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 -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글 마음에 깊이 남는 글
권일한 지음 / 우리교육 / 2015년 1월
평점 :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권일한, 우리교육)
다 읽은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이라 다시 읽었다. 5개월 전에는 한 달에 걸쳐서 읽었는데, 이번에는 3일만에 부랴부랴 읽었다. 이번 달은 독서모임 당일까지 읽어야 할 정도로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5개월 전에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책 내용이 조금씩 생각이 났다. 선생님 책을 계속 읽으니 여러 번 등장하는 아이들 글이 있어서 속으로 ‘나는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알지.‘ 하며 읽었다. 3일 만에 읽으니 너무 급하게 읽어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체한 느낌이다. 책은 좀 천천히 씹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도 않다.
지난 달에 읽은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이야기]를 두 번째 읽으며(읽다 만 것까지 포함하면 세 번이지만) ‘아, 이 책은 선생님이 책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구나.‘ 했다면,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며 다가온 문장은 선생님이 (아이들) 글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대목이었다. 글을 귀하게 여기시기에 아이들 글에서 보석을 발견하실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아이들이 쓰는 글에 가치가 있다고 외치는 선생님의 글에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던 강형욱 씨가 생각났고, 레이놀즈의 [점] 책이 생각났다. ˝너의 글은 가치가 있어.˝ 베티가 찍은 단 하나의 점을 미술작품으로 존중해주었던 미술선생님 같았다.
나는 글이 귀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글은, 현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글은 귀한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도구였다. 슬프면 썼고, 우울해도 썼다. 드라마 보고 감동해서 쓰기도 했다. 숨 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정작 숨을 쉬지 못하게 될 때까지 숨 쉬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기 어렵다. 나에게는 글도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당연하게, 늘 거기 있는 대나무숲이다.
권일한 선생님은 주변에서 경탄의 순간을 찾아내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나는 관찰을 잘 못한다. 하나만 깊이 파는 스타일이라, 하나만 보고 주변의 것을 잘 보지 못한다. 그 하나도 내가 관심있는 분야만 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것을 놓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 같은 교육방법을 취할 수가 없다.
글쓰기에 대한 관점도, 주변을 보는 관점도 다르다. 그리고 다른 것이 당연하다. 내가 글쓰기에 고민하는 지점이다. 나에게 맞는 글쓰기 교육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김경인이라는 학생이 [딸들의 제국]을 읽고 쓴 글이, 내 마음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한길을 걷다가 ‘어떤 지점‘에서 서로 다른 길로 갈라져 나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같은 길을 지나 ‘어떤 지점‘에 다다랐을 때, 수많은 길들 중 나의 길을 선택하는 방법을 아직 나는 깨닫지 못했다.(78쪽)
+ 독서모임 후기
서평도 쓰지 못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독서모임에 참여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던진 발제문(글을 쓰는 목적/까닭)이 있었는데, 실은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해야 그 다음 단계로 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몇 년째 ‘왜?‘를 달고 살지만, ‘왜?‘에 대한 답은 분명하게 표현될 때도 있고, 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글은 주로 서평이다. 그래서 이번 [선생님들의 시간표 2.0](가제인지 어떨지 모르겠지만)에 서평을 주제로 써달라고 초청(?)받았다(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지라 글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뒷일은 닥쳐서 고민하는 것으로 한다.). 싸이월드에 글을 쓸 때는 주로 일기를 썼다. 지금도 블로그에 일기를 쓴다. 수업에 대해 쓰고 싶어서 쓰고 있다. 그마저도 무엇을 써야 할지 헤매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이 주로 어떤 종류인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쓰고 있다. 일기, 서평뿐 아니라 반주법(싸이월드를 사용할 때 ‘페이퍼‘라는 블로그 비슷한 곳에 반주법에 대한 글을 연재한 적도 있었다.), 영화평(이건 배우들을 잘 몰라서 내용 중심으로 쓰긴 하지만, 워낙 서사를 좋아하는 탓에 ‘나에게 적용‘을 중심으로 쓴다.), 여행 후기(방법적 설명이 많다.) 등등 특별히 정해 놓고 쓰는 글은 없다.
독서모임에서 서평을 왜 쓰는지 물었을 때, ‘기억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 이상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아서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야 했다. 덧붙여 ‘책의 내용보다는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기억하고 싶어서‘라고 답을 했다. 글쓰는 이유로 ‘기억‘을 많이 얘기하셔서, 글쓰기는 기억을 위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선생님은 다른 사람과 연결, 소통하고 싶어서 쓰신다고 했다. ‘그래, 맞아‘하고 생각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자신감이 없는 편인데, ‘내 생각‘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을 바꿔야 할까?‘라는 마음이 크다. 옳은지 그른지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내 삶에는 옳고 그름이 중요했다. 내 감정보다 옳고 그름이 중요했다. 그것까지 쓰려면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서 써야겠다. 왜 기억하고 싶은지도 더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내가 어떤지 아는 것이 내 글의, 글쓰기 지도의 기본이 되는 것 같기에 이 질문들에는 꼭 답을 찾고 싶다.-서평을, 독서모임 후기를 읽어보니 답을 찾은 것도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반복하게 되는 법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