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로 불황 뚫는 中企조합]

(1) 한국출판협동조합



책 70만부 오차없이 배포 '출판유통 혁명'
전자주문 시스템 구축…매출15% 늘고 반품률은 감소






한국출판협동조합 출고파트 담당 직원이 바코드 핸드 스캐너로 일선 서점의 주문수량과 출고도서를 검수하고 있다. /임대철 인턴 photo@hankyung.com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정보화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다 경영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정부도 정보화 촉진 차원에서 2001년부터 '업종별 정보화 혁신 클러스터 지원사업'을 실시 중이다. 업종별 협동조합 업무에 알맞은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해 효율적인 공동구매·판매(유통) 등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정부가 총사업비의 80% 정도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불황을 헤쳐가고 있는 주요 조합을 소개한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낡은 이층 건물.50년 역사의 한국출판협동조합(이사장 김중영)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가니 광대한 서가(書架)가 펼쳐진다. "70만부 정도 됩니다. 전국 800여개 출판사들로부터 입고된 책들이지요. 서점에서 주문받은 책들이 여기서 발송됩니다. "(홍승대 전무)

면적이 2000㎡(600평)에 이르는 서가에는 'A-28-02-01'과 같은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출판사·테마·전문서적·신간·베스트셀러 등의 분류에 따라 정돈돼 있는 것.곳곳에서는 주문 도서를 확인하고 출고파트로 책을 옮겨 포장·발송하는 작업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출고파트 직원이 출고작업지시서와 서적에 바코드를 찍으니 컴퓨터에 주문수량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승인이 떨어진다.

출판협동조합은 출판사와 서점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1월 현재 814개 회원 출판사에서 발간된 12만종(70만부)의 책을 전국 600여개 서점으로 배송하는 유통시스템 운영이 조합의 핵심 업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전화,팩스 등 수작업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했던 만큼 조합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어수선했다. 영업부는 하루 종일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매일같이 200여장의 주문용 팩스가 쌓였다.

유성관 전산팀장은 "도서창고가 출판사별로만 분류돼 숙련된 직원이 아니면 어디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알 재간이 없었다"며 "심지어 조합에서 출고된 기록이 없는 서적이 반품되는 사례까지 벌어지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중소기업청이 지원한 '정보화 클러스터 협력사업' 덕분에 가능했다. 출판조합은 이 사업을 통해 2003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2억4000만원을 받는 한편 자체 예산 1억원 등 총 3억4000만원을 들여 '전자문서교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아날로그식 유통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던 출판문화산업이 IT(정보기술)와 접목돼 '디지털 전자주문' 방식을 갖춘 것이다.

출판사와 서점,조합들은 첫 시스템이 가동된 2003년부터 조합의 재고물량이 얼마나 있는지,주문도서가 출고됐는지,미 발송 도서가 무엇인지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생산성도 크게 높아졌다. 실례로 과거 6명이 담당했던 도서주문 분야를 현재는 2명이 맡고 있으며 종전에는 3일 걸렸던 출판대금 지불정산 기간도 4시간으로 대폭 단축됐다.

김중영 이사장은 "정보화 클러스터 사업으로 출판유통에 혁명이 일어난 셈"이라며 "지난해 출판조합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4% 증가했고 주문·배송오차도 줄어 반품률이 6.9%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장수련 은평구 불광문고 과장은 "손님들이 서점에 없는 책을 찾을 때면 일일이 조합에 전화로 요청하거나 팩스 주문을 넣고 며칠씩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 모든 절차가 끝나 업무가 간편해졌다"고 밝혔다.

