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컬러풀 오이시 홋카이도]오색으로 물든 의 맛잔치











신비한 매력의 ‘블랙홀’에 빠지다

‘지금 여러분과 저는 일본 열도에서도 최북단인 홋카이도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홋카이도에서도 그 중심인….’

난생 처음, 아니 신문기자가 된 지 26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방송기자 전용인 ‘오프닝 멘트’(현장보도)를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했다. 장소는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으로 만추지정()이 물씬 풍기던 지난달 중순 삿포로 시내의 오도리 공원 TV타워 앞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일주일간 계속된 크로스 미디어 ‘컬러풀 오이시 홋카이도’ 취재의 첫 작업이었다. 크로스 미디어 제작과정에서 나는 취재기자면서 동시에 방송기자였고 또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

삿포로는 일본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그 하나가 도시의 모습이다. 이곳은 다른 도시와 달리 미국처럼 격자 모양의 바둑판식 도로망을 갖췄다. 그 중심은 오도리 공원. 65∼105m의 폭으로 조성된 녹지공간이 동서로 무려 1.5km나 뻗으며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이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는 남쪽의 상업지구와 북쪽의 관청 은행가로 나뉘어 지금에 이른다. 설계자는 물론 미국인. 1871년 설계 당시 이 공간은 ‘방화선()’이었다. 대화재가 발생해도 불길이 상업지구와 관청가로 서로 옮겨 붙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바둑판식 도로망의 삿포로에서는 주소만 갖고도 쉽게 길을 찾는다. ‘OO 西OO’ 식으로 번지수가 쓰여서다. 그러니 도시의 주축선만 알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남북 축은 삿포로역(북쪽)∼유흥가 스스키노(남쪽)를 잇는 대로, 동서 축은 오도리 공원이다. 이 도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시덴()’이라 불리는 노면전차를 타면 된다. 스스키노와 TV타워 근방을 ‘ㄷ’자로 잇는 도심선로를 따라 운행(편도 30분)되는데 옛 전차여서 운치가 있다. 그냥 무작정 걸으면서 구경하고 싶다면 스스키노∼삿포로역 대로를 따른다. 역 주변에는 고층빌딩의 백화점이 밀집해 있고 스스키노에는 식당과 술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역 근방에 이르면 ‘아카렌가’(붉은 벽돌)라고 불리는 옛 홋카이도 도청이 있다. 삿포로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옛 건물의 시계탑도 근처에 있다.

도중에 아케이드(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을 아치형 지붕으로 덮어 조성한 실내)가 보이거든 잠시 들러보자. ‘다누키고지()’라는 곳인데 겨우내 눈에 덮이는 삿포로에서 눈을 밟지 않고 쇼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상의 거리다. 오도리 공원처럼 동서로 9개 블록(총연장 900m)을 관통한다. 다누키고지에는 명소가 하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신사인데 너구리 모습의 다누키가 그 앞에 서있다. 옆에서 보니 행인들이 다누키 상에 물을 붓고 배를 쓰다듬고 갔다. 이렇게 하면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전설 때문이란다. 유흥가 스스키노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눈치로 알 수 있다. 가장 번화가여서다. 사거리의 한 모퉁이가 뉴욕 5번가를 닮았다. ‘KIRIN’(일본의 4대 맥주 가운데 하나)이라는 영어 로고가 벽 한 면을 장식한 모습 때문인데 자세히 보니 사거리 모퉁이 건물마다 광고판은 일본 4대 맥주에 점령당한 모습이었다. 4대 맥주란 삿포로, 아사히, 산토리 등이다.

사거리에서는 온종일 노래 한 곡이 반복돼 흘러나왔다. ‘도이 도이 홋카이도, 홋카이도∼오∼오∼오, 아이 엠 어 홋카이도 맨’이라는 간단한 가사인데 홋카이도 도민가인 줄 알았다가 크게 실소했다. 알고 보니 파칭코 CM송이어서다. 그 가게에서 흥미있는 구슬치기 기계를 보았다. 용사마(배용준)의 사진으로 치장된 ‘후유 노 소나타’(겨울연가) 테마의 기계였다. 용사마의 인기는 빠찡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행지 홋카이도를 ‘색채’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그런대로 잘 풀렸다. 색채라면 사철의 자연을 두루 동원해야 제대로 표현될 터이다. 그러나 워낙 볼 것, 먹을 것 다양한 곳이다 보니 늦가을∼초겨울의 지금도 그 시도는 잘 통했다.











