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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기행 - 깨달음이 있는 여행은 행복하다
정찬주 지음, 유동영.아일선 사진 / 작가정신 / 2015년 5월
평점 :
나는 종교를 갖고 있는 않은 무종교인이다.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다가올 삶에 대한 방향타를 어떻게 진행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왕왕 있다.10,20대 시절에는 모든 일이 생각대로 이루어질 것 같았지만 실상은 나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있으며 치열한 경쟁의 굴레에서 등용(登龍)의 기세를 몰아 입신출세하는 부류들을 보면서 내 생각이 참으로 오만하고 안일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지나간 버린 삶을 거울로 삼아 현재와 미래의 삶만큼은 깨달음과 지혜로 가득차기를 바라고 있다.삶은 시시각각 몰려드는 우연찮은 일들로 가득차 있다.경험과 직관에 의해 쉽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일도 있지만,갈등과 고민의 경계선상에서 헤매는 경우도 왕왕 있다.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은 꼬여 있는 실타래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이다.
예전에는 종교에 대해서 무조건 등을 돌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말았는데,삶의 등반이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비탈진 경사길을 허우적 거리며 기어오를 때 마음 깊은 곳에 진토(塵土)만도 못한 것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나가가는 삶에 있어 무의미하고 공허롭기 짝이 없다는 것을 셀 수 없이 느낀다.내가 비록 어느 종교에 귀의하여 독실하게 믿음을 이어 나가지는 않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불교라는 종교를 접하면서 불교의 정신인 해탈과 구원,자비심에 대해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게다가 작금 중대 질병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는 한편 사후 세계까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불교가 갖는 마음의 수행과 무소유의 정신이 삶을 삶답게 유지시켜 나가는 비결이 아닐까 하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삼국시대(고구려,백제,가야)에 중국 북방과 남방의 불교 문화를 전수하면서 한국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한정된 출가자만의 해탈을 얻는 소승 불교가 서남 아시아권에서 번창했다면,동북 아시아권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지향하는 대승 불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대승 불교의 요체가 아닌가 한다.
근래 테마가 있는 종교 기행과 관련한 도서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가운데,정찬주 작가의 《불국 기행》은 마음으로 귀의하고 싶었던 종교인지라 관심을 갖고 순례 및 답사길에 간접 동참하게 되었다.불교의 성지 인도 북동부 지역의 부탄과 네팔을 거쳐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 그리고 베이징 근교의 오대산 지역의 불교 유적지 및 사찰을 보여 주고 있다.순례지는 부탄,스리랑카,중국 오대산이고 답사는 남인도와 네팔로 분류하고 있다.정찬주 작가는 법정 스님과의 만남과 인연을 실은 《무소유》를 읽었기에 작가가 불교의 정신이 세속인들에게 전하려는 취지와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이번 불국 기행에서도 유감없이 들려 주고 있다.정찬주 작가는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삼소(三少)를 상기하면서 삼소야 말로 무념무상의 극치이면서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말씀인 것 같다.
"입안에는 말이 적어야 하고,마음에는 생각이 적어야 하고,배 속에는 밥이 적어야 한다." -법정 스님-
행복지수 세계 1위인 나라,부탄은 왕조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교육비,병원비가 한푼도 들지 않은 나라로서 스님의 될 수 있는 요건은 20여 년 동안 경(經)을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특별하게 다가오는 점은 '불타는 벼락'으로 불리는 드룩과 쿤리 스님의 남근상은 부탄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또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내려놓고 오체투지로 기도하는 수행자와 신자들의 신심은 가슴 뭉클하기만 하다.힌두교도와 불교도가 섞여 종교의 공존을 이뤄가고 있는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의 정기를 이어 받은 축복받은 땅이다.엊그제 네팔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어 마음으로 심심한 조의(弔意)를 표한다.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하나인 '생사일여'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다만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남아 있어 죽어 화장(火葬)할 때 일반인과 왕족의 시신의 방향이 다르다고 한다.또한 『삼국유사』의 기록에 삼국시대 왕들이 아소카왕을 모델로 삼고 싶어 했다는 기록이 흥미롭기만 하다.
신라 여섯 씨족장과 석탈해(昔脫解)가 떠난 땅,남인도는 힌두교인들이 절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불교 사찰이 잘 보존되어 있다.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왕이 남긴 흔적을 찾는 것이 작가의 주목적이었는데,아소카왕의 전법사가 활동했던 사원터에는 상반신 한쪽이 훼손된 좌불만이 휑뎅그렁하다.석양을 등지고 참배하는 것이 규칙인가 보다.인상적인 부분은 남인도에서 석탈해와 신라 6촌장을 만나게 되는데,석탈해의 고향일 수도 있다는 근거들이 현지인들의 탐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남인도를 떠나 남아시아의 진주,스리랑카의 불교 신자들은 연꽃을 들고 절을 찾는다고 한다.근.현대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에 의한 식민 통치로 인해 스리랑카 불교 사찰들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사원과 대탑(大塔)을 참배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불교문화를 융성시킨 불교 지도자들의 입상,불상,열반상,아난존자는 스리랑카 불교 문화의 유구함을 반증하고 있으며,살아 있는 불교 산실이기도 하다.
불국 기해의 마지막 여정,중국 오대산은 의상대사와 혜초가 순례한 불국토로 널리 알려져 있다.중국도 이젠 종교의 개방과 자유가 이루어져 몇 십년 간 잊혀졌던 불교의 사찰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중국인은 극락세계를 청량성경(淸凉聖境)으로 여기고 있다.대승불교국답게 반야경,화엄경,법화경,금강승 등의 경전을 중심으로 사상적 기반을 확립했다.찬란했던 중국 불교 문화의 유산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운강 석굴,돈황의 막고굴,낙양의 용문 석굴이 중국 3대 석굴이다.그 위용이 너무 웅대하고 근엄하여 참배객들로 하여금 불교의 가르침의 의미와 가치에 압도 당하고 만다.내세와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지이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깊이 침잠되어 있는 무겁고 불필요한 욕망의 탈을 벗어 던지면서 맑고 깨끗한 영혼의 세계를 향해 마음으로 수행해 가는 열린 마음이야말로 지금 내가 깨달은 불교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