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키노 > All About Jazz 선정-2005년 BEST


 
Let Freedom Ring!
Denys Baptiste
(Dune)

 
Amazon River
Hendrik Meurkens
(Blue Toukan Music)

 
Leaves of Grass
The Fred Hersch
Ensemble
(Palmetto)
New York School
Tom Christensen
(Playscape Recording)

 
Day Is Done
Brad Mehldau Trio
(Nonesuch)
The Way Up
Pat Metheny Group
(Nonesuch)

 
Flow
Terence Blanchard
(Blue Note)
Shelf-Life
Uri Caine
(W&W)

 
Una Nave
Guillermo Klein
(Sunnyside)
Bebo de Cuba
Bebo Valdes
(Call 54 Records)

 
Oceana
Ben Monder
(Sunnyside)
The Relatives
Jeff Parker
(Thrill Jockey)

 
Shade of Jade
Marc Johnson
(ECM)
Check-In
Roberto Magris
Europlane
(Soul Note)

 
Notes from the Heart
Ulf Wakenius
(ACT)
Keystone
Dave Douglas
(Green Leaf)
Mosquito/See Through
The Necks
(ReR Megacorp)
Into The Barn
Manuel Mangis
Gruppe 6
(Ha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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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

Written by Karl Marx


오후 2시, 입안이 텁텁해지고, 갈증이 느껴진다.

뒤늦은 포만감과 나른함을 떨쳐버리고자 난 한 잔의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오후의 권태로움을 잊고자 몇 장의 CD를 뒤적였다. 한 참을 뒤적이다, 그동안 소유만 했을 뿐이지 그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가련한 중생들>을 발견해내었다. 표지가 맘에 들어서 소유했던 Yamamoto Tsuyoshi의 <Autumn in Seattle>과 남들이 다들 좋다 하기에, 무작정 집어 들었던 Simple Acoustic Trio의 <Habanera>. 내가 기억하기론 아마 내 수중에 있은 지가 1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헐! 이렇게나 무심했다니.


그러고 보니 집에도 이런 <가련한 중생들>이 무척이나 많을 터였다. 소유만 했을 뿐이지 그 존재조차 망각해버린 채 방치해 버린... 그런 존재들이...

Wagner의 니벨룽의 반지의 경우, 게르기에프 내한공연 얘길 신문에서 흘려듣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에 명반이라 손꼽는 Karl Bohm판과 Hans Knappertsbusch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오르그 솔티의 반지를 또 소유했었더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칼뵘의 니벨룽의 반지는 무려 14장의 CD를 자랑하는 눈에 띄게 큰 덩치인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Charlie Parker의 VERVE 박스 세트는 어떠한가? 난 그 큰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이 던지는 눈물어린 시선을 애써 무시하지 않았던가.


한 음반을 정말 닿고 닿듯이 들었던 때가 분명 있었다. 정말 미칠 것 같이 좋아했을 때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더랬다. 그 불타오르던 열정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지금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의 열정은 빌어먹을 과 더불어 사라져버린듯 하다. 그 책을 샅샅이 훝으며 장미꽃(로제트)만 열심히 꺾다보니, 어느새 내 열정은 시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된 명반은 어찌 그리 많은지...

또 비교해서 들어봐야 할 음반은 또 어떻고? 태산이 높다하나 음반산 만큼 높으랴?

게다가 좀 안다니 척하려면 Maniac한 것도 좀 있어야 할 테고.

이러다보면 듣지도 않을 음반만 수북이 쌓이고, 하얗게 타버린 열정만이 남게 된다.

지독한 자신에 대한 경멸감과 공허감과 함께...


한 100장 정도였을 때가 가장 음악이 좋았을 때 였던거 같다. 그 때는 하루에 3장씩 한 달 간격 로테이션이 착착 돌아갔을 때였다. 음악에 맞추어 발도 까닥거리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혀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신이 나서 나 혼자 지랄발광 춤을 추기도 했었다.

1000장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들은 음반보다는 듣지 않은 음반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남았을 뿐, 그곳에 존재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내 앎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 깊이는 얕았다. 음반을 몇 장 안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그 음반의 곡명뿐만이 아니라 그 순서까지도 꿰뚫고 있었다. 이 곡이 어떻게 음이 시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악기의 음이 마지막으로 연주되고 끝이 나는지, 실황음반일 경우에는 기침소리나 의자를 삐꺽 이는 소리가 어느 때쯤 나올 건지 환히 알고 있었더랬다. 그랬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더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그 존재는 더욱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그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 생명은 더욱 소외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진리인 것이다.

이제 지름신의 간악한 손길에서 날 해방시킬 때가 온 것이다.


