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 -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글 마음에 깊이 남는 글
권일한 지음 / 우리교육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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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권일한, 우리교육)

다 읽은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이라 다시 읽었다. 5개월 전에는 한 달에 걸쳐서 읽었는데, 이번에는 3일만에 부랴부랴 읽었다. 이번 달은 독서모임 당일까지 읽어야 할 정도로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5개월 전에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책 내용이 조금씩 생각이 났다. 선생님 책을 계속 읽으니 여러 번 등장하는 아이들 글이 있어서 속으로 ‘나는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알지.‘ 하며 읽었다. 3일 만에 읽으니 너무 급하게 읽어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체한 느낌이다. 책은 좀 천천히 씹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도 않다.

지난 달에 읽은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이야기]를 두 번째 읽으며(읽다 만 것까지 포함하면 세 번이지만) ‘아, 이 책은 선생님이 책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구나.‘ 했다면,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며 다가온 문장은 선생님이 (아이들) 글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대목이었다. 글을 귀하게 여기시기에 아이들 글에서 보석을 발견하실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아이들이 쓰는 글에 가치가 있다고 외치는 선생님의 글에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던 강형욱 씨가 생각났고, 레이놀즈의 [점] 책이 생각났다. ˝너의 글은 가치가 있어.˝ 베티가 찍은 단 하나의 점을 미술작품으로 존중해주었던 미술선생님 같았다.
나는 글이 귀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글은, 현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글은 귀한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도구였다. 슬프면 썼고, 우울해도 썼다. 드라마 보고 감동해서 쓰기도 했다. 숨 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정작 숨을 쉬지 못하게 될 때까지 숨 쉬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기 어렵다. 나에게는 글도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당연하게, 늘 거기 있는 대나무숲이다.
권일한 선생님은 주변에서 경탄의 순간을 찾아내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나는 관찰을 잘 못한다. 하나만 깊이 파는 스타일이라, 하나만 보고 주변의 것을 잘 보지 못한다. 그 하나도 내가 관심있는 분야만 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것을 놓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 같은 교육방법을 취할 수가 없다.
글쓰기에 대한 관점도, 주변을 보는 관점도 다르다. 그리고 다른 것이 당연하다. 내가 글쓰기에 고민하는 지점이다. 나에게 맞는 글쓰기 교육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김경인이라는 학생이 [딸들의 제국]을 읽고 쓴 글이, 내 마음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한길을 걷다가 ‘어떤 지점‘에서 서로 다른 길로 갈라져 나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같은 길을 지나 ‘어떤 지점‘에 다다랐을 때, 수많은 길들 중 나의 길을 선택하는 방법을 아직 나는 깨닫지 못했다.(78쪽)

+ 독서모임 후기
서평도 쓰지 못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독서모임에 참여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던진 발제문(글을 쓰는 목적/까닭)이 있었는데, 실은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해야 그 다음 단계로 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몇 년째 ‘왜?‘를 달고 살지만, ‘왜?‘에 대한 답은 분명하게 표현될 때도 있고, 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글은 주로 서평이다. 그래서 이번 [선생님들의 시간표 2.0](가제인지 어떨지 모르겠지만)에 서평을 주제로 써달라고 초청(?)받았다(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지라 글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뒷일은 닥쳐서 고민하는 것으로 한다.). 싸이월드에 글을 쓸 때는 주로 일기를 썼다. 지금도 블로그에 일기를 쓴다. 수업에 대해 쓰고 싶어서 쓰고 있다. 그마저도 무엇을 써야 할지 헤매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이 주로 어떤 종류인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쓰고 있다. 일기, 서평뿐 아니라 반주법(싸이월드를 사용할 때 ‘페이퍼‘라는 블로그 비슷한 곳에 반주법에 대한 글을 연재한 적도 있었다.), 영화평(이건 배우들을 잘 몰라서 내용 중심으로 쓰긴 하지만, 워낙 서사를 좋아하는 탓에 ‘나에게 적용‘을 중심으로 쓴다.), 여행 후기(방법적 설명이 많다.) 등등 특별히 정해 놓고 쓰는 글은 없다.
독서모임에서 서평을 왜 쓰는지 물었을 때, ‘기억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 이상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아서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야 했다. 덧붙여 ‘책의 내용보다는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기억하고 싶어서‘라고 답을 했다. 글쓰는 이유로 ‘기억‘을 많이 얘기하셔서, 글쓰기는 기억을 위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선생님은 다른 사람과 연결, 소통하고 싶어서 쓰신다고 했다. ‘그래, 맞아‘하고 생각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자신감이 없는 편인데, ‘내 생각‘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을 바꿔야 할까?‘라는 마음이 크다. 옳은지 그른지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내 삶에는 옳고 그름이 중요했다. 내 감정보다 옳고 그름이 중요했다. 그것까지 쓰려면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서 써야겠다. 왜 기억하고 싶은지도 더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내가 어떤지 아는 것이 내 글의, 글쓰기 지도의 기본이 되는 것 같기에 이 질문들에는 꼭 답을 찾고 싶다.-서평을, 독서모임 후기를 읽어보니 답을 찾은 것도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반복하게 되는 법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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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연필 - 2011년 제17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71
신수현 지음, 김성희 그림 / 비룡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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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연필](신수현 글, 김성희 그림, 비룡소)

