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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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名作)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은 그만한 가치와 이유가 있다.그래서 굶주린 벌들이 꿀을 빨기 위해 꽃가루로 몰려 드는 것처럼 명작에 대한 열기,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가 보다.내 마음 속에도 명작이 꽤 많이 각인되어 있다.그것은 고전이기도 하고 현대에 들어와 선을 보인 작품이기도 하다.책을 읽을 여유가 없을 때에는 명작이라는 개념도 뇌에 저장이 되지 않았는데 책이 좋아지면서 명작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의 수준도 조금씩 향상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오래 전에 눈과 귀를 정신없게 만든 명작이 바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이기도 하다.앵무새 죽이기가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에도 거들떠 보지 않던 내가 이제서야 읽고 읽을 만한 가치와 의미가 충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1960년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퓰리처상 수상,1962년 영화화 되어 아카데미 8개 부분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하퍼 리 작가는 1926년생으로 아직도 건재하다.그녀는 앵무새 죽이기 하나로 일약 스타텀에 오르고 후속작도 거의 내놓지 않다 근간 《파수꾼》이 탄생되어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하퍼리는 다작보다는 소작이되 굵고 짧게 살자는 주의(注意)인가 보다.아무튼 파수꾼이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이고 작가의 성장담,(미국)사회 문제를 파헤치고 있어 주의 깊게 읽어 내려 갔다.바로 유색 인종인 흑인 문제를 둘러 싸고 법정 공방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새삼 인종 문제를 끄집어 내어 사회 문제화한다는 것이 시대 착오적인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아직 치태와 같이 고착되어 뗄 수가 없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州) 메이콤 군(郡)을 공간적 배경으로,시대는 1930년대 및 1955년 사건은 다르지만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것을 직접 목격한 하퍼 리 작가는 이것을 매개로 작품 구성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미국 헌법은 신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규정해 놓았는데 실상은 유럽에서 건너 온 청교도인 후세들이 미국 사회를 주무르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뭐라고 할까.사회적 약자가 정의와 양심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이슈화했다고 하면 무난하리라.또한 이 작품이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혀진 것이라고 한다.그것은 절대 다수인 사회적 약자들이 이 작품을 읽고 느끼는 점은 인간은 돈,명예,권력을 떠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일깨웠다고 생각한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174

 

 이야기는 핀치 가문을 중심으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전반부에서 흘러 가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주인공은 스카웃 소녀이다.예닐곱살의 소녀가 바라 본 기성 세대의 모습,사회 동향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직접 참여하기도 하기도 한다.주인공 소녀는 하퍼 리 작가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변호사 애티커스 아버지,젬 피치 오빠,젝 피치 삼촌,알렉산드라 고모 그리고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가 한 지붕 아래이고 주변엔 래들리 및 몇 명의 아줌마들이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다.전반부에서 주인공 스카웃은 오빠 젬 피치와 함께 휩쓸려 다니면서 이웃과 어른들의 세계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미국 남북전쟁 이후 링컨에 의해 노예였던 흑인들이 해방이 되었지만 사회 인습과 구조는 흑인에 대한 냉대가 여전하기만 하다.당시 앨라배마 주에선 흑인 피가 단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 취급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사유로 기소되어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는데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는 흑인 남성을 진실과 정의 차원에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다.그런데 법정에서의 피고와 원고에 대한 답변을 듣다 보니 명명백백 흑인 남성에겐 죄상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배심원(陪審員)들은 아마 백인 위주였는지 흑인 남성에게 유죄의 취지를 건넨다.그리고 원고측은 애티커스 변호사를 못살게 굴면서 정신적 혼란을 야기시킨다.흑인 남성은 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탈옥을 기도하다 총탄에 맞아 죽게 되고 유얼 원고측은 피치 집안을 위협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주인공 스카웃은 오빠 젬과 함께 법정 방청석에 앉아 증인들의 답변을 청취하면서 원고측 백인 여성의 증언은 정황상 일관성이 결여되었다고 생각한다.당연 흑인 남성이 앨라배마 아니 미국 사회 전체가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인해,사회적 규범 및 인습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독립 선언문』상 평등 운운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어린 소녀 스카웃이 미국 사회의 부조리,몰상식을 세상에 직접 고소하는 것과 같아 그 반향과 파고는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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