정기복 한울출판사 부장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서점별,지역별 주문현황을 집계할 수 있어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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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늙은 밤나무의 선물

정용주·시인 《고고춤이나 춥시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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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주·시인 《고고춤이나 춥시다》의 저자
치악산 숲 속 내 움막 마당에는 산밤나무가 하나 있다. 가을에는 야무진 알밤을 마당에 툭툭 던져 놓고, 때로는 깊은 밤 함석 차양에 떨어지며 딱! 하고 소리를 질러 잠든 나를 놀라게도 한다. 이제 깊은 겨울이 오고 밤나무는 한 장 남은 달력의 날짜처럼 몇 개의 잎사귀만을 매달고 바람을 맞는다. 우툴두툴한 껍질에 파인 깊은 주름과 가지를 잘라낸 톱 자국을 몇 군데나 가지고 있는 밤나무는 아침에 방문을 열면 일찍 일어난 노인처럼 마당에 서 있다.

더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나무는 그러나 깊은 겨울을 건너는 동안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먼 곳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일깨워준다. 이 늙은 밤나무에는 딱딱해진 가지마다 알밤을 뱉어낸 쭉정이가 벌어진 목화송이처럼 매달려 있는데 숭숭한 가지 사이로 차가운 구름이 지나가고 때로는 보따리 같은 흰 달이 걸린다. 나는 이것을 그냥 쭉정이라 부르지 않고 쭉정이 꽃이라는 나만의 호칭을 주었다. 밤에는 바삭거리는 눈을 밟으며 새벽에 오줌 누러 나왔다가 고개를 들어 가지에 달려 있는 이 쭉정이 꽃을 올려다본다.
그럴 때 먼 허공에는 수만 평의 메밀꽃밭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 같은 별이 반짝인다. 이것은 겨울 숲의 적막을 건너가는 내게 늙은 밤나무가 주는 선물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삶의 새로운 의미를 하나 더 깨닫는다. 누구에겐가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존재란 없다고 나무는 말한다. 그가 내게 무언가 주지 않아도, 내가 그를 발견하고 느끼며 그에게 감사할 때, 그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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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주
나는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던 강원도 치악산 속에서 산다.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고, 도시에 살던 나는 그들이 떠나간 터로 돌아와 흙집 한 채에 짐을 풀고 토종벌을 키우며 살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여섯 번째의 겨울을 맞는다.

도시에서 가끔 방문자들이 오면 강아지와 두 마리 닭만 어슬렁거리던 작은 마당이 북적거린다. 돌판 위에 삼겹살이 익고 웃음소리는 가랑잎처럼 굴러다닌다. 그들은 해발 700미터에 고적하게 자리 잡은 내 움막에서 보이는 경치에 감탄을 하며 날 부러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꿈을 꾼다. 배낭을 메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오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인데도 굳이 "짐 보따리를 싸서 들어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애들 졸업시키고, 정년퇴직하고, 더 늙기 전에 돈을 모아 땅도 사고 그럴 듯한 집이라도 한 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살아가면서 어느 때가 되어야 자신의 할 일을 다 끝내고 미뤄뒀던 삶을 시작해도 되는 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지금의 모습이 결국은 제 살고 싶은 모습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짧은 방문을 끝내고 어둑해진 산길을 내려가던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떠나온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것들을 갖고 있는 당신들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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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절판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한가지, '유언') "인생이란 번개와 같고 밤바람과 같고 별빛과 같고 새벽과 같으니, 나는 이제 무물(無物)로 돌아가련다. 너희들은 서로 헐뜯고 상하게 하지 마라." - 혜소선사(1054년 입적) <칠장사 기행>편에서-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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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오이시 홋카이도]오색으로 물든 의 맛잔치











신비한 매력의 ‘블랙홀’에 빠지다

‘지금 여러분과 저는 일본 열도에서도 최북단인 홋카이도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홋카이도에서도 그 중심인….’

