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 : 자꾸 미루는 버릇을 이기는 7단계 훈련법
스티브 스콧 지음, 신예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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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스티브 스콧/신예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요즘 계속 내가 게으르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도 게을렀다. 책 제목과 연관지어 말하자면 나는 이미 게으름이 습관으로 자리잡은 사람이다. 글로 보기에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행합일이 안 되는 사람이다. 요즘 아는 것과 선택하는 것(행동하는 것)이 다른 것에 대해 새삼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나는 자기계발서 사는 것을 싫어한다. 동화나 소설류를 사는 것보다 더 돈 아깝다고 생각하는 게 자기계발서를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행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서 시작에 대한 책을 볼까 했는데 근본 원인은 아무래도 게으름 같았다. 그래서 결국은 게으름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는 교과서적인 말만 쭉 써놓은 데 비해 이 책은 방법적인 면을 적어놓았다는 점에 끌렸다. 교과서적인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겉만 번지르르한 말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권하는 제일 처음 할 일은 내가 일을 미루는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다. 제일 처음 챕터에 일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다 내 얘기 같았다. 완벽주의자라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아서,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주의를 빼앗는 것들이 많아서, 시간이 늘 부족해서, 진실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즉각적인 보상을 얻으려고 해서, 일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라는 이유인데, 내가 하나라도 안 썼던 이유들이 없다. 특히 요즘은 즉각적인 보상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꽤 커져서(요즘 유행하는 욜로도 즉각적인 보상의 한 유형인 것 같다.) 미래의 보상은 생각하지 않으려는, 마주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가 미래가 의미 없으니 현재의 자기 감정에 충실하라는 말은 아닐 텐데 요즘은 감정과 이성의 싸움에서 감정이 늘 승리하는 모양새다. ‘당장 편한 것부터 찾고 힘든 일을 미루려는 태도는, 달리 말해 감정적인 뇌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44쪽)
게으름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았으면, 그 다음은 할 일들을 다 펼쳐 놓는다. 스물다섯 가지 정도. 그리고 그 중에서 다섯 가지만 고른다. 나머지는 빈 시간에 끼워넣나? 놉. 스무 가지 일들은 하지 않는다. 이걸 이 책에서는 25-5 법칙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섯 가지를 고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핵심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이 책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에게 진정 중요한 가치관이 신앙이라면 신앙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실제 모습은 내 생각과는 다름을 볼 때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게으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3개월마다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목표는 3개월마다 세우되, 점검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 목표를 3개월마다 세우면서 평가도 같이 한다. 그러면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은 일들은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지혜롭게 거절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매번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둘 다 상생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주간계획표를 세우는 단계이다. 주간계획표를 세울 때에는 덩어리 시간으로 넣는다. 그리고 게으름이 파고들 틈을 메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천 의지일 텐데, 내가 요즘 의지가 많이 부족하다. 의지의 부족은 인간의 죄성일까(의지가 강한 것도 인간의 죄성과 상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금만 안 되면 안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어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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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공주처럼 사계절 저학년문고 67
이금이 지음, 고정순 그림 / 사계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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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공주처럼](이금이 글/고정순 그림, 사계절)

