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

Written by Karl Marx


오후 2시, 입안이 텁텁해지고, 갈증이 느껴진다.

뒤늦은 포만감과 나른함을 떨쳐버리고자 난 한 잔의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오후의 권태로움을 잊고자 몇 장의 CD를 뒤적였다. 한 참을 뒤적이다, 그동안 소유만 했을 뿐이지 그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가련한 중생들>을 발견해내었다. 표지가 맘에 들어서 소유했던 Yamamoto Tsuyoshi의 <Autumn in Seattle>과 남들이 다들 좋다 하기에, 무작정 집어 들었던 Simple Acoustic Trio의 <Habanera>. 내가 기억하기론 아마 내 수중에 있은 지가 1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헐! 이렇게나 무심했다니.


그러고 보니 집에도 이런 <가련한 중생들>이 무척이나 많을 터였다. 소유만 했을 뿐이지 그 존재조차 망각해버린 채 방치해 버린... 그런 존재들이...

Wagner의 니벨룽의 반지의 경우, 게르기에프 내한공연 얘길 신문에서 흘려듣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에 명반이라 손꼽는 Karl Bohm판과 Hans Knappertsbusch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오르그 솔티의 반지를 또 소유했었더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칼뵘의 니벨룽의 반지는 무려 14장의 CD를 자랑하는 눈에 띄게 큰 덩치인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Charlie Parker의 VERVE 박스 세트는 어떠한가? 난 그 큰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이 던지는 눈물어린 시선을 애써 무시하지 않았던가.


한 음반을 정말 닿고 닿듯이 들었던 때가 분명 있었다. 정말 미칠 것 같이 좋아했을 때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더랬다. 그 불타오르던 열정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지금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의 열정은 빌어먹을 과 더불어 사라져버린듯 하다. 그 책을 샅샅이 훝으며 장미꽃(로제트)만 열심히 꺾다보니, 어느새 내 열정은 시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된 명반은 어찌 그리 많은지...

또 비교해서 들어봐야 할 음반은 또 어떻고? 태산이 높다하나 음반산 만큼 높으랴?

게다가 좀 안다니 척하려면 Maniac한 것도 좀 있어야 할 테고.

이러다보면 듣지도 않을 음반만 수북이 쌓이고, 하얗게 타버린 열정만이 남게 된다.

지독한 자신에 대한 경멸감과 공허감과 함께...


한 100장 정도였을 때가 가장 음악이 좋았을 때 였던거 같다. 그 때는 하루에 3장씩 한 달 간격 로테이션이 착착 돌아갔을 때였다. 음악에 맞추어 발도 까닥거리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혀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신이 나서 나 혼자 지랄발광 춤을 추기도 했었다.

1000장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들은 음반보다는 듣지 않은 음반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남았을 뿐, 그곳에 존재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내 앎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 깊이는 얕았다. 음반을 몇 장 안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그 음반의 곡명뿐만이 아니라 그 순서까지도 꿰뚫고 있었다. 이 곡이 어떻게 음이 시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악기의 음이 마지막으로 연주되고 끝이 나는지, 실황음반일 경우에는 기침소리나 의자를 삐꺽 이는 소리가 어느 때쯤 나올 건지 환히 알고 있었더랬다. 그랬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더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그 존재는 더욱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그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 생명은 더욱 소외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진리인 것이다.

이제 지름신의 간악한 손길에서 날 해방시킬 때가 온 것이다.


혁명의 탄환은 이미 쏘아졌다.

ps> 음반수집욕은 사그라드는듯 한데, 책에 대한 욕구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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