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동상이 있는 바닷가쪽 어민시장에서 반찬 하나 깔지 않고 대게를 먹는 것도 좋지만 바다 반대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주문진의 동네를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좀 오래되고 낡은 굽이진 동네 골목을 만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골목이 디게 깨끗해요. 아주 낡고 오래되었는데 골목이 깨끗하다, 사실 이것이 강릉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주문진은 강릉시 주문진읍이니까요. 거의 모든 갈림길에서 거의 모든 갈림길로 가고 싶어서 저는 아주 혼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날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으므로 일단 무조건 북쪽으로 향합니다.
걸어요 걸어요.
마을을 빠져나와 농로를 지나고 조금 한참(조금이라는 거야, 한참이라는 거야?!) 걷다 보면 나와요. 향호가.
향호는 우연히 지도에서 보고 찾아간 곳이에요. 아주 넓은 호수. 바람 소리가 아니 바람에 사부작거리는 풀 소리가 그리고 새 소리가 그리고 가끔 물 소리가 아주 잘 들리는 곳. 호수 주변을 빙 둘러 나무 데크가 되어 있어 아주 한가롭게 생각에 잠기며 느긋이 걸을 수 있는 곳. 강릉에 경포호가 있다면 주문진에는 향호가 있는 것인데 경포호보다는 향호가 저는 더 좋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바우길 13구간이더라고요. 향호와 향호 저수지를 어우르는. 이름도 과연 바람의 길.
향호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향호교가 나옵니다. 향호교는 사람만 다니는 낡은 다리예요. 향호교 옆으로는 자동차들이 신나게 쌩쌩 달리는 자동차 도로가 있는데 향호교를 건너며 자동차들을 보고 있으면 괜히 깨소금. 내가 건너는 다리는 낡았어도 한적하고 고요한데 저 다리는 붐비고 시끄럽거든요. 한 뼘밖에 안 되는 향호교를 지나면 바로 주문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굴 다리가 있어요.
여기를 빠져나가면 이제 바다가 나와요.
이렇게.
그리고 주문진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