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
김혜령 지음 / IVP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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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IVP)
-부제: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
-IVP 독서단 19기 도서

이 책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다. 여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는 퇴임한 목사님이시고, 딸도 목사님이다. 목사님도 알츠하이머를 앓을 있구나. 당연히 그럴 수 있는데 왜 충격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하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의 잔재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던 걸까(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못 해석하고 있으니까.).
책의 첫 페이지부터(추천사 제외) 마음이 먹먹해졌다.

🏷자기 자신조차 잊어 가는 중에도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신발장에 정리하시는 아버지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책을 바칩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 아니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실 때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서 내 곁에, 우리 가족 곁에, 우리 교회와 사회 속에 거한다. 그러니 아직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병환이 몰고 온 슬픔과 좌절의 짙은 그늘에서도 삶의 유쾌함을 잊지 말고 끝까지 노래해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지루하지만 여전히 생명 가득한 마지막 시간을 동행하며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삶을 해석해 낼 수 있느냐‘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돌봄의 방식과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15쪽)

16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노년에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다. 엄마가 집에 외할머니를 잠시 모셔 오신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실 때면 나나 동생이 외할머니를 돌봐야 했다. 그때는 외할머니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알츠하이머가 어떤 병인지 이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셨는데, 그 말에 매번 반응하는 게 참 힘들었다. 외출하시려고 할 때면 못 나가시게 했다. 횡단보도 없는 시골길에, 덤프트럭이 수시로 다니는 길이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엄마한테는 엄마지만, 나한테는 명절마다 보는 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람이면 더 잘 대해야 하지 않나. 그때 내가 이 책을 알았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상담을 공부하기 전이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보다 더 잘 몰랐던 때니까. 🏷내가 그렇듯 아버지도 일상을 아주 부지런하고도 열심히 살아 내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가 어제처럼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던 것일지 모르겠다.(115쪽) 외할머니를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막연히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 책은 에피소드마다 글쓴이의 경험과 그에 맞는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문학의 인용, 그리고 신학적 해석으로 글의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사회 구조적 결함까지 폭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자신만의, 가족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자신의 문제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때가 많은데, 힘든 상황에서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게다가 자신의 상황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았다. 🏷솔직히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이 엄청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를 속이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부활의 상상을 통해 적어도 담담하고 평안하게 이 길을 가고 있다. 비록 자주 넘어지지만.(157쪽)

글쓴이는 페미니스트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균형 잡힌 시선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사회 문제의 모든 부분을 페미니스트의 시선에서 딱 떨어지게 해석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선택한 합가라는 돌봄의 삶도 온전히 페미니스트로서 권리를 누리기 위해 기꺼이 책임을 감당하는 주체적 자유를 실행한 것이라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부계 중심의 가족 부양 시스템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사회 보호망 구축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돌봄과 부양을 독박 쓰는 ‘슈퍼우먼‘ 딸들이 우리 주변에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94쪽)

에피소드에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의 행동을 대하는 자세뿐 아니라, 주간 보호 센터에서의 일도 다룬다. 요양 보호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서술하는 부분에서, 교사의 역할과 월급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교사들이 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마음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월급만큼만 일하겠다고 말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학부모들 중에 교사들이 전하는 마음을 돈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진심 어린 마음은 결국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131쪽) 사람들은 진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맞을까?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반 정도를 살았다. 부모님은 노년에 가까워지시고, 부모님의 노년과 나의 노년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에릭슨의 인간의 심리 사회적 발달 단계에서 8단계 이후에는 과업이 없을 줄 알았더니, 9단계까지 저술했는지 몰랐다. 검색해봐도 대부분 8단계에서 멈추고 있는데.

🏷그러나 조앤 에릭슨의 지혜로 노년기의 ‘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인간의 삶은 접촉하는 존재의 능동성에 머물지 않고 접촉당하는 존재의 수동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184쪽)

🏷병상의 노인이 의식이 미미하여 ‘접촉됨‘의 허용 의사를 아무리 직접 밝힐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격적 접촉에는 근본적으로 그의 의사를 존중하여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윤리적인 질문이면서, 사회적인 질문이자, 정치적인 질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노년에 어떻게 접촉당하며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접촉의 능동성에서 접촉의 수동성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만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187쪽)

‘접촉의 수동성‘이라니 새로운 해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년을 겪게 되고 노년에는 다른 사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해석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신학적으로 고통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해석이 개교회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

🏷채은아, 혹시 나중에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거든, 이렇게 생각해 주라. 엄마는 잘못한 것이 분명히 적지 않을 테지만 하나님은 그 잘못 때문에 벌을 주신 게 아니야. 나중에 더 큰 복을 내리려고 하나님이 엄마를 연단하시는 것도 아니란다. 너도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는 게 아니야.나는 하나님이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 네 할아버지에게 치매라는 고통을 주면서까지 나를 연단하신다거나 시험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아. 할아버지도 하나님에게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일 테니.(211쪽)

🔎IVP 독서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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