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분노에는 늘 이유가 있다.다만,그 이유가 정당한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벤저민 프랭클린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입으로 내뱉는 표현 가운데 '짜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조금만 마음에 안들고 신경에 거슬린다고 짜증,폭발,묻지마 살인과 같이 내면에 갖고 있는 나쁜 감정기제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주먹다짐,폭행,상해치사에 이르기까지감정기제를 다스리지 못해 저지르는 사회적 사건.사고는 결국 분노조절장애에 입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요시다슈이치(吉田修一) 일본 작가가 『분노조절장애』와 관련한 살인 사건을 두고 현실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분노》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야마가미에 초점을 두고 주변인 탐문,행적 뒷조사,과학적 수사를 밀도 있게 그려내기 보다는,이 사건과 관련이 없을 듯한 제3자의 세 팀을 등장시켜 야마가미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과 사건 제보에 따라 수사를 펼치는 경찰들의 다소 김빠지는 수사진행법 등이 씨줄과 날줄을 교차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누구일까를 추리하게 한다.요시다 작가의 전작 《악인》이 전형적인 스릴러물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만천하에 공개한 뒤 색다른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내적 심리,이를테면 등장 인물 가운데 주인공격인 인물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살인 사건과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애매하지만 신경을 건들리는 제보 및 단서가 발견되면 신뢰,애정이 깨지면서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품고 마는 '분노'의식을 그리고 있다.범죄자에 대한 분노,믿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생기는 분노라는 이중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도쿄도(東京都) 위성 도시 하지오지(八王子)시에서 발생한 부부 살해 사건의 주범은 야마가미씨이다.사건 발생 후 1년이 지나가지만 그에 대한 이렇다 할 수사 진척은 보이지를 않는다.야마가미씨는 부부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 써놓은 글자가 '분노'였다.야마가미씨는 유키노리 부부와 무슨 관계였고 어떠한 원한에 쌓여 있었던 것일까.이에 공개수사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일본 전역에 하치오지 부부 살해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게 되고,경찰 수사관인 기타미와 난조가 공조 체계를 유지한다.제보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 오는 것으로 야마가미씨의 인상 착의를 비롯하여 근래 기시감이 있다는 등 다양한 제보를 내놓는다.제보를 받고 제보자의 안내에 따라 주범을 쫒지만 늘 허사다.유키노리 부부 살해 당시 집안의 온도가 40도를 넘는 한증막이었다고 하는데 주범의 행방마저 포착하지 못하는 점이 불볕 더위만큼 답답하기만 하다.

 

 유키노리 부부 살해  사건과 관련 있을 법한 세 팀의 살아가는 모습도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삶의 결핍이 여기 저기에 도사리고 있다.아내를 잃고 어협에 근무하면서 딸과 생활을 하는 요헤이씨,차기 후계자인 사장 아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줄행랑을 치는 이즈미 모녀,그리고 난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성적 소수자인 유마가 등장한다.한편 살인 사건의 제보는 속속 들어 오면서 요헤이,이즈미,유마 쪽으로 경찰의 수사가 이들에게 접근한다.요헤이의 딸 아이코의 절친남 다시로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마음 졸이는 아이코,오갈 데 없는 동성애자인 나오토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 들여 반 년 가까이 생활하다 그가 집을 나가게 되는데 이 사람도 부부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유마의 마음도 들썩들썩하기만 하다.하지만 그는 부부 살해 사건과는 무관하다.빈집털이로 쇠고랑을 차게 생겼다.끝으로 나고야,후쿠오카를 거쳐 먼 남국 오키나와에 보금자리를 튼 이즈미 모녀.딸 이즈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키나와 생활에 잘 적응한다.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남친 다나카,다쓰야 등이 부부 살해 사건과 연루되면서 이즈미의 마음도 고민,동요의 빛이 역력하다.

 

 범인 기타가미의 인상 착의는 특이하다.오른쪽 관자 놀이에 점 세 개가 있고,외꺼풀,장신에 표준 체형을 하고 있다.일찍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던 야마가미는 결손 가정에 부모에게 애정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야마가미는 과연 어느 지역 아래에 몸을 숨기며 살아 가고 있단 말인가.제보자의 제보,살해 사건과 연루되었을 것이라 조마조마했던 사람들은 모두 무혐의로 끝난다.진범인 야마가미는 오키나와에서 한 소년의 칼에 찔려 살해되고,유마의 남친이었던 동성애자 나오토는 심장질환이 재발,우에노 공원 덤불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분노라는 의미가 사회 부조리,모순에 대한 결기가 담겨져 있는가 하면,믿음과 환상이 깨지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의미의 분노가 이 글 전반에 도도하게 채색되어 있다.야마가미 진범이 왜 유키노리 부부를 살해했는지에 대한 동기,의도,사건 당일의 행동 등에 대한 구체적 소명은 없었지만 사랑과 애정이 결핍된 가정,혼자가 되었다는 자포자기 의식 등이 사회에 대한 반감과 은연 중에 자리잡은 분노가 조절되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폭발하지 않았을까.인간의 내면 심리세계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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