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할머니가 말했다.
"불쌍한 노아! 방주 안에서 어떻게 40일 동안이나 가족들을 참아냈는지 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 P128

왕할머니는 밖으로 뛰어나가는 레이첼의 뒷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간 레이첼은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 들었지만 뜻밖에도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슬며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도도하게 말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바로 그 순간, 미사일같이 생긴 돌을 조심스럽게 찾아낸 피비는돌을 들고 돌아서서 부엌 유리창을 향해 던졌다. 돌멩이는 유리창한복판에 깨끗하고 커다란 구멍을 냈다.
나오미가 한마디 했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 그리고 아주 멋진 한 방이었어."
반대편에서 자기가 저지른 일을 살피러 안으로 들어온 피비가 겸손하게 말했다.
"별거 아니야."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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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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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알베르 카뮈/김화영 옮김, 민음사)
-feat. 고질독 25기

📚질문 만들기
1. 작가 조사
2. 감정과 기분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3.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이유가 있다면?
4. 뫼르소가 포기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요?
5. 트리거가 있나요?
6. 다른 사람이 내 감정을 물어볼 때 기분이 어떠세요?
7. 생각나는 벌이 있나요?
8.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요?
9. 과거와 미래, 내 관심은 어디에 있나요?
10. 뫼르소는 왜 사제에게 자신의 마음을 쏟아부었을까요?

다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주제로 많이 생각했나보다. 타인이 보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나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소감
[이방인]은 작년에 처음 읽고, 이번이 재독이다. 처음 읽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처음 읽을 때는 뫼르소가 전혀 이해가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어느 정도 이해가는 부분이 있었다.-이상한 노릇이다. 살인자에게 이해가는 부분이 있다니. 독서모임 때 이야기한 ‘부조리‘를 바탕으로 다시 읽으면 또 달라질 것 같다.

📚독서모임

🔑부조리
📌참고 영상: https://youtu.be/FVGSZqUuo34?si=n2qczsEU3SGpr7rs
까뮈의 ‘부조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부조리‘가 아니다. 까뮈가 의미하는 부조리는 ‘시지프 신화‘에서 출발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는 무의미한 삶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부조리이다. 삶의 의미를 계속 찾으며 살려고 하지만,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무의미함만 느낄 때) 느껴지는 감정. 그렇다고 까뮈는 의미 없는 인생에서도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살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죽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부조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삶의 모든 요소들이 무의미하므로(사소하므로)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부조리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이것이 바로 까뮈가 말하는 ‘반항‘이다. [시지프 신화]를 읽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부조리‘를 이해하고 보면 또 달라질 것 같다. 이 사상을 듣고보니, 자연히 니체가 떠오른다. 니체의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해야 할까. 독서모임을 할 때는 ‘키치‘가 떠오른다고 했는데, 키치는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까뮈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전도서를 쓴 솔로몬이 ‘헛되다‘고 했던 게 까뮈가 말한 삶의 무의미함과 통하는 것 같다. 그 지점에서 솔로몬은 창조주를 생각하라고 했고, 까뮈는 무의미함을 통해 자유로워지라고 했다. 까뮈의 사상에서 [싯다르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인물탐구
📌뫼르소: 죽음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사람
뫼르소는 이 책에서 세 가지 죽음을 경험한다(또는 경험할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자연사), 아랍인의 죽음(살인), 자신의 죽음(사형). 이 세 가지 죽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뫼르소는 이 죽음을 통해서(감옥 안에서)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질문픽
📌뫼르소는 왜 사제에게 자신의 마음을 쏟아부었을까요?
내가 픽한 건 아니고(집회 참석 후라서 정신이 없었음), 윤주님이 픽해주셨다. 이 질문에 대한 한 줄 요약은, ‘너네의 틀에 나를 가두려고 하지 마!‘라는 반항의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원글을 옮겨온다.

뫼르소는 자신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도, 무엇에 관심이 없는지는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뫼르소는 종교도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
사제는 뫼르소를 전도하기 위해 무척 애썼지만(이것을 전도로 볼 수 있을까?) 뫼르소는 도덕적, 사법적 죄인이라는 것도 겨우 받아들인 상황에서, 영적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마저도 사람들의 시선 속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터라, 자발적이진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제는 뫼르소를 도덕적으로 설득하려고 하고, 도덕적 감수성이 현저하게 낮은 뫼르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는, 이제 그만 좀 말하라니까 왜 자꾸 옆에서 시비를 거느냐, 는 게 폭발적으로 나온 느낌이다. 귀찮았지만 듣고 있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종교에 뫼르소를 끼워 넣으려 하니 제발 그 틀에 가두지 말라는 외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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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팡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블레즈 파스칼 지음, 이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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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블레즈 파스칼/이환 옮김, 민음사)
-feat. 다북다복 2nd

📚파스칼
파스칼은 39세의 나이로 작고하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개인적으로 파스칼, 하면 기압 단위 ‘헥토파스칼‘이 생각난다. 수학자로서의 명성도 알고(?) 있다. 일찍 죽지 않았다면 모르긴 해도 업적이 어마어마했을 거다.