홋카이도에서 이곳 옥수수를 맛보지 못한 이. 애통할 따름이다. 한입에 쓱 베어 문 입 안으로 왈칵 쏟아지는 달콤한 즙 맛이란. 설탕물에 버금 갈 정도로 달콤하다. 스스키노 거리의 행상에서도 사먹을 수 있다.

라면과 맥주도 홋카이도 노랑의 대표적인 음식과 술이다. 지역마다 독특한 라면이 발달한 일본. 그 라면 천국 일본에서도 삿포로는 ‘미소(일본 된장)라면’의 성지다. 미소라면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1961년 삿포로의 오미야 마모루 씨가 시조다. ‘라멘요코초’(라면 골목)는 삿포로 라면의 명소다. 1951년 ‘고라쿠 라면상점가’로 시작해 57년의 역사가 숨쉬는 삿포로의 ‘피맛골’로 좁은 골목에 자그만 라면식당 16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고 놀랐다. 몇 해 전과 달리 북적거리지 않아서다. 이유는 간단했다. 라면거리가 경쟁적으로 생겨난 탓이었다. 그중 하나가 ‘신라멘요코초’인데 스스키노 근방의 빌딩 반지하에 생겼다. 또 하나는 ‘삿포로 라멘교와코쿠()’였다. 아사히카와의 쇼유(간장)라면, 하코다테의 시오(소금)라면 등 홋카이도 각 지방의 특색 라면을 파는 식당 8개가 한데 모인 ‘라면 콤플렉스’인데 JR삿포로역의 JR타워에 있다.

이 세 곳을 모두 가보았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역시 원조골목 것이 더 당겼다. 내 단골집은 ‘만류’라는 곳이다. 숙주나물을 미소에 살짝 볶은 다음 육수에 말아주는데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의자 아홉 개뿐인 조그만 식당이어서 골목길에 줄을 서서 먹을 때도 많다.

신라멘요코초에서는 ‘모험’을 해보았다. 삿포로 명물인 ‘옥수수 버터라면’에 도전한 것이다. 기름기 도는 돼지고기 육수에 버터 한 덩어리를 넣어 내는데 그 느끼함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미끄러지듯이’의 개그맨 ‘리마리오’를 능가할 정도니 절대로 시키지 말 것.

‘맥주 하면 삿포로, 삿포로 하면 맥주’라 할 만큼 삿포로는 맥주의 도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삿포로맥주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 최초의 맥주가 태어난 곳, 아니 일본의 맥주문화 발상지여서다. 그 탄생연도는 1877년. 홋카이도개척사(使)가 설립(1869년)된 지 8년 만이다. 그 주역은 독일에서 맥주 양조기술을 배워 1876년 귀국한 나카가와 세이베이다. 당시 회사는 가이타쿠시(개발청) 맥주. 1877년 삿포로맥주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별(북극성을 상징)을 달고 시판된 ‘삿포로 라거’가 일본 최초의 맥주다.

그 맥주 맛을 보러 ‘삿포로 비루엔()’을 찾았다. 그곳은 132년 전 삿포로 라거가 태어난 일본 최초의 맥주 공장 옆에 있는 삿포로 가든파크에 있었다. 그 입구에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삼단으로 차곡차곡 쌓은 둥근 나무 술통인데 통마다 한 자씩 글을 써넣어 그 조형물 전체가 한 문장을 이루고 있었다. ‘물과 보리로 만든 술이 맥주다’라고.

이것은 1876년 맥주공장 개업일 당시에 쌓은 것. 그 현장을 보존해둔 것이다. 비루엔에는 맥주와 관련된 시설만 있다. 맥주박물관과 양고기를 맥주와 함께 먹는 칭기즈칸 레스토랑, 삿포로맥주 시음장 등.

