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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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해로 가약을 맺은 부부도 영원히 함께 할 수가 없다.개인의 명운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같을 수가 없다.부부가 함께 사는 날이 짧든 길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려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그것이 애정과 사랑으로 결합한 부부의 도리이고 삶의 목적이 아니겠는가.부부의 마음이 똑같을 수는 없으나 반하고 끌리고 보고 있어도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추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그런데 결혼은 이상이 아닌 지극히 현실 속에 갇히기에 애정과 사랑의 도수도 많이 내려갈 것이지만 은근한 불꽃마냥 애정과 사랑이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만이 부부가 오래 해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 사회의 젊은 부부들은 개인적이고 자유스러운 풍조하에 스스로 자신의 짝을 찾고 혼인을 결정한다.학벌,신분,자본의 크기에 따라 신혼의 핑크빛은 화려함을 발할 것이다.그런데 외부적인 조건을 충족시켰다 해도 남과 여의 내면에 자리잡은 기질과 성격이 어긋나면서 결혼의 목적이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고 위(爲)하는 마음이 식지 않고 참된 부부상을 보여 주는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다.남과 여의 진정한 사랑은 물질보다 마음상태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나 역시 부부로 살아 가다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날지는 알 수가 없다.내 경우에는 모든 것을 비우고 물질적.정신적 부채를 죽기 전에 탕감하고자 한다.

 

 인간에게 명운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그 길이의 길고 짧음은 알 수가 없겠지만 생로병사라는 말에서 실감하듯 질환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죽음을 목전에 앞두고선 유족에게 남기고 싶은 갖가지 것들을 다 표현하지 못한 채 햇빛 속에 이슬과 같이 삶이 끝나고 말 것이다.그래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단계로서 유족에게 남길 수 있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든지,직접 가족 앞에서 구두로 남기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그것은 물질적,정신적인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읽고 흔치 않은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을 느꼈는데 콜린 오클리의 《비포 아이 고》 역시 매마른 정서를 뒤흔든다.주인공 데이지는 남편 잭과 살아 가는 신혼이다.그녀에게는 말기암 판정과 1년도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남편 잭은 수의학과 대학원생으로 의사자격,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아내가 말기암으로 입원중이니 심란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암 판정을 받게 되면 항암치료,방사선치료,약물 투여 등으로 건강한 세포마저 시들어 간다고 한다.데이지는 자신이 병마와 사투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홀로 남게 되는 남편을 위해 남편에게 어울리는 아내를 물색하고 있다.현실과는 좀 괴리가 있어 보이지만 데이지의 마음씨는 갸륵하기만 하다.암 말기의 환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으로 옮기려고 하는 마음씨가 갸륵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그녀가 남편의 새 아내감으로 생각하는 자질은 정리 잘하기,요리 좋아하기,동물을 좋아하기다.남편 잭의 취향,코드에 어울리도록 구상한 것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남편의 새 대상에 대한 소개를 통해 의문이 증폭되고 남편을 위해 새 아내를 물색하려던 데이지는 마음이 격정적으로 바뀌면서 남편의 새 아내찾기에 대해 후회섞인 탄식을 한다.남편 잭이 상냥하고 사려깊게 행동하는 스타일이고 이에 적합한 대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게다가 데이지는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가.남편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게 해 주려고 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차라리 남편 잭이 병 간호해 줄 때 못다한 것들,후회가 될 만한 것들,저 세상으로 가져 가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담담하고 진실성 있게 털어 놓는 것이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처사가 아닐까.데이지의 배려로 남편 잭은 수의학과 박사학위,의사면허를 취득하게 된다.일은 생각대로 흘러가듯 남편 잭은 새 여인을 만나 그녀를 떠나게 된다.죽기 전 데이지는 남편 잭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데이지가 겪고 있는 암 투병의 고통 속에서 남편 잭에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배려가 남편 잭에게 줄 수 있는 사랑법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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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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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는 늘 이유가 있다.다만,그 이유가 정당한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벤저민 프랭클린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입으로 내뱉는 표현 가운데 '짜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조금만 마음에 안들고 신경에 거슬린다고 짜증,폭발,묻지마 살인과 같이 내면에 갖고 있는 나쁜 감정기제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주먹다짐,폭행,상해치사에 이르기까지감정기제를 다스리지 못해 저지르는 사회적 사건.사고는 결국 분노조절장애에 입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요시다슈이치(吉田修一) 일본 작가가 『분노조절장애』와 관련한 살인 사건을 두고 현실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분노》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야마가미에 초점을 두고 주변인 탐문,행적 뒷조사,과학적 수사를 밀도 있게 그려내기 보다는,이 사건과 관련이 없을 듯한 제3자의 세 팀을 등장시켜 야마가미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과 사건 제보에 따라 수사를 펼치는 경찰들의 다소 김빠지는 수사진행법 등이 씨줄과 날줄을 교차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누구일까를 추리하게 한다.요시다 작가의 전작 《악인》이 전형적인 스릴러물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만천하에 공개한 뒤 색다른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내적 심리,이를테면 등장 인물 가운데 주인공격인 인물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살인 사건과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애매하지만 신경을 건들리는 제보 및 단서가 발견되면 신뢰,애정이 깨지면서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품고 마는 '분노'의식을 그리고 있다.범죄자에 대한 분노,믿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생기는 분노라는 이중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도쿄도(東京都) 위성 도시 하지오지(八王子)시에서 발생한 부부 살해 사건의 주범은 야마가미씨이다.사건 발생 후 1년이 지나가지만 그에 대한 이렇다 할 수사 진척은 보이지를 않는다.야마가미씨는 부부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 써놓은 글자가 '분노'였다.야마가미씨는 유키노리 부부와 무슨 관계였고 어떠한 원한에 쌓여 있었던 것일까.이에 공개수사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일본 전역에 하치오지 부부 살해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게 되고,경찰 수사관인 기타미와 난조가 공조 체계를 유지한다.제보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 오는 것으로 야마가미씨의 인상 착의를 비롯하여 근래 기시감이 있다는 등 다양한 제보를 내놓는다.제보를 받고 제보자의 안내에 따라 주범을 쫒지만 늘 허사다.유키노리 부부 살해 당시 집안의 온도가 40도를 넘는 한증막이었다고 하는데 주범의 행방마저 포착하지 못하는 점이 불볕 더위만큼 답답하기만 하다.

