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토요일의 심리클럽 -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4
김서윤 지음, 김다명 그림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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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권일한선생님 책 목록에서 보고 읽은 책입니다. 재미있는 심리 실험들을 중학교 클럽 활동에서 사례를 통해 접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대부분은 아는 내용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때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인상 깊었던 심리 실험은 ‘확증 편향‘이었습니다. 확증 편향은 논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정치의 좌우 대립에서, 교리 논쟁에서, 종교와 무신론 사이에서 등등.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지난주 [기적] 독서모임을 할 때 제가 확증 편향의 모습을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확증 편향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뒤셴 웃음과 팬암 웃음은 신랑에게 배운 거여서 신기했습니다. 신랑이 어떤 사진을 가리켜 눈이 안 웃고 있으니 진짜 웃음이 아니라고 했을 때 놀랐거든요. 그게 심리 실험이었다니 신기했습니다.

또, 부주의맹 실험도 예전에 직접 본 적이 있어서 놀란 적이 있었던 터라 새로울 건 없었지만 책에서 만나 반가웠습니다.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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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적 홍성사 믿음의 글들 253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강영안 감수 / 홍성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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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feat. 독서모임 후기)

1. 생색
이번주 진짜 힘들었다. 다음주 월요일까지 들어야 할 연수도 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어려운 책인 데다, 지난주 화요일까지 다른 책에 매달려 있어서([공정하다는 착각]) [기적] 책 읽기를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3~5장 읽는데 진을 뺐다. 독서모임 시작 10분 전에 다 읽었다.

2. 독서모임 중 생각
(1) 기적을 믿는가?
이 책은 기적을 믿지 않는 고학력자, MBTI 세 번째 알파벳 T, 기독교가 논리적이지 않아 믿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루이스가 답을 정해놓고 논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성육신, 부활, 승천을 믿는다면,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기적 정도는 쉽게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기적을 믿는가? 믿는다. 내게 기적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2) 기적은 기독교인에게만 일어나는가?
앞서 적었지만, (초자연주의로 일컬을 수 있는) 기적은 (하나님의 섭리임에 틀림없지만) 기독교인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나타나는 기적이, 어떤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병고침과 같은 이슈는 간증거리로 소모되기 쉬운데, 같은 병이 두 기독교인에게 똑같이 발병했다고 했을 때, 한 명은 살고 한 명은 죽는다면, 한 명에게는 기적이 임했고 한 명에게는 기적이 임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 걸까? 물론, 각 사람에게 정하신 바가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기에 두 명 모두에게 정하신 뜻이 있을 거라고 믿지만, 이 기적을 간증거리로 삼을 때 상처 받을 수 있는 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3) 루이스의 기적: 루이스는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의 관점에서 기적을 이끌어 온다. 자연주의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판단을 이끌어올 수 없다는 점에서 초자연주의가 옳다는 논리이다. 사실상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14~16장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앞에서 그렇게 어려운 논리를 펼쳤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성경의 기적만 다루는 것 같지만, 루이스는 부록에서 ‘특별 섭리‘를 다루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적‘이라고 부르는 사건에 대한 생각도 밝힌다.-‘‘섭리‘와 자연 원인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건은 다 그 둘 모두에 의해 결정됩니다. 왜냐하면 그 둘은 실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4) 나에게 기적은?
‘나는 기적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할 수 있다. 기도의 응답이 있었고, 방언을 체험한 적도 있다. 이런 영적 체험 외에도, 지금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도 기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기적은, 아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생명체가 나를 통해 나온 거지? 아이와 처음 마주한 순간은 경이로웠다(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먼저, 기적은 하나님이 하시는 다른 행위들과 동떨어진 행위가 아닙니다. 실상 기적은 하나님이 평상시에 너무 크게 하고 계신 일, 그래서 사람들이 제대로 주목하지 못하는 일을, 바로 가까이에서 아주 작게 그래서 또렷하게 보이도록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고 보지만, 이 구절을 읽으니 그렇게까지 의심할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다.
(5) 학문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노력
개인적으로, 학문(과학, 인문학, 심리학 등)이 교회에 들어와서 활개치는 것을 잘 용납하지 못한다. 교회를 옮긴 이유 중 하나인데, 그때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왜 (교회에서 성경이 아닌) 학문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왜 교회는, 믿는 자(믿는 자를 모두 믿는 자로 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가 아니라 믿지 않는 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걸까? 성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상담 공부도 영향을 주었다. 상담을 하면서 던지는 질문과, 말씀을 읽으면서 던지는 질문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과학으로, 인문학으로, (루이스처럼) 논리로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한가? 독서모임 때 잠깐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독서모임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회의적이다. 다른 학문을 배척하겠다는 말은 아니다.-공부는 내 기쁨이다. 다만, 그 노력은 미완성이라, 언제나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어서, 학문으로 설명하기 싫은 것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성경 해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성경에서도, 바울이 열심히 논리로 설명한 도시에서는 믿는 자가 적었다고 적고 있다. 없지는 않았으니 노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또다른 이유는, 학문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일반계시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확신은 깊어질지 모르나 믿음이 자라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서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이 학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베드로전서 2장 2절 하반절은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이다.
아이가 자라서 머리가 트이게 되면, 이 생각에 변화가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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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233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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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질문 만들기](feat. 고질독 13기)

