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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공주처럼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67
이금이 지음, 고정순 그림 / 사계절 / 2019년 3월
평점 :
[망나니 공주처럼](이금이 글/고정순 그림, 사계절)
이번 달 독서모임 때 책놀이를 위해서 읽은 책이다. 두 번째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와 다르게 읽혔다. 처음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두 번째 읽을 때 보였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책놀이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꼼꼼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이야기 흐름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금세 관뒀다.
˝...그런데 왜 평생 쓸 자기 이름을 다른 사람이 짓는 건지 모르겠어....˝(32쪽)라는 자두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만약 우리 아기가 자기의 이름 뜻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인이 되어서 이름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느낌이 매우 이상할 것 같다. 그동안 길러왔던 내 아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이야기의 분위기상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37쪽에 자두가 앵두를 데리고 할머니에게 가서 망나니 공주 이야기를 들으려는 장면이었다. 자두가 할머니한테 공주님 대신 앵두라고 호칭을 했음에도 할머니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간 게 이상했다. 존댓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앵두도,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이상했다.
43쪽에 털보 왕이 찔레 가시들 탓, 찔레 덤불 탓, 찔레 덤불 주인(작은 왕국) 탓을 하는 것을 보며 무조건 남 탓만 하는 사회를 생각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난의 화살을 그 책임자에게 돌린다. 나에게는 그 책임이 없다고 여기며.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잘해내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사회는 공정하지 않아서, 내가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잘하는 분야도 아닌 일을 세세하게 살피는 일은 힘들 것이다. 물론 그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남 탓이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홀쭉이 왕은 계속 울기만 하며 국정도 돌보지 않고 딸도 돌보지 않다가 딸이 결혼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웃는다. 홀쭉이 왕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내게는 내 감정보다 옳고 그름, 책임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잘 살피지 않아 슬픔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혹은, 내가 홀쭉이 왕만큼 큰 슬픔을 당한 적이 없기에 홀쭉이 왕을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1위가 사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왜 홀쭉이 왕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왕이기 때문이겠지.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책놀이를 했는데, ‘이 책을 책에 나오지 않는 말로 표현‘하라고 하셨다. 이 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다움‘이 주제라고 생각했다. 나다움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인생‘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선생님이 이야기한 표현 중에서는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삽화에서 앵두는 흰바람을, 자두는 검은새를 타고 달린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자유를 누리는 것, 참 멋진 것 같다.
40이 다 되어가는 지금, 뭔가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조한 마음이 많다. 뭔가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와서 그 말이 내 생각인 양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진짜 나다움은 뭘까? 주관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는 것이 주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