이번 달 독서모임 때 책놀이를 위해서 읽은 책이다. 두 번째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와 다르게 읽혔다. 처음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두 번째 읽을 때 보였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책놀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꼼꼼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이야기 흐름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금세 관뒀다.
˝...그런데 왜 평생 쓸 자기 이름을 다른 사람이 짓는 건지 모르겠어....˝(32쪽)라는 자두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아기가 자기의 이름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인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느낌이 매우 이상할 것 같다. 그동안 길러왔던 내 아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이야기의 분위기상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37쪽에 자두가 앵두를 데리고 할머니에게 가서 망나니 공주 이야기를 들으려는 장면이었다. 자두가 할머니한테 공주님 대신 앵두라고 호칭을 했음에도 할머니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간 게 이상했다. 존댓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앵두도,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이상했다.
43쪽에 털보 왕이 찔레 가시들 탓, 찔레 덤불 탓, 찔레 덤불 주인(작은 왕국) 탓을 하는 것을 보며 무조건 남 탓만 하는 사회를 생각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난의 화살을 그 책임자에게 돌린다. 나에게는 그 책임이 없다고 여기며.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잘해내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사회는 공정하지 않아서, 내가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잘하는 분야도 아닌 일을 세세하게 살피는 일은 힘들 것이다. 물론 그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남 탓이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홀쭉이 왕은 계속 울기만 하며 국정도 돌보지 않고 딸도 돌보지 않다가 딸이 결혼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웃는다. 홀쭉이 왕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내게는 내 감정보다 옳고 그름, 책임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잘 살피지 않아 슬픔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혹은, 내가 홀쭉이 왕만큼 큰 슬픔을 당한 적이 없기에 홀쭉이 왕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1위가 사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왜 홀쭉이 왕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왕이기 때문이겠지.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책놀이를 했는데, ‘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라고 하셨다. 이 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다움‘이 주제라고 생각했다. 나다움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인생‘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선생님이 이야기한 표현 중에서는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삽화에서 앵두는 흰바람을, 자두는 검은새를 타고 달린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자유를 누리는 것, 참 멋진 것 같다.
40이 다 되어가는 지금, 뭔가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조한 마음이 많다. 뭔가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와서 그 말이 내 생각인 양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진짜 나다움은 뭘까? 주관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는 것이 주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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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 - 재미있으면 절로 읽는다 행복한 독서교육 6
권일한 지음 / 행복한아침독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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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권일한, 행복한아침독서)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이다. 이 책은 권일한 선생님 책 중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이다(권일한 선생님 책 중 안 읽은 책이 아직 세 권 있다. ). 제일 최근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곧 독서모임이 있기 때문에 독서모임 전에 서평을 끝내기 위해서 정리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글로 쓰려고 하니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책 읽는 것만큼이나 글 쓰는 것에도 곱씹는 시간이 필요한데 체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생각난 말은, 몇 년 전 근무했던 학교 도서관에 큰 글씨로 찍혀 있던 문구였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정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말도 생각이 났다. ‘내가 책을 읽고, 책이 나를 읽는다.‘ 이 책에서 나오는 책놀이가 ‘책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책이 나를 읽는 경험‘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책을 열고 깜짝 놀랐다. 여백의 미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ㅋㅋㅋㅋㅋㅋㅋ). 지금껏 읽었던 선생님의 책 쪽수와 비슷한 것 같은데, 여백의 미가 없다는 말은 활자가 그만큼 많다는 말! 적은 쪽수로 책값의 부담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시려는 것이었을까? 이 책이 나올 무렵 페이스북에서 이것과 관련한 글을 읽은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난다.
‘들어가며‘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글의 맨 마지막 문장, ‘아이가 책을 읽게 하려면 책으로 추억을 선물하라‘에서는 생떽쥐베리의 말이 생각났다.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이 책을 읽는 동안 ‘책으로 추억을 선물하라‘는 글은 잊은 채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책으로 함께 만드는 추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앞부분을 펼쳐 이 글을 보니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 기억과 추억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글쓰기의 목적이 기억이라고 했는데,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쓴 글을 읽으며 기억을 추억한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제안하신 책놀이는 흥미 위주로 시작한다. 책 읽는 아이, 안 읽는 아이 모두가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들이 많았다. 책을 쌓아 길이를 재거나, 책의 무게를 어림하게 하는 놀이가 흥미로웠다. 나는 공간만 허락한다면 책을 길게 펼쳐 놓아 길이를 재는 것으로 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놀이가 깊어지려면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우선이다. 같이 책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책과 친해지는 활동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내가 던진 발제문은 ‘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면?‘이었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은 ‘같이의 가치‘로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서모임 당일, 운영자님께서 발제문을 주셨다. ‘나를 나타내는 책‘. 뭘 골라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제일 처음 떠오른 책이 레이놀즈의 ‘점‘, 그리고 ‘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 ‘창가의 토토‘였다. 베티가, 토토가, 밉스가 나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베티의 미술 선생님, 토토의 교장선생님, 밉스를 좋아하는 윌을 염두에 두었나? 왜 이 책일까? 계속 고민했다. 이 책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베티나 밉스, 토토가 나를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베티와 밉스, 토토가 들었던 말이 마음에 와닿아서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티에게 미술 선생님이 했던 말,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밉스에게 윌이 했던 말, ˝말해 줘, 밉스. 너희 버몬트 식구는 왜 그렇게 특별한지.˝(96쪽), 토토에게 교장선생님이 했던 말, ˝제자리에 두거라.˝(책이 친정에 있어서 정확하게 몇 쪽인지 잘 모르겠다.)
이 말의 공통점은 베티, 밉스, 토토가 엉뚱한(?) 행동을 해도 전혀 비난하지 않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따뜻한 말이 필요한가? 나에게 늘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 신랑이다.ㅋㅋㅋㅋㅋㅋ 그렇다면 내가 이 책들을 고른 이유는? ‘엉뚱한 따뜻함‘. 난 그 매력을 가지고 싶다. 독서모임 때는 이렇게 정리된 생각으로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중에서 가장 닮은 캐릭터를 꼽으라면 베티를 꼽겠다. 아직 전시를 열 만큼 점을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 저기 점을 찍어보고 있는 것 같다.
독서모임에서는 책의 내용을 나누기보다 책에 나온 책놀이를 직접 해보았다. 나를 나타내는 책을 소개하고, [망나니 공주처럼]을 가지고 책놀이를 했다. 핑퐁게임(등장인물, 왕자가 한 일), 내가 제시했던 발제문(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면?), 지워내기 빙고, 초성게임(책에 나오는 문장), 우리끼리 독서퀴즈를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른인 나도 재미있었는데 아이들은 더 재미있어 할 것 같다. 꼭 해보면 좋겠다(핑퐁게임은 얼마나 쪼잔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도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9월에 과학 단원평가 때 시험으로 평가하지 말고 책놀이처럼(과학책을 읽고 하는 놀이) 해볼까 싶기도 하다. 비문학도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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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 - 2009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생각하는 책이 좋아 6
인그리드 로 지음, 김옥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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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인그리드 로/김옥수 옮김, 주니어랜덤)

