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다시 나를 세워라 -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며 사는 법
존 B. 아이조 지음, 윤미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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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엔 꿈도 많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부풀 만큼 부풀었다.대학을 나오고 비좁은 사회공간 속에 유영하다 보니 끝없는 자기계발과 생존 경쟁에서 정서는 메마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의식만 뇌리에 남게 된다.이해관계가 없었던 학창시절엔 그래도 친구와의 우정도 나누고 허물없이 자신의 속내를 다 들추어 내기도 하며 변치않은 우정을 쌓아가자고 맹세했지만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격리는 쌓아 놓은 우정마저 하나 둘씩 허물게 하고 좁혀진 인간관계와 치열한 생존의 장에서 나와 가족을 위한 생각 밖에 없다.어쩌다 유선으로 대화를 나누고 만나 얼굴을 맞대어 얘기를 나누어도 공통 화제와 친분의 성김은 희미한 우정마저 더욱 퇴색하게 만들곤 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기약은 없지만 죽음 앞에 모두가 겸허해지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는 시기가 중년일 것이다.경이와 기쁨으로 충만했던 젊은 시절은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서 살았으리라.삶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노력과 열정으로 다가간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와 희열은 맛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내 앞에 놓인 삶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명제를 내세우면서 잃었던 순수함을 되찾아 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지난 시절과 현재,미래의 나를 깊게 생각해 본다.

 

신분의 고하,경제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눈 앞에 놓이고 놓여질 세상사의 다양함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면서 때론 실망과 좌절,우울과 상실감이 쌓이고 때론 좀 더 잘 되었더라면 식의 후회와 자성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특히 남과 비교하여 내 자신을 깎아 내리고 자격지심에 젖어들 때엔 자존은 내려가고 비굴함마저 들 때가 있다.이것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지 못하고 비개방적인 옹졸함에서 비롯될 때가 있다.이러한 점에서 감성과 행복감은 떨어지고 생기를 잃게 된다.

 

욕망과 탐욕을 멀리하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자아도취적인 자세보다는 이타적인 자세로 인간관계를 쌓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갈 때 자신의 삶은 성숙될 것이고 그러한 삶 속에서 경이와 환희를 다시금 느낄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모두가 나와 관계없는 일은 눈과 귀를 막고 무관심으로 흐르게 마련이다.이를 벗어나 인생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삶 자체가 기적적인지를 기억한다면,인생은 다양하고 더 멋진 것이 될 것이다.순간 순간 자신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유일한 존재이며,인생의 더 깊은 의미를 숙고하는 유일한 지성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로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나는 이 점을 제2의 순수라고 생각하며 행복지수도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길이는 짧다고 수없이 생각을 한다.짧은 인생을 조금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줄 알며 사람과의 관계를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으로 하되 늘 진실과 배려,사랑이 담긴 자세를 견지한다면 타인도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의 뇌리에 각인시킬 것이다.타인을 믿고 타인의 말에 경청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망과 상처를 열린 자세로 받아 들인다면 절망스러웠던 순간들이 재기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나 홀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경이와 환희,순수함이란 무엇인지를 발견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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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건축 -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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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교시절,대학시절의 길거리의 건물과 사람이 다니던 길은 그리 높지도 않은 3,4층 건물에 작지만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아나로그 방식의 테입과 레코드,바로 옆은 사람이 사는 2층 양옥층 내지는 단층 가옥이 주가 되었다.밤이 되면 그리 밝지 않지만 행인이 걷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정도의 가로등과 늦게까지 술과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대포집,생맥주,통닭,액세서리,쌀.과일 가게들이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하느라 붐비곤 했다.그 속에는 집과 건물 사이로 작은 골목들이 있고 사람과 수레가 지나갈 정도의 공간에는 이웃간의 따뜻한 인심과 정이 살아 있었다.