난생 처음, 아니 신문기자가 된 지 26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방송기자 전용인 ‘오프닝 멘트’(현장보도)를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했다. 장소는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으로 만추지정()이 물씬 풍기던 지난달 중순 삿포로 시내의 오도리 공원 TV타워 앞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일주일간 계속된 크로스 미디어 ‘컬러풀 오이시 홋카이도’ 취재의 첫 작업이었다. 크로스 미디어 제작과정에서 나는 취재기자면서 동시에 방송기자였고 또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

삿포로는 일본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그 하나가 도시의 모습이다. 이곳은 다른 도시와 달리 미국처럼 격자 모양의 바둑판식 도로망을 갖췄다. 그 중심은 오도리 공원. 65∼105m의 폭으로 조성된 녹지공간이 동서로 무려 1.5km나 뻗으며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이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는 남쪽의 상업지구와 북쪽의 관청 은행가로 나뉘어 지금에 이른다. 설계자는 물론 미국인. 1871년 설계 당시 이 공간은 ‘방화선()’이었다. 대화재가 발생해도 불길이 상업지구와 관청가로 서로 옮겨 붙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바둑판식 도로망의 삿포로에서는 주소만 갖고도 쉽게 길을 찾는다. ‘OO 西OO’ 식으로 번지수가 쓰여서다. 그러니 도시의 주축선만 알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남북 축은 삿포로역(북쪽)∼유흥가 스스키노(남쪽)를 잇는 대로, 동서 축은 오도리 공원이다. 이 도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시덴()’이라 불리는 노면전차를 타면 된다. 스스키노와 TV타워 근방을 ‘ㄷ’자로 잇는 도심선로를 따라 운행(편도 30분)되는데 옛 전차여서 운치가 있다. 그냥 무작정 걸으면서 구경하고 싶다면 스스키노∼삿포로역 대로를 따른다. 역 주변에는 고층빌딩의 백화점이 밀집해 있고 스스키노에는 식당과 술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역 근방에 이르면 ‘아카렌가’(붉은 벽돌)라고 불리는 옛 홋카이도 도청이 있다. 삿포로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옛 건물의 시계탑도 근처에 있다.

도중에 아케이드(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을 아치형 지붕으로 덮어 조성한 실내)가 보이거든 잠시 들러보자. ‘다누키고지()’라는 곳인데 겨우내 눈에 덮이는 삿포로에서 눈을 밟지 않고 쇼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상의 거리다. 오도리 공원처럼 동서로 9개 블록(총연장 900m)을 관통한다. 다누키고지에는 명소가 하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신사인데 너구리 모습의 다누키가 그 앞에 서있다. 옆에서 보니 행인들이 다누키 상에 물을 붓고 배를 쓰다듬고 갔다. 이렇게 하면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전설 때문이란다. 유흥가 스스키노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눈치로 알 수 있다. 가장 번화가여서다. 사거리의 한 모퉁이가 뉴욕 5번가를 닮았다. ‘KIRIN’(일본의 4대 맥주 가운데 하나)이라는 영어 로고가 벽 한 면을 장식한 모습 때문인데 자세히 보니 사거리 모퉁이 건물마다 광고판은 일본 4대 맥주에 점령당한 모습이었다. 4대 맥주란 삿포로, 아사히, 산토리 등이다.

사거리에서는 온종일 노래 한 곡이 반복돼 흘러나왔다. ‘도이 도이 홋카이도, 홋카이도∼오∼오∼오, 아이 엠 어 홋카이도 맨’이라는 간단한 가사인데 홋카이도 도민가인 줄 알았다가 크게 실소했다. 알고 보니 파칭코 CM송이어서다. 그 가게에서 흥미있는 구슬치기 기계를 보았다. 용사마(배용준)의 사진으로 치장된 ‘후유 노 소나타’(겨울연가) 테마의 기계였다. 용사마의 인기는 빠찡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행지 홋카이도를 ‘색채’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그런대로 잘 풀렸다. 색채라면 사철의 자연을 두루 동원해야 제대로 표현될 터이다. 그러나 워낙 볼 것, 먹을 것 다양한 곳이다 보니 늦가을∼초겨울의 지금도 그 시도는 잘 통했다.