권일한 선생님의 페이스북에서 보고 산 책이다(페이스북뿐 아니라 권일한 선생님이 쓰신 책에서도 보고 샀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다.). 읽어보니 권일한 선생님이 왜 좋다고 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장편동화이다. 문학을 (시 빼고)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기가 자는 시간에 단숨에 다 읽었다. 이야기책은 급하게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느낌이다. 오래 오래 꼼꼼히 씹어 먹지는 않는다. 이야기책을 가지고 생각을 하거나 등장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거나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읽는다. 이야기책을 읽으면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좋다. 삐삐롱스타킹 같기도 하다(삐삐롱스타킹이 아닐 수도 있다. 앞에서부터 쭉 사건을 서술하는데 그 사건이 그 아이의 상상이었던 반전의 책이었던 것만 기억난다.).

민호는 우연히 빨강연필을 얻는다. 주인 없는 연필이다. 민호는 그 연필을 자신이 가졌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연필이 예뻤으면 민호처럼 했을 것 같다. 주인도 없다는데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는 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사실 이 세상에 정말 내 것이 존재하기나 하나?). 그 욕심의 영역이 각자 다를 뿐이다.
민호는 기본적으로 잘 쓰는 능력이 있었다. 비밀 일기장에 쓰던 일기 내용도 못 쓰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이 정도만 써도 괜찮은데, 라고 생각했다.-아무래도 내가 ‘잘 쓴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쓴다‘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빨강연필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학교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이다. 특히 맨땅에 헤딩해야 할 때. 전년도에 업무 계획이 올라오지 않아서 새로 업무 계획을 세워야 할 때. 그리고 협의회를 하지도 않았는데 협의회 내용을 기안으로 올려야 할 때.-요즘은 조금 바뀌었지만 말이다. 관리자의 마음속을 보고 싶을 때 빨강연필을 쓰고 싶다. 민호의 마음도 이랬을까? 하지만 성격이 다른 글인데. 내가 써야 하는 업무 계획은 솔직하게 내 생각을 쓸 수 있는 글도 아닌데. 하지만 글을 쓰는 아이들의 마음이 업무 계획을 써야 하는 내 마음과 같다면, 그건 참 마음이 아픈 일이다.
민호는 빨강연필을 이용해서 상을 받았다. 자신의 실력이 아니기 때문에 재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민호와 재규 같은 상황에 대해 생각이 많다. 계약직과 정규직, 금수저와 흙수저.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생각을 적지는 않겠지만, 일련의 일들이 민호와 재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민호의 상황에서 빨강연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유혹은 언제나 존재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유혹에 빠지는데, 세상 사람들은 오죽할까.-이런 부분에서도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기도 했다.

