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선생과 열네 아이들 -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읽는 교실 동화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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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밖에 있을 때는 문젯거리골칫거리였는데, 마음 안으로 들여놓는 순간 소중한 무엇, 꼭있어야 할 무엇이 된 것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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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믿음을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건전한 상태로 들어오게되는 수단이라고 묘사한다. 따라서 그것은 ‘이미 구원받은 상태다‘ 라는믿음과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믿음은 사람들 스스로가 구원받은 상태라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믿음은 자기 스스로 믿음이가는 어떤 것을 믿는 것이나 자신이 믿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 P266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주는 원리 가운데서 언제나 사람들을 양심적으로 만드는 것은 두려움과 사랑 둘 중의 하나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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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자신들이 의지해 왔던 많은 것들에 대해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이 겸비함을 경험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대한 굴복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절대적인 굴복이 아니며, 거의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안에 어떤 비밀스러운 거래가 있는 것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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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는 심령이 반드시 감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참된 신앙은 능력이며, 말로 교리를 받아들인다고 말하는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령의 변화는 경련이나, 부르짖음 또는흐르는 눈물이나 내면에서 나는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적 표지들은 항상 부흥운동의 떠들썩한 표시들이었지만 참된 신앙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충족되어야 할 다른 조건들이 있는 것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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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니 예수전도단에서 나온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책이 생각난다. 예수전도단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하는 증거(이를 테면 갑자기 떠오르는 성경 말씀)를, 에드워즈는 참된 감정으로 믿을 만한 증거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두 부분이 모순적인지, 아니면 둘 다 수용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생각으로는 ‘둘 다 수용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신앙이 어릴 때는 갑자기 떠오르는 말씀이나 내가 요구하는 기도에 대해 ‘yes‘라는 응답하심으로 신앙을 공고히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앙이 자라갈수록, [하나님의 임재하심]에서 로렌스 수사가 말한 것처럼, ‘10년 동안 하나님이 만나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곤 할 때가 있는 것이 아닌지. 물론 이것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의 영역일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신앙감정론]에서는 ‘성령이 거룩한 사람들의 본성에 맞게 그들 가운데 내주하신다‘(49쪽)이라고 말하는데, 그 지점과 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의 주된 주장은 생생한 상상,개인적으로 자아에게 말하는 듯한 목소리,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설명할수 없게 떠오르는 성경 말씀, 은밀한 일의 계시 등과 같은 특이하고 ‘기적적인‘ 현상들이 참된 감정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들은 새로운 본성이나 새로운 창조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또한 그것들을 나타내지도 않기 때문이다. 놀라운 현상이나 예기치않은 현상에는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없다. 참으로 신적인 것들은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간다. 은혜는 마술이 아니라 중생과 관계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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