홋카이도에서 이곳 옥수수를 맛보지 못한 이. 애통할 따름이다. 한입에 쓱 베어 문 입 안으로 왈칵 쏟아지는 달콤한 즙 맛이란. 설탕물에 버금 갈 정도로 달콤하다. 스스키노 거리의 행상에서도 사먹을 수 있다.

라면과 맥주도 홋카이도 노랑의 대표적인 음식과 술이다. 지역마다 독특한 라면이 발달한 일본. 그 라면 천국 일본에서도 삿포로는 ‘미소(일본 된장)라면’의 성지다. 미소라면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1961년 삿포로의 오미야 마모루 씨가 시조다. ‘라멘요코초’(라면 골목)는 삿포로 라면의 명소다. 1951년 ‘고라쿠 라면상점가’로 시작해 57년의 역사가 숨쉬는 삿포로의 ‘피맛골’로 좁은 골목에 자그만 라면식당 16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고 놀랐다. 몇 해 전과 달리 북적거리지 않아서다. 이유는 간단했다. 라면거리가 경쟁적으로 생겨난 탓이었다. 그중 하나가 ‘신라멘요코초’인데 스스키노 근방의 빌딩 반지하에 생겼다. 또 하나는 ‘삿포로 라멘교와코쿠()’였다. 아사히카와의 쇼유(간장)라면, 하코다테의 시오(소금)라면 등 홋카이도 각 지방의 특색 라면을 파는 식당 8개가 한데 모인 ‘라면 콤플렉스’인데 JR삿포로역의 JR타워에 있다.

이 세 곳을 모두 가보았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역시 원조골목 것이 더 당겼다. 내 단골집은 ‘만류’라는 곳이다. 숙주나물을 미소에 살짝 볶은 다음 육수에 말아주는데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의자 아홉 개뿐인 조그만 식당이어서 골목길에 줄을 서서 먹을 때도 많다.

신라멘요코초에서는 ‘모험’을 해보았다. 삿포로 명물인 ‘옥수수 버터라면’에 도전한 것이다. 기름기 도는 돼지고기 육수에 버터 한 덩어리를 넣어 내는데 그 느끼함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미끄러지듯이’의 개그맨 ‘리마리오’를 능가할 정도니 절대로 시키지 말 것.

‘맥주 하면 삿포로, 삿포로 하면 맥주’라 할 만큼 삿포로는 맥주의 도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삿포로맥주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 최초의 맥주가 태어난 곳, 아니 일본의 맥주문화 발상지여서다. 그 탄생연도는 1877년. 홋카이도개척사(使)가 설립(1869년)된 지 8년 만이다. 그 주역은 독일에서 맥주 양조기술을 배워 1876년 귀국한 나카가와 세이베이다. 당시 회사는 가이타쿠시(개발청) 맥주. 1877년 삿포로맥주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별(북극성을 상징)을 달고 시판된 ‘삿포로 라거’가 일본 최초의 맥주다.

그 맥주 맛을 보러 ‘삿포로 비루엔()’을 찾았다. 그곳은 132년 전 삿포로 라거가 태어난 일본 최초의 맥주 공장 옆에 있는 삿포로 가든파크에 있었다. 그 입구에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삼단으로 차곡차곡 쌓은 둥근 나무 술통인데 통마다 한 자씩 글을 써넣어 그 조형물 전체가 한 문장을 이루고 있었다. ‘물과 보리로 만든 술이 맥주다’라고.

이것은 1876년 맥주공장 개업일 당시에 쌓은 것. 그 현장을 보존해둔 것이다. 비루엔에는 맥주와 관련된 시설만 있다. 맥주박물관과 양고기를 맥주와 함께 먹는 칭기즈칸 레스토랑, 삿포로맥주 시음장 등.