읽은지 3주가 지나서 쓰는 바람에 책에 대한 내 생각이 어땠는지 많이 잊었다. 서평을 쓰면서 기억해보지만 그때의 감동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침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 책을 읽어서(이 책 뒷부분에 [빨강연필] 토론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이 생각나기도 해서 내 생각과 그 책의 토론 내용이 섞여 있다. 시간 날 때 다시 읽고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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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살아있는 질문 수업 - 하브루타의 실제
양경윤 지음 / 테크빌교육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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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교실이 살아있는 질문 수업](양경윤, 즐거운학교)

이 책은 하브루타에 관한 책이다. 몇 년 전 하브루타 붐이 일었을 때 하브루타 연수를 듣고 이 책을 샀던 것 같다.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교육 방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나는 평소에 질문(혹은 발문)을 잘 못 던진다고 생각을 해서 이 책을 샀던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질문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또 다른 질문을 찾아 헤매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하브루타의 실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개론적 성격의 책(?)은 이미 출간된 모양이었다. 그 책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이 책이 너무 수박 겉핥기 식의 책이라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실제 편이라 이런 저런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권일한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만큼의 삶의 철학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하브루타를 적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는 느낌? 이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뒤에 나오는 독서 교육 부분 때문이었는데, 책을 사랑하시는 분이 쓴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에 나오는 독서교육 부분을 읽을 때에는 저자의 삶이 빠져 있어서 진정성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신 것은 알겠고, 이런 저런 적용을 많이 하시고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는 것도 알겠고, 수업을 통해 아이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으신 것도 잘 알겠는데,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책이 선생님의 삶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래도 아이들보다는 수업에 더 초점이 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보다는 수업에 더 초점이 가 있다는 것. 기술적인 부분은 잘 서술되어 있지만 관계적인 부분이 빠져 있어서 아쉽다고 느낀 모양이다. 이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요즘 스스로에게 원론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편이다. 위에도 썼지만, 질문만 던지고 답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문제다. 나는 왜 질문 수업을 하고 싶은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왜 수업을 잘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기술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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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 존 오웬 전집 1
존 오웬 지음, 김귀탁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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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존 오웬/김귀탁 옮김, 부흥과개혁사)

