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밥상
이상권 지음, 이영균 사진 / 다산책방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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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으면 시골 집 풍경이 선연하게 떠오른다.초가집 전후,좌우가 산으로 둘러 싸인 분지와 같은 산골 마을이었다.사계에 따라 산과 들에 피어 나는 각종 초목들은 일상의 벗이 되어 지친 심신을 달래 주기도 했다.산과 들에 자라나는 갖가지 야생초들 역시 눈에 밟힐 정도로 흔하디 흔한 먹을거리였다.야생초들을 뽑고 자르고 따고 꺾어서 데치고 말리고 삶고 끓여 밥상에 올려 놓았다.그 역할은 주로 할머니 몫이었다.할머니께서는 어린 시절 선대에게 물려 받은 음식 솜씨를 그대로 재구성하는데 맛은 음식점 요리사가 일정하게 내놓는 것처럼 변함이 없었다.그래서 어린 시절 내 혀에 오래도록 달라 붙은 할머니표 음식은 혀와 뇌에 화석과 같이 눌러 붙어 떠나지를 않는다.

 

 

  한국인의 밥상이 간편하고 쉽게 조리할 수 있는 것들로 바뀐지가 꽤 오래 되었다.맞벌이 부부가 늘다 보니 전업주부는 옛말이 되었다.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육아,교육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다.경제력 여건이 허락된다면야 돈으로 뭐든 해결할 수 있겠지만,아이들에겐 엄마가 직접 식재료를 준비해서 다듬고 데치고 볶고 끓여 낸 음식 맛이 인성과 정서 발달에도 커다란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비근한 예로 우리 집은 인스턴트와는 담을 쌓고 있다.대신 몸에 좋은 제철 식재료를 구입하여 직접 손질,칼질하여 원하는 조리 방식으로 음식을 담아 놓으면 식구들 모두가 잘 먹는다.

 

 

 

 

 시골집에서 문 밖 담장 밑에 피어 나던 이름 모를 냉이,고들빼기부터 돌담 사이로 조밀하게 피어 나던 돌나물,밭두둑에 자라던 쑥,달래,부추,원추리,야생팥, 그리고 산 속에는 고사리,취,두릅 등은 내가 보았던 야생초들이다.봄날 할머니께서 일찌감치 허리에 두르는 책보와 큰 보자기,호미 등을 준비하여 산으로 올라간다.그리고 점심 무렵이 되면 산에서 캐고 꺾은 산나물들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들어 오신다.마루에 보자기를 풀고 펼쳐 놓으면 산의 정기인 향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고사리와 두릅,취,알 수도 없는 잡다한 야생초까지 할머니 손으로 꺾어 오신 것이다.할머니께선 점심도 먹을 겨를이 없이 기꺼이 산채들을 하나 하나 분류하여 가마솥에다 물과 함께 집어 넣고 푹 끓이신다.김이 오르고 산채들이 익는 냄새가 나면 큰 국자로 익힌 산채들을 떠서 소쿠리,멍석(덕석)에 깔아 햇빛에 말린다.말린 산채들은 명절에 사용하기도 하고 심심할 때 조물조물 묻혀 내기도 한다.할머니께서 해 주신 야생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할머니표 1등 음식은 고사리국이다.막 따 온 고사리를 된장,조기를 함께 넣고 끓이다 소금,간장,다대기,다진 마늘을 넣어 만든 고사리국은 얼큰하면서 자연의 향이 살아 있어 즐겨 먹었다.할머니표 고사리국은 이젠 먹을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식생활 패턴이 변화하면서 야채,제철 음식보다는 육류,가공 식품,구운 음식,인스턴트,편의점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또한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다 보니 소아와 관련한 질병부터 성인병(대사성)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상하고 있어 식습관,생활 습관 등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인체는 한 가지 영양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골고루 먹는 것이 최상이다.여건상 어렵겠지만 탄수화물,단백질,지방질,칼슘,칼륨,아연,비타민 등의 영양소의 적당한 배합이 중요하다.흙의 정기를 머금고 자라 나는 야생초에는 비료,농약,인공 첨가물 등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아 인체에 유익할 뿐이다.비록 화려하지도 풍성하지도 않은 야생초이지만 야생초로 빚은 음식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는 증표이기도 하다.먹고 살기 힘들었던 선대들은 야생초를 이용하여 다양한 먹거리를 구사했다.지금은 잊혀져 기억 속에만 가물가물한 야생초들의 고향은 내가 돌아 갈 본향이기도 하다.봄부터 겨울까지 선대들이 즐겨 찾고 먹었던 야생초 음식들,이 도서에 잘 실려져 있다.처음 보는 야생초도 있고 식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버렸던 야생초도 있으며 진귀한 야생초(민물김국)도 있다.돌아 가신 할머니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자연과 함께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는 지금도 산과 들로 야생초를 찾으러 나가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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