박물관에는 나카가와 코너도 있었다. 그는 바이에른 주(주도 뮌헨)에서 맥주 양조기술을 배운 듯했다. 독일 맥주 순수법(맥주는 보리와 호프, 물로만 만든다)을 구현한 삿포로 라거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 법은 지금도 바이에른에서 발효 중이다. 뮌헨은 아다시피 세계적인 맥주축제 ‘옥토버 페스트’의 고장. 축제는 이 법을 제정(1516년)한 빌헬름 4세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비롯됐다.

삿포로비루엔은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근처 삿포로 맥주공장에서 생산된 신선한 생맥주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 맛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간편하기로는 시음장(유료)에서 잔술(200엔)을 사먹는 것인데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권컨대 칭기즈칸 식당을 찾도록. 뜨겁게 달군 무쇠 불판에 야채와 함께 양고기를 구워 맥주와 함께 맛보는 삿포로의 또 다른 명물 먹을거리다. 어린 양을 잡아 특유의 냄새도 전혀 없어 누구든 좋아한다. 게다가 신선한 맥주를 마음껏 들이켤 수 있어 좋다. 또 한 가지 매력은 식당 건물. 붉은 벽돌로 지은 메이지시대의 고건물이다.












홋카이도의 자연은 컬러풀하다. 사시사철이 분명한 데다 산과 바다, 호수와 구릉이 두루 잘 어울린 덕분이다. 거기에다가 개척 초기에 시작된 서구식 낙농과 화훼산업으로 초원을 배경으로 피고 지는 꽃 덕분에 그 빛깔은 화려할 정도다. 한여름 후라노와 비에이의 구릉을 덮는 보랏빛 라벤더, 새 봄 가미유베쓰의 빨간 튤립 꽃밭은 대표적인 예다.

그런 컬러풀 홋카이도 가운데서도 가장 상징적인 색은 빨강이 아닌가 싶다. 사철 홋카이도 어디에서고 볼 수 있어서인데 아카렌가 건물과 게, 그리고 스시식당에서 최고로 치는 홋카이도 산 참치(현지에서는 혼마구로라고 부름)의 붉은 뱃살이 대표선수다.

아카렌가는 홋카이도의 도처에 있다. 삿포로 시내만 해도 홋카이도 옛 도청 아카렌가다. 그러나 여행객에게는 오타루 운하의 낡은 창고만큼 낭만적인 아카렌가가 없을 듯하다.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열차로 30분 거리의 항구도시.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무대로 유명해진 곳이다.

오타루는 19세기 말 개척기에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경제 중심이었다. 당시로서는 배만이 외지와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모든 화물이 오타루 항을 통해 삿포로로 반입됐고 덕분에 결제은행도 모두 오타루에 지점을 냈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건물은 은행 차지다. 19세기 말의 오타루도 마찬가지다. 오타루의 고적한 분위기는 당시 들어선 유럽의 근대식 건물 덕분이다. 운하 역시 그 시대의 유산이다. 기중기가 없던 시절, 운하는 창고에 물건을 부리기 위한 교통로였다.

그 운하와 창고가 지금은 오타루의 매력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낡은 창고는 내부를 고쳐 멋진 쇼핑센터와 카페로 탈바꿈됐다. 운하는 정비돼 산책코스로 거듭났다. 한밤의 운하를 밝히는 것은 가스등. 그 몽연한 불빛에 오타루의 운하와 그 운하 주변의 아카렌가 창고는 더욱 낭만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멋진 분위기에 취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홋카이도 빨강은 향토음식의 상징이기도 하다. 홋카이도 근해산 참치의 붉은 뱃살을 얹은 초밥, 홋카이도의 상징처럼 된 게 요리가 그것이다. 홋카이도 산 참치 뱃살을 얹은 초밥은 도쿄 도심 긴자의 식당에서는 한 점에 5000엔(약 8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오타루에서는 5분의 1 가격이다. ‘스시 쇼쿠닌(초밥 장인)’으로 통하는 나카무라 다카유키 씨의 초밥식당 ‘오타루 마사즈시 본점’에서는 단돈 1080엔(1만7300원)에 맛본다.

