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까마귀 1
마야 유타카 지음, 하성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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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까마귀는 영물이면서 흉조이기도 하다.티벳과 같은 곳에서는 조장(鳥葬) 풍습이 남아 있어 사체의 살을 뜯어 먹고 남은 유골은 피안의 세계로 돌아가 윤회한다는 것이다.그런데 까마귀는 신화와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조류이면서 한국에서는 흉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구체적인 지식은 없지만 까마귀가 영물(靈物)의 화신으로 전설적인 신령,선인의 대리물로 속세에 나타나 죄를 범한 속인들을 살을 물어 뜯으며 주변 분위기를 음산한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짙은 쥐색을 띤 수천,수백 개의 날카로운 부리,푸르스레하게 빛나는 눈이 일제히 카인에게 쏠렸다.살의,용솟음치는 것처럼 강렬한 광기,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눈알,눈알,눈알 -P6

 

마야 유타카 일본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일본 포탈 사이트에 접속하여 그의 작품을 검색해 보니 편수가 꽤 많았다.마타 유타카의 이번 작품에 대한 일본 독자들도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까마귀가 일본 고사기에 선도(善導)하는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래서인지 일본건국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오가마아마테라스를 비롯한 신화 속의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신화,민간신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사기(古事記)를 읽을 필요가 있다.역사가 시작되기 전 어느 나라든 건국신화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은 일본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선과 악,지배자와 피지배자,봉건적 지배계층 사회의 단면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글의 주인공 카인(珂允)과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은 노도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이야기가 흘러 가고 있다.노도 마을은 가가미가와 강을 끼고 동촌과 서촌으로 나뉘어 영주 및 신령이 촌민들을 다스리고 있다.특히 노도 마을의 신령으로서 선과 악을 다스리며 현인신(現人神)으로 불리는 오카가미(御鏡)는 사람의 모습을 띠고는 있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도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불적처럼 믿고 지니며 신격화하고 있다.하지 말라는 일을 저지르면 부정을 타서 산,강,논밭이 쓸모가 없게 되며,짐승이나 새를 잡으려면 역시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카인은 왜 지도에 없는 마을인 노도에 나타나 까마귀들에게 무참히 살이 찢겨져 나가는 비극을 맞이했을까.카인에게는 남동생 아벨(襾鈴)이 있었는데 아벨이 형수와 가깝게 지내다 그만 그에게 들통이 나서 집을 나오게 되지만 아벨은 죽음으로 변하고 그의 몸 속에서 나온 쪽지를 통해 아벨이 지도상에 없는 마을인 노도에서 몇 달을 지냈다는 것으로,아벨이 왜 이 마을에 나타났는지를 탐문해 나간다.그런 가운데 카인은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카인에 외지인으로서 노도 마을에 나타난 것이 세 번째라고 한다.

 

 게다가 흉흉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오카가미의 아재인 노나가세를 비롯하여 도오오미가 죽어 간다.왜 죽게 되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한쪽에서는 카인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그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왜 동생이 죽었는지 알고 싶어 찾아 오고 까마귀떼로부터 습격의 참변을 당한 몸으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참에,가가미가와를 끼고 동촌과 서촌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라도 한 신령스러운 인물이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메르카토르이다.노도 마을이 오카가미에 의해 정신적으로 지배를 당하고 동촌과 서촌은 살인이냐 자살이냐를 놓고 책임회피를 하며 한쪽 마을에서는 토지문제를 둘러 싸고 시클벅쩍한다.

 