혁명의 탄환은 이미 쏘아졌다.

ps> 음반수집욕은 사그라드는듯 한데, 책에 대한 욕구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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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핏기 없는 손을 이불 위에 올려놓고 차일을 친 침대위에서 조용히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짧고 불확실한 중얼거림과 같았다. 그의 사고는 타버린 재처럼 회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면 그 또한, 러스티 리건처럼 깊은 잠(Big Sleep)에 들게 될 것이다.


Raymond Chandler의 Big Sleep 중에서


불면(不眠): 친절한 나의 국어사전에는 잠들기 어려움이나 수면 지속의 어려움 또는 수면 양상의 장애로 인해 충분한 잠을 못 자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Insomnia: 로마신화의 잠의 신 Somus를 어원으로 소무스의 손 밖에 있는 이란 뜻.

(Somus는 그리스 신화의 Hypnos와 동일한 신이다.)

 

잠의 신 히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쌍둥이 신으로 그만큼 고대로부터 잠과 죽음은 뗄 수 없는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곤 했었다.

물에 젖지 않으려면 물속에 있으면 되는 것처럼, 잠을 자는 순간만큼은 인간은 반드시 필멸하고야 마는 존재의 공포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잠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현재 나는 불면의 상태에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나로 하여금 느끼고 싶지 않은 필멸하는 존재의 공포를 끊임없이 부여하는 것은 바로 불안이다.

그 불안이 날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불안이 나를 히프노스가 아닌 타나토스의 손아래 나를 집어던진 녀석이다.

 

나는 불안하다. 프로이트에 의하자면 지금 나의 상태는 기대 불안(Erwartungsangst)이라고 한다.

기대 불안이란 잠시 동안이라도 새로이 출현한 어떤 가능성에도 결합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별 것 아닌 일에 방방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태라는 거다.


날 이런 전형적인 불안 노이로제에 빠뜨린 원흉(?)은 한 여자다.

그녀가 나간지 채 몇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이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면,

난 그녀가 가는곳마다 쫓아다니거나 아님 그녀를 꽁꽁 매어두어야 하리라.

억압이 불안을 낳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억압을 낳는다라는 말, 틀림없이 진실일꺼다.

 

내가 불안에 떠는 건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믿지 못하는 건 나 자신이 천인(天人)의 눈이 아닌 야수(野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했던 사나운 짐승들이 살고 있는 황폐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난 인간이 아닌 야수의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탐욕하며, 의심하며, 증오하는...

 

그래서 난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난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또다른 야수가 혹은 천사가 날 시기하여 내가 가진 행복을 산산히 부셔버릴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공포가 내 불안의 정체이다.

가련한 포우(Edgar Allan Poe)는 연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지.

(Annabel Lee에서 발췌)

 

She was a child and I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I and my Annabel Lee- 

With a love that the winged seraphs of Heaven 

Coverted her and me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죠.

바닷가 왕국에선.

우린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했죠

나와 애너벨 리는

하늘의 날개달린 천사들이 나와 그녀를 시샘할만한

그런 사랑으로...


And this was the reason that, long ago, 

In this kingdom by the sea, 

A wind blew out of a cloud, by night 

Chilling My Annebel Lee


그것이 이유였어요.

오래전 바닷가 왕국에서

밤의 구름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만들어버린건.


So that her hightborn kinsmen came 

And bore her away from me, 

To shut her up in a sepulchre 

In this kingdom by the sea.


그녀의 지체높은 친척들이

나에게서 그녀를 데려가

바닷가 왕국 무덤속으로

그녀를 가두어 버렸죠


The angels, not half so happy in heaven, 

Went envying her and me. 

Yes ! that was the reason (as all men know) 

In the kingdom by the sea 

That the wind came out of the cloud, chilling 

And killing my Annabel Lee. 


천국에서 우리의 반만큼의 행복도 가지지 못한 천사들이

나와 그녀를 시기했기 때문이어요

네! 그래요 그것이 이유였어요

바닷가 왕국의

구름속에서 한차례의 바람이 일어

나의 사랑하는 애너벨리를 싸늘하게 죽여버린건.


난 슬픔으로 나를 위로하진 않을터다.

그것이 야수 아니 천사라 할지라도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 그의 서리같은 피를 마시고 그의 얼음같은 심장을 잘근잘근 씹어줄테다. 그런 후에야 난 나를 위로할 수 있으리라.

 

여자친구가 지금쯤은 집에 들어왔으려나...

전화질 좀 해야쓰겄다. ^^ 잔소리도 좀 하고 "제발 좀 일찍 좀 다녀! 나 잠 좀 자자."

