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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여중생들의 진실게임 - 청소년 성장소설 십대들의 힐링캠프, 폭력(사이버폭력) ㅣ 십대들의 힐링캠프 24
이선이 지음 / 행복한나무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수상한 여중생들의 진실 게임](이선이, 행복한나무)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이선이 선생님의 책을 다 읽었다. 읽은 세 권 중에서는 이 책이 제일 와닿았다. 아마, 이 책 안에 내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 책은 [죽이고 싶은 아이], [소희의 방]처럼 등장인물들이 한 명씩 자기 관점에서 보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기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예쁘다는 말을 늘 듣고 살던 내가 그 말을 못 들으니 정체성이 흔들렸다. 자존감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즐거운 일도 없고 매사가 귀찮아졌다. 뽀얗고 하얀 피부 덕분에 화장을 안 해도 되었지만, 친구들의 세상에 섞이고 예쁘다는 말을 듣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친구들은 더 이상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 말은 모두 상희에게만 향할 뿐이었다.(27쪽)
우리 집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기라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우리 집은 잘 나가지 않아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아이들은 이미 경험했다.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체성이 흔들렸던 것 같다. 지금도 처음 하는 일은,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 누군가 먼저 시작해야만, 나도 그걸 보고 생각을 해서 진행해야 안전하다고 느낀다.
갑자기 빨라지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킬까 봐 두려웠다. 동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그럴 만한 용기가 없다.(47쪽)
나도 그랬다. 좋아하는 감정은 철저히 숨기고 살았다. 연예인이든, 또래 남자아이든. 그게 들켰을 때 겪을 부끄러움 내지 수치심이 너무 싫었다. 수치심이 좋아하는 감정을 이겼다. 왜 그때는, 그게 그렇게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일이었을까. 지금도, 그 감정들은 남아 있다.
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무도 나를 놀리지 않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돌려줬고, 한 번 놀림을 당하면 그 아이가 질려서 도망갈 때까지 욕까지 보태서 갚아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언제부턴가 말투도 바뀌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말하면 아이들이 내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기에 내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말투는 거칠어졌다.(54쪽)
교사가 되고 많이 바뀌었다. 고소를 당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많이 바뀌었다. 계속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한다.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부한다. 아직도,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죽고 주는 사셔야 하는데.
친구들은 내가 강한 줄 알고 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강한 아이가 아니다. 친구들의 사소한 말도 그냥 잊지 못한다. 무슨 뜻이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곱씹고 또 곱씹는다. 숱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괴로워한다. 하지만 애들이 그걸 알 턱이 없다. 귀를 막고 싶다.(104쪽)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엔 곱씹고 또 곱씹었다. 스스로를 과거에 가두는 행동을 많이 했다. 과거를 되짚어보고 복기했다. 지금은 그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를 고민하지만, 그땐 내가 잘못 행동했다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 <인사이드 아웃2>에 나오는 것처럼, 불안이가 계속 머릿속을 휩쓸었다. ‘나는 부족해‘라고 계속 되뇌었다. 누군가에게는 감정이 통합되는 시기가 30대 이후가 될 수도 있다. 영화라서 그런 건지, 라일리는 매우 빨리 통합의 지점을 찾았지만.
˝맞아, 세라 걔도 알 건 알아야지.˝
˝그래, 상처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잖아.˝
˝이번 기회에 좀 알아야지.˝
˝맞아 맞아.˝
우리는 서로 맞장구치며 정체 모를 불안감을 달랬다.(110쪽)
내가 이 책 안에 있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다면, 세라의 친구였다면, 이 친구들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감싸지 못했을 거고,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험담을 한다. 관리자나 학부모나 내가 기준이 되어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향해.
˝뭐랄까, 눈에 독기가 가득한 게 예쁘장하긴 한데 섬뜩하더라고요. 이 아이 환경은 어떤가요?˝
˝어머님, 아이의 환경은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구요. 이 아이도 장점이 많은 친구인데 뭔가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어느 시점부터 친하던 관계가 어긋났는지 그 부분을 찾아서 이해하게 하고 서로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게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일이 시작된 지 하루 이틀 사이에 상황이 많이 깊어진 상태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151쪽)
나는 학부모에게 이렇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밑줄을 그었다. 다른 집 아이를 향한 학부모의 시선이 곱지 않을 때가 있다. 올해도 있었고. 교사는 교육을 목적으로 있는 사람인데, 학부모님 중에 그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상처받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교사의 말 기술]에 나오는 것처럼 말하려고, 요즘은 상담 전에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아직까진 다른 사람의 입장보다는 내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질 나이다. 어른이라고 모두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만 있는가? 어른도 아이 같은 어른들이 수두룩한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가슴 한가운데가 빼근하게 저려왔다.(155쪽)
내가 싫어하는 책 중 하나이긴 한데, [내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를 (책 제목만) 꺼내본다. 제목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성숙하지 못한 성인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 자라지 못한 것 같은, 어떨 땐 초등학생 같은. 그런 아이들을 수용해야 자아도 죽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으로 나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