 

그러한 정경들은 어느 덧 과거의 일이 되고 낡고 비좁은 길과 건물들은 재개발과 도시계획에 의해 바둑판마냥 반듯하게 구획정리되고 오밀조밀했던 기와집 건물들은 헐리고 아파트라는 높은 건물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이웃처럼 지내던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어디론가 흩어지고 물질과 기회를 노리고 몰려든 이방인들간의 섞임 현상이 두드러지게 된다.친척이 있어 동대문구 북쪽지역을 가게 되면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었고 일부는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그나마 개발이 안된 곳을 지나치다 보면 20년 이상을 한 곳에서 과일과 튀김장사를 하고 있는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면 참 반갑기 그지 없다.길쪽으로는 상가들이 추녀를 맞대고 상가 뒤로는 오밀조밀하게 사람이 살고 골목 한 켠에선 자리를 잡고 이웃간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드물지만 색다르다.

 

도시계획과 재개발이라는 명분하에 한 순간에 보금자리를 잃게 되고 원주민들은 어디론가 새 삶을 향해 떠나간다.그곳에 블도저와 포크레인,기중기,철근,일꾼들의 바쁘게 움직이는 건물 만들기가 진행되면서 주위는 새롭게 단장하고 새로운 공간을 이어가기 위해 현대식 장비들의 무심하고 획일적이고 인공 지능에 의해 공기에 맞춰 몇 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진다.겉모양은 비록 위용과 격조를 그럴듯하게 띠고 편리함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밖을 나서면서부터는 일거수일투족이 CCTV에 모든 사람들이 잡히게 되면서 풍요속의 삭막한 정서를 살아가게 된다.또한 대도시는 물론이고 지방의 산골 오지까지도 사람,차가 다니는 길은 거의가 아스팔트로 둔갑되고 자연의 선물인 흙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주거와 상업,문화가 공존하는 중간건축의 장소,공간을 찾기란 대도시에선 쉽지 않다.비근한 예로 나는 업무상 혜화동과 명륜동을 들르게 된다.그곳은 높지 않은 건물과 상가,문화가 살아 숨쉬며 재래시장까지 끼고 있어 내가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을 되찾은 기분이 들때가 많다.연극 공연장과 재래식 시장,작은 슈퍼마켓 등이 아파트,대형마트의 편리함과 대조적으로 정감이 가며 길들도 포도송이마냥 여러 갈래로 뻗혀 있다.음식과 간식 가격도 비교적 싸고 훈훈한 인정을 대표하는 '덤'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그와는 대조적으로 명품 아파트 단지를 내세워 그곳 주민들만 들락거릴 수 있게 신분증과 암호카드가 있는 곳도 발견하게 되는데 외부인의 출입으로 인해 '놀이터' 및 '수다 장소'가 될 우려가 있기에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단속하고 경계한다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반포 레미안퍼스트단지,자이 아파트단지는 유명하다)

참으로 주거의 이방공간이 아닐 수가 없다.

 

건축사,건축기사사무소,건설사 등이 서로 관련을 맺고 설계,시공,완공,관리를 맡게 되는데 좁은 면적에 다수가 살 방도를 찾다 보니 아파트만한 주거공간이 없었던거 같다.고층의 아파트에 살고 쇼핑은 자동차로 움직이다 보니 길과 사람,건축물의 조화는 불균형을 맞게 된다.걸어서 장을 보고 문화 생활을 충분히 즐기며 이웃간의 정보와 정담을 나누는 문화풍토가 그립기만 하다.수준 높은 중간건축이 도시 깊숙한 곳에 골고루 생겨나고 도시의 구조와 조직을 다시 손질해야 할 때라고 보여진다.끊어진 길을 잇고 좁은 길은 넓히며 공용주차장과 공공시설을 짓고,사업을 관리하고 검증하는 역할로 건축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걸으면서 경제와 문화를 흡수하고 무목적으로 길을 배회해도 괜찮은 곳,모르는 사람끼리 지나치면서 일상의 문화를 공유하는 길이 살아 있는 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수레,자동차,승강기,온라인을 통해 살펴 본 길과 건축,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건물이 주는 화장한 얼굴보다는 도로 이면에 있지만 사람들이 드나들고 환기와 통풍을 통해 살아 숨쉬는 건물들이 있는 주거와 상업,문화가 공존하는 중간건축을 기대해 본다.결국 모든 길과 건물은 사람에 의해 설계되고 완성되지만 누구를 위해 지어지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불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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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4 -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4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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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선현들로부터 배우는 정치 철학은 당대의 치세를 이어 오늘날까지도 개혁가와 사상가,정치가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특히 춘추전국 시대는 수많은 정경(正卿)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은 이론과 행동을 겸비한 정경으로서 진과 초나라는 대국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만의 처세와 비법을 알게 된다.