오타루 마사즈시 본점은 운하 근처의 ‘스시야토리’에 있었다. 스시야토리란 초밥식당이 모여있는 거리. 나카무라 가문은 3대째 대물림으로 초밥식당을 운영 중인데 홋카이도에만 네 개가 있다. 지난해 나는 그 본점에서 초밥 10개를 즉석 제공하는 2800엔짜리 점심코스로 참치 뱃살 초밥을 맛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초밥 만들기 체험코스에 도전했다. 초밥 네 개를 직접 만들어 맛보는 1시간 코스인데 나카무라 씨의 동생 게이스케 부장이 직접 가르쳤다.

게 요리 시식도 홋카이도 여행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식도락이다. 삿포로에서 가장 유명한 게 요리 전문식당은 ‘가니 쇼군’이다. 거대한 빨간 대게(모형)가 천천히 양발을 움직이는 거리의 간판으로 이름난 곳인데 명성만큼이나 게 요리 역시 특별했다. 게살을 샤부샤부로 살짝 익혀먹거나 숯불구이로 먹도록 했는데 게살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요리였다. 마지막 코스는 샤부샤부 국물에 끓이는 죽. 게살의 풍미가 짙게 느껴지는 기막힌 요리다.

홋카이도 레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최근 삿포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점차 일본 전국에 번져가고 있는 수프카레다. 수프카레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걸쭉한 정통 카레와 달리 카레를 국(수프)으로 끓여내는데 허브와 야채 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를 뼈를 고아 우려낸 진국에 넣는다. 그리고 맛은 20여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카레가루로 낸다.

이런 방식으로 조리하다 보니 수프카레는 그 맛과 모양이 식당마다, 요리사마다 다르다. 내가 찾은 곳은 시내에 있는 바와 식당을 겸한 ‘가라쿠’라는 작은 식당이었다. 수프카레의 베스트셀러라는 ‘닭다리 수프카레’를 시켰는데 그 맛을 우리 음식과 비교해 표현하면 ‘매콤한 카레로 맛을 낸 얼큰한 육개장’이었다. 수프는 밥과 함께 먹는데 가라쿠에서는 오곡밥을 냈다. 카레의 매운맛이 고춧가루의 그것과 다른 차이. 그것은 매운맛이 혀와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진다는 것인데 먹고 나면 몸에 신열이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에는 ‘시간제 뷔페’가 많다. 대개 90분 한정인데 연전에는 게와 술을 마음껏 먹는 곳도 가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자카야 바이킹’이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게와 술을 실컷 맛보았다. ‘이자카야()’는 다양한 안주를 내는 일본식 술집, 바이킹은 ‘뷔페’의 일본식 이름이다.

그곳은 삿포로 시내의 ‘난다’라는 곳. 해물과 쇠고기, 초밥, 옥수수, 쓰케모노(야채절임), 아이스크림을 정해진 시간 동안 술과 함께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식당이었다. 해물과 고기는 테이블의 화덕에서 석쇠 위에 직접 구워 먹는다. 털게와 대게는 찜을 해두고 무한정 제공한다. 술도 일본 술과 맥주, 소주 등 다양하다. 이 식당은 올해 6월 개업해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데 신선한 안주를 싸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은 모기업이 식품만 전문으로 택배 판매하는 TV홈쇼핑 회사여서이다.











‘화이트’야말로 홋카이도의 상징색이다. 흰 눈이 그렇고 청정목장의 우유가 그렇다. 또 그 우유를 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삿포로의 명물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하얀 초콜릿과자 ‘시로이 고이비토’, 그리고 한때 명성 높았던 유제품회사 유키즈리()의 초대형 점보파르페가 그렇다. 이런 달콤한 먹을거리를 삿포로에서는 ‘스위츠’(Sweets)라고 부르는데 삿포로는 요즘 도시 자체를 ‘스위츠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홋카이도의 눈이라면 역시 ‘파우더스노’(Powder snow)로 상징된다. 서양인이 ‘아스피린스노’(눈가루가 아스피린의 하얀 분말처럼 곱다해서 붙인 이름)라고 부르는 눈으로 아무리 뭉쳐도 뭉쳐지지 않을 정도로 습기 없는 건설()을 말한다. 그런 눈 위에서 느끼는 보드라운 스키 감각은 단 한 번의 체험에도 평생을 잊지 못할 정도로 특별하다.