박물관에는 나카가와 코너도 있었다. 그는 바이에른 주(주도 뮌헨)에서 맥주 양조기술을 배운 듯했다. 독일 맥주 순수법(맥주는 보리와 호프, 물로만 만든다)을 구현한 삿포로 라거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 법은 지금도 바이에른에서 발효 중이다. 뮌헨은 아다시피 세계적인 맥주축제 ‘옥토버 페스트’의 고장. 축제는 이 법을 제정(1516년)한 빌헬름 4세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비롯됐다.

삿포로비루엔은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근처 삿포로 맥주공장에서 생산된 신선한 생맥주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 맛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간편하기로는 시음장(유료)에서 잔술(200엔)을 사먹는 것인데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권컨대 칭기즈칸 식당을 찾도록. 뜨겁게 달군 무쇠 불판에 야채와 함께 양고기를 구워 맥주와 함께 맛보는 삿포로의 또 다른 명물 먹을거리다. 어린 양을 잡아 특유의 냄새도 전혀 없어 누구든 좋아한다. 게다가 신선한 맥주를 마음껏 들이켤 수 있어 좋다. 또 한 가지 매력은 식당 건물. 붉은 벽돌로 지은 메이지시대의 고건물이다.












홋카이도의 자연은 컬러풀하다. 사시사철이 분명한 데다 산과 바다, 호수와 구릉이 두루 잘 어울린 덕분이다. 거기에다가 개척 초기에 시작된 서구식 낙농과 화훼산업으로 초원을 배경으로 피고 지는 꽃 덕분에 그 빛깔은 화려할 정도다. 한여름 후라노와 비에이의 구릉을 덮는 보랏빛 라벤더, 새 봄 가미유베쓰의 빨간 튤립 꽃밭은 대표적인 예다.

그런 컬러풀 홋카이도 가운데서도 가장 상징적인 색은 빨강이 아닌가 싶다. 사철 홋카이도 어디에서고 볼 수 있어서인데 아카렌가 건물과 게, 그리고 스시식당에서 최고로 치는 홋카이도 산 참치(현지에서는 혼마구로라고 부름)의 붉은 뱃살이 대표선수다.

아카렌가는 홋카이도의 도처에 있다. 삿포로 시내만 해도 홋카이도 옛 도청 아카렌가다. 그러나 여행객에게는 오타루 운하의 낡은 창고만큼 낭만적인 아카렌가가 없을 듯하다.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열차로 30분 거리의 항구도시.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무대로 유명해진 곳이다.

오타루는 19세기 말 개척기에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경제 중심이었다. 당시로서는 배만이 외지와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모든 화물이 오타루 항을 통해 삿포로로 반입됐고 덕분에 결제은행도 모두 오타루에 지점을 냈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건물은 은행 차지다. 19세기 말의 오타루도 마찬가지다. 오타루의 고적한 분위기는 당시 들어선 유럽의 근대식 건물 덕분이다. 운하 역시 그 시대의 유산이다. 기중기가 없던 시절, 운하는 창고에 물건을 부리기 위한 교통로였다.

그 운하와 창고가 지금은 오타루의 매력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낡은 창고는 내부를 고쳐 멋진 쇼핑센터와 카페로 탈바꿈됐다. 운하는 정비돼 산책코스로 거듭났다. 한밤의 운하를 밝히는 것은 가스등. 그 몽연한 불빛에 오타루의 운하와 그 운하 주변의 아카렌가 창고는 더욱 낭만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멋진 분위기에 취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홋카이도 빨강은 향토음식의 상징이기도 하다. 홋카이도 근해산 참치의 붉은 뱃살을 얹은 초밥, 홋카이도의 상징처럼 된 게 요리가 그것이다. 홋카이도 산 참치 뱃살을 얹은 초밥은 도쿄 도심 긴자의 식당에서는 한 점에 5000엔(약 8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오타루에서는 5분의 1 가격이다. ‘스시 쇼쿠닌(초밥 장인)’으로 통하는 나카무라 다카유키 씨의 초밥식당 ‘오타루 마사즈시 본점’에서는 단돈 1080엔(1만7300원)에 맛본다.