 피리를 잘 부는 세미코 및 그의 혼약자 도오오미,외지인 오쓰코쓰,탐정과 같은 메르카토르 등의 인물과 에도시대의 전통복장 및 전통극 다키기노(薪能),전통 인형 만들기 등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스토리가 흘러 간다.이색적인 것은 아재인 노나가세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오카가미의 주장대로 한다면 사람을 죽인 자는 몸에 반점이 생긴다고 한다.그런데 아무리 갖은 추리와 설전이 오고 가도 의심가는 사람의 몸에는 반점이 생기지를 않는다.절대적인 신으로서 세계의 섭리를 관장하며 하나의 이치를 견지하는 오카가미가 지도에 없는 마을의 정신적 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살,타살 사건이 터지면서 금새 그 마을은 흉흉한 모습으로 반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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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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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대의 흐름은 진보적이어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뒤로 물러서지를 않는다.특히 도시화,산업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도.농간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공동체 생활이 붕괴된 지 꽤 오래 되었다.네모 상자와 같은 아파트 문화가 시대의 사조로 떠오르면서 기회주의자들에 의한 투기와 물질숭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이웃과의 교류,대화,소통은 거의 없다시피하면서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다.가끔은 사람이 그리워지고 옛친구를 만나 회포도 풀고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일본도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의식구조가 예전같지 않지만 한국과는 달리 부모의 가계를 이어가는 습속과 인식이 강한 편이다.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 어느 정도 경제적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될 무렵이면 부모는 이제 늙어 하던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부모와 자식이 암묵적인 합의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식이 가업을 물려 받을 수 있는가를 찬찬히 지켜 본 뒤에 의향을 물어 정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부모의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겠지만 가문을 잇는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부모의 손때가 묻은 가게,사업을 이어 더욱 번성시켜 가문의 영광을 한차원 높여 나가면서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으면서 달콤한 행복감을 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쓰가루 지방은 일본 동북부 아오모리현 서남부에 자리잡고 있다.수려한 하코다산,이와키산을 비롯하여 벚꽃축제와 사과재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쓰가루 지방 히로사키시에서 100여 년간을 내리 모밀국수장사를 하고 있는 오모리 집안 4대 종손인 오모리 요이치와 동향출신으로 사과밭을 재배하는 쓰쓰이 나나미가 고향을 떠나 객지인 도쿄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 가면서 풋풋한 사랑과 인연의 끈을 이어 나간다.광고회사를 잠깐 다니다 현재는 풍선 아트 일을 하고 있는 오모리 요이치,그리고 장래 사진작가가 꿈인 쓰쓰이 나나미는 서로 성격이 정반대이다.차분하고 꼼꼼하며 내성적인 오모리 요이치와 풋풋하고 발랄하며 약간의 내숭을 떠는 쓰쓰이 나나미는 복작대는 도쿄 거리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면서도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한편 오모리 요이치의 증조부인 오모리 겐지는 메이지시대 쓰가루 식당을 개업하고 모밀국수 국물재료 행상을 하던 증조모였던 오모리 도요를 만나던 시절이 까마득한 시절과 같이 시간과 공간적 배경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그뒤로 할아버지는 가업을 잇지 않고 아버지가 잇게 되는데 아버지는 오모리 요이치가 가업을 잇기에는 아직은 이르다는 판단하에 지켜 보기로 한다.그런데 오토바이 배달 중에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고 골든위크(어린이날을 전후하여 치르는 일본의 휴일)고향을 찾아 간다.고향 히로사키에 남아 있던 고교시절의 친구들을 만나고 혼기에 찬 요이치는 자연스레 나나미를 그리워하면서 쓰가루 식당에서 일할 의중을 떠본다.나나미 집안은 시골로 되돌아 오는 것을 반대를 하지만 나나미가 요이치의 옛친구,부모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그러면서 아키오작가는 히로사키의 명물인 히로사키성(城)과 분분히 흩날리며 화려한 색채로 관광객을 끄는 벚꽃 축제(밤 벚꽃 축제,나무배 타기 등)가 끝나면 바로 사과꽃이 피어가는 쓰가루의 풍광과 정취를 서정적으로 그려 주고 있다.

 