 

夜深詞

夜色迢草近五更  밤은 깊어 오경이 가까웠건만

滿庭秋月正分明  뜨락 가득 가을 달을 밝기도 하다

凭衾强做相思夢  이불 쓰고 억지로 잠을 청해도

才到郞邊去自驚  님의 곁에 이르고 깨고 말았네.


아! 이런 Jazz 얘기도  한마디 하고 가야지.

Nils Landgren의

닐스 란드그렌이 현재 제일 잘나가는 Jazz Artists 중 하나라는 건 뭐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다. 내가 그저 말하고 싶은건 이 곡이 실린 가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바닷가를 거닐다가 문득 그녀에게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이루어진 음반을 하나 만들고 싶다라고 그녀에게 속삭였고, 그 결과로 탄생한 음반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하나같이 정말 주옥같은 가사와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것!

그리고 이 음반의 백미라면 바로 이 곡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이 곡 만큼 아름답게 노래부를 수 있을까?


깨어있는자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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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1-1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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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잔인한 폭력은 견딜 수 있지만 잔인한 이성은 견딜 수 없다.

Written by Oscar Wilde


우린-니체가 말했던-삶을 피해 사막으로 달아나 사나운 짐승들과 함께 끊임없이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가혹한 사막에서 끝없는 갈증에 몰린 나머지 자신의 곁을 지켰던 무리에게조차 날카로운 이빨을 곤두세우며, 그들의 피로 자신의 갈증을 풀고자 하는 사나운 짐승들은 대체 누구인가?


오늘날의 고도로 조직화된 현대자본주의사회는 대량생산이 가져온 풍요로 인해 수많은 산물과 상품이 거리 곳곳에 넘쳐나도록 하였지만, 그 풍요는 오로지 돈이란 것을 가져야지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써 그 풍요의 대가로 우리에게 동정보다는 비정을, 정의보다는 이익을, 삶보다는 생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그 사나운 짐승들에 관해 함께 얘기 하고자 한다.

인간의 삶이 아닌 짐승으로서의 생존을 선택한 그들은 자신들의 갈증을 풀기 위해 무리 중 가장 약한 이를 희생자로 선별한다. 그리고는 선택된 희생자 앞에서 차가운 냉소와 비수 같은 적의로 이루어진 그들의 이빨을 천천히 드러낸다. 잔인한 이성은 어느새 증오로 일그러진 짐승의 얼굴들을 친절과 교양이란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다.


희생자의 피로 자신들의 갈증을 푼 짐승들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 희생자가 자신과 같은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희생물로 선택되었기에 그건 자신들과 같은 무리가 아닌 그저 희생물일 뿐인 것이다. 자신들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물을 애도하는 장례식에서 짐승들은 슬픔을 가장한 희미한 미소만을 머금을 나름이었다. 미칠 것 같았던 갈증을 희생자의 피로 푼 짐승들은 다시 사막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는 언젠가 짐승들은 다시 모이겠지. 다음 희생물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PS>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집을 읽으면서 그녀의 전작 <태양은 가득히>,<열차안의 낯선승객> 두 편을 영화로 보았는데,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안의 낯선승객>의 시나리오를 레이몬드 챈들러가 썼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는 그냥 모르고 넘어갔었는데, 마치 굉장한 발견이라도 한 듯 너무 기뻤다 ^^. 좋아하는 작가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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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es have a hole and bird of the air have ne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written by Jesus Christ


Whoo! 그래 오늘 크리스마스다. 근데 나 지금 혼자가 돼 버렸다. 뭐 그렇게 됐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혹은 그것이 일시적이든, 잠정적이든, 영구적이든 간에 이 험한 세상에 달랑 혼자 몸으로 내팽겨질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하나 불러주는 사람 없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불러주는 사람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는 거다.

모비 딕의 이스마엘(아브라함의 버림받은 아들, 방랑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처럼 입술이 근질근질해지고 텁텁함을 느낄 때, 동짓달의 장마를 만났을 때처럼 마음이 울적해질 때, 울적한 마음으로 괴로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남의 모자라도 벗겨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는 한시라도 빨리 문을 박차고 나가는 거다.


난 곧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물은 별거 없다. 혹독한 밤의 기운을 잠시나마 막아줄 캐시미어 목도리 하나,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다가 내가 다시 빼앗은 손난로 하나, 랭보의 시집하나, 그리고 몸을 데워줄 와인 한 병! 아 음악도 빠질 수 없지. CDP도 챙기자.

달랑 은전 2개로 대서양을 거쳐 일본해까지 가버린 이스마엘에 비하면 난 꽤나 준비가 투철했다. 크흐흐흐 자 이제 방랑의 시간이 왔다.


아! 막상 나와 보니 무지 춥다. 젠장할! 이런 날씨라니 나온 지 5분 만에 투철했던 내의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벌써 코끝이 찡하고 귀때기가 아프다.

