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넘겨 준 너의 머리카락

너는 내게 모르는 얼굴이지만

삶에서 죽음은 가엾은 일이라

괜찮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었어


너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잘 가라고 너에게 손을 흔들어

살았다는 안도감에 착한 사람들

왜 아무도 네게 화를 내지 않는 걸까


최승자 시집 속에 숨겨둔 일만 엔

결백한 자의 비밀이란 겨우 그런 것

괜히 울어주지 않아도 돼 꼬마야

눈물로써 밝혀지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둬야 한다며

오늘따라 유별난 끼니의 당위성

표정을 만드느라 애쓰며들 파이팅

그러나 정작 끼니를 놓치고 있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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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 작은 빵집 치즈 프레첼

어떤 맛이냐면 눈이 동그래지는 맛

한 손에 치즈 프레첼을 들고 횡단보도 앞에서 

나와 우주와 치즈 프레첼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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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우등 고속버스 안에서 

별탈없이 곯아떨어진 사람들

창밖으로 넘어가는 밤의 페이지 속엔

자고 있는 산의 조용한 옆얼굴


정해진 도로 규칙을 준수하며

남의 도시 외곽으로만 달리는 버스

그래서 가장 인기 있는 불빛은

그래 봤자 조금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 모텔들


밤은 어디서든 외롭기 마련

자정의 35번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메뚜기처럼 9, 10, 11, 다시 10

모르는 남자의 코 고는 소리 BGM


누구나 이별하는 부산을 떠나

흔한 첫사랑의 환승지 대전이 저어기

그러나 오늘 밤 내 차비로는 이제 그만 톨게이트

차비 받는 재미에 이 야밤에 혼자 씩씩한 톨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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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가라앉기란 어디 쉽지 않아

누구든 물고기를 탐낸다


너의 사랑은 기껏해야 순두부

지중해에서 내가 일러두었던 말을

너는 금세 잊어라


무릇한 목적어들로 뭉클한 너의 진심

벌써 몇 번째의 실종 신고

너에게 아이스크림은 괜히 사주었다


밤하늘의 별만큼 가난한 내가 

그러나 결백하지 않은 내가

마음 그늘진 곳에 숨겨둔 송어는 없다


무작위로 당첨되는 숱한 아침도 이만

아가미 사이로 실금처럼 새나오는 피

자,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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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어느 꿈에 서성이는 시장 골목들

바람에 나뭇잎처럼 흩날리는 사람들

내가 있는 그곳에 나는 없는데 

바람이어서


어머니는 온갖 근친상간으로 우릴 낳으시고

벽에 무겁게 걸려 있는 권위의 명작들이 뭐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 하도 반짝이는 맹금류

그래서 좋아요?

 

아무렇게나 태어나는 처녀의 아이들이

함부로 죽어버리는 온순한 목숨들이 

부도 수표처럼 흩날리는 이 멋진 신세계

부디 굿 럭


수만 겹의 저주를 뚫고 올라가도 너는 없어

통찰 말고 지혜 말고 상투적 첨탑 거기에

노련한 시간 양반 같으니 당신은 내가 뻔하죠?

나라고 왜 안 죽겠어요


우그러진 달이어도 달빛이 성성해

이자영 신경정신과 오늘도 신상품 대량 입하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치매 이따금 오바이트

야! 주차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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