 

BC8세기 제의 환공을 시작하여 진시황에 의해 진의 건립(BC221년)되고 진의 문공,초의 장왕이 패권의 자리를 이어받으며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곳은 중국의 중원(中原)지역이었다.정나라는 그들의 틈 바구니(지금의 안휘성 정주) 속에서 초와 진의 비위를 맞추는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기도 했다.일종의 명분과 실리를 적절히 구사했다는 반증이기도 한데,그는 예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큰 나라 군주가 작은 나라를 찾을 때는 단을 쌓지만 작은 나라 군주가 큰 나라를 찾을 때는 풀자리만 까는 것인데,어찌 단을 쌓는단 말인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로 갈 때는 작은 나라의 허물은 용서해주며,재난을 구해주고,덕과 형벌을 잘한 것에는 상을 주고,부족한 것은 가르쳐 준다.그렇게 하면 작은 나라들은 곤란을 겪지 않고,큰 나라에 복종하기를마치 귀의(歸衣)하는 것처럼 하게 된다고 한다.자산은 예를 군주와 정경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며 예는 국가의 근간이며 예를 갖춘 분을 죽인다면,그보다 더 큰 화는 없을 거라고 설파한다.

 

BC543년 자산은 정경이 되어 내란의 뒷처리를 잘 수습하고 나라의 기강잡기와 살림살이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이부 거대 씨족들은 그의 개혁에 반감을 느꼈다고 한다.그는 국도와 비읍을 구분 짓고,의복으로 상하 구분을 명확히 하고,전지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정전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오(伍)로 편성한다.사대부들 중에서 사치하는 자는 내치고 검약한 사람을 등용하는데 이는 가난하고 문란한 정나라의 현시리을 혁파하기 위한 일로 보여진다.특히 공실을 억누르고 사병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목공의 후예 즉,씨족 세력들을 제어했는데 공실과 씨족의 차별화를 기도한 것이다.단연 씨족의 반발이 컸음에 틀림없다.

 

자산의 언론관은 백성들에 대해 인과 자애를 두루 갖추었다.좌전에 자산과 대부 연명의 대화가 나오는데 당시 향교(鄕校)에 모여 정치를 평했다고 한다.자산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1호였는데 연명은 자산에게 향교를 폐지하자고 건의했다가 된통 혼이 났다.향교는 사람들이 조석으로 나와 어울리면서 집정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데,옳다고 하는 것은 행하고,그르다고 하는 것은 반성하여 고치면 된다고 하면서 향교에서의 집정 토론의 장을 유지해 나가며 백성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 섞인 여론을 막는 것은 일시적일 수가 있지만 그 여론은 불씨와 같아 언젠가는 크게 터지고,백성이란 물과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고 그 배를 뒤지비을 수도 있다고 대중심리를 읽었고 확고한 정치철학을 되새겼다.

 

또한 자산은 군주 간공을 수행하여 진나라에 간 적이 있는데 그들이 체류한 영빈관이 비좁아서 공물을 다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이에 자산은 담을 모조리 허물고는 수레와 말을 모두 안으로 들여놨는데,노나라 양공이 죽어 진의 군주를 못만나고 밖에 있는 진상품을 한 데에 놓으면 이슬을 맞고 썩을 수가 있기에 할 수없이 담을 무너뜨리고 습기와 좀으로 인해 대국에게 죄를 더할까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수시로 들락거리는 도둑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높은 담을 쳐놓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자산은 소극적으로 기민성과 재치를 발휘하여 담을 허물고 허문 담을 다시 쌓겠다는 허락을 받고 당당하게 귀국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종들의 거처에 사신들을 맞이하려던 진의 사문백은 정식으로 정나라 사절에게 사과하고 정 간공을 평소보다 후하게 대접했으며 영빈관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그래서 손님 접대를 잘하여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빈지여귀(賓至如歸)'라는 성어가 나왔다고 한다.