휘파람을 불어볼려 했으나 입이 얼얼하니 벌써 굳었다. 나지막하게 랭보의 나의 방랑을 읊조려본다.


 

 

 

 

 

 

나의 방랑


쏘다녔다. 터진 주머니에 두 주먹 쑤셔 넣고,

짤막한 외투도 이상적으로 헐었고,

하늘 아래 걸어가던 나,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충복이었다오.

오, 릴라! 내가 꿈꾸었던 찬란한 사랑들이여!


내 단벌 바지에 커다란 구멍 하나,

꿈꾸는 엄지동이, 이 몸은 발걸음마다

시를 뿌렸노라, 내 여인숙은 큰곰자리에 있었다오.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대고,


길가에 앉아 내 별들의 몸짓에 귀 기울이곤 했다오.

9월의 이 멋진 밤, 나는 이마에 떨어지는

이슬방울등 속에서 정력의 포도주를 느끼곤 했다오.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내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치켜들어,

상처 난 내 구두의 고무 끈을 나는 리라처럼 잡아 당겼노라!


톨킨의 호빗이라도 된 양, 시를 읊다보니 노래도 절로 나왔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차디찬 대기가 내 허파로 들어오자 짜릿하면서도 아린 통증이 느껴졌다.

차디찬 공기가 뜨거운 내 심장과 폐를 만나 증발무(蒸發霧)라도 만드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허파에 공기방울이 차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죽는다면 기네스에 오를 수 있을지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벌써 고지는 눈앞에 섰다.

여긴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난 시추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었다. 그녀석이랑 종종 오르곤 했던 동네 야산 아니 언덕 쯤 되려나? 나무벤치가 하나있고, 레몬빛 가스등이 하나 서 있다. 그 녀석은 종종 여기서 소변을 보곤 했었는데... 문득 그 녀석이 그리워졌다.


품안에서 어느새 따뜻하게 데워진 와인 한 병을 꺼냈다.  Bottle by bottle! 여기서 오줌을 싸곤 했던 그 녀석을 향해 건배!

꺼내든 와인은  Jacobs Creek Chardonnay Pinot Noir. 바로 요 녀석이다.

 <사이드웨이>란 영화에서 피노-누아 품종에 관해 주워듣고, 꼭 한번 먹어보고 싶어 사 놓았었다. 마일즈란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피노는 까다롭고 재배하기 어려운 품종이지만 그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와인이지. 신경 안 써줘도 아무데서나 자라는 카베르네와는 달라. 끊임없이 신경 쓰고 돌봐줘야 하는 골치 아픈 녀석이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맛을 지녔거든.”


헹! 정말 멋지지 않아? 난 풍류라고는 전혀 모르는 따분한 녀석이지만, 이런 소리를 듣고도 그냥 지나치는 무감각한 놈은 아니다. 한때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사과향 칼바도스를 사기위해 온 동네 주류shop을 뒤진 적도 있었다. 결국 아직 못 먹어봤지만...


파아란 침묵은 어느새 나랑 레몬빛 가스등이랑 지금은 곁에 없는 그 녀석에게도 내려왔다.

지금 모두가 고요하다.

인간은 침묵 속에 있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말이든 애써 하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자신의 내면으로 가만히 침잠해 들어가 나를 바라봐야 할 그 시간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


피카르트는 말했던가.

음악의 소리는 말의 소리처럼 침묵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평행하는 것이며, 음악은 꿈꾸면서 소리하기 시작하는 침묵이라고 말이다. 음악의 마지막 소리가 사라졌을 때보다 침묵이 더 잘 들릴 때는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난 그가 말했던 그 절대의 침묵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난 가만히 CDP 를 꺼내어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Gerry Mulligan의 <Night Light>!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의 밤에도 정취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제리 멀리건의 이 음반만큼 그 정취를 잘 말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Bee Bop이나 Hard Bop의 통렬하고도 찌를 듯한 열정은 여기엔 없다. 이른바 Westcoast Jazz라고 불리는 Cool의 무덤덤함에 별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을 법 하지만, 저항과 반역이 항상 들끊는 열정과 분노로만 나타낼 수 없는 것처럼, 무서우리만치 차갑고 날카로운 냉소 또한 저항과 반역의 한 방법인 것이다.


메마른 잿빛 도시의 밤!

밝지만 따스한 온기를 줄 수 없는 네온의 불빛처럼 그렇게 Cool은 찾아온다.

그것이 쿨의 진정한 매력이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있을 때 찾아오는 법이 아니던가. 지금 혼자 있는 나보다 함께 있을 그대들에게 고독이 찾아오지 않을는지...

지금 고독을 느끼는 그대들에게도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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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