개혁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읽은 세 번째 책이다. 예장 고신과 합동에서 개혁주의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 책과 같은 내용 들어본 적 없고, 자세하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현재 고신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합동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요즘 전도서 영어성경 필사를 하고 있는데, 전도서의 영어명이 교회라는 뜻이고, 라틴어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드물게 교사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교회는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책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이 책이 시작되기 전에 김남준목사님이 쓰신 [존 오웬의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 해제]라는 소논문(?)이 실려 있는데, 나는 단순히 이 책을 요약 정리한 것일까, 하고 생각했더니(이 책 다 읽은 후에 읽었다.) 존 오웬의 신학적 기반이 되는 사상들을 정리한 내용이었다(이 책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풀어내시기도 했다.). 김남준목사님이 존 오웬 좋아하신다(?)는 것도 개혁주의 성경공부의 리더(?)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알게 된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 김남준목사님 말씀이 좋아서 열린교회에도 갔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청교도 신학을 연구하시는 분이 많이 없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만큼 개혁주의와 조직신학에 대해 심도 있게 가르치시는 분들을 만난 적이 없다.-하지만 열린교회의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죄에 대한 성경 본문(롬 7:21)에서부터 시작한다. 롬 7:21에서 도출한 것은 네 가지 사실인데, 1. 죄는 곧 법이다(죄의 법의 이중적 의미는 죄의 존재와 본질, 죄의 힘과 효능이다.). 2. 죄의 법은 신자들 안에서 발견된다. 3. 신자들의 의지의 경향적인 성향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것이다. 4. 신자들 안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1부).
이 책에서는 죄의 효능과 힘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3부), 특히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의 효능과 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처음에 죄의 법의 특징에 대해 다루고, 그 다음 내재하는 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룬다. 여기서 죄의 법의 주체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마음이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오웬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지성, 의지, 정서, 양심의 기능을 묶어 마음이라고 한다고 정의한다. 오히려 ‘마음이 지성, 의지, 정서, 양심의 기능을 묶은 것이다.‘라고 정의하니까 마음에 대해 한결 이해가 쉬워지는 느낌이었다. 특별한 반론이 없는 한, 오웬이 말하는 마음의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다(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합리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 마음의 속성, 내재하는 죄의 속성을 다루는데, 마음의 속성을 다룰 때 내가 마음에 대해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이 나를 기만할 때가 많은데, 나는 그 사실을 늘 흐지부지 넘어가면서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합리화했다. 물론, 그 다음에도 스스로 기만하는 것은 되풀이된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하신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늘 마음에 자리잡은(?) 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을 말씀보다 더 믿었다는 깨달음이 생기자 신앙생활을 이렇게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의 행위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죄가 싸운다고 말하는 데에도 조금 정신이 들었다. -죄는 싸운다. 내가 지치고 싸움에 패하도록 물어지고 끈덕지게 싸운다. 한 번 싸워서 이긴 것처럼 보일 때 끝내면 되는 싸움이 아니다.
죄가 어떻게 속임으로 역사하는가에 대해서 크게 5단계로 살펴보는데, 140쪽에 잘 나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지성을 끌어내리고, 두 번째 단계는 정서가 미혹되고, 세 번째 단계는 죄를 잉태시키고(의지와 관련), 네 번째 단계는 실제로 수행되어 죄를 낳고, 다섯 번째 단계는 죄가 장성하는 것이다. 오웬은 지성이 어떻게 끌어내려지는지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지성이 한 번 끌어내려지면 그 뒤는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 부분을 보고 현대 상담치료의 하나인 인지행동치료가 생각이 났다. 인지행동치료에서 생각이 정서와 행동을 바꾼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동안 좋아했던 로렌스 크랩이 인지치료를 지지하기도 했다(여기에 대해서 할 말은 많지만 다음으로 넘긴다.).
오웬에 의하면 죄를 파괴하는 데 적합하고 유용한 수단은 묵상과 기도이다(158쪽). 내가 묵상과 기도를 게을리하는 데에는 죄의 힘을 크게 여기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마음도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했지만, 죄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오웬이 이렇게 하나씩 짚어주니, 속임을 당하면서도 마음의 일시적 즐거움을 위해 일부러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3부에서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주의 깊게 다룬 후 4부에서는 일반적인 죄의 효능과 힘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의 내용은 이 말이 그 말 같고, 그 말이 이 말 같은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몇 번이나 문장을 다시 읽어야 했다.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지만, 죄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책 내용을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한 바가 많아서 적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다 적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 못 적어 아쉽다. 위에 쓴 서평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려고 하니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끝으로,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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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 - 아이들과 함께하는 두근두근 독서 교실
권일한 지음 / 우리교육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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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권일한, 우리교육)

이 책은 세 번째 읽는다. 제일 처음 읽을 때는 끝까지 다 읽지 않았고(내 독서 성향이 이 책 저 책 막 읽는 성향이라 그렇다.), 작년에 두 번째 읽었고,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이라 세 번째 읽었다. 책에 띠지를 붙여 놓았는데, 처음 읽을 때는 파란색 띠지로 윗 부분에 붙였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광택 나는 띠지로 옆에 붙였고, 세 번째 읽을 때는 종이 띠지로 옆에 붙였다. 이상하게도 띠지를 붙인 곳이 달랐다. 작년에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고, 올해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이번에는 오히려 첫 번째 띠지를 붙인 곳과 겹치는 곳이 두 곳 있었다. 소개할 만하면 소개해 보겠다.
나는 오히려 ‘들어가며‘와 ‘나가며‘에서 감동을 받았다. ‘들어가며‘에 소개된 [오즈의 마법사]는 나에게는 그냥 재미있는 동화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즈의 마법사]의 작가가,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으로 두뇌와 심장과 용기, 고향을 꼽았다(7쪽)고 소개하신다. 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만 던졌다. 답은 찾지 않았다. 또, 책을 읽는다고 무조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랬다. 이야기라서 읽었고, 재미있어서 읽었다. 단지 그게 다였다. 서평을 쓰지 않으면 나중에 기억나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예전에 읽은 이야기 책 중에 기억나지 않는 책도 많다. 7년 전에 [나니아 연대기]를 딱 한 번 완독했는데, 그 뒤로는 읽지 않아서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뜨문뜨문 기억날 뿐이다.
‘1부 행복한 책벌레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운동‘을 읽으며 여러가지 발제문을 생각했다(그냥 저절로 생각났다.). 1부 표지를 한 장 넘기면 이권우 님의 글이 제일 먼저 나온다.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고 났더니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 하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다.(16쪽)

