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
죤 오웬 지음, 서문강 옮김 / 지평서원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그리스도의 영광](존 오웬/서문강 옮김, 지평서원)

개혁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읽은 책이다. 다 읽은지는 몇 주 되었는데, 이 일 저 일 하다 보니 이제야 서평을 남기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읽은 존 오웬의 책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보다 훨씬 어렵게 다가왔다. 그것은 아마 이 책에서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영적이지 못하거나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서 우리의 생각과 정서가 늘 다른 것들을 즐거워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복음의 위대한 비밀을 생각하는 데 기울이지 않거나 기울일 능력이 없는 주된 이유다.‘(86쪽)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생각했나? 얼마나 자주 묵상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대학생 때 이후로 영적 침체에 자주 빠졌던 까닭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일까.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단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려는 것도 선한 행동으로는 (열매로 안다고 하지만) 구분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행동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수반하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거나 그 영광을 직관적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85쪽)

교회에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으로서는 참 아쉽다. 단순히 선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으로 복음의 열매를 나타낸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정답은 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지 않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맘몬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나님과 맘몬은 동시에 섬길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면서 맘몬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맘몬을 따르는 것은 내가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기에 [유사 그리스도인]에서 유사 그리스도인에 해당하는 항목이 많은 것처럼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맘몬을 따르며 내세에서는 구원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도를 한다. 우리의 ‘구원받음‘이 주목적인 전도를 한다. 그게 너무 싫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혀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태도는 자신을 속이는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53쪽)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탁월하게 나타내신다.‘(82쪽)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말하면서 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걸까. 우리의 ‘구원받음‘에만 초점을 두고 예수님이 하신 일(직무)과 그의 인격(인성과 신성)에 대한 묵상은 뒷전이다([밥심으로 사는 나라]에서 ‘복음은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메시지입니다.‘라고 했다.). 설교 본문은 성경이지만, 성경을 풀어서 말씀하시는 것보다 세상에서, 교회에서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내용이 훨씬 많다. 사실은 그래서 기대가 안 되고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일들과 거룩한 도덕적 의무들을 이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리스도도 알지 못하고 복음도 모르며, 교회가 가진 보편적인 믿음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들이 그 뿌리에서 나온다.(89쪽)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는 연말 시상으로 성경 다독상을 주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라고 권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유일한 거울을 잃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에게서 성경을 빼앗아 가거나 날마다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지 못하도록 낙담시키는 모든 것에 대항하여 성경을 지키도록 부단히 애써야 한다.‘(114쪽)
그리고 이 책에서는 영적 침체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서술하고 있다. 그 영적 침체라는 것이 ‘때때로 우리가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찾는데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거나 그분의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117쪽)는 것이라면 말이다. 부지런히 찾는데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부지런히 찾지 않아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적고 보니 참 부끄럽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도리는 기도와 묵상과 애통과 성경 읽기와 말씀 듣기, 그리고 하나님께 개인적으로든 공적으로든 간에 예배 드릴 때에 주어지는 모든 규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사모하는 심정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예전처럼 자신에게로 돌아와 계신 것을 발견하기까지 그 일을 해야 한다.‘(118~119쪽) 부지런히 찾음에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을 이 책에서는 믿음의 속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단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보지는 못한다. 우리가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기‘ 때문이다.‘(254쪽)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요인이 있다. 하나는, 믿음 자체의 성질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비교할 때 믿음으로 보는 것은 이 탁월한 영광을 직접 바라보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믿음의 눈앞에 제시되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 실체 자체가 아니라 희미한 거울에 비쳐서 나타나는 것 같은 형상일 뿐이기 때문이다.‘(273쪽)

정말 그리스도의 영광을 갈구하고 있는가? ‘나‘의 구원받음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 일의 수많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위로‘와 관련된 찬양을 원하는 것은 얕디 얕은 신앙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일은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 힘든 일은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위로‘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로 둔갑시켜 찬양을 부르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일까? 힘든 일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들어가도록 북돋는 것이 교회의 역할 아닐까? 신앙의 선배들이 당한 힘든 일은 우리가 겪는 세상 일의 고단함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일 것이다. 세상 일의 고단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단함은 믿는 자에게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동일하게 임하는 것이기에 믿는 자라면 믿음의 행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직 그 영광이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쉽고도 즐겁게 여기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심지어 죽음 자체까지도 말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광을 누리도록 인도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41쪽)

이 책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해야 하는지 매우 세세하고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성경의 주제가 우리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개혁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정독을 권한다. 존 오웬의 기도문으로 서평을 마친다.

˝내 영혼이 주의 영광을 바르게 이해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저로 하여금 그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게 하옵시고, 그 영광의 아름다움과 충만함 속에 영원히 거하기 위하여 지금 이 세상에 살 때에도 그 영광으로 감격하게 하옵소서.˝(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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