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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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작은 각시,재취 등의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요즘에는 언어순화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째 부인,후처 등으로 사용된다.부부가 살다보면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남은 한쪽은 끝까지 혼자 살아갈 수도 있지만 남은 생을 홀로서는 영위할 수가 없어 부득이 새사람,새삶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혼자 남은 쪽이 여성인 경우라면 예전에는 거의 과부로 살아갔다.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장성하여 손자까지 있는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새로 들이는 경우가 있었다.각설하고 이 글의 작가가 그 유명한 김동리작가의 부인이었고 미망인으로서 함께 살던 시절의 못다한 가슴 속에 묻고 지내왔던 사연들을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일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침중하기만 하고 부인이고 여성으로서 감내해 내야 했던 시절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함이 앞섰다.

 

 김동리작가는 첫째 부인에서 다섯 명의 자제를 두었지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둔 탓에 파경을 맞이하고 둘째 부인을 맞게 된다.둘째 부인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지만 역시 제자와 같이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니 견딜 수가 없어 이혼결심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하지만 결국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서영은작가와 뒤늦게 한지붕 아래에서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다.그런데 나이 차이가 무려 1세대의 차이가 있었기에 사랑으로 맺어졌지만 살가운 정은 어느 한구석에서도 내내 찾을 수가 없었다.둘째 부인이 작고하고 김동리작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의 기간(3년 정도)에 그와 함께 한울타리,한솥밥을 먹던 시절의 사연을 들려 주고 있다.사랑을 강요하고 사랑을 소유하려는 듯한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서영은작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이것이 운명이려니'하고 일찌감치 체념을 하면서 작가의 부인으로서 살아왔던 것으로 보여진다.서영은작가가 고(故)박경리작가의 추천에 의해 김동리작가를 알게 되는데 그녀의 나이 스물 네 살 무렵이었다고 한다.그리고 정식으로 사찰에서 혼인을 맺은 것이 그 뒤로 20여 년이 흐른 뒤이기고 김동리작가는 꽤 노령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물론 서영은작가가 김동리작가와 혼인을 맺기 전에도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대궐 같은 저택이었기에 도우미가 둘이나 있었다.가사일을 전적으로 하는 큰 도우미,김동리작가의 서재를 관리하는 작은 도우미 그리고 뜰에는 감나무,은행나무,잔디밭이 펼쳐지고 서영은작가의 유일한 벗은 애완묘였다.작가로서 명성과 인지도가 높았던 김동리작가는 현역에서 은퇴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단체장에 재직하고 있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출타하는 회수가 많고 원래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는 몰라도 아내 서영은작가와는 살가운 대화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그래도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고 사랑에 기대하고 살아가는 생물이 아닐까? 남편 김동리가 아내 서영은에게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라고 했다고 하는데 서영은작가는 처음 사찰에서 혼인식을 올릴 때의 언약을 운명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술자리에서 남편 김동리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다 가진 사람이오,첫째 아내는 자식을 줬고,둘째 아내는 재산을 줬고,셋째 아내(서영은작가)는 사랑을 줬어요." -P232

 

 남편 김동리는 아내 서영은을 엣날 방식 즉 가부장제하에서 보여지는 연애관,사랑법을 부인 서영은에게 강요하는 것 같다.서영은작가는 숨막히는 대저택에서 속에 있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낼 벗이 그리웠고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늦은 시각에 귀가를 하게 된다.특히 남편 김동리는 좋게 말하면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사람이지만 금전지출면에서는 자린고비와 같이 인색하기만 하다.반대로 집안에 도둑이 들어올까봐 새콤과 같은 보안장치를 설치할 때는 거금도 마당하지 않는 통큰 남자였던 것으로 확연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김동리작가는 아내 서영은이 답답한 나머지 당돌하게 내뱉는다."며칠 여행을 했어요."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헤어져보려......고요."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아내 서영은을 죽여서라도 데리고 있겠다는 살의가 담겨진 주먹이 그녀의 면상을 후려 갈겼다.주먹으로 면상을 맞은 아내 서영은은 사랑은 이미 사라지고 둘과의 운명을 확인했다고 한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빈 거실의 어둠침침함과 두껍고 치렁치렁한 커튼,그리고 자바라로 차단된 이 고립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P195

 

 요즘 세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부간의 풍경일수도 있지만 서영은작가는 타인 속에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돈,외모,학벌 등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서영은작가가 숨막히게 살아 왔던 시절이 당시에는 죽고 싶을 정도로 또는 헤어지고 싶을 정도로 남편이 싫어지고 몸서리가 쳐졌겠지만 운명적인 사랑이란 순간적인 쾌락과 로맨스를 떠나 서로가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언약을 지켜가는 것이 운명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 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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