나에게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 하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 있었나? 나는 이 책이 그랬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끔씩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들을 소개하는 책을 만나면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몇 달 전에 읽은 [독서모임 꾸리는 법] 책 부록에 소개된 책들도 읽고 싶었고, 몇 년 전에 읽다 말은 [한 권으로 꿰뚥는 시편] 읽으면서 본 회퍼의 [시편 이해]를 사서 읽었다. 그리고 20대를 지나면서 한 작가의 책에 꽂히면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사서 읽었다(대표적인 사람이 필립 얀시, 이용규선교사님이었다.). 책은 다른 책을 부른다.
또,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무엇일까?‘라는 질문도 생각해 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곱씹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내가 여러 번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질문은 45쪽 ‘나에게 좋은 책 목록‘과도 이어진다. 선생님 한 분이 책꽂이에 ‘명예의 전당‘이 있다고 해서 내가 명예의 전당을 만든다면 나는 어떤 책을 명예의 전당에 꽂게 될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명예의 전당 목록도 계속 바뀔 것 같은데, 지금은 [성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불확실의 시대, ‘오직‘을 말하다], [어린왕자]를 꼽을 것 같다. [한 아이]도 좋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도 있지만, 아직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 탓에 명예의 전당에 올려두지 못한 것 같다(그렇다고 명예의 전당에 올리고 싶은 책들을 다 소화시킨 것은 아니다.).
‘나는 책을 왜 읽나?‘도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생각하기 싫어서 이유가 없다는 말로 둘러대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르에 따라 읽는 까닭이 다른데, 소설이나 동화는 재미있어서이고, 전문서적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이다. 내가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한편으로 246쪽에 나열된 책을 읽는 목적 중 지식을 쌓기 위해서와 배우기 위해서는 다른가, 라고 생각한다.). 권일한선생님은 나를 만나기 위해 책을 읽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 정도로 책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에게 책예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발제문으로 ‘나의 책읽기 여정‘은 어떨까도 생각했다. 이때까지 읽어온 책들을 나열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책 읽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글쓰기와 말하기(토론)까지 이어진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활동은 통합적이기에 어느 것 하나 끊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 번째 읽는 거라 그런지 조금 더 마음에 여유를 두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읽을 때는 책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지만, 계속 읽다보면 책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께서 책읽기 지도하시는 전체적인 그림이 조금 그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그림이 완성되면 나도 조금은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계속 읽어야 하는 책이다.

독서모임 운영자님께서 오늘 발제문을 주셨다.
1. 선생님은 책을 왜 읽으시나요?
2. 이 책을 30자 내외로 요약해 볼까요?
3. 우리는 권일한 선생님의 책을 두루 읽고 있는 중입니다. 세 번째 책을 읽은 지금, 권일한 선생님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선생님께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누어 주세요.
4. 책과 관련된 특별한 추억을 이야기해보아요. 선생님만의 행복한 책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번은 서평에서 적었고,

2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는, 책을 읽고 뜯고 씹고 맛보아 소화시키는 방법.
7글자로 적는다면, 책을 사랑하는 법.
(원래 띄어쓰기도 글자에 포함시키지만 여기서는 예외로 한다.)

3번.
생각나는 성경구절로 대신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좋겠다.

4번.
나도 선생님처럼 차 타면서 책 읽어도 멀미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ㅋㅋㅋㅋㅋㅋ
어디든지 (읽지 않더라도) 책을 들고 다닌다는 점?
밤새 읽은 [백파선].
몇 주에 걸쳐 새벽까지 이불 속에서 읽은 [나니아 연대기].
책과 멀어진 내게 신랑이 밤마다 읽어준 [한국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2].
시립도서관을 기웃거렸던 중학생 때, 책 읽고 처음 울었던 경요의 장편소설 [너 없는 사랑].
동생이 빌려온 책, 동생은 안 보고 내가 봤던 [해리포터] 시리즈 1-4부.-대학생 때
12년쯤 지나 학교에서 빌려봤던 [해리포터] 시리즈 5-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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