 

 유키노리 부부 살해  사건과 관련 있을 법한 세 팀의 살아가는 모습도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삶의 결핍이 여기 저기에 도사리고 있다.아내를 잃고 어협에 근무하면서 딸과 생활을 하는 요헤이씨,차기 후계자인 사장 아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줄행랑을 치는 이즈미 모녀,그리고 난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성적 소수자인 유마가 등장한다.한편 살인 사건의 제보는 속속 들어 오면서 요헤이,이즈미,유마 쪽으로 경찰의 수사가 이들에게 접근한다.요헤이의 딸 아이코의 절친남 다시로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마음 졸이는 아이코,오갈 데 없는 동성애자인 나오토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 들여 반 년 가까이 생활하다 그가 집을 나가게 되는데 이 사람도 부부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유마의 마음도 들썩들썩하기만 하다.하지만 그는 부부 살해 사건과는 무관하다.빈집털이로 쇠고랑을 차게 생겼다.끝으로 나고야,후쿠오카를 거쳐 먼 남국 오키나와에 보금자리를 튼 이즈미 모녀.딸 이즈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키나와 생활에 잘 적응한다.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남친 다나카,다쓰야 등이 부부 살해 사건과 연루되면서 이즈미의 마음도 고민,동요의 빛이 역력하다.

 