스키장은 홋카이도에 수도 없이 많다. 삿포로와 오타루도 물론이다. 그래서 한겨울이라면 짧은 일정 중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그중 삿포로와 오타루 사이에 있는 온즈 스키장은 한두 시간 잠깐 동안 스키를 즐기려는 여행자에게 좋다. 동네 스키장처럼 보여도 스키 체험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제대로 즐기자면 삿포로 근교의 고쿠사이 혹은 데이네 스키장이 제격이다. 고쿠사이 스키장은 조잔케이 온천에서도 멀지 않다.

‘스위츠 왕국’ 삿포로의 대표선수라면 화이트 초콜릿을 넣은 과자 ‘시로이 고이비토’다. 이 과자의 공장은 정규 관광코스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있는데 영화 ‘찰리의 초콜릿공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곳이다. 공장은 공원처럼 꾸며졌는데 건축 주제는 영국의 고성.

장미를 주제로 꾸민 공원 ‘로즈 가든’의 명물은 매시 정각에 각종 인형이 등장해 벌이는 카니발. 리버티 홀의 카페 티타임에서 하루 두 번 케이크와 쿠키 파이(모두 20종)를 아이스크림 및 음료와 함께 90분간 마음껏 맛보는 케이크 뷔페도 소문났다.

점보파르페(유리잔에 아이스크림을 담고 과일과 과자로 장식한 것)도 삿포로의 명품 스위츠 가운데 하나다. 아이스크림 볼이 무려 15개나 들어간 초대형으로 삿포로역전 거리의 유키지르 팔러에서 맛볼 수 있었다.








일본어로 검은색은 ‘구로()’다. 그런데 삿포로에서만큼은 구로가 곧 ‘삿포로맥주’로 통한다. 홋카이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구로 라베르’(Label)라고 불리는 검은색 레이블의 삿포로 병맥주 때문이다. 삿포로의 ‘구로’는 게서 그치지 않는다. 삿포로맥주의 상징인 ‘별’로까지 이어진다. 그 별은 북방의 상징인 북극성인데 역시 검다.

하지만 나 같은 여행자에게 홋카이도의 블랙은 한밤 야경으로 다가온다. 그중 삿포로 것은 더 특별하다. 평지에 바둑판식으로 설계된 질서정연한 도시가 키 낮은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영롱한 불빛으로 치장되어서다. 고층빌딩 야경에 익숙한 이들에게 삿포로 같은 곳의 밤 풍경은 독특할 수밖에 없다. 한겨울 삿포로 야경은 더더욱 찬란하다. 세상을 덮은 하얀 눈에 그 불빛이 반사되어서다.

나는 한밤에 모이와 산을 찾았다. 정상(531m)의 전망대 아래로 삿포로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반짝이는 불빛은 마치 보석 같았고 때로는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멋졌다. 하코다테, 홍콩의 야경도 훌륭하지만 삿포로도 그에 못지않다. 오도리 공원의 TV타워(90m) 전망대의 야경도 나름대로 운치있다. 한창 일루미네이션(조명장식) 이벤트가 벌어지는 지금부터 유키마쓰리 눈축제(내년 2월 5∼11일) 때까지가 절정이다.

오타루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현란한 야경이 아니다. 붉은 벽돌의 낡은 창고가 줄지은 고즈넉한 운하를 배경으로 가스등의 불빛 아래 붉게 채색된 운치 있는 야경이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혹독하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밤은 길기도 길다. 북위 43도의 고위도 탓으로 오후 3시면 벌써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런 긴긴,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밤을 홋카이도 사람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는 눈 축제인 유키마쓰리(삿포로)와 유키아카리노미치(오타루)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 감동했다. 엄청난 눈과 긴긴 겨울밤, 이 두 재난급 자연현상을 극복한 홋카이도 사람의 번득이는 지혜를 보아서다. 그 핵심은 단순했다. 눈을 주제로 한 두 축제의 진면목이 밤에 드러난다는 사실에 있었다. 한겨울 밤 눈 풍경을 미학으로 승화시킨 기발한 발상과 끈질긴 노력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유키마쓰리의 상징은 설상조각이다. 그리고 그 설상은 밤에 감상해야 제격이다. 그래서 설상조각이 들어서는 오도리 공원은 한밤에 더 붐빈다. 공원에는 설상과 더불어 화이트 일루미네이션(11월 28일∼2월 11일)도 불을 밝혀 삿포로의 밤을 멋지게 장식한다. 온갖 다양한 모습의 조명 불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한겨울 삿포로 도심의 밤. 삿포로는 밤이 아름다운 도시다.