📚팡세
제목만 알고 처음 읽었다. 팡세가 이런 내용인 줄도 몰랐다. 팡세는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는데, 1부는 신을 믿게 되는 과정을 증명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2부는 거의 수기로 기록되며 부록 같은 느낌이 들었다. 1부 읽으면서 루이스가 생각났는데, 개인적으로는 루이스보다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2부 5편에도 루이스의 [기적]이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다.
1부는 인간 이성으로 신을 어떻게 믿게 되는지 설명하는데, 인간 이성으로는 초월적 존재를 알 수 없으나, 이성의 한계를 아는 이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으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으며, 의지(습관)를 굴복시킴으로써 믿음을 공고하게 한다(고 나는 정리했다.).
2부는 수기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은총, 기적, 예수회와의 논쟁(장세니스트 옹호)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수록되어 있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예수회와의 논쟁이었다. 이것이 이단을 대하는 교회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서였던 것 같다. 얀센이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책을 썼고, 예수회는 그 책에서 5개 명제를 뽑아내어 이단으로 규정한다. 그걸 신학교수 아르노가 반격하면서 파스칼이 이들을 옹호하는 것이 ‘프로뱅시알‘(2부 4편)이다.

835-[949] 국가에 있어서 평화는 백성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것같이, 교회의 평화는 교회의 재산인 진리와 교회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보배로운 것을 보호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 한 국가 안에 적이 침범하여 약탈하는 것을 보고도 평안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이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평화를 거역하는 일이 되는 것같이(평화란 오로지 재산의 안전을 위해 정당하고 유익한 것이므로 일단 평화가 재산의 상실을 방임할 때는 부당하고 유해한 것이 되며, 오히려 이것을 지킬 수 있는 전쟁이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어서도 진리가 원수에 의해 공격당하고 신도들의 마음에서 진리를 앗아가 오류가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한다면, 이때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과연 교회에 봉사하는 일인가, 교회를 배반하는 일인가? 교회를 지키는 일인가, 파멸시키는 일인가? 진리가 다스리는 평화를 어지럽히는 것이 죄라면, 진리가 파괴될 때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것도 죄라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평화가 정당한 때가 있고, 평화가 부당한 때가 있다. 그렇기에 ‘평화의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다’고 적혀 있으며, 이것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바로 진리의 이익이다. 결코 진리의 때와 오류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느님의 진리는 영원하리라’고 적혀 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면서 한편 전쟁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 결코 진리와 허위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는 사물의 제일 원리이고 궁극의 목표이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 이 책이 추천하지 않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나는 나 같은 성향이라면 추천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겨우겨우 읽었다. 재독하지 않을 것 같지만, 재독을 하면서 숲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읽었으면 절대 끝까지 못 읽었을 거다.

📚내가 픽한 문장
225-(278) 신을 느끼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이것이 곧 신앙이다. 이성이 아니라 심정에 느껴지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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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비즈니스 - 11가지 비즈니스 행위에 관한 성경적 원리
웨인 그루뎀 지음, 배응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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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비지니스](웨인 그루뎀/배응준 옮김, CUP)