 범인 기타가미의 인상 착의는 특이하다.오른쪽 관자 놀이에 점 세 개가 있고,외꺼풀,장신에 표준 체형을 하고 있다.일찍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던 야마가미는 결손 가정에 부모에게 애정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야마가미는 과연 어느 지역 아래에 몸을 숨기며 살아 가고 있단 말인가.제보자의 제보,살해 사건과 연루되었을 것이라 조마조마했던 사람들은 모두 무혐의로 끝난다.진범인 야마가미는 오키나와에서 한 소년의 칼에 찔려 살해되고,유마의 남친이었던 동성애자 나오토는 심장질환이 재발,우에노 공원 덤불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분노라는 의미가 사회 부조리,모순에 대한 결기가 담겨져 있는가 하면,믿음과 환상이 깨지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의미의 분노가 이 글 전반에 도도하게 채색되어 있다.야마가미 진범이 왜 유키노리 부부를 살해했는지에 대한 동기,의도,사건 당일의 행동 등에 대한 구체적 소명은 없었지만 사랑과 애정이 결핍된 가정,혼자가 되었다는 자포자기 의식 등이 사회에 대한 반감과 은연 중에 자리잡은 분노가 조절되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폭발하지 않았을까.인간의 내면 심리세계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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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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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지 않은 존재를 보통 신(神)이라고 부르며 영계(靈界)세계를 관장하고 있기에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하기까지 한다.또한 내 마음 속의 신적인 존재는 내 자신을 잘 통제.관리하여 일상과 일,관계가 원만하게 진행되어 삶의 궁극인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종교적인 관점에서의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내어 나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그들에게 구원과 내세를 맡긴다고 생각한다.어찌되었든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어 소소한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심리치료사 야콥은 이혼과 경제적 결핍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참에 자칭 신으로 생각하는 사내가 야콥에게 심리 상담을 하러 온다.일이 안될 때에는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이라고 했듯 심리 치료사 야콥은 하루 하루가 고역이고 의미없는 나날이다.심리 상담을 하러 온 사내는 아벨이라는 사내로 일정한 직업이 없이 비정규성을 띠는 서커스 아르바이트로 삶을 꾸려 나간다.그런데 아벨이라는 사내의 얘기를 듣다 보면 듣는 사람이 오히려 정신 이상자로 빠질 정도로 혼란을 야기한다.심리 치료사 야콥은 직업상 또는 현재 처지상 잠자코 들어 주는 것이 최상인듯 아벨의 횡설수설에 가까운 얘기에 불평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다.

 

 한스 라트 독일 작가는 다양한 학문 이력과 직업세계의 전전(轉轉)이 이 작품의 탄생에도 영향을 끼쳤으리라.비록 한 길을 걷는 사람보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 사람은 한 분야에 정치성(精致性)은 떨어져도 다양성을 갖추고 있어 이야기의 구성과 탄력에 묘미를 더해 주리라.신이라 자처하는 아벨의 직업은 셀 수도 없다.의사,비행사,판사,건축가 등 진득하게 살아 오지 않고 풍찬노숙과 같은 삶을 살아 왔던 아벨은 스스로 전지전능한 절대자라고 하면서도 이야기 속에는 '거짓'이라는 냄새가 깊게 배여 있다.나쁘게 말하면 정신병자와도 같다.또한 성스러운 존재로 각인되는 신이 세속인들이 즐기는 노름도 즐긴다고 하니 그는 무엇을 상담하러 심리 치료사를 찾았던 것일까.심리치료사와 신은 둘다 경제적,심리적 결핍을 안고 있는 것이 공통점으로 부각된다.

 