유키아카리노미치의 오타루도 같다. 축제 때가 되면 온통 눈에 파묻히는 오타루의 좁은 골목이 눈을 파내고 그 안에 켜둔 촛불로 장식된다. 가스등 불빛으로 붉게 물드는 운하의 수면도 역시 보석처럼 빛난다. 전구를 밝힌 채로 수면에 띄운 600여 개의 투명한 유리공 덕분이다. 그 운하의 다리 위에서 오타루의 명물인 오르골이 연주하는 달콤한 음악을 감상하며 보내는 한겨울의 긴 밤. 멋진 추억으로 간직해도 좋을 예쁜 순간이다. 축제는 유키마쓰리가 열리는 2월 초 같은 기간에 열린다.











홋카이도에서 파란색이라면 당연히 바다를 지칭할 터. 그러나 섬(홋카이도)에서 바다는 지천. 그러니 게서 바다를 찾는다면 뭔가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내가 홋카이도에서 찾은 그 특별한 바다. 그 바다는 홋카이도 도내에서 최고급 온천 료칸으로 손꼽히는 오타루의 긴린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다.

긴린소는 지금까지 10여 년간 내가 찾아본 일본 전국의 온천 료칸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산자락이 바다를 향해 잦아드는 만()에 깃든 자그만 항구도시 오타루. 긴린소는 그 항구에서 유일하게 해안가로 치솟은 높은 언덕의 정상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오타루의 앞바다는 바로 우리 동해다.

신관 5층의 객실에 들자 통유리창으로 그 바다가 270도 이상, 두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오타루 항과 덴구 산이, 오른 편으로 철길 위로 기차가 달리는 해안선이 뻗어간다. 바다풍경은 로텐부로(노천온천탕)에서도 조망된다. 따뜻한 온천수가 24시간 365일 흘러넘치는 탕에 앉아 잿빛 겨울하늘 아래서 무채색으로 변한 검푸른 동해를 감상하며 즐기는 한겨울의 휴식.

여기에 눈까지 흩날리고, 눈 그친 후 밤하늘에 달까지 뜨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때면 으레 벌어지는 일본인의 풍류놀음이 있다. 노천탕에 몸을 담근 채 그 눈을 맞으며 혹은 그 달을 쳐다보며 따끈한 청주를 마시는 기막힌 이벤트다. 이름하여 유키미자케(), 쓰키미자케()인데 더욱 멋진 것은 술병과 술잔을 노천탕의 물 위에 둥둥 띄워둔 나무쟁반에 올려두고 수작()한다는 것이다.






병원비 100세까지
반복보장 상품출시


자동차전문기자의
살아있는 시승기




홋카이도=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플레져 > 앙코르와트 기행 6 - 똔레삽 호수


벌써 앙코르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나는 앙코르에 점점 더 빠지고 있다. 어젯밤엔 밤을 새워 앙코르 관련 서적을 읽기도 했다.
꿈엔 앙코르에 있거나 앙코르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드라이브를 하는 중에도, 아카시아 향기는 맡는 동안에도 나는 앙코르만 생각한다.
어떡해 ㅠㅠ



반띠아스레이 사원. (여성의 궁전)
앙코르에 대해 막연히 꿈을 꿀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여성을 위한 궁전이라니. 여성을 위한 무엇, 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내가 귀여웠다고나 할까.
므흣~



붉은 사암으로 만든 사원.
둥글고 부드러운 느낌을 '여성' 이라 생각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공통인듯.



오르골처럼 문이 열리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도는 요정이 나타날 것만 같은 앙증맞은 사원.







한옥의 담장처럼 야트막한 담에 둘러쌓인 사원.
당시 여성들은 아주 작은 체구였던 것 같다.
문도, 소품도 자그마하다.
개구리가 폴짝 뛰어다니고 도마뱀은 부조에 붙어 꼼짝을 않는동안 어김없이 스콜이 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룰루오스 초기 유적지)



뚝뚝이 (인력거 혹은 택시) 를 타고 유럽인들이 모인다는 펍스트릿에 갔다.
비닐 장막을 거두고 달리는 순간, 무지 추웠다는.



