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게 죽는 방법
감기에 걸려 하루종일 콜록 거렸다.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있다보니 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더라. 이대로 내가 죽는다면?..... 으윽. 최악이다! ㅠㅠ
영화 LOVE LETTER 의 주인공 후지이 이즈키는 이렇게 콜록대다 죽을 뻔 하지만 결국 살아나던데 말야. 난 병원 침대이든 내 방 침대이든 요렇게 빌빌대다 누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전혀 들지 않았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떻게 멋들어지게 사느냐에 대한 것 뿐, 어떻게 품위있게 죽느냐 하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것 같더군.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한 거 아닌가?
자신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쌓아놓고도, 강박증으로 인해 초호화 호텔 스위트 룸 밖으로는 단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포름알데히드에 한 50년은 담가놓은듯한 바짝 마른 미이라 같은 꼴로 발견된 하워드 휴즈처럼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이 어디 있겠냔 말이다.
내가 품위있게 죽는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Guevara de la Serna)!
우리나라에 체 게바라 열풍이 불기 전,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평전을 읽던 중(장 폴 샤르트르는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비트겐슈타인을, 20세기 최고의 완벽한 인간으로 체 게바라를 꼽았다.) 난 체 게바라가 쓴 단 한 줄의 글귀에 매료되어 미친듯이 그에 관한 자료를 찾은 적이 있었다.
MY LIFE(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내 나이 열다섯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Jack London이 쓴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에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이거다! 그래 인간은 이렇게 죽어야 하는거야.
동물원 철창에 갇혀 사나운 발톱을 잃어버리고, 윤기나던 털도 잃어버리고, 마침내는 불꽃같던 이빨마저 잃어버린 채 멍한 하늘만을 바라보던 한국의 마지막 늑대처럼 죽어서는 안되는 거야.
죽는다면 <황야의 이리> 처럼 그렇게 죽는거다. 그것이 품위있게 죽는거야! 그게 바로 남자의 Roman 이란 거다.
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죽는게 정말 어렵다는 걸 알게됐다.
Whoo! 이렇게 죽을 수 없다면 좀 더 쉽게 품위있게 죽는 방법을 찾아보자.
여러 문헌을 뒤적인 결과, 나는 품위있게 죽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사랑을 위해 죽는 것! 고래(古來)로부터 사랑을 위해서 죽는 것은 남자의 로망이었다. 로미오, 베르테르,다자이 오사무,김우진과 윤심덕, 최근에는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죽은 그들의 죽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흠모한다. 단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는데, 절대 구질구질해서는 안되고 한번 써먹은 방법은 효과가 없다라는 것이다.
Jazz musician 중엔 꽤나 품위있게 죽은 사람이 몇 있는데...
지금 소개할려고 하는 Clifford Brown 도 그 중 한 사람이다.
Jazz史에서 꽤나 이름있다는 뮤지션 중 술과 마약에 한 번쯤 손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뮤지션들이 때로는 쾌락을 위해서, 때로는 예술이란 명목으로 술과 마약에 손을 댔다. 악덕이 예술의 재료요, 예술은 본질적으로 부도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악덕없이도 최고의 예술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클리포드 브라운은 당당히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1956년 26살의 이 젊은 천재 트럼펫터는 폭우가 쏟아지던 펜실베니아의 한 고속도로에서 추락사한다. Music City에서의 힘든 공연이 끝난 후, 그가 피곤한 몸을 끌고 그렇게나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어 했던 곳은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던 그의 집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을 맞은 날은 그의 결혼 2주년 기념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분명 비극적인 것이었지만, 결코 비참하지는 않았다. 난 그가 고통없는 찰나적인 죽음을 맞았다고 믿고 싶다. 그가 차마 눈 감지 못했을 그의 마지막 망막에는 그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아내의 영상이 어려있었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나또한 그럴 것이다. 나는 체 게바라처럼 혹은 클리포드 브라운처럼 죽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품위있게는 죽을 수 없을지라도 조르바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틀을 거머쥐고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슬피 울며, 그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있는 동안 죽음이 나를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난 그렇게 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