권일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산 책이다. 몇 달 전부터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소설과 동화류는 왠지 사는 게 아깝게 여겨져서 잘 사는 편이 아니지만 권일한 선생님의 픽을 믿고 사게 되었다. 최근에 사려고 보니 본품은 품절이라서 중고로 구매했다.
2주 전에 읽은 책이다. 1학기말(9월까지 1학기이지만) 평가를 해야 해서 평어를 적어야 하지만 너무 하기 싫은 마음에 집어들었다가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저자 이름부터 매우 낯설다. 검색을 해봐야겠다. 책날개에는 매우 따뜻한 감성을 소유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 저자가 쓴 다른 책은 어떤지도 궁금해진다. 밉스의 초능력 때문인지 [마틸다]가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밉스는 다섯 명의 남매 중(끝에는 여섯 명이 될 것은 예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셋째이다. 위에 오빠 둘, 밑에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이 있다. 밉스의 가족은 아빠를 제외하고 모두들 초능력이 하나씩 있다. 밉스의 동생들에게는 아직 초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열세 살 생일 때 초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밉스 오빠들이 초능력을 잘 다루기까지(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기다리기 위해서 이사도 다녔고, 학교에 가는 대신 홈스쿨링을 해야 했다.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초능력을 가져서 얼마나 불편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은가?‘ 나는 초능력을 가지고 싶지 않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것처럼 너무 너무 불편할 것 같다. 초능력을 가져서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것도 있다. 잘하는 것보다 평범한 게 더 좋은 것 같다.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넘치는 것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기쁘고 슬프다고 느끼는 것도 주관적인 것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서도 기쁜 일을, 또는 슬픈 일을 발견할 수는 있겠다. 누군가에게는 기쁜 일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이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너무 슬프고 힘든 일을 겪고 보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평범한 날이 반복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만 그치는 나를 보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행복을 따르는 것이 넓은 길로 가는 것일 텐데, 나에게 진정한 행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밉스와 같은 초능력을 가진다면 어떨까?‘ 전혀 밉스와 같은 초능력을 가지고 싶지 않다. 내 마음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살핀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치는 느낌이다. 내가 상담을 공부했던 건, 나를 알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힘들다고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마치 집안일이 힘들어서 하지 않는 것과 같고, 공부가 하기 힘들어서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초능력을 가지지 않은 일반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르다‘고 평가받는다. 너와 나는 소속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사회에는 다르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많다. 장애인이 그렇고, 다문화가정이 그렇다. 조금 더 세밀하게는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 인서울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소위 지잡대를 나온 사람들,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다르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나는 남들이 겪지 않은 고통을 겪었어.‘ PK로서 받는 혜택은 혜택대로 받고, PK라서 받는 슬픔과 어려움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외로워했다. PK 모임에 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는 어려움을 겪어.‘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도 나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목사님 딸로 살아가는 게 힘들어?˝
바비가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니?˝
˝사람들은 언니가 늘 완벽하길 기대하지만, 언니는 다른 사람처럼 편하게 살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 보면 끔찍하게 외로울 때가 종종 있을 것 같아.˝(180쪽)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른 사람과 같다는 시각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크게 보면, 밉스, 우리 버몬트 가족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거든. 다른 사람처럼 태어나 살다가 죽는 거야. 그러는 사이에 우리도 다른 사람하고 똑같은 행복과 슬픔을 겪고 사랑을 하고 두려움에 시달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병이 들어.˝(80쪽)