펍스트릿의 책방.



안젤리나 졸리가 자주 들렀다는 '레드 피아노'




다음날, 똔레삽 호수 가는 길.
운전하는 사람과 배를 정비하는 소년은 부자지간이 아니라 형제지간이라고 한다.
큰 형과 여덟번째 동생쯤 된다고...
두 사람의 검은 의상이 멋스러웠다.
나도 이날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지 ^___^



소년은 우리가 배를 타고 내릴 때 이렇게 말한다.
"머리, 조씸, 하쎄요"

소년은 배를 정비하는 일이 끝나면 맨 뒷자리에 앉아있거나 형 옆에 걸터 앉아 무연한 시선으로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소년은 나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브이를 하라는 주문에 겸손한 브이를 들어보였다.
새우깡처럼 살짝 휜 소년의 손가락.

똔레삽 호수의 수상민족들.
똔레삽 호수의 종착역에 도착하자 밀짚모자를 눌러쓴 베트남 소녀들이
입을 스카프로 가리고 (이를 닦지 않아 냄새가 나므로...) 원숭이 바나나를 내밀었다.
갑자기 배 주위를 둘러싸는 바람에 조금 놀랐다.



웨스턴 바레이 - 거대한 인공 저수지.



와트마이 사원.
와트마이 사원 뜰에는 해골탑이 있다.
1975년 크메르 루즈 대학살 당시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시신들의 유골들이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처형당했다.
잔인하고 잔혹하다. 잔혹하고 잔인하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생각한 것보다 더 잔인했다.
그것은 누구나 '관광'하고 놀라워해야 하는 기념품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위안과 평온속에 잠들어야 하는 영혼이 아닐까.

<진정으로 그 영혼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면 화장을 하고 진혼제를 올린 후 똘슬렝의 마당에 진혼탑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캄보디아. 그것이 오늘의 캄보디아이다 - 유재현,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중에서>

돌아오는 마지막날, 압살라춤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너무나 예쁜 크메르 미녀들. 섬세하고 귀여운 압살라춤.

전날, 친구들과 함께 평양랭면관에 들렀었다.
두번째 만남이라고 우리를 단박에 알아본 ㄱ양과 ㅅ양이 버선발로 튀어나왔다.
막 공연을 마친 ㅅ양 이마에는 오돌도돌 땀방울이 포도송이처럼 매달려있었다.

그냥 막,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고 하면 오바일까.
서늘한 장조의 음성과 억양이 매력적인 북한 처녀들.
함께 찍은 사진을 랭면관 홈피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이하여 나는, 명함 한 장 갖고 오지 않은 것일까.

여행은 끝났다.
말이야 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기약할 수 없는 일.
유적지에 반한 것인지,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반한 것인지,
친구들과 함께 였다는 첫 흥분에서 못 깨어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찾으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조만간 나는 앙코르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 
내 문장으로 탄생한 앙코르가 보고싶다.
천년의 시간이 고여있는 앙코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플레져 > 앙코르와트 기행 5 - 룰루오스 초기 유적지



아침부터 탁발승이 호텔앞에 오셨다.
차에 탄 후에 오셔서... 시주는 마음으로 건네드렸는데 받으셨을라나?



캄보디아 사람들은 버스가 지날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저에요. 알아보시겠어요? ^^

여행에서 돌아와 지인들을 만났다.
캄보디아 사람 같다고 한다... 나, 싱가포르에선 싱가포르 사람 취급 받았고, 홍콩에선 홍콩 사람 취급받았다.
나의 이 무서운 (외모)적응력!



프놈바켄 정상에서.
뒷산보다 조금 더 가파른 정도. 샌들, 스커트는 아니되어요.
앙코르에 와서 등산을 하게 될 줄이야!

멀리 앙코르와트가 보인다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겨??



프놈바켄의 사원을 크로키하는 어떤 여인네.
주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구경해도 여인의 손은 멈춤이 없었다.
좋아. 나도 다음번엔 스케치북과 콘테를 준비하는 거닷!
여인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사진찍는데 지친 탓이다.
그림으로 남겨도 좋을 앙코르.