오타루 마사즈시 본점은 운하 근처의 ‘스시야토리’에 있었다. 스시야토리란 초밥식당이 모여있는 거리. 나카무라 가문은 3대째 대물림으로 초밥식당을 운영 중인데 홋카이도에만 네 개가 있다. 지난해 나는 그 본점에서 초밥 10개를 즉석 제공하는 2800엔짜리 점심코스로 참치 뱃살 초밥을 맛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초밥 만들기 체험코스에 도전했다. 초밥 네 개를 직접 만들어 맛보는 1시간 코스인데 나카무라 씨의 동생 게이스케 부장이 직접 가르쳤다.

게 요리 시식도 홋카이도 여행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식도락이다. 삿포로에서 가장 유명한 게 요리 전문식당은 ‘가니 쇼군’이다. 거대한 빨간 대게(모형)가 천천히 양발을 움직이는 거리의 간판으로 이름난 곳인데 명성만큼이나 게 요리 역시 특별했다. 게살을 샤부샤부로 살짝 익혀먹거나 숯불구이로 먹도록 했는데 게살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요리였다. 마지막 코스는 샤부샤부 국물에 끓이는 죽. 게살의 풍미가 짙게 느껴지는 기막힌 요리다.

홋카이도 레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최근 삿포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점차 일본 전국에 번져가고 있는 수프카레다. 수프카레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걸쭉한 정통 카레와 달리 카레를 국(수프)으로 끓여내는데 허브와 야채 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를 뼈를 고아 우려낸 진국에 넣는다. 그리고 맛은 20여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카레가루로 낸다.

이런 방식으로 조리하다 보니 수프카레는 그 맛과 모양이 식당마다, 요리사마다 다르다. 내가 찾은 곳은 시내에 있는 바와 식당을 겸한 ‘가라쿠’라는 작은 식당이었다. 수프카레의 베스트셀러라는 ‘닭다리 수프카레’를 시켰는데 그 맛을 우리 음식과 비교해 표현하면 ‘매콤한 카레로 맛을 낸 얼큰한 육개장’이었다. 수프는 밥과 함께 먹는데 가라쿠에서는 오곡밥을 냈다. 카레의 매운맛이 고춧가루의 그것과 다른 차이. 그것은 매운맛이 혀와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진다는 것인데 먹고 나면 몸에 신열이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에는 ‘시간제 뷔페’가 많다. 대개 90분 한정인데 연전에는 게와 술을 마음껏 먹는 곳도 가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자카야 바이킹’이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게와 술을 실컷 맛보았다. ‘이자카야()’는 다양한 안주를 내는 일본식 술집, 바이킹은 ‘뷔페’의 일본식 이름이다.

그곳은 삿포로 시내의 ‘난다’라는 곳. 해물과 쇠고기, 초밥, 옥수수, 쓰케모노(야채절임), 아이스크림을 정해진 시간 동안 술과 함께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식당이었다. 해물과 고기는 테이블의 화덕에서 석쇠 위에 직접 구워 먹는다. 털게와 대게는 찜을 해두고 무한정 제공한다. 술도 일본 술과 맥주, 소주 등 다양하다. 이 식당은 올해 6월 개업해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데 신선한 안주를 싸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은 모기업이 식품만 전문으로 택배 판매하는 TV홈쇼핑 회사여서이다.