 오모리 요이치는 고교시절 쓰가루 식당을 일본 최고로 만들겠다는 각오가 현실로 다가왔다.차분하고 꼼꼼한 요이치와 상냥하고 발랄한 나나미가 행복한 삶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봄날 벚 꽃잎이 머리 위에 날아와 두 사람의 인생에 행복을 오래도록 안겨줄 것이다.모밀국수 레시피(P198 하단)와 사과나무 열매 솎기(P243 중반부) 과정을 잘 소개하고 있다.아버지께서 복숭아,사과밭을 일구던 시절이 있었고 직접 어린 복숭아 열매,어린 사과열매를 솎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리운 추억 속으로 빠져 들게 되어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사람의 향기가 새록새록 돋아나고 사랑과 인연의 끈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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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노예 12년 - 체험판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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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흐름과 표피는 갈수록 힘과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계층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비정규직은 자본가와 정규직의 위세에 눌려 사람다운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렇다고 모두가 부와 권력을 쥘 수는 없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의 불평등,소득의 불평등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해 나간다면 나라의 앞날은 암흑 속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자본가,고용인이 노동자와 피고용인을 헌법 제32조(근로와 관계한 조항)에 준하여 피근로자가 처우를 받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실상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거의 착취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200년 이상의 시대로 되돌아가 당시를 살펴 보면 지금보다 더 노동시장이 더욱 열악했으리라 짐작이 가며,나라마다 노동자에 대한 제도와 시스템은 차이는 있겠지만 자본가가 싼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리며 인권탄압을 밥 먹듯이 자행했던 점은 동일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라는 의분에 치가 떨리게 한다.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매매제도에 의해 사고 파는 제도가 횡행했다는 것은 역사시간을 통해 어렴풋하게 나마 알고 있으며,최근 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을 통해 그 개연성을 충분히 인식했던 바,이번 작품은 노예생활의 현장에서 고용인으로부터 직접 겪었던 시간과 세월을 고발하고 있는 점에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족인 물라토(Mulato)성분으로 기혼자이면서 실직상태에 있던 중 노예매매자들에 의해 감금되어 자신도 모르는 미국 남쪽지방 루이지애나의 한 농장으로 끌려 가게 된다.솔로몬 노섭은 흑인이지만 독서와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는 교양인이기도 했다.그가 1841년부터 1853년 사이 농장에서 있었던 죽을 정도의 학대와 수모를 있는 그대로 털어 놓고 있기에 읽어 가면서 나도 모르게 그 비인간적인 처참한 상황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다.그는 사랑하는 처자식이 있고 자유를 그리워하는 생명력 있는 존재였다.농장 주인으로부터는 일을 잘한다고 몰이꾼으로 내정받게 되어,같은 노예동료들을 채찍질을 해서라도 일의 생산성과 성과를 올리도록 독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농장 주인이 볼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채찍질을 가하지만 현장에 없을 때에는 차마 그럴 수가 없어 채찍을 내리치는 시늉만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단조롭고 암울한 노예생활 속에서도 그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대해 주던 헨리 B. 노섭변호사,타지역 농장주 포드,선원 매닝 등이 있어 예속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그들의 희망섞인 따뜻한 말들이 지옥과 같은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되돌아 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특히 인상적인 것은 1년 365일 가운데 크리스마스 기간중 3일 동안이 노예들에겐 자유시간이었다고 한다.<크리스마스 만찬>은 그들에게 주린 배를 채우고 뛰어 놀기도 하면서 모처럼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었지만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지옥과 같은 형극의 노예생활도 되돌아 가게 된다.모든 것이 노예농장의 주인의 지시,명령이 법이었기에 죽으나 사나 시키는 데로 일정 룰에 의해 복종하는 천민의식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목화,사탕수수,옥수수 등의 경작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해 놓고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1800년대 미국은 주(州)에 따라 노예제도를 수용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주(州)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다만 부당하고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노예들을 착취하면서 인간이하로 대했던 보이지 않는 인권사각지대를 조명할 수 있었던 것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또한 이 글을 읽다 보니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연상이 되었다.두 작품의 내용이 부당하게 노예들을 착취하는 이야기들이 흡사하지만 이 글 만큼은 노예현장에서 악마로부터 겪었던 갖은 수모와 착취를 기억과 묘사를 섞어 리얼하게 전해주고 있어 매우 충격적이다.자유인으로 돌아와 처자식과 해후하고 그간의 못다한 정을 나누었다고 하지만 그의 말년과 죽음에 관한 사항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읽는 내내 아직도 '인권사각지대'에서 신음과 수모를 겪고 있는 이들이 조속히 자유의 몸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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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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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작은 각시,재취 등의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요즘에는 언어순화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째 부인,후처 등으로 사용된다.부부가 살다보면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남은 한쪽은 끝까지 혼자 살아갈 수도 있지만 남은 생을 홀로서는 영위할 수가 없어 부득이 새사람,새삶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혼자 남은 쪽이 여성인 경우라면 예전에는 거의 과부로 살아갔다.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장성하여 손자까지 있는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새로 들이는 경우가 있었다.각설하고 이 글의 작가가 그 유명한 김동리작가의 부인이었고 미망인으로서 함께 살던 시절의 못다한 가슴 속에 묻고 지내왔던 사연들을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일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침중하기만 하고 부인이고 여성으로서 감내해 내야 했던 시절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함이 앞섰다.