📊마인드맵 이야기
인스타그램에서 ‘마인드맵 B코스‘를 신청했다. 마인드맵이야 초등 현장에서도 많이 사용을 하는데, 마인드맵을 독서에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신청을 했다. 블로그 이웃 중에도 책 내용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시는 분을 봤는데, 관심 있는 책 분야가 아니어서 그런지 모호하게 다가왔다. 이번 기회에 내가 직접 책 내용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면 가닥이 잡힐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xmind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듯,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책 정리할 때 이것 저것 사용해보았다. 그러느라 이 얇은 책을 두 번 정도 읽었다. 중반쯤까지 만들다보니, 처음 만들 때 구조화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첫부분을 다시 만든 탓이다.
손글씨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시간도 더 많이 걸릴 뿐 아니라 구조화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수정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아서, 마인드맵에 익숙하거나 핵심만 적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이 나을 것 같다.
마인드맵 초급, 중급 나누어서 운영해도 좋을 것 같고, xmind 활용방법 설명 시간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 이야기
(흠.. 이 책을 추천하신 목사님이 이 글을 안 보셔야 할 텐데.)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비지니스 기본요소들(1~9파트 소제목)이 선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기독교인)들은 비지니스 요소가 중립적이라고 여기는데, 이분은 비지니스 요소가 선한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도 하고, 죄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요소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대로 살아가자는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받아들일 위험이 있는 것 같아서(우리의 행동에 중심이 치우침) 이게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선악을 선택할 기회가 있고, 비기독교인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인지 그 부분도 궁금했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라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선한 일은 비기독교인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또, 책에 보면 인간에게 주신 욕구가 선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타락할 때 지정의가 다 타락했다면 욕구도 타락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욕구가 선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전제(비지니스 기본요소가 선하다) 자체가 옳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따라서 설명하는 내용도 옳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게다가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문맥을 생각하지 않고 성경구절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자가 ‘부흥과개혁사‘, ‘CH북스‘, ‘CLC‘에서 책들을 안 냈다면 저자를 매우 안 좋게 생각했을 거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늬앙스로 쓰였다. 그리고 국가가 기업을 규제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기업이 항상 옳은 일만 하지 않고 있는데(개인적으로 요즘 같은 때는 국가도 하나의 기업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을 무작정 옹호할 수 없고, 물건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옳은 것 같지는 않아서(물건을 많이 생산하여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와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노력의 부분에서도 할 말이 많은데, 이 부분은 [공정하다는 착각]과 대치되고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돈의 흐름도 마찬가지고, 여러모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류없이 책을 쓰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마인드맵을 참고하면 좋겠다.

📊마인드맵 B코스 후기
오랜만에 공책 정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한 것과 비교해 보면서 결국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형식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마인드맵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나가고 싶었는데, 다양한 방식보다는 잘하는 것을 계속 활용하면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독서에 마인드맵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신청했는데, 약간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구조화되지 않은 글이나 소설도 해보고 싶고요.-인물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신앙감정론] 같은 벽돌책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절하신 1:1 설명으로 제가 만든 마인드맵에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기회와 귀한 장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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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 -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팩트 체크 시리즈 1
정요한 지음 / 세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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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정요한, 세움북스)

윤석전 목사님의 [견고한 확신]을 선주문하고 증정받은 책이다. 2박 3일 여행하면서 틈틈이 읽었다.

칼뱅이 제네바의 학살자라는 풍문조차 처음 들은 1인이 여기 있다. 우리 신랑은 도대체 이런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한데, 내가 그만큼 교리에도, 교회사에도 관심이 없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몰랐던 거겠다. 이제라도 공부해야겠다.

칼뱅에 대해 거짓 소문을 퍼트린 사람들이 있었다. 갈리페, 오당, 필립 샤프, 그리고 칼뱅에 대한 내용을 소설로 쓴 츠바이크까지. 이 사람들의 자료(책)만 가지고 칼뱅을 학살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이 사람들의 글은 2차, 3차 사료이며(심지어 츠바이크의 글은 사료 가치가 없는 소설이다.), 그 자료들로 칼뱅을 판단하느니 칼뱅 시대의 1차 사료들을 확인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자는 거다.

칼뱅은 제네바의 난민(심지어 한 번 쫓겨남)이었으며, 제네바 교회는 칼뱅에게 조언은 들었을지언정 칼뱅이 판결할 수 있는 권력은 주지 않았다. 칼뱅이 제네바에 있을 때 제네바 교회는 칼뱅의 반대파들이 득세했고, 그마저도 제일 강력한 권징은 수찬 정지였다.-오늘날 교회에도 제일 강력한 권징이 수찬 정지와 출교라고 한다. 안 지켜져서 그렇지. 심지어 출교는 시의회의 권한이었고, 그 권한을 제네바 교회에서 가져오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칼뱅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칼뱅이 제네바의 학살자라는 오명을 가지게 된 건 세르베투스가 화형당한 게 한몫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마저도 칼뱅의 권한으로 된 건 아니었다. 화형 과정에서 시 의회의 칼뱅 반대파 의원들이 사퇴를 하다보니 칼뱅의 영향력이 큰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가짜뉴스가 (기독교 내에도) 너무 많다.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분별할 지혜가 없으면, 원서를 직접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하는 게 옳은 것 같고, 그럴 능력이 없으면 말을 아끼거나 출처를 분명히 해야 할 듯하다.

개인적으로, ‘함께 읽을 만한 책들‘에 소개된 [칼뱅과 공동선]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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