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이 오랜 기간 심혈을 다해 쓴 책을 하룻밤 만에 읽어버릴 때 간혹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더군다나 몇 년간 감옥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담아낸 책일 때 더욱 그러할 수 있다. 미안스럽게도 <내 청춘의 감옥> 역시 단숨에 소설처럼 읽어버렸다.
나는 1990년대말에 PC통신 나우누리 글마당에 감옥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글마당 제목은 <마른 잎 다시 살아나>였고 부제가 <감옥 안으로의 사색>이었다. 이 연재를 할 때 주변의 주문이 그 글을 읽으면 “나도 감옥에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쓰라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볍게 쓰려 했긴 했지만 ‘진지함 속의 가벼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청춘의 감옥>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1990년대말 주변의 주문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마저도 감옥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이 책은 진지함을 가벼움 속에 담았던 것이다.
이 책은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징역을 다루면서도 가볍고, 사상범 징역이기에 단순히 가벼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가벼움이 일부러 희화시킨 가벼움이 아니다. 그 자체에 철학이 있다. 1980년대 저자는 사람들이 격정적으로 운동가를 부를 때 화음을 넣었다고 한 학번 선배인 김민석씨로부터 점잖은 질타를 받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딱 저자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감옥을 가볍게 묘사하려 한 것이 아니라 감옥을 그렇게 느낀 것이고 느낀 대로 글을 쓴 것이다. 저자는 존 롤스의 사회적 자유주의에 감명을 받았다고 쓰고 있는데, 저자에게 꼬리표를 붙인다면 저자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이념의 철창을 벗어 던지니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사회주의 격자틀로부터 유연해지자 저자의 자유스런 영혼이 드러난 셈이다.
저자를 두 가지로 표현하고 싶다. 하나는 낙관과 긍정의 힘의 소유자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과 자유를 잃지 않는 사회참여자이다. 저자는 징역을 미화시키거나 가볍게 희화시키지 않았다. 그의 철학과 특성을 가지고 징역 이야기를 버무려낸 것이다. 저자가 아닌 어느 누구도 징역을 이렇게 풀어내지 못할 것이다.
시대의 아픔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걸어오면서도 저자는 낙관과 긍정, 낭만과 자유라는 주머니를 흘리지 않았다. 저자는 이 주머니 속에 세상의 어려운 문제, 심오한 문제를 넣고 소화시킨다. 그 주머니를 통해 걸러지면 복잡한 것도 간단하게, 괴로운 것도 즐거운 방법으로 쉽게 쉽게 전환된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주머니 이름은 바로 ‘유쾌’다. 이 주머니를 거쳐 나온다해서 방향이나 색깔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수많은 문제 풀어나가는 방식이 유쾌해진다. 맨 끝에 다시 징역을 간 윤뭐씨를 함께 면회간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껏 웃을 준비를 하고” 면회 준비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복합하고 괴로운 징역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저자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또 다음은 어떤 유쾌한 판을 벌일지 저자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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