 

 김동리작가는 첫째 부인에서 다섯 명의 자제를 두었지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둔 탓에 파경을 맞이하고 둘째 부인을 맞게 된다.둘째 부인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지만 역시 제자와 같이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니 견딜 수가 없어 이혼결심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하지만 결국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서영은작가와 뒤늦게 한지붕 아래에서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다.그런데 나이 차이가 무려 1세대의 차이가 있었기에 사랑으로 맺어졌지만 살가운 정은 어느 한구석에서도 내내 찾을 수가 없었다.둘째 부인이 작고하고 김동리작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의 기간(3년 정도)에 그와 함께 한울타리,한솥밥을 먹던 시절의 사연을 들려 주고 있다.사랑을 강요하고 사랑을 소유하려는 듯한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서영은작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이것이 운명이려니'하고 일찌감치 체념을 하면서 작가의 부인으로서 살아왔던 것으로 보여진다.서영은작가가 고(故)박경리작가의 추천에 의해 김동리작가를 알게 되는데 그녀의 나이 스물 네 살 무렵이었다고 한다.그리고 정식으로 사찰에서 혼인을 맺은 것이 그 뒤로 20여 년이 흐른 뒤이기고 김동리작가는 꽤 노령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물론 서영은작가가 김동리작가와 혼인을 맺기 전에도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대궐 같은 저택이었기에 도우미가 둘이나 있었다.가사일을 전적으로 하는 큰 도우미,김동리작가의 서재를 관리하는 작은 도우미 그리고 뜰에는 감나무,은행나무,잔디밭이 펼쳐지고 서영은작가의 유일한 벗은 애완묘였다.작가로서 명성과 인지도가 높았던 김동리작가는 현역에서 은퇴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단체장에 재직하고 있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출타하는 회수가 많고 원래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는 몰라도 아내 서영은작가와는 살가운 대화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래도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고 사랑에 기대하고 살아가는 생물이 아닐까? 남편 김동리가 아내 서영은에게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라고 했다고 하는데 서영은작가는 처음 사찰에서 혼인식을 올릴 때의 언약을 운명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술자리에서 남편 김동리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다 가진 사람이오,첫째 아내는 자식을 줬고,둘째 아내는 재산을 줬고,셋째 아내(서영은작가)는 사랑을 줬어요." -P232

 

 남편 김동리는 아내 서영은을 엣날 방식 즉 가부장제하에서 보여지는 연애관,사랑법을 부인 서영은에게 강요하는 것 같다.서영은작가는 숨막히는 대저택에서 속에 있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낼 벗이 그리웠고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늦은 시각에 귀가를 하게 된다.특히 남편 김동리는 좋게 말하면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사람이지만 금전지출면에서는 자린고비와 같이 인색하기만 하다.반대로 집안에 도둑이 들어올까봐 새콤과 같은 보안장치를 설치할 때는 거금도 마당하지 않는 통큰 남자였던 것으로 확연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김동리작가는 아내 서영은이 답답한 나머지 당돌하게 내뱉는다."며칠 여행을 했어요."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헤어져보려......고요."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아내 서영은을 죽여서라도 데리고 있겠다는 살의가 담겨진 주먹이 그녀의 면상을 후려 갈겼다.주먹으로 면상을 맞은 아내 서영은은 사랑은 이미 사라지고 둘과의 운명을 확인했다고 한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빈 거실의 어둠침침함과 두껍고 치렁치렁한 커튼,그리고 자바라로 차단된 이 고립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P195

 

 요즘 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부간의 풍경일수도 있지만 서영은작가는 타인 속에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돈,외모,학벌 등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서영은작가가 숨막히게 살아 왔던 시절이 당시에는 죽고 싶을 정도로 또는 헤어지고 싶을 정도로 남편이 싫어지고 몸서리가 쳐졌겠지만 운명적인 사랑이란 순간적인 쾌락과 로맨스를 떠나 서로가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언약을 지켜가는 것이 운명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 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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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이웃의 살인자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2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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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근래 북유럽소설이 강세인 것 같다.타지역권의 소설도 저마다 십인십색의 빛깔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간 북유럽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느꼈던 점은 사건.사고에 따른 수사와 탐문과정이 매우 정밀하다는 것이었다.물론 작가의 문체와 어조에 따라 글의 전개가 차이가 나겠지만 내가 읽었던 이야기들은 혀를 찌르는 색다른 소재와 전개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한 맥락에서 이번에는 덴마크작가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라고 하니 어떠한 소재와 글의 전개가 이어질지 궁금증이 무엇보다 앞서게 되었다.