1. 작가 조사
2.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3. 내게 높고 밝은 곳이 있나요? 있다면 어디인가요?
4.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5. 나는 감내하고 있나요, 감내당하고 있나요?
6. 덕을 숭상(?)하나요?
7. 내가 깨부술 진리는?
8. 자신을 믿지 못해서 거짓말하나요, 거짓말을 하기에 자신을 믿지 못하나요?
9. 나의 처세술은?
10. 어떻게 위로 올라갈까?
11. 짐승보다 인간이 위험한가요?
12. 하늘을 날고 싶나요?
13. 내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은?
14. 참을성이 있나요?
15. 나의 동굴이 있나요?
16. 내게 있는 것을 다 내어줄 만큼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17. 내가 했던 거짓말은?
18. 내가 가장 만족하는 하루는?

고질독에 참여한 이래 제일 힘든 책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상 위 질문들은 사소한 일부에서 떼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독도 엄청났을 터다. [니체, 세상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다]에서 초인에 대해 잘 다루고 있기 때문에 1부 초인을 이해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2부가 권력의지, 3부가 영원회귀에 대한 내용이라는데, 사실 권력의지나 영원회귀를 중심으로 내용이 흘러가는 건지 숲을 보는 것에는 실패한 것 같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성경을 까고(?) 있다. 성경구절을 엄청 많이 패러디하는데, 왜 그런 식으로 들고 와서 패러디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락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구절들을 떼와서 자기 마음대로 갖다 붙인 형국이랄까. 그래서 성경을 까고 있지만 그다지 동의되지는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의 독일 이름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왜 하필 조로아스터였을까? 그리고 조로아스터교가 배화교와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조금 놀랐다. 무협지 읽으면서 접했던 배화교가 조로아스터교였다니.-아, 무협지 읽고 싶다.
나를 넘어선다는 것, 그리고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지금 순간을 사는 것)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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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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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김영하, 복복서가)
(feat. 오랜만에 품을 들인 서평)
-스포일러 주의, 스크롤 압박 주의

📌개인적 상황
김영하 작가님 책은 [여행의 이유] 이후로 두 번째다. [여행의 이유]가 에세이라, 이 작가님 책 중 소설은 처음이다. <알쓸신잡>에서 자신의 글이 수능에 실리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 있다.
고통에 대한 생각 정리가 어려웠다. 고통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서평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적어보면, 내 고통관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서평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책은 휴머노이드 ‘철이‘의 일생(?)에 관한 책이다. ‘철이‘를 만든 ‘아빠‘는 철이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끝까지 몰랐으면 했다. 하지만 아빠는 철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좁은 틈새로) 허용했고, 그 사건은 철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휴머노이드는 또하나의 인간일 수 있을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중략)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69쪽)

윤리를 저버린 인간은 지금도 많은데,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마땅히 윤리도 갖춰야 해.˝(200쪽)

책에서는 휴머노이드에 대한 관점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기계도 인간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된다.
-인간도 어떤 면에서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의 기계성
-기계와 인간은 하나로 연결된다. ; 우주정신(생명체로 태어나 개별적인 자아로 존재하는 것을 허용)

✔️몸은 없이 의식만 업로드 가능하다면, 영생하시겠습니까?

