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가 자유는 아니야 - 정치 똑똑똑 사회 그림책 25
박현희 글, 박정섭 그림 / 웅진주니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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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가 자유는 아니야](박현희,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1월 도서1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해주는 그림책이다.-완전한 그림책은 아니고 만화 형식이 섞여 있다. 중학년이 봐도 이해할 수준이다. 남매와의 다툼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 민주적이라는, 공평한 방법은 집안일을 나누어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나이가 적고 많음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것도 알려준다.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공평한 거야.

마찬가지로,

🏷공평하다는 것은 똑같은 걸 사 주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사 주는 거야.

그럼, 코로나19 때 각 사람에게 똑같이 배분된 돈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어떤 것이 공평한 것이고, 어떤 것이 공평하지 않은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복수가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복수하려고 소송거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복수하는 건 내 마음이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는 아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권리), 할 일은 해야 한다(의무).

토론이나 다수결 등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여러 가지 방법도 설명한다. 가정에서부터 민주적이지 않으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민주적이기는 어려울 거다. 가정에서의 다른 의견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조율하는지 보여준다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해와 배려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각 사람의 도덕성의 합이 공동체의 도덕성의 합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오히려 모자랄 때가 많은 것 같다.). 이해와 배려 속에서 시민이 주인이라는 의견을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거라는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현대 사회에 요구하는 건 가능한 일일까. 솔직히 악함을 향해 치닫는 인간성을 보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민주주의를 보완할 다른 이념이 있을 수도 있을까.

🔎2024년 하반기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멤버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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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
김혜령 지음 / IVP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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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IVP)
-부제: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
-IVP 독서단 19기 도서

이 책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다. 여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는 퇴임한 목사님이시고, 딸도 목사님이다. 목사님도 알츠하이머를 앓을 있구나. 당연히 그럴 수 있는데 왜 충격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하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의 잔재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던 걸까(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못 해석하고 있으니까.).
책의 첫 페이지부터(추천사 제외) 마음이 먹먹해졌다.

🏷자기 자신조차 잊어 가는 중에도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신발장에 정리하시는 아버지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책을 바칩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 아니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실 때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서 내 곁에, 우리 가족 곁에, 우리 교회와 사회 속에 거한다. 그러니 아직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병환이 몰고 온 슬픔과 좌절의 짙은 그늘에서도 삶의 유쾌함을 잊지 말고 끝까지 노래해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지루하지만 여전히 생명 가득한 마지막 시간을 동행하며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삶을 해석해 낼 수 있느냐‘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돌봄의 방식과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15쪽)

16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노년에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다. 엄마가 집에 외할머니를 잠시 모셔 오신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실 때면 나나 동생이 외할머니를 돌봐야 했다. 그때는 외할머니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알츠하이머가 어떤 병인지 이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셨는데, 그 말에 매번 반응하는 게 참 힘들었다. 외출하시려고 할 때면 못 나가시게 했다. 횡단보도 없는 시골길에, 덤프트럭이 수시로 다니는 길이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엄마한테는 엄마지만, 나한테는 명절마다 보는 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람이면 더 잘 대해야 하지 않나. 그때 내가 이 책을 알았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상담을 공부하기 전이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보다 더 잘 몰랐던 때니까. 🏷내가 그렇듯 아버지도 일상을 아주 부지런하고도 열심히 살아 내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가 어제처럼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던 것일지 모르겠다.(115쪽) 외할머니를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막연히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 책은 에피소드마다 글쓴이의 경험과 그에 맞는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문학의 인용, 그리고 신학적 해석으로 글의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사회 구조적 결함까지 폭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자신만의, 가족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자신의 문제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때가 많은데, 힘든 상황에서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게다가 자신의 상황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았다. 🏷솔직히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이 엄청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를 속이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부활의 상상을 통해 적어도 담담하고 평안하게 이 길을 가고 있다. 비록 자주 넘어지지만.(157쪽)

글쓴이는 페미니스트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균형 잡힌 시선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사회 문제의 모든 부분을 페미니스트의 시선에서 딱 떨어지게 해석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선택한 합가라는 돌봄의 삶도 온전히 페미니스트로서 권리를 누리기 위해 기꺼이 책임을 감당하는 주체적 자유를 실행한 것이라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부계 중심의 가족 부양 시스템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사회 보호망 구축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돌봄과 부양을 독박 쓰는 ‘슈퍼우먼‘ 딸들이 우리 주변에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94쪽)

에피소드에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의 행동을 대하는 자세뿐 아니라, 주간 보호 센터에서의 일도 다룬다. 요양 보호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서술하는 부분에서, 교사의 역할과 월급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교사들이 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마음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월급만큼만 일하겠다고 말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학부모들 중에 교사들이 전하는 마음을 돈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진심 어린 마음은 결국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131쪽) 사람들은 진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맞을까?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반 정도를 살았다. 부모님은 노년에 가까워지시고, 부모님의 노년과 나의 노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에릭슨의 인간의 심리 사회적 발달 단계에서 8단계 이후에는 과업이 없을 줄 알았더니, 9단계까지 저술했는지 몰랐다. 검색해봐도 대부분 8단계에서 멈추고 있는데.