 

현대 정치에서도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무조건 따르는 사대주의는 국가의 체모와 자존심,대중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된다.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충분한 예와 도리를 지키며 받을 것은 받아 내고 줄 것은 주는 상호선린 외교정책이 대외정치.외교의 일선에 있는 자들에겐 필요한 덕목이다.또한 국내외 정세 및 상황에 따라 방식을 바꿀 줄 아는 지혜와 용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또한 이론과 행동을 겸비한 자산은 형서를 주조하며 처음의 죄는 용서하되 극악무도한 죄는 발본색원하는 냉철한 법 논리를 견지했다.

 

팔색조의 얼굴을 띤 자산의 정치철학을 통해 인과 자애,엄격함과 관대함,명분과 실리를 균형과 조화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참다운 정경(正卿)상을 보여 주었기에 충분하다.특히 공명정대한 수사와 법의 집행이 뒤떨어진 한국의 현대 정치.검찰계는 자산과 같은 정치행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그것만이 정치후진국에서 정치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이고 요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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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트 - 불확실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힘
팀 하포드 지음, 강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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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회,국가는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내가 잘 났고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더 우위에 있고 내 존재를 위협할 존재가 무수히 많다.그러기에 위기와 실수를 만났을 때엔 반드시 문제점을 점검하고 재정열 한다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살아가면서 불확실적인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가정사,직장 일,상사와의 관계,사회 및 국가의 중대사의 잘못된 결정 등으로 낭패,손해,명예 훼손으로 이어지는데 위기를 극복하고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담론 및 사례가 각분야에 걸쳐 제시되어 있기에 '나'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의 방향성을 시사해 주고 있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08년 불어 닥친 미국발 금융 위기,린든 존슨 대통령의 미군에 의한 베트남 전쟁,부시에 의한 이라크 전쟁,마콘도 시추 사업 등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예를 들어 베트남전 당시 모든 정보를 공식 채널을 통해 소통시키려 했던 린든 존슨의 고집은 미국을 재앙으로 몰고 갔다.이를 계기로 이라크에서 미군은 공식적인 위계가 바람직한 경로를 벗어났을 경우 생존을 위해 그것을 우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페트레이어스는 이병에서부터 최고사령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을 활용했는데 위계가 때론 불필요하고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페트리어스는 실수를 재빨리 수정하고자 하는 조직에게 조직도만큼 최악의 로드맵은 없다는 것을 실감했으며 미군 내부에서 일어난 내부 혁명은 판도를 완전히 전복하고 전쟁을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하며 성공적인 접근법과 전략을 구사해 나갔던 것이다.

 

어댑트(Adapt)는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새로운 대응의 의미를 담고 있다.실수에 반하는 성공적인 적응의 레시피에는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되 일부는 실패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고,생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패하라.실패는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일이니까.일단 실패했을 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발상을 내놓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성향을 극복하고 기득권층의 반대를 무릎써야 하며 생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패한다는 것은 때로 한걸음씩 착실하게 진행하라는 의미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금융 위기에서 보았듯이 살아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실패와 성공의 구분도 묘하며 그릇되고 오만한 리더는 그 구분 자체도 무시할 수도 있고 자기 부정으로 그 구분마저 애매해질 수도 있다.복잡다단한 세상사로 인해 객관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조차 그걸 구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실수는 누구나 범할 수가 있다.다만 실수로부터 얻을 교훈은 공식적인 지휘 체계를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 그것을 뒤집는 것이고 만장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상의하달식의 전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하급 장교들이 상호간 교훈을 얻고 빠르게 변하는 현지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면서 적응해나갈 것을 믿고 탈집중화하는 점이다.앉아서 외부의 일과 정보를 점검하는 오피스형 인물보다는 현지의 정세 및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상세한 상황과 분위기를 터득하는 것이 전쟁과 같은 위기에서 희생과 실수를 최소화할 수가 있다고 보여진다.아무리 전략과 전술이 좋아도 현지의 문화적 이해,현지 지식,도시 환경,전쟁의 끝없는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위기와 실수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이것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 페트레이어스이다.

