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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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다 보니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상상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에이에프라는 로봇이 주인을 만나 보고 겪는 이야기. 이런 소설을 SF 소설이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SF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느낄 때, 순한 맛 SF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F 소설인 걸 알았다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SF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과학에 대한 상상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말이 안 된다고 느끼는 부분을 많이 보게 된다. 그나마 이 소설처럼 장편인 경우에는 내가 느끼는 빈약한 부분이 많이 메꿔지지만 단편인 경우는 잘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무튼 이 책에 등장하는 클라라는 로봇이다.(이 게 스포는 아니겠지. 나만 몰랐던 거겠지.ㅋㅋ)

마지막에 클라라는 혼자 남는다. 그 장면에서 불현듯 유기견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매장 안에서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태양광을 통해 충전을 하고, 손님으로부터 선택받길 바라는 클라라가 조시를 만나기 전인 소설 초반 부분이 유리창에 강아지를 전시해 놓고 반려동물을 분양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아, 클라라는 반려로봇인가?


반려로봇의 이야기라고 하니 나 같은 사람도 완독할 수 있는 순한 맛 SF 소설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반려동물, 반려 식물처럼 반려로봇이 있는 미래의 이야기라면, 유기 로봇(클라라는 유기는 아니지만)이라는 윤리적인 문제도 발생하는 걸까?(어쩔 수 없는 문과생 ㅋㅋ)

태양광을 통해 연명하는 것 같은(내가 확신을 못해서) 클라라는 아픈 조시를 위해 태양에게 기도를 하는데, 이건 또 뭐지? SF 소설에서 애니미즘인가? 태양한테 기도를 하는 로봇이라니? 로봇이 샤먼인가? 뭐지? 뭐지? ^^;;


아무튼 내 상상력이 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더욱 이 소설을 읽는데 더듬더듬하게 만들었다. 더듬더듬 이야기를 찾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눈치챌 수 있었다.


조시의 어머니는 조시가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클라라를 조시를 대체할 존재로 준비하며 진행하고 있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답을 클라라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P442


아무리 클라라가 조시의 겉모습을 완벽히 재현한다 해도, 사람들이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클라라가 다가갈 수 있을까? 조시는 특별한 존재지만, 그 특별함은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 마음이라...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떠오르면서 일본 문화 특유의 그 마음일까 싶었는데, 내가 가진 지식의 한계로 여기서 의식의 흐름을 멈추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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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장점은 내 결핍으로부터 내 단점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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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4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공감합니다 ^ㅅ^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 P442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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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 속의 전쟁 현대의 고전 9
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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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집중하면서 속독하려고 노력했다.(원래 속독을 못하는 편) 이 책은 전쟁사라고 하기에는 전쟁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유럽 역사를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유럽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고, 매끄럽지 않은 번역체를 견뎌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책이다.


로마 제국 이후 형성된 서유럽의 중세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 역사 안에서 끊이지 않은 전쟁을 역사, 사회와 연결하고 공간을 이동하며 이야기를 전달한다. 중세 시대 기사의 성장으로 빈번했던 기사들의 전쟁과 독일의 란츠크네히트로 대표되는 용병들의 전쟁, 대항해 시대의 상인들의 전쟁, 절대 왕정 때 직업 군인(상비군)의 등장,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전쟁, 제국주의 시대의 제1,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후 세계 곳곳에서 있었던 전쟁으로 한국전쟁, 아랍-이스라엘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까지.


에필로그를 보면 마이클 하워드는 전쟁과 사회의 관계를 통해 역사에 대한 반성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폭력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찾아내고자 하는 연구 의지를 표명한다.

하지만 조금 의문이 드는 건 유럽의 폭력적인 팽창을 문제라고 인식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산업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이들의 인류애, 사명감, 희생을 모두 제국주의로 몰면 안 된다고 말한다고 한다.(옮긴이 해제) ^^;; 영국 역사학자의 한계인가?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19세기 영국 산업 혁명의 결실(정치 해방과 경제 발전)을 전파하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한 후 '근대화의 빛'으로 이끄는 태도가 필요했다는 이야기......(옮긴이 해제) 백인 우월주의 시각 아니냐고 비판을 하기에는 옮긴이의 해제에 매우 조심스럽게 서술되어 있다. ㅎㅎ 아 그냥 저쪽 동네의 한계겠구나. 나도 누군가의 시선에는 나도 모르는 나의 한계가 드러나겠지 생각한다. 그래도 번역된 역사 책은 번역체가 힘들긴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모르는 지역도 나와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너무 작은 부분에 부들부들하지 않으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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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미술관 -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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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인종학살에 참여한 일부 의사들이 죄과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1948년 세계의사협회에서 수정해 만든 제네바 선언이 지금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입니다.

303쪽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그림은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고흐의 그림을 시작으로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아무래도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인간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나오는 코드도 바로 죽음이다.

머릿니와 옷니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진화생물학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기욤 아폴리네르를 통해 아폴리네르 증후군이란 질병도 알게 되었다. 아폴리네르 증후군이란 뇌의 기능 중 감정 형성을 담당하는 측두엽이 손상되는 질환이라고 한다.

고야의 숱한 그림을 봤지만 <의사 아리에타와 함께 한 자화상>은 처음 본다. 이 그림을 통해 '굿닥터'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저자의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놀라웠다.

오스트리아의 빈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초상화가 있는데, 바로 '씨시황후'이다. 자객에게 칼에 찔린 후 그녀가 입고 있던 코르셋이 지혈 효과가 있었는데 코르셋을 풀면서 심장눌림증에 의해 그녀가 사망한 이야기는 몰입감이 있었다.

전에 읽었던 미술 관련 책에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뒷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하일 브루벨이다. 작품의 주된 소재였던 '데몬'과 신경매독으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 그의 삶이 살포시 오버랩되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병을 조현병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의학적으로 뇌질환에 해당이 되고, 돈키호테가 이 질병에 걸렸을 것이란 이야기도 의사의 시선이었기에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였다.

카인과 아벨, 최초의 슬픔(이브가 아벨의 죽음에서 느낀 감정)에서 시작된 '형제간 경쟁'이 정신의학에서도 다룬 연구주제였다고 한다.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가 겪은 성매개감염병과 그녀가 지원한 <백과전서>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지적인 모습,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안락사를 통해 왜 생명을 살려내야만 하는가란, 당연한 질문에 대한 고찰 역시 인문학을 접하는 재미였다.

'닥터 러브'라 불린 의사, 닥터 포지와 '드레퓌스 사건'에서 양심을 지키려 한 에밀 졸라의 황망한 죽음은 펼친 책을 덮지 못하게 할 정도로 몰입이 되었다.

태초의 악녀라 할 수 있을까, '릴리트'를 통해 사악함도 질병일까? 란 신선한 의문을 가져보았다.

작가이자 의사였던 안톤 체호프와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도 의사의 눈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미술 작품을 좋아하는 의사인 저자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공이 대단하고 나에게 신선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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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1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 이책 찜! 지유님 굿밤♡

지유 2021-07-21 00:49   좋아요 1 | URL
매일 클래식 잘 듣고 있습니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