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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건축 -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
김성홍 지음 / 현암사 / 2011년 11월
평점 :
나의 고교시절,대학시절의 길거리의 건물과 사람이 다니던 길은 그리 높지도 않은 3,4층 건물에 작지만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아나로그 방식의 테입과 레코드,바로 옆은 사람이 사는 2층 양옥층 내지는 단층 가옥이 주가 되었다.밤이 되면 그리 밝지 않지만 행인이 걷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정도의 가로등과 늦게까지 술과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대포집,생맥주,통닭,액세서리,쌀.과일 가게들이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하느라 붐비곤 했다.그 속에는 집과 건물 사이로 작은 골목들이 있고 사람과 수레가 지나갈 정도의 공간에는 이웃간의 따뜻한 인심과 정이 살아 있었다.
그러한 정경들은 어느 덧 과거의 일이 되고 낡고 비좁은 길과 건물들은 재개발과 도시계획에 의해 바둑판마냥 반듯하게 구획정리되고 오밀조밀했던 기와집 건물들은 헐리고 아파트라는 높은 건물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이웃처럼 지내던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어디론가 흩어지고 물질과 기회를 노리고 몰려든 이방인들간의 섞임 현상이 두드러지게 된다.친척이 있어 동대문구 북쪽지역을 가게 되면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었고 일부는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그나마 개발이 안된 곳을 지나치다 보면 20년 이상을 한 곳에서 과일과 튀김장사를 하고 있는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면 참 반갑기 그지 없다.길쪽으로는 상가들이 추녀를 맞대고 상가 뒤로는 오밀조밀하게 사람이 살고 골목 한 켠에선 자리를 잡고 이웃간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드물지만 색다르다.
도시계획과 재개발이라는 명분하에 한 순간에 보금자리를 잃게 되고 원주민들은 어디론가 새 삶을 향해 떠나간다.그곳에 블도저와 포크레인,기중기,철근,일꾼들의 바쁘게 움직이는 건물 만들기가 진행되면서 주위는 새롭게 단장하고 새로운 공간을 이어가기 위해 현대식 장비들의 무심하고 획일적이고 인공 지능에 의해 공기에 맞춰 몇 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진다.겉모양은 비록 위용과 격조를 그럴듯하게 띠고 편리함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밖을 나서면서부터는 일거수일투족이 CCTV에 모든 사람들이 잡히게 되면서 풍요속의 삭막한 정서를 살아가게 된다.또한 대도시는 물론이고 지방의 산골 오지까지도 사람,차가 다니는 길은 거의가 아스팔트로 둔갑되고 자연의 선물인 흙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주거와 상업,문화가 공존하는 중간건축의 장소,공간을 찾기란 대도시에선 쉽지 않다.비근한 예로 나는 업무상 혜화동과 명륜동을 들르게 된다.그곳은 높지 않은 건물과 상가,문화가 살아 숨쉬며 재래시장까지 끼고 있어 내가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을 되찾은 기분이 들때가 많다.연극 공연장과 재래식 시장,작은 슈퍼마켓 등이 아파트,대형마트의 편리함과 대조적으로 정감이 가며 길들도 포도송이마냥 여러 갈래로 뻗혀 있다.음식과 간식 가격도 비교적 싸고 훈훈한 인정을 대표하는 '덤'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그와는 대조적으로 명품 아파트 단지를 내세워 그곳 주민들만 들락거릴 수 있게 신분증과 암호카드가 있는 곳도 발견하게 되는데 외부인의 출입으로 인해 '놀이터' 및 '수다 장소'가 될 우려가 있기에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단속하고 경계한다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반포 레미안퍼스트단지,자이 아파트단지는 유명하다)
참으로 주거의 이방공간이 아닐 수가 없다.
건축사,건축기사사무소,건설사 등이 서로 관련을 맺고 설계,시공,완공,관리를 맡게 되는데 좁은 면적에 다수가 살 방도를 찾다 보니 아파트만한 주거공간이 없었던거 같다.고층의 아파트에 살고 쇼핑은 자동차로 움직이다 보니 길과 사람,건축물의 조화는 불균형을 맞게 된다.걸어서 장을 보고 문화 생활을 충분히 즐기며 이웃간의 정보와 정담을 나누는 문화풍토가 그립기만 하다.수준 높은 중간건축이 도시 깊숙한 곳에 골고루 생겨나고 도시의 구조와 조직을 다시 손질해야 할 때라고 보여진다.끊어진 길을 잇고 좁은 길은 넓히며 공용주차장과 공공시설을 짓고,사업을 관리하고 검증하는 역할로 건축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걸으면서 경제와 문화를 흡수하고 무목적으로 길을 배회해도 괜찮은 곳,모르는 사람끼리 지나치면서 일상의 문화를 공유하는 길이 살아 있는 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수레,자동차,승강기,온라인을 통해 살펴 본 길과 건축,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건물이 주는 화장한 얼굴보다는 도로 이면에 있지만 사람들이 드나들고 환기와 통풍을 통해 살아 숨쉬는 건물들이 있는 주거와 상업,문화가 공존하는 중간건축을 기대해 본다.결국 모든 길과 건물은 사람에 의해 설계되고 완성되지만 누구를 위해 지어지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불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