한편, 초능력을 꽁꽁 숨기려는 밉스에게 밉스를 좋아하는 윌이 이렇게 말한다. ˝말해 줘, 밉스. 너희 버몬트 식구는 왜 그렇게 ( ).˝(96쪽) 윌은 밉스에게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다르다고 주목해서 보지도 않았다. 밉스를 좋아하는 그 마음 자체로 밉스를 보았다. 윌의 이 말이 나를 울렸다.

어쩌면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머릿속에는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가 늘 뒤죽박죽 엉켜 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도 엄마 아빠 목소리가 툭하면 튀어나와 옳고 그름을 알려 주지 않던가! 애쉴리 빙과 엠마 플린트가 곁에 없는데도 걔들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며 나를 괴롭히지 않던가, 그래서 내가 풀이 죽지 않던가! 나는 가슴에서 일어나는 나 자신의 큰 목소리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구분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189쪽)

나는 여전히 내 목소리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목소리는 뭘까? 내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 나를 확신할 수 없어서 여전히 여기 저기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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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영광
죤 오웬 지음, 서문강 옮김 / 지평서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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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리스도의 영광](존 오웬/서문강 옮김, 지평서원)

개혁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읽은 책이다. 다 읽은지는 몇 주 되었는데, 이 일 저 일 하다 보니 이제야 서평을 남기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읽은 존 오웬의 책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보다 훨씬 어렵게 다가왔다. 그것은 아마 이 책에서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영적이지 못하거나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서 우리의 생각과 정서가 늘 다른 것들을 즐거워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복음의 위대한 비밀을 생각하는 데 기울이지 않거나 기울일 능력이 없는 주된 이유다.‘(86쪽)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생각했나? 얼마나 자주 묵상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대학생 때 이후로 영적 침체에 자주 빠졌던 까닭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일까.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단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려는 것도 선한 행동으로는 (열매로 안다고 하지만) 구분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행동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수반하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거나 그 영광을 직관적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85쪽)