🏷˝그럼 최박사는 안 할 거야?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우리의 의식을 업로드하면 그 의식은 육체 없이도 지금과 똑같이 살아갈 거야. 사유하고 연구하고 토론도 하겠지.˝(92쪽)

감각 없이 의식만 있다는 것은 너무 이상할 것 같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생(국민학생) 때, 육체를 잃고 살아있는 뇌가-연구소에서 뇌를 연구하기 위해 일부러 죽였던가 그랬다.- 상자에 담겨서 몸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는 당시에도 너무 너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몸 없이 의식만 살아서 무엇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김박사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터다.
후에 철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242쪽)

철이를 만든 최박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참된 고통일 거라고도.(268쪽)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은 몸의 감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최근에 들은 연수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생각만 하는 삶은,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만) 매우 피곤한 삶이다.

✔️기계도 종교를 상상해낼 수 있을까?

🏷설계자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를 프로그래밍한 것은 단지 그것들이 잘, 문제없이 오래 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지만, 그 결과로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중략)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107쪽)

몇 년 전에, 나보다 열 살 어린 동생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동생들이 나눈 주제가 이런 이야기였구나, 싶다. 한 가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피하기 위해 초월적 존재를 믿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 이유로 믿은 적도 있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왜 예수님을 믿나요? 왜 예수님이 필요한가요?

✔️죽음의 문턱에서 다른 사람이 내 생사를 결정한다는 것

🏷˝... 아마 죄책감은 잠시 줄어들겠지요. 이 휴머노이드가 다시 살아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 휴머노이드도 당신들을 다시 보게 되면 반가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요.˝(147쪽)

휴머노이드 대신에 ‘사람(가족)‘을 넣어도 똑같은 고민이 발생한다. 자연히, 생명연장기술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 내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간의 문제에서 선택을 유보한다면, 휴머노이드의 때에도(휴머노이드를 인간과 같게 대우한다면) 선택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다.

✔️고통은 해악인가? 출산은 이기심인가?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148쪽)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 책이 떠오른다. 태어나서 고통을 겪는 게 나을까, 태어나지 않는 게 나을까. 성경에서도 태어나지 않는 게 낫다는 구절이 있긴 하지만, 이런 고민도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할 수 있는 것일 터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죽음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태어났으니 의미 있게 지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적게 겪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도, 빈도도, 총량도 다르고, 이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는 견디지 못하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고통의 순기능은 ‘성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통을 겪지 않고 성장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기독교에서는 ‘고통‘이 하나님을 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참된 고통‘이듯이, ‘갈등‘ 없는 이야기는 지루하다. 고통 없는 인생의 지루함이 나을까, 고통을 극복하며 의미를 찾는 인생이 나을까?

🏷˝... 아이를 낳을 때 인간의 부모도 모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외동이면 외로우니까 하나를 더 낳아주자. 그런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죠.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보조금이나 집을 주니까 낳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도 다 이기심이죠. 생각해보세요.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182쪽)

휴머노이드가 고통 받을 것을 알면서도 휴머노이드를 인간에 가깝게 만드는 게 마음에 걸리지 않았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대한 최박사의 답이다. 과연 출산은, 이기심의 발로일까? 태어나는 아이가 고통 받을 것을 알면, 낳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왜 부모는 아이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이야기와 이야기의 끝
작가는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162쪽)라고 말하며 고통을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킵니다.‘(162쪽)라고도 한다. 이야기의 역기능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는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순기능도, 역기능도 있다. 이때까지 (공감 능력을 이끌어낸다는) 이야기의 순기능만을 생각해서, 이야기의 역기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이야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방향성이 ‘악‘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286쪽)

언젠가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 생애도 끝이 난다. ‘생(이야기)에 대한 집착‘(203쪽)이 고통을 만들어내고, 끝을 만들어내는 건지도. 육신의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야기는 죽음에서 끝나는 게 맞다. 기독교인은 죽음이 시작이라고 말할 것이다.