 신에게도 애인과 아들이 있었나 보다.그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뭇사람들에게 경멸을 당하지만 신의 내면은 의외로 순수함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그 점이 심리 치료사 야콥이 신 아벨과 가깝게 되는 계기가 된다.또한 야콥의 남동생이 회사 회계를 보다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야콥 집안은 초상집으로 변한다.남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야콥의 어머니와 애인은 말그대로 좌불안석이다.신의 기적이 이럴 때 사용하는가 보다.신 아벨의 조력으로 야콥의 집안은 원상을 회복한다.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벨은 심장에 검(劍)이 꽂히면서 심장 허탈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심리 치료사와 신이 만나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금씩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심리 치료사가 신을 마음으로 믿게 되는 시기에 신 아벨은 세상의 모든 일을 내려 놓고 저 세상으로 가고 만다.이런 저런 이야기,에피소드를 통해 둘이 가까워지고 신 아벨은 남들은 어찌되었거나 심리 치료사 야콥에겐 믿음직한 존재로 바뀐다.능청,유머가 뒤섞인 신의 얘기 속에는 인간의 삶과 내면 세계는 다양한 무늬로 아로새겨져 있는 복잡한 생물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게 되면 그것이 바로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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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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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名作)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은 그만한 가치와 이유가 있다.그래서 굶주린 벌들이 꿀을 빨기 위해 꽃가루로 몰려 드는 것처럼 명작에 대한 열기,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가 보다.내 마음 속에도 명작이 꽤 많이 각인되어 있다.그것은 고전이기도 하고 현대에 들어와 선을 보인 작품이기도 하다.책을 읽을 여유가 없을 때에는 명작이라는 개념도 뇌에 저장이 되지 않았는데 책이 좋아지면서 명작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의 수준도 조금씩 향상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오래 전에 눈과 귀를 정신없게 만든 명작이 바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이기도 하다.앵무새 죽이기가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에도 거들떠 보지 않던 내가 이제서야 읽고 읽을 만한 가치와 의미가 충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1960년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퓰리처상 수상,1962년 영화화 되어 아카데미 8개 부분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하퍼 리 작가는 1926년생으로 아직도 건재하다.그녀는 앵무새 죽이기 하나로 일약 스타텀에 오르고 후속작도 거의 내놓지 않다 근간 《파수꾼》이 탄생되어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하퍼리는 다작보다는 소작이되 굵고 짧게 살자는 주의(注意)인가 보다.아무튼 파수꾼이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이고 작가의 성장담,(미국)사회 문제를 파헤치고 있어 주의 깊게 읽어 내려 갔다.바로 유색 인종인 흑인 문제를 둘러 싸고 법정 공방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새삼 인종 문제를 끄집어 내어 사회 문제화한다는 것이 시대 착오적인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아직 치태와 같이 고착되어 뗄 수가 없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州) 메이콤 군(郡)을 공간적 배경으로,시대는 1930년대 및 1955년 사건은 다르지만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것을 직접 목격한 하퍼 리 작가는 이것을 매개로 작품 구성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미국 헌법은 신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규정해 놓았는데 실상은 유럽에서 건너 온 청교도인 후세들이 미국 사회를 주무르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뭐라고 할까.사회적 약자가 정의와 양심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이슈화했다고 하면 무난하리라.또한 이 작품이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혀진 것이라고 한다.그것은 절대 다수인 사회적 약자들이 이 작품을 읽고 느끼는 점은 인간은 돈,명예,권력을 떠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일깨웠다고 생각한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174

 

 이야기는 핀치 가문을 중심으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전반부에서 흘러 가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주인공은 스카웃 소녀이다.예닐곱살의 소녀가 바라 본 기성 세대의 모습,사회 동향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하기도 한다.주인공 소녀는 하퍼 리 작가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변호사 애티커스 아버지,젬 피치 오빠,젝 피치 삼촌,알렉산드라 고모 그리고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가 한 지붕 아래이고 주변엔 래들리 및 몇 명의 아줌마들이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다.전반부에서 주인공 스카웃은 오빠 젬 피치와 함께 휩쓸려 다니면서 이웃과 어른들의 세계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미국 남북전쟁 이후 링컨에 의해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이 되었지만 사회 인습과 구조는 흑인에 대한 냉대가 여전하기만 하다.당시 앨라배마 주에선 흑인 피가 단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 취급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사유로 기소되어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는데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는 흑인 남성을 진실과 정의 차원에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다.그런데 법정에서의 피고와 원고에 대한 답변을 듣다 보니 명명백백 흑인 남성에겐 죄상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배심원(陪審員)들은 아마 백인 위주였는지 흑인 남성에게 유죄의 취지를 건넨다.그리고 원고측은 애티커스 변호사를 못살게 굴면서 정신적 혼란을 야기시킨다.흑인 남성은 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탈옥을 기도하다 총탄에 맞아 죽게 되고 유얼 원고측은 피치 집안을 위협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주인공 스카웃은 오빠 젬과 함께 법정 방청석에 앉아 증인들의 답변을 청취하면서 원고측 백인 여성의 증언은 정황상 일관성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한다.당연 흑인 남성이 앨라배마 아니 미국 사회 전체가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인해,사회적 규범 및 인습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독립 선언문』상 평등 운운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어린 소녀 스카웃이 미국 사회의 부조리,몰상식을 세상에 직접 고소하는 것과 같아 그 반향과 파고는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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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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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직접 겪으면서 더 빠르고 더 편하며 더 풍요로운 세상을 욕망하고 있다.끝없는 인간의 욕망은 도덕과 윤리,이성이라는 관점을 넘어 비상식적이고 허황된 행위로 치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그렇다면 인간이 꿈꾸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삶은 무엇일까.그러한 삶을 누리려면 신이 빚은 태초의 우주를 파괴하면서 지구의 생태계,기후 이상,식량 문제에 심대한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이것을 계속 밀고 나가느냐 아니면 도중에 개념 있는 나라들이 나서서 브레이크를 걸 것이냐가 관건이지만 작금 돈과 자본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에서는 문명의 이기는 날이 갈수록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인간이 문명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때에는 신이 인간을 빚었던 상태로 지냈을 것이다.몸의 가장 중요한 부위만 가린 채 유인원과 같은 생활을 해 나갔을 것이다.인류사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은 없지만 초근목피,물고기,짐승을 채집.수렵하여 부싯돌로 불을 피워 굽고 끓이고 익혀 연명해 갔을 것으로 보인다.나아가 삶의 지혜,문명에 대한 본능 의식이 발현하면서 사람이 동물과 다르게 생존해 나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문명은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하고 있는가.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인간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은 더욱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위협의 존재로 나락하고 있다.이를테면 문명과 지혜가 발달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동체 생활,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은 점점 찾기 힘들게 되었다

