 제 2 주제는 말러가 사랑하던 아내 알마를 이상화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유명한 비평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이 비평의 근거는 알마가 노년에 집필했던 <회상록>에 두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교향곡 6번의 비평이나 해설은 알마의 회상록에서 많은 단초를 빌려와 쓰이고 있다.
알마의 회상록에 따르면..
말러는 1악장을 완성한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하나의 주제로 표현하려 했도,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는지는 나도 확신할 순 없지만, 인내를 갖고 들어주시오."
그가 말한 주제는 교향곡 6번의 1악장의 상승하는 주제이다.
말러가 실제로 그런 말을 했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근거라는 것이 오로지 알마의 회상록에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말러의 생애에 대해 대략이나마 살펴 볼 수 있는 다른 사료에는 이런 사실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실제 말러가 자신의 음악에 알마를 상징화하여 표현해내었다면 그는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발터에게도 잠깐이나마 언급했을지도 모른다. 초연에서 비극적이라는 말을 해 줄 정도로 절친했던 발터에게 왜 제 2주제가 알마를 이상화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을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3. 4악장의 3번의 Hammer는 말러의 비극적 운명을 예견한 <음악적 예언>이다.
난 말러의 교향곡 6번을 설명하는 모든 신화적 코드 중에서 이보다 더 황당한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 유명한 이야기 또한 알마의 회상록에 의지하고 있는데, 알마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자
“4악장에서는, 나중에 설명한 것처럼, 그의 영웅의 파멸을 나타내고 있다. ‘영웅은 3번의 타격을 받는다. 그 최후의 일격으로 나무가 쓰러지듯이 파괴되는 것이다.’ 이 음악과, 그것이 예언하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낀 그는, 나와 같이 울었다. <6번>은 그의 가장 사적인, 또한 예언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기 자신의 생애를 음악 속에 예고한 것이다. 그에게도 운명의 타격이 세 번 있어, 세 번째에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6번>을 작곡한 당시는 평온한 날들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마치 가지가 무성하고 꽃이 가득 피어난 나무 같았으나.”
그 중 알마가 말러가 예견했다고 하는 비극적 운명의 타격은 4년 후에 벌어진 장녀 마리아의 죽음, 그로 인한 심장병의 발견, 그리고 빈 궁정 가극단의 총 감독 사임이라고 전해진다.
알마의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것은 심리학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과학쯤은 언급해야 이해될 수 있는 소지의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알마는 가장 행복했어야 할 시기에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교향곡 6번 Tragic>같은 비극적 작품이 만들어 진 것은 이미 그의 비극적 운명을 예견하고 있던 말러의 음악적 예언 능력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비극적이고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인가?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프로이트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두 가지 불안이 잠재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외부로부터 기대되는 손상에 대한 반응으로 즉 실재적 불안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수수께끼같은 전혀 목적에 맞지 않는, 새로이 출현한 어떤 가능성에도 결합할 준비가 되어있는 기대 불안, 즉 신경증적 불안을 들 수 있겠다. 인간은 가장 행복한 시기에도 이런 행복이 어떤 무자비한 폭력이나 잔인한 운명 등으로부터 무참히 깨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불안을 항상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가 그런 행복한 시기에 비극적이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작품을 썼다는 것은 그런 신경증적 불안요소에서 찾아야지 허황되기 짝이 없는 음악적 예언 운운 한다는 것은 그가 창조한 위대한 예술을 오히려 광대놀음에 지나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우스꽝스런 행위이다.
비극적 운명을 예견했다고 하는 3번의 해머가 얼마나 허황된 얘기라는 것은 출판된 그의 악보만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얘기이다.
1904년 작곡이 완성되어 처음 쓰인 자필악보에는 무려 5번의 해머가 표기되어 있다. 그 후 말러는 부지런히 수정작업을 시작하여 제 1판에서는 5번의 해머를 3번으로 줄였고, 초연시 악보 상에는 2번의 해머 표시만 기입되어 있었다. 실제로 에센에서 공연 시에는 해머를 3번 쳤다는 말이 전해지나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말러는 공연 시 완벽한 음향효과를 위해 자주 악보를 수정하고 편곡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데 1906년에 출간된 전집판 악보에는 단 2번의 해머만이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알마가 주장했던 음악적 예언은 어떻게 된 것인가? 말러가 비극적 운명을 두려워하여, 신에게 간구하여 그의 불행을 3번에서 2번으로 깎아달라고 부탁이라도 한 걸까? 장녀 마리아의 죽음이 1907년이었고 심장병의 발병은 훨씬 더 이후이며 가극장 총감독 사임도 그 이후이다. 그런데 1년도 더 전에 그의 전집판 악보에는 왜 해머가 2번 밖에 기입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러의 음악적 판단에 의해서였다. 3번 보다는 2번이 보다 음악적으로는 완벽한 구조미를 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말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이런 조작된 신화적 코드가 공연장에서는 난무한다.
감상자 모두가 음악회 프로그램에 쓰인 조작된 신화를 읽고, 4악장 어디에서 3번의 해머가 울리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혹시라도 해머소리를 놓치게 되면 마치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놓친 양 억울해 하고 분해한다. 이런 감상자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고픈 마음에서인지 공연 기획자들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가장 거창한 방식으로 해머를 놓아두고는 감상자의 시선을 해머에만 쏟게 만들어 준다.
“놓치지 마! 이게 교향곡 6번의 하이라이트니까..”
말러가 그토록 혐오했던 그의 예술을 해머라는 좁은 틀 안에 강제로 쑤셔놓은 꼴이다.
교향곡 6번은 영웅의 비극적 생애를 다룬 <표제 음악>이 아니다. 그건 그저 말러가 작곡한 6번째의 교향곡일 뿐이다. 말러가 작곡한 이 6번째의 교향곡은 당신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결합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심장을 가지며 강렬한 박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에는 어느 정도의 조작된 신화가 붙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신화가 애매하고 모호한 예술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 주며 우리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화가 그러하듯이 신화에 나타난 신비가 드러나게 되면 그것은 그 생명력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그저 허황되고 황당한 옛날 얘기로 격하되어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신화의 생명력은 사실의 진실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죽어버린 신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차디찬 이성의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풍부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겨버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이미 매혹적인 신화를 마치 그럴듯한 사실인양 억지로 꾸며낸 거짓말로 점철해 버린다면 그것은 신화로서의 강렬한 생명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허황되고 황당한 거짓말만 남아 그저 그런 전설로 남아버리기 싶상이다.
구스타브 말러가 불멸의 이름으로써 신화로 남기 바란다면, 그의 예술을 지금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 것이다. 조작된 신화를 덧붙이지 않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