‘화이트’야말로 홋카이도의 상징색이다. 흰 눈이 그렇고 청정목장의 우유가 그렇다. 또 그 우유를 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삿포로의 명물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하얀 초콜릿과자 ‘시로이 고이비토’, 그리고 한때 명성 높았던 유제품회사 유키즈리()의 초대형 점보파르페가 그렇다. 이런 달콤한 먹을거리를 삿포로에서는 ‘스위츠’(Sweets)라고 부르는데 삿포로는 요즘 도시 자체를 ‘스위츠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홋카이도의 눈이라면 역시 ‘파우더스노’(Powder snow)로 상징된다. 서양인이 ‘아스피린스노’(눈가루가 아스피린의 하얀 분말처럼 곱다해서 붙인 이름)라고 부르는 눈으로 아무리 뭉쳐도 뭉쳐지지 않을 정도로 습기 없는 건설()을 말한다. 그런 눈 위에서 느끼는 보드라운 스키 감각은 단 한 번의 체험에도 평생을 잊지 못할 정도로 특별하다.

스키장은 홋카이도에 수도 없이 많다. 삿포로와 오타루도 물론이다. 그래서 한겨울이라면 짧은 일정 중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그중 삿포로와 오타루 사이에 있는 온즈 스키장은 한두 시간 잠깐 동안 스키를 즐기려는 여행자에게 좋다. 동네 스키장처럼 보여도 스키 체험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제대로 즐기자면 삿포로 근교의 고쿠사이 혹은 데이네 스키장이 제격이다. 고쿠사이 스키장은 조잔케이 온천에서도 멀지 않다.

‘스위츠 왕국’ 삿포로의 대표선수라면 화이트 초콜릿을 넣은 과자 ‘시로이 고이비토’다. 이 과자의 공장은 정규 관광코스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있는데 영화 ‘찰리의 초콜릿공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곳이다. 공장은 공원처럼 꾸며졌는데 건축 주제는 영국의 고성.

장미를 주제로 꾸민 공원 ‘로즈 가든’의 명물은 매시 정각에 각종 인형이 등장해 벌이는 카니발. 리버티 홀의 카페 티타임에서 하루 두 번 케이크와 쿠키 파이(모두 20종)를 아이스크림 및 음료와 함께 90분간 마음껏 맛보는 케이크 뷔페도 소문났다.

점보파르페(유리잔에 아이스크림을 담고 과일과 과자로 장식한 것)도 삿포로의 명품 스위츠 가운데 하나다. 아이스크림 볼이 무려 15개나 들어간 초대형으로 삿포로역전 거리의 유키지르 팔러에서 맛볼 수 있었다.








일본어로 검은색은 ‘구로()’다. 그런데 삿포로에서만큼은 구로가 곧 ‘삿포로맥주’로 통한다. 홋카이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구로 라베르’(Label)라고 불리는 검은색 레이블의 삿포로 병맥주 때문이다. 삿포로의 ‘구로’는 게서 그치지 않는다. 삿포로맥주의 상징인 ‘별’로까지 이어진다. 그 별은 북방의 상징인 북극성인데 역시 검다.

하지만 나 같은 여행자에게 홋카이도의 블랙은 한밤 야경으로 다가온다. 그중 삿포로 것은 더 특별하다. 평지에 바둑판식으로 설계된 질서정연한 도시가 키 낮은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영롱한 불빛으로 치장되어서다. 고층빌딩 야경에 익숙한 이들에게 삿포로 같은 곳의 밤 풍경은 독특할 수밖에 없다. 한겨울 삿포로 야경은 더더욱 찬란하다. 세상을 덮은 하얀 눈에 그 불빛이 반사되어서다.

나는 한밤에 모이와 산을 찾았다. 정상(531m)의 전망대 아래로 삿포로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반짝이는 불빛은 마치 보석 같았고 때로는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멋졌다. 하코다테, 홍콩의 야경도 훌륭하지만 삿포로도 그에 못지않다. 오도리 공원의 TV타워(90m) 전망대의 야경도 나름대로 운치있다. 한창 일루미네이션(조명장식) 이벤트가 벌어지는 지금부터 유키마쓰리 눈축제(내년 2월 5∼11일) 때까지가 절정이다.