✔️고통을 늘리는 사람들

🏷˝...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멈추려는 것입니다.˝(153쪽)

그리고 이것을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 사실 얼마나 많은가? 전쟁, 사고, 입시, 주거 등등.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인데, 그러면 그 인간들을 쓸어버려야 하나?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마땅히 윤리도 갖춰야 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려 노력해야지. 하지만 그 여자는 세상에 넘쳐나는 고통의 총량을 더 늘리기만 했어. 우리는 모두 그 여자 때문에, 태어난 걸 저주해야만 했어. 그런 의식이라면 소멸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아. 어쩌면 그 자신에게도, 그 자신으로 태어난 게 가장 큰 잘못인데, 그 여자는 그걸 몰랐어. 다 남의 탓으로 돌렸지.˝(200쪽)

범죄자 인권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상 고통을 늘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감옥의 기능은 교화일까, 격리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누구와의 ‘작별인사‘인가?
처음에는 ‘철이‘와 ‘아빠‘와의 작별인사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선이‘였다. ‘세상‘과의 작별인사라고도 생각했는데,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297쪽)라는 마지막 문장을 보면 자의식과의 작별인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가 ‘행간에 숨겨둔 무언가를 발견‘(304쪽)할 정도로, 스스로 깊이 있는 탐독은 어려우니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면 좋겠다.

✔️휴머노이드에 관한 책이지만, 인간을 말하는 책
작가는 휴머노이드를 말하지만, 휴머노이드 대신 인간을 넣어도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에 대해서, 의식에 대해서. 내가 집중했던 부분은 그런 부분이다.

✔️여담: 니체가 떠오르는 책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07쪽)‘은 니체의 유명한 책 중 하나이고, ‘운명에 대한 믿음 같은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일종의 오류를, 지금의 나는 전혀 믿지 않지만, 선이와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우리의 생애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을 거라는 쪽으로 자꾸 생각하게 된다.(122쪽)‘는 영원회귀를 말하는 것이니, 니체의 사상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다.-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에서 끊임없이 모래를 퍼내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삶이 결국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연결되기도 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여러모로 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비슷한 글감(휴머노이드, 가까운 미래-SF소설)의 책
[천 개의 파랑], 천선란, 허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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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개념의 관점에서우리가 경제적으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로서의 역할이다. 생산자로서 우리는 우리 동료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을 만들면서, 사회적 명망을 얻을 수 있는 역량을 계발하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가 기여하는 것의 진짜 가치는 우리가 받는급여액으로 판단할 수 없다. 급여액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프랭크 나이트의 지적처럼 (5장 참조) 수요공급의 우연적 상황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기여분의 참된 가치는 우리 노력이 향하는 목표의 도덕적, 시민적 중요성에 달려 있다. 이는 아무리 효율적일지언정 노동 시장이 제공할 수는 없는 독자적인 도덕 평가와 연관된다. - P324

그것이 약속하는 물질적 혜택을 넘어 경제성장을 공공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까닭은 우리 사회처럼갈등이 많은 다원적 사회에 매력적이라서다. 이는 골치 아픈 도덕 논쟁을 우회할 빌미가 된다. - P328

급여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저런 직업들이 각자의 일 성과에 대해 참된 사회적 가치를 어떤 때는 과대하게 어떤 때는 과소하게 평가한다는점을 알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시장 사회에서는 우리가 버는 돈과 우리가 공동선에 기여한 내용의 가치를 혼동하기 쉽다.
(중략)
그것은 세상이 ‘우리는 우리가 받을 몫을 받는다‘는 식으로 짜여 있다는 능력주의적 희망에서 비롯된 혼동이다. 그런 희망은 구약성서 시대서부터 오늘날까지 ‘역사의 옳은 쪽에 서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섭리론적 사고를 부추긴 희망이기도 하다. - P330331