🏷그러나 조앤 에릭슨의 지혜로 노년기의 ‘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인간의 삶은 접촉하는 존재의 능동성에 머물지 않고 접촉당하는 존재의 수동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184쪽)

🏷병상의 노인이 의식이 미미하여 ‘접촉됨‘의 허용 의사를 아무리 직접 밝힐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격적 접촉에는 근본적으로 그의 의사를 존중하여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윤리적인 질문이면서, 사회적인 질문이자, 정치적인 질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노년에 어떻게 접촉당하며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접촉의 능동성에서 접촉의 수동성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만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187쪽)

‘접촉의 수동성‘이라니 새로운 해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년을 겪게 되고 노년에는 다른 사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해석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신학적으로 고통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해석이 개교회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

🏷채은아, 혹시 나중에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거든, 이렇게 생각해 주라. 엄마는 잘못한 것이 분명히 적지 않을 테지만 하나님은 그 잘못 때문에 벌을 주신 게 아니야. 나중에 더 큰 복을 내리려고 하나님이 엄마를 연단하시는 것도 아니란다. 너도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는 게 아니야.나는 하나님이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 네 할아버지에게 치매라는 고통을 주면서까지 나를 연단하신다거나 시험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아. 할아버지도 하나님에게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일 테니.(211쪽)

🔎IVP 독서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ivp #ivp독서단 #죽을때까지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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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 - 발견하고 창조하는 소설 읽기 더행의 독서의 궁극 시리즈 2
조현행 지음 / 생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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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조현행, 생애)
-부제: 발견하고 창조하는 소설 읽기
-모도 서평단 도서

나는 원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에 몰입했다. 지금처럼 닥치는 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책 빌려 읽기를 좋아했다. 20년 전까지는 틈날 때마다 소설이나 동화를 읽었는데, 직장인이 된 이후로 이야기 책을 멀리했다. 아주 가끔, 이야기책에 몰입해서 밤 늦도록 읽을 때도 있었지만, 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이야기 책을 읽는 것이 시간 때우기처럼 여겨졌다. 이야기 책을 읽으면 나에게 뭐가 남지, 라는 자본주의적 사고가 이야기 책을 읽는 것에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이야기 책은 잘 사지도 않았다. 그 당시 내 책장에는 (그때도 책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음악, 상담, 교육, 신앙 관련 분야 외에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한 번 읽고 잘 읽지 않을 거라면 사지 않는 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야기 책이 아닌 다른 분야라고 해서 여러 번 읽는 것 같지도 않지만.
아이를 낳고 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개인적인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육아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기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아냈다.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고질독(고전질문독서)을 만났다. 고전을 너무 안 읽었구나, 왜 고전인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스며들었다.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고질독에 참여한지 3년차에 접어들었다. 읽고 독서모임을 할 때마다, 내가 소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이라는 책의 서평단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 선정되었다.

📍차례
1장. 소설 읽기란 무엇인가
2장. 소설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
3장. 소설, 어떻게 읽는가
4장. 한국 현대 단편 소설 깊이 읽기

1장은 소설을 읽는 목표, 또는 이유와 연결된다. (고전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내게 공감능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MBTI의 T 성향이 강하고(신랑보다 내가 더 점수가 높은 것 같다.), 인지적 공감은 하더라도 정서적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정서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소설을 읽으면 정서적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처럼 소설을 시간 때우기용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1장의 내용이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2장을 읽어야 한다. 사실 2장은 1장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1장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으면 이런 점이 좋겠구나, 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1장과 2장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1장과 2장을 종합해 보면, 소설로 얻을 수 있는 것의 궁극은 ‘인간 이해‘이다. 요즘처럼 자기 이해에 관심이 많고, 자기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도 없는 것 같은데, 자신을 이해하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처럼 주어지는 자기 이해 말고, 소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인간 이해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얼마나 책을 안 읽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안 읽는 사람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을(소설조차) 안 읽으니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각종 갈등을 법적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쇼츠나 릴스로 답을 빨리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기나긴 서사는 견디기 힘든 일일 터다. 그나마 답을 떠먹여주는 소설이 인기 있는 것은, 쇼츠와 릴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수순인가 싶다. 인간 이해가 없으니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 공허함을 느끼던 차에, 기승전결은 없어도 따듯함과 위로가 있는 소설이라면 손이 가게 될 것 같기도 하고.