 

 그런데 사건.사고를 다룬 스릴러물임에는 틀림없는데 덴마크라는 나라가 외국인 이를테면 집시족들에 대한 차별과 국가를 보위한다는 차원에서 대테러에 맞서는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작품이라는 것이 수미일관 관통하게 되었다.오늘날 '국경없는 사회'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는데 외국인에 대한 수용성이 배타적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레네 코베르뮐.아크네테 프리스 두 작가는 테러발생적인 상황과 집시족에 대한 차별성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현실성을 두고 각색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야기의 첫 배경이 구소련이 물러가고 난 뒤의 음산하고 적막감이 감도는 무기류 창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헝가리 집시족인 터마스와 피트킨(후일 샨도르로 칭함)은 삶이 어려웠던지 구소련군이 남기고 갔을 법한 무기류 등을 훔쳐 생계방편으로 삼을려고 한 모양인데 삼엄한 위병소 경계 속에서 헛탕을 치고 만다.둘은 형제로서 형은 괜찮은 집안에 양아들로 들어가 법률공부를 하던 중 동생인 터마스가 형을 찾아와 형이 쓰던 컴퓨터에 들어가 무기류 사이트에 접속을 하게 된다.그런데 무기 사이트에 접속한 것이 경찰의 IP추적에 의해 샨도르는 법률공부마저 접을 수밖에 없고 대학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동생 터마스로 인해 샨도르의 앞날은 먹구름의 연속이 도래되고 만다.

 

 한편 쇠렌이 이끄는 대테러수사국에서는 터마스가 무기 사이트에 접속한 것과 관련하여 샨도르를 심하게 취조하고 희망을 잃고 상실감에 젖어 있는 가운데,적십자사 간호사로 잘 알려진 니나 보르는 백의의 천사처럼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정성껏 간호하기로 유명한데 집시족 소년.소녀들이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리고 그녀마저 전염된 듯 질병으로 앓게 된다.요즘 방사능 노출로 인한 피해가 널리 알려진 가운데 환자들이 속출하게 되면서 대테러수사국은 더욱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게다가 샨도르의 동생 터마스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샨도르는 동생을 찾아 나서게 되지만 그 역시 방사능 노출에 걸리고 만다.이러한 일련의 불길한 조짐이 전(前)시청 공무원이면서 은퇴한 스코우-라르센의 부인 헬레가 구입한 물건이 방사능물질이어서 방사능 물질(염화세슘)이 발견된 발비지역은 초비상 상황에 들어가고 만다.특히 샨도르는 테러와 직접 관련은 없어도 동생 터마스가 무기 사이트에 접속하는 바람에 테러 혐의를 받으면서 이중.삼중으로 고초를 겪게 된다.한편 간호사 니나는 딸 이다가 핀란드 괴한에게 납치되어 린치를 당하게 되고 딸을 찾아간 니나마저 수치스러운 모욕을 당하게 된다.덴마크의 뒷골목 풍경이 처연하게 묘사되어 있어 현장감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덴마크는 1970년대부터 집시족에 대한 차별과 단속을 강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체첸,태국 등지에서 발견된 방사능 물질(염화세슘)의 발견됨에 따라 방사능 물질과 그 노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두 작가들의 날카로운 시사적 감각과 석탄 창고 캠프에서 생활하는 집시족들에 대한 니나 보르 간호사의 따뜻한 보살핌과 정성이 음산하고 공포스러우며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미를 재현해 주고 있는 점이 대조가 된다.샨도르,니나,쇠렌,스코우-라르센식으로 장면이 바뀌어 가는 것도 이 글을 읽는 재미와 상상력,스릴를 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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