 

복잡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획일적이고 경직된 조직도에 의한 문제접근과 해결책보다는 우회적인 문제해결과 전사적인 의사소통,반면교사를 수용하는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는 자세가 불확실성 시대에 적응하는 길이기도 하다.때론 '적과의 동침'도 필요하고 앉아서 해결하려는 자세보다는 현장 중심으로 직접 걷고 뛰는 진지한 행동형이 현실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실수를 최소화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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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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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철저한 시장 중심주의이다.집을 나서 한 발을 대딛으면 보이지 않은 세금과 공공요금의 도가니에 얽혀 있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솓으며 서민들의 삶은 늘 제자리 걸음조차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더군다나 선거철만 되면 정치후보자들의 말도 안되는 공약(空約)을 쏟아 내며 정치인으로 뽑히면 그만이고 국민(때론 지역민)들 앞에서 선언한 공약들은 한갖 쓰레기통에 파묻히곤 한다.시장 상황을 보면 물가는 정례적이고 지속적으로 오르며 서민들의 경제적 수입을 초과한 각종 세금,비용은 걷잡을 수가 없기에 정부에 대한 불신,고소득층과 재력이 있는 자들과의 불균형,부조화,사회통합의 난맥을 체감할 수가 있다.따라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표현,사회이분법적인 불균형에 대해 그 간극을 좁히고 사회지도층에 있는 자들이 공직자 비리,고취층 비리 등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해소해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한국 사회분위기나 의식구조의 흐름으로 볼 때엔 정의와 도덕,윤리가 살아있는 깨끗하고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리와 덕의 뜻을 지닌 도덕(morality)는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늘 이해타산과 욕망,수구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특히 정관계에 있는 사회 지도층들은 그들만의 제도와 논리의 잣대로 국민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척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밥그릇 다툼과 권력 연장,재력 유지 등으로 혈안이 되어 있고 대부분의 국민들의 생각과 감정,이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에 당연히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박탈된 상실감,공동체의 도덕적 요소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철학자 롤스의 <정의론>을 보면 그는 개인의 권리,사회계약,평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진전시켰는데 '공리주의의 정의관'을 뛰어 넘는 정치 원칙으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뚜렷이 부각된다.모든 시미니들에게 평등한 기본 자유(언론,결사,종교)를 제공하고 사회에서 가장 못사는 구성원에게 이익을 제공하기 위한 불평등(소득과 부의 불평등)만을 허용하고 있다.롤스는 필요한 경우에만 부유한 사람들을 의료직에 유인하기 위해 의사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해질 수 있다는 차등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며 그의 평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두고 무지와 무능력의 베일 뒤에 있는 사람들이 불평등한 사회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응수하기도 하며 누군가 우연히 갖게 된 재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도덕적 자격을 지녔다는 의미보다는 운이 좋았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재능을 나타낸 자에게 부여하는 포상과 명예는 우수한 미덕에 대한 보상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는 신자본주의를 걷고 있는 모든 나라에 거의 유사하게 적용하고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20세기말이 되면서 권리와 자격에 대한 개인주의적 가치체계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힘을 제공해 주었지만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을 잃었다고 지적하며 공동체적 감각을 상실한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번지는 불만의 기운(정부에 대한 불신,박탈된 상실감,공동체적 도덕적 요소)을 감지하지 못한다.특히 예전보다 더 많은 지적 권리 등을 누리면서도 권한은 박탈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권력과 부의 편중 현상이라고 본다.

 

문명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욕구와 탐욕,욕망은 끝이 안보인다.정치인의 거짓말,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의견,복권과 도박이 공공서비스인가,비도덕적 타락인가? 무전유죄인가? 공정한 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시장중심주의가 시민의식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배아복제 등으로 살펴 본 이 도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문제들을 곰곰히 생각하고 사유를 이끌어 내게 한다.예로부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듯이 이러한 문제들은 한 개인이 풀어낼 수 있기엔 한계가 많다.정치.사회.교육.종교.정치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그 중에 열린 사회,윤리와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한국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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