3장에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인지-추론-해석의 3단계가 핵심일 텐데, 나는 추론 단계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질독에 참여하면서 매일 질문을 만들고 답을 쓰다보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소설 이해에 어느 정도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소설을 읽을 때는 이야기에 몰입하며 읽어서, 천천히 읽지 않고 책장을 넘기기 바빠 질문을 던질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래서 추론과 해석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니까, 질문을 던지며 읽지 않으니까. 소설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은 그래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 대한민국 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대부분의 학생이 거쳐온, 정답만 찾는 방법으로는 글 전체를 이해할 힘이 생기지 않았다. 질문 만들기가 어려운 건, 안 만들어봤기 때문이구나. 이제야 질문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좋은 질문을 만들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은 거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4장에는 한국 단편소설 20편의 해석이 실려 있다. 불행히도 20편 중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더라. 단편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현대 소설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내가 읽었던 소설 내용이었다면 이 부분이 더 와닿았을 것 같았다.

소설 이해에 있어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소설을 이해하는 방법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서평은 모도(@knittin79books) 서평단 자격으로 생애출판사(@saeng_ae_book)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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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훔친 소년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7
이꽃님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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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훔친 소년](이꽃님, 주니어김영사)

이꽃님 작가님 쓰신 책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다 읽었다. 이 책도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배경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나는 겁쟁이다. 어려운 일을 보면 도망가기 급급하다. 그게 먹고 사는 일과 연관 있다면 더욱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함께 합리화했을 것이다. 나는 주인공 용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갔다.

🏷이름은 내게 먹을 것을 주지도,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도, 따뜻한 말 한마디도, 위로도, 손짓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부추기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점점 더 말라 갔다. 더 이상 자라지 못했다. 이름을 찾은 대가는 혹독했다.
그래서 나는 창씨개명에 몸을 떨던 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살아남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니까.(56쪽)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일도 못 구할 판이다. 이 상황에서, 독립이라는 가치를 위해 움직일 사람은 얼마나 될까. 먹고 사는 것도 우상으로 볼 수 있을까. 우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이해하신다고 하더라도, 믿음의 크기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겠다 싶다.
그런데 기영이 형은 다르게 말한다.

🏷시키는 대로 해서 나쁠 건 없다. 잘 되면 덕분이라 말하면 되고 못 되어도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 없으니 언제든 원망할 수 있다. 시키는 대로 사는 삶에는 ‘죄가 없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은 언제나 보장되어 있는 삶이다. 그것만큼 안전한 삶도 없다.
하지만 그걸 따르지 않았을 때 삶은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변해 버린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문제는 굶주린 배에 밥을 넣어 주지 않는다. 이름은 빼앗겨도 살지만 먹을 것을 빼앗기면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니.˝
형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거야.˝(101쪽)

이 글을 읽고 보니, 용이의 생각이 아이히만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씁, 이건 아닌데. 내가 용이처럼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는 대로 생각했던 걸까. 시키는 대로 하면, 이름도 뺏길 수밖에 없다. 교직 사회가 그렇지 않나. 특히 초등교사,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들. 뒷말은 생략한다.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뜻한다.

🏷˝무서운 건 길들여지는 게지. 가만히 있도록 길들여지고, 폭력에 길들여지고, 삶을 잃는 것에 길들여지는 거지.˝
(중략)
길들여진다는 것. 그것은 두려움을 빌미로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 역시 길들여졌던 것일까.
˝네가 네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그것을 빼앗을 수 있겠느냐.˝(156~157쪽)

하나씩 둘씩 야금야금 타협하고 합리화하면, 길들여지게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될까. 내가 20대와 다른 건, 결혼과 출산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겪었던 타협과 합리화로 세상에 길들여지게 된 건 아닐까. 사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뿌리까지 흔들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뿌리까지 뽑혀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하나. 다시 태어나면 이후는?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하나?

그러나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다. 환경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 나는 작가의 표현을 이렇게 해석했다.

🏷두려운 것은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이미 길들여진 세상이었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사람들의 한숨이 그랬던 것처럼 내 작은 한숨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잃든, 잃지 않든 세상은 언제나 내게서 빼앗기만 할 것이다. 이미 길들여진 세상이므로.(173쪽)

점차 악한 쪽으로 길들여지는 세상에서, 심지를 곧게 세우고 살면 부러지기 쉽다. 그러나 그 부러짐이 있어야 세상이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언제까지 흔들리고만 있어야 할까. 혹은, 어떤 것은 흔들려도 되고, 어떤 것은 흔들리면 안 되는 걸까.

