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까마귀 1
마야 유타카 지음, 하성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까마귀는 영물이면서 흉조이기도 하다.티벳과 같은 곳에서는 조장(鳥葬) 풍습이 남아 있어 사체의 살을 뜯어 먹고 남은 유골은 피안의 세계로 돌아가 윤회한다는 것이다.그런데 까마귀는 신화와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조류이면서 한국에서는 흉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구체적인 지식은 없지만 까마귀가 영물(靈物)의 화신으로 전설적인 신령,선인의 대리물로 속세에 나타나 죄를 범한 속인들을 살을 물어 뜯으며 주변 분위기를 음산한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짙은 쥐색을 띤 수천,수백 개의 날카로운 부리,푸르스레하게 빛나는 눈이 일제히 카인에게 쏠렸다.살의,용솟음치는 것처럼 강렬한 광기,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눈알,눈알,눈알 -P6

 

마야 유타카 일본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일본 포탈 사이트에 접속하여 그의 작품을 검색해 보니 편수가 꽤 많았다.마타 유타카의 이번 작품에 대한 일본 독자들도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까마귀가 일본 고사기에 선도(善導)하는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래서인지 일본건국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오가마아마테라스를 비롯한 신화 속의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신화,민간신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사기(古事記)를 읽을 필요가 있다.역사가 시작되기 전 어느 나라든 건국신화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은 일본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선과 악,지배자와 피지배자,봉건적 지배계층 사회의 단면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글의 주인공 카인(珂允)과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은 노도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이야기가 흘러 가고 있다.노도 마을은 가가미가와 강을 끼고 동촌과 서촌으로 나뉘어 영주 및 신령이 촌민들을 다스리고 있다.특히 노도 마을의 신령으로서 선과 악을 다스리며 현인신(現人神)으로 불리는 오카가미(御鏡)는 사람의 모습을 띠고는 있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도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불적처럼 믿고 지니며 신격화하고 있다.하지 말라는 일을 저지르면 부정을 타서 산,강,논밭이 쓸모가 없게 되며,짐승이나 새를 잡으려면 역시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카인은 왜 지도에 없는 마을인 노도에 나타나 까마귀들에게 무참히 살이 찢겨져 나가는 비극을 맞이했을까.카인에게는 남동생 아벨(襾鈴)이 있었는데 아벨이 형수와 가깝게 지내다 그만 그에게 들통이 나서 집을 나오게 되지만 아벨은 죽음으로 변하고 그의 몸 속에서 나온 쪽지를 통해 아벨이 지도상에 없는 마을인 노도에서 몇 달을 지냈다는 것으로,아벨이 왜 이 마을에 나타났는지를 탐문해 나간다.그런 가운데 카인은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카인에 외지인으로서 노도 마을에 나타난 것이 세 번째라고 한다.

 

 게다가 흉흉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오카가미의 아재인 노나가세를 비롯하여 도오오미가 죽어 간다.왜 죽게 되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한쪽에서는 카인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그가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왜 동생이 죽었는지 알고 싶어 찾아 오고 까마귀떼로부터 습격의 참변을 당한 몸으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참에,가가미가와를 끼고 동촌과 서촌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라도 한 신령스러운 인물이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메르카토르이다.노도 마을이 오카가미에 의해 정신적으로 지배를 당하고 동촌과 서촌은 살인이냐 자살이냐를 놓고 책임회피를 하며 한쪽 마을에서는 토지문제를 둘러 싸고 시클벅쩍한다.

 

 피리를 잘 부는 세미코 및 그의 혼약자 도오오미,외지인 오쓰코쓰,탐정과 같은 메르카토르 등의 인물과 에도시대의 전통복장 및 전통극 다키기노(薪能),전통 인형 만들기 등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스토리가 흘러 간다.이색적인 것은 아재인 노나가세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오카가미의 주장대로 한다면 사람을 죽인 자는 몸에 반점이 생긴다고 한다.그런데 아무리 갖은 추리와 설전이 오고 가도 의심가는 사람의 몸에는 반점이 생기지를 않는다.절대적인 신으로서 세계의 섭리를 관장하며 하나의 이치를 견지하는 오카가미가 지도에 없는 마을의 정신적 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살,타살 사건이 터지면서 금새 그 마을은 흉흉한 모습으로 반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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