교회에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으로서는 참 아쉽다. 단순히 선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으로 복음의 열매를 나타낸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정답은 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지 않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맘몬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나님과 맘몬은 동시에 섬길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면서 맘몬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맘몬을 따르는 것은 내가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기에 [유사 그리스도인]에서 유사 그리스도인에 해당하는 항목이 많은 것처럼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맘몬을 따르며 내세에서는 구원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도를 한다. 우리의 ‘구원받음‘이 주목적인 전도를 한다. 그게 너무 싫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혀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태도는 자신을 속이는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53쪽)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탁월하게 나타내신다.‘(82쪽)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말하면서 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우리의 ‘구원받음‘에만 초점을 두고 예수님이 하신 일(직무)과 그의 인격(인성과 신성)에 대한 묵상은 뒷전이다([밥심으로 사는 나라]에서 ‘복음은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메시지입니다.‘라고 했다.). 설교 본문은 성경이지만, 성경을 풀어서 말씀하시는 것보다 세상에서, 교회에서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내용이 훨씬 많다. 사실은 그래서 기대가 안 되고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일들과 거룩한 도덕적 의무들을 이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리스도도 알지 못하고 복음도 모르며, 교회가 가진 보편적인 믿음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들이 그 뿌리에서 나온다.(89쪽)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는 연말 시상으로 성경 다독상을 주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라고 권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유일한 거울을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에게서 성경을 빼앗아 가거나 날마다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지 못하도록 낙담시키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성경을 지키도록 부단히 애써야 한다.‘(114쪽)
그리고 이 책에서는 영적 침체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서술하고 있다. 그 영적 침체라는 것이 ‘때때로 우리가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찾는데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거나 그분의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117쪽)는 것이라면 말이다. 부지런히 찾는데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부지런히 찾지 않아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적고 보니 참 부끄럽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도리는 기도와 묵상과 애통과 성경 읽기와 말씀 듣기, 그리고 하나님께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간에 예배 드릴 때에 주어지는 모든 규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사모하는 심정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예전처럼 자신에게로 돌아와 계신 것을 발견하기까지 그 일을 해야 한다.‘(118~119쪽) 부지런히 찾음에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을 이 책에서는 믿음의 속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단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보지는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기‘ 때문이다.‘(254쪽)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요인이 있다. 하나는, 믿음 자체의 성질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비교할 때 믿음으로 보는 것은 이 탁월한 영광을 직접 바라보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믿음의 눈앞에 제시되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 실체 자체가 아니라 희미한 거울에 비쳐서 나타나는 것 같은 형상일 뿐이기 때문이다.‘(273쪽)

정말 그리스도의 영광을 갈구하고 있는가? ‘나‘의 구원받음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 일의 수많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위로‘와 관련된 찬양을 원하는 것은 얕디 얕은 신앙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일은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 힘든 일은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위로‘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로 둔갑시켜 찬양을 부르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일까? 힘든 일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들어가도록 북돋는 것이 교회의 역할 아닐까? 신앙의 선배들이 당한 힘든 일은 우리가 겪는 세상 일의 고단함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일 것이다. 세상 일의 고단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단함은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동일하게 임하는 것이기에 믿는 자라면 믿음의 행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직 그 영광이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쉽고도 즐겁게 여기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심지어 죽음 자체까지도 말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광을 누리도록 인도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41쪽)

이 책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해야 하는지 매우 세세하고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성경의 주제가 우리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개혁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정독을 권한다. 존 오웬의 기도문으로 서평을 마친다.

˝내 영혼이 주의 영광을 바르게 이해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저로 하여금 그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게 하옵시고, 그 영광의 아름다움과 충만함 속에 영원히 거하기 위하여 지금 이 세상에 살 때에도 그 영광으로 감격하게 하옵소서.˝(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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