오타루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현란한 야경이 아니다. 붉은 벽돌의 낡은 창고가 줄지은 고즈넉한 운하를 배경으로 가스등의 불빛 아래 붉게 채색된 운치 있는 야경이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혹독하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밤은 길기도 길다. 북위 43도의 고위도 탓으로 오후 3시면 벌써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런 긴긴,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밤을 홋카이도 사람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는 눈 축제인 유키마쓰리(삿포로)와 유키아카리노미치(오타루)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 감동했다. 엄청난 눈과 긴긴 겨울밤, 이 두 재난급 자연현상을 극복한 홋카이도 사람의 번득이는 지혜를 보아서다. 그 핵심은 단순했다. 눈을 주제로 한 두 축제의 진면목이 밤에 드러난다는 사실에 있었다. 한겨울 밤 눈 풍경을 미학으로 승화시킨 기발한 발상과 끈질긴 노력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유키마쓰리의 상징은 설상조각이다. 그리고 그 설상은 밤에 감상해야 제격이다. 그래서 설상조각이 들어서는 오도리 공원은 한밤에 더 붐빈다. 공원에는 설상과 더불어 화이트 일루미네이션(11월 28일∼2월 11일)도 불을 밝혀 삿포로의 밤을 멋지게 장식한다. 온갖 다양한 모습의 조명 불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한겨울 삿포로 도심의 밤. 삿포로는 밤이 아름다운 도시다.

유키아카리노미치의 오타루도 같다. 축제 때가 되면 온통 눈에 파묻히는 오타루의 좁은 골목이 눈을 파내고 그 안에 켜둔 촛불로 장식된다. 가스등 불빛으로 붉게 물드는 운하의 수면도 역시 보석처럼 빛난다. 전구를 밝힌 채로 수면에 띄운 600여 개의 투명한 유리공 덕분이다. 그 운하의 다리 위에서 오타루의 명물인 오르골이 연주하는 달콤한 음악을 감상하며 보내는 한겨울의 긴 밤. 멋진 추억으로 간직해도 좋을 예쁜 순간이다. 축제는 유키마쓰리가 열리는 2월 초 같은 기간에 열린다.











홋카이도에서 파란색이라면 당연히 바다를 지칭할 터. 그러나 섬(홋카이도)에서 바다는 지천. 그러니 게서 바다를 찾는다면 뭔가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내가 홋카이도에서 찾은 그 특별한 바다. 그 바다는 홋카이도 도내에서 최고급 온천 료칸으로 손꼽히는 오타루의 긴린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다.

긴린소는 지금까지 10여 년간 내가 찾아본 일본 전국의 온천 료칸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산자락이 바다를 향해 잦아드는 만()에 깃든 자그만 항구도시 오타루. 긴린소는 그 항구에서 유일하게 해안가로 치솟은 높은 언덕의 정상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오타루의 앞바다는 바로 우리 동해다.

신관 5층의 객실에 들자 통유리창으로 그 바다가 270도 이상, 두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오타루 항과 덴구 산이, 오른 편으로 철길 위로 기차가 달리는 해안선이 뻗어간다. 바다풍경은 로텐부로(노천온천탕)에서도 조망된다. 따뜻한 온천수가 24시간 365일 흘러넘치는 탕에 앉아 잿빛 겨울하늘 아래서 무채색으로 변한 검푸른 동해를 감상하며 즐기는 한겨울의 휴식.

여기에 눈까지 흩날리고, 눈 그친 후 밤하늘에 달까지 뜨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때면 으레 벌어지는 일본인의 풍류놀음이 있다. 노천탕에 몸을 담근 채 그 눈을 맞으며 혹은 그 달을 쳐다보며 따끈한 청주를 마시는 기막힌 이벤트다. 이름하여 유키미자케(), 쓰키미자케()인데 더욱 멋진 것은 술병과 술잔을 노천탕의 물 위에 둥둥 띄워둔 나무쟁반에 올려두고 수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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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전문기자의
살아있는 시승기




홋카이도=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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