🏷삶.
바로 이 한 글자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살아가고 있으되, 한 번도 내 것인 적이 없었던 이 한 글자가.
˝내 삶이란 게 대체 뭔데요?˝(175쪽)

용이는 삶이라는 글자에서 이름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성경에서 이름이 중요한 건, 이름이 삶을 나타내기 때문 아닐까. 나는 어떤 이름으로 살고 있을까,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그렇다. 누구나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짧든 길든 한 생을 살았으니 누군가는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기억한다. 이름은 저마다의 생이자, 그 사람의 전부를 표현하는 일이니까.(199쪽)

먹고 사는 데 급급해서 이름을 잊으면 삶도 잊어버리게 된다. 나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늘 기억하며 살고 있나. 그 이름이 내 삶이 되게 하고 있나.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이름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그날 어무이도, 아부지도 다 돌아가셨다. 그날 내가 안 죽고 살아남은 그 이유는 딱 하나 뿐인기라. 독립된 조선에 살아야 하니까.
경성에 와가 억수로 힘들었데이. 내사 밥 굶는 게 제일 서럽드라. 그래도 살아야지. 살라꼬 이를 악물고 살았데이. 그래야 안 잊을 거 아니가.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건 기라. 내가 살아 있는 이유를 잊지 않는 거. 잊아뿌면 그 순간에 죽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근데 내가 그걸 잊고 살았던 기라. 잊지 않으려고 살았는데, 사는 데 급급해서 다 잊았단 말인기라.˝(200쪽)

🏷그래, 나는 이름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잊는 순간 내 삶을 잃었던 것이다.
˝이름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거야.˝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형이 지키고자 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삶이었다는 것을.(213쪽)

📌내가 읽은 이꽃님 작가님 책
✔️죽이고 싶은 아이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악당이 사는 집
✔️귀신 고민 해결사
✔️죽이고 싶은 아이2
✔️이름을 훔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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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거북 킨더랜드 픽처북스
릴리아 지음 / 킨더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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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거북](릴리아, 킨더랜드)

[파랑 오리]가 엄마와 자녀의 이야기였다면, [초록 거북]은 아빠와 자녀의 이야기다. [파랑 오리]는 다른 종의 사랑(오리와 악어)을 다루는 것과 달리, [초록 거북]은 같은 종의 사랑을 다룬다.
공통점은, 둘 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거다. [파랑 오리]에서 아빠는 어디 있고, [초록 거북]에서 엄마는 어디 있을까?

아빠 거북은 소리에 예민하다. 아기 거북에게 들려주고 싶은 소리가 많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소리는? 글쎄. 아이에게 딱히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들려주고 싶은 소리가 없다면 그게 슬픈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읽어주는 성경 말씀, 엄마가 부르는 찬양,...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잘 부르지는 않지만, 기계음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더 들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기 거북은 아빠 거북에게 짜증을 냈다. 아빠 거북도 화가 났다. 아기 거북은 화해의 제스처로 방울토마토를 아빠 입에 넣는다. 부모는 넓은 가슴으로 아이를 품어야 하는데, 나도 아이에게 토라질 때가 가끔 있다. 역시나,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건 아이다. 아이의 마음이 훨씬 넓다. 이 마음도 사춘기가 되면 사라지려나.

🏷그날 이후로 아빠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어요.
˝아빠랑 친구 할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때로는 친구 관계일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닐 거다. 아빠 거북도 그런 의도였겠지. 하나님도 우리를 친구 삼아 주셨으니,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파랑 오리]에서처럼, 아기 거북도 성장하고,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바뀐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녀에게 노후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후대비를 한다고들 하는데, 이런 사회 문화 때문인지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에 생각이 많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건 부모의 재산을 탐내기 때문인 경우도 많고. 예전엔 당연시되었던 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적어지고, 결국 다친다.
🏷˝아빠, 많이 아파요?˝
˝하나도 안 아픈데...... 무서워.˝
˝점점 네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단 말이야.˝

무서운 이유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라니. 귀가 예민한 나도 소리가 안 들리는 게 싫긴 할 텐데, 아이의 목소리를 못 듣게 된다면? 아이의 목소리를 못 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생활이 불편해지는 걸 견디는 게 어려운 거 아닐까. 나는 아빠 거북만큼 아이를 안 사랑하고 있나.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니?˝로 시작해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요?˝로 끝난다.
부모의 마음이 자녀에게 전수되었다. 서로 사랑했으므로. 마음이 전수되는 데는 사랑이 필요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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