 

 올더스 헉슬리 작가의 《멋진 신세계》는 문명 사회와 단절되어 원시인 그대로의 삶을 살아 가는 양상을 재현하고 있다.이 작품이 1932년이 탄생했다고 하는데 현대인이 읽어도 흥미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기에 족한 이야기들이다.즉 인간은 겉모습과 속모습이 있다고 치면 겉모습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과시하기 위해,높은 자아 의식과 계층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겉모습이라고 한다면,모습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생식을 이어가려는 극히 본능적인 행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아담과 이브가 사랑을 나누던 먼 옛날의 얘기와 같이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은 원시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오지 원주민 바깥에서 본 그들의 삶은 전통 대대로 이어져 오는 원시적이고 때로는 야만 행위에 가까울 것이다.원주민들의 삶이 인간적인 것인지,문명 발달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자연의 대재앙을 초래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은 문명 사회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고발하면서 원시인들이 사는 아프리카 오지인들의 삶을 대비시키고 있다.문명 사회에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키나 한 것인지.대여섯살 어린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섹스 교육을 시키고,난자 하나로 셀 수도 없는 정자를 받아 들이는 초극 기괴형태가 문명 사회에 존재한다면 일반인들은 '헉'하고 놀라 자빠질 것이다.이 글이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명사의 하나로 나타났던 것들과 연관지어 인구 문제(멜더스 인구계획)에 대해 국가는 방종하는 것을 풍자하고 있는 꼴이다.전쟁은 수많은 인명 살상과 재산 피해를 안겨 주면서 부흥기를 통해 산업화와 고용창출을 낳기도 한다.어찌되었든 올더스 헉슬리 작가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제하는 부화 본부를 설치하면서 수정(受精)방식을 그럴듯하게 설정하고 있다.그들은 미래의 세계를 장악할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문명 사회에 살던 레니나와 버나드가 아프리카 오지 원주민들의 삶을 관찰해 나간다.비록 원주민들의 생활 양상이 뒤쳐져 있기는 해도 문명의 발달을 위한 생태계 파괴와 같은 행위는 하지 않는다.그래서 문명 사회의 체제를 대항해 투쟁해 나서려고도 한다.마침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지에서 버나드는 친모를 만나게 되지만 친부는 세상을 떠나고 나이 어린 남자와 함께 살아 간다.오지에 사는 존이 문명 사회의 버나드에게 결혼했냐고 질문을 하자 깨뜨릴 수가 없다는 뜻의 '영원히'하고 대꾸한다.그러면서 존은 지금 원시인의 삶을 박차고 지금보다 더 멋진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시간이 흐르면서 원시인과 문명인 사이의 간극은 더욱 좁혀진다.존과 레니나가 황홀할 정도의 사랑를 나누기도 한다.원시인들은 자유,협동정신이 부족한 사회이고 홀로 살아가다시피 하는 폐쇄된 곳이다.그래서 원시인이 더 멋지고 아름답고 자유가 충만한 멋진 신세계를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반면 문명 사회가 실행하고 있는 육욕과 색욕이 난무하는 세계가 과연 유토피아라고 할 수가 있을까.원시인의 삶과 문명 사회의 극단적인 삶의 경계선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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