시장 주도적 사회에서 물질적 성공을 도덕적 자격의 증표로 해석하는 일은 지속성 있는 유혹이다. 그 유혹은 계속해서 우리의 저항을 깨트리려 한다.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논쟁을 하는것이다. 그리고 방법을 세우는 것이다. 공동선에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있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시장의 낙인이잘못되었는지를 반성하고, 숙고하고, 민주적으로 공동의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 P331

바로 금융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업계는 2008년 금융위기 때 극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이때 불거진 논쟁은 주로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되느냐‘
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개혁해서 앞으로의 위기 가능성을 줄이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그보다 훨씬 덜 주목받은 문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금융이 경제를재구성했으며 교묘하게 능력과 성공의 의미 또한 뜯어고쳤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변화는 일의 존엄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역과 이민은금융에 비해 포퓰리즘의 반 세계화 공격에서 덜 주목 받았다. 그런 것들이 노동계급의 일자리와 자위(오타인 듯)에 미친 영향은 보다 분명하고 확실해보였다. 그러나 경제의 금융화야말로 아마도 일의 존엄 감소에 더 큰영향을 미쳤으며,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에도 역시 더 큰 역할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대 경제에서 시장의 보상과 실제 공동선에의 기여도 사이에 아마도 가장 큰 격차 사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P335

경제적으로 그것은 경제성장을 돕기보다 방해하는 데 금융 활동이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도덕 및 정치적으로 그것은 ‘시장이 금융계에 주는 막대한 보상‘과 ‘그것이 실제 공동선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것‘ 사이의 큰 불일치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불일치에다 금융 종사자들이 투기 활동을 하면서도 분에 넘치는 명성을 누리는 현실은 실물경제에서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존엄을 조롱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P338

우리는 우리의 공공생활에 어떻게 돈을 대느냐를 통해 성공과 실패, 명예와 인정에 대한 태도를 표출한다. 세금 징수는 세입을 올리는방법만이 아니다. 한 사회가 과연 무엇을 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로 여기는가에 대한 판단을 제시하는 것이다. - P339

그러나 세금의 표현적인 차원은 공정성 논의를 넘어선다.사회가 어떤 활동을 ‘명예와 인정을 부여할 가치 있는 활동‘으로 보느냐, 또 어떤 활동을 억제해야 마땅할 활동‘으로 보느냐에 이른다. - P339

오늘날 경제에서 누가 만드는 자이고 누가 가져가는 자인지에 대한논쟁은 결국 기여적 정의론으로 귀착된다. 어떤 경제 역할이 명예와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생각이다. 이런 사고 과정은 무엇이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인가를 따지는 공적 토론을 필요로 한다. - P342

그런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종류의 일이 인정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있느냐다. 또 다른 것은 우리는 시민으로서 서로에게 어떤 책임이 있느니다. 이 질문들은 상호연관되어 있다. 무엇이 긍정적인 기여인지 따져보려면 우리 공동의 생활에서 목표와 수단이 무엇인지부터 가려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소속이라는 의식 없이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빚지고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라는 인식 없이 공동의 목표와 수단에 대해 숙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런 의존을 인식하기에 우리의 집합적 복지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할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는 시민들이 "우리는 모두 함께입니다"라는 말을 위기 때에 건성으로 내뱉는 말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믿고 할 만큼 건실한 공동체 의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 말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한 믿음이 가는 묘사여야 한다. - P342

극소수 사람들의 영웅적인 성공 사례에 고무되어 다른 이들도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여길 수있다. 그들이 벗어나고픈 환경을 개선하려 하기보다, ‘불평등의 해답은이동성‘이라는 말만 늘어놓는 정치를 추구할 수 있다. - P348

사회적 상승에만 집중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의 강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 P348

종종 기회의 평등의 유일 대안은 냉혹하고 억압적인 결과의 평등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다. 그것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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