여기서부터 초기 유적지, 룰루오스.
룰레오 사원.
승려들의 몸에 여자가 닿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랬다가는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며 손에 닿은 여자가 승려를 책임져야 한다고.
책임질 수 없습니다!!



시바신에게 바친 쁘레아꼬사원. 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소 '난디'의 조각상이 있다.
어딜가나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러고보면 사람들 없이 풍경을 꼭 찍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저 사람들의 모습들이 사원의 조각상처럼 보였다.

그러고보니... 소님을 못 찍었다. 나 뭐했지??



비가 내리는 해자. 베꽁사원.
뱀신 나가. 언제 사진 속에 계셨던 거예요!



베꽁사원 - 신들이 살고 있는 메루산의 상징으로 세워진 사원이다.
교복을 입은 캄보디아 아이들이 불쑥 나타나 꽃 한송이를 내민다.
1달러를 내야 교환 가능.



이곳의 계단은 보폭이 넓기는 하지만, 계단과 계단 사이의 높이가 매우 높다.
그당시 왕의 키가 180cm을 넘었는데 왕의 키에 맞춰 만들었다고 한다.
어쩜. 나한테 적당하던걸~

사원 정상에서 바라본 세상.
사자상의 궁둥이가 무척 섹시하다.



풍차같은 야자수.



햇볕에 바나나가 다 녹아내릴 것만 같아.



씨엠립의 거리.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무지 많다.
신호 무시, 자연스러운 역주행, 여럿이 올라타기 등등.
캄보디아에선 오토바이를 조심하세요.



전주관, 이라는 한국식 뷔페식당에서 한껏 폼잡고 ^^;;;;
맛도 좋고 깨끗하고.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다음 코스 전신마사지 (므흣~ ^^V) 를 받을때 살짝 괴로웠다.

캄보디아 청년 꽃돌이 (24세)의 깊은 눈매와 긴 속눈썹에 살짝 반했다. 살짝, 반했다. 다 반한 건 절대로 아니다. 누가 이렇게 내 몸을 구석구석 만졌던가! 어머. 결코 마사지 따위는 받지 않겠다던 나. 하필이면 꽃돌이가... 응큼해지기 시작한 나. 꽃돌이가 말했다. 누나 이뻐요. 그래그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주렴. 무심한척 마사지를 받고 아프면 아야, 소리를 냈다. 그럴때 마다 꽃돌이는 "누나 아파요?" 아니아니. 괜찮아. 그대로 진행하렴. 쭈욱. 꽃돌이의 복부에서 쏟아지던 뜨거운 열기. 너무 뜨거워서 머리카락이 다 타버릴 것만 같았다.

옆에 누운 B에게 "이 친구들 힘들겠다" 말했더니, 꽃돌이 낼롬 대답한다. "아니에요. 괜찮나요." 꽃돌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아, 아름다운 꽃돌이! 꽃돌이의 슬픈 한국어! 캄보디아 아이들의 슬픈 한국어. 우리의 가락이야 한이 서려있어 슬프다고는 생각했지만, 한번도 한국어가, 모국어가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외려 아름답지 않나 말이다. 캄보디아인들의 한국어는 복종과 슬픔과 비위를 거스르지 않음이 서려있었다. 무조건 명령만 하세요, 같은 느낌들. 

자신감을 가지세요. 한국어는 슬픈 언어가 아니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플레져 > 앙코르와트 기행 4 - 앙코르톰으로





현재 앙코르톰은 남문 출입만 가능하다.
양 옆으로 54분씩 108분의 조각상들이 앙코르톰 (왕의 궁전)을 지키고 있다.
일명 우유바다젓기, 를 하고 계시는 포즈인데... 목이 잘린 저 조각상은 아찔하다.
백화 현상이 보이기 시작한 돌. 잔꽃무늬 옷을 입은 것처럼 앙증맞기도 하지만 손으로 만져본 촉감은
이놈! 하는 고함소리가 들릴 것처럼 섬뜩했다.





앙코르톰은 왕이 기거했던 궁전.
담배를 문 저 할아버지가 자리를 뜨기를 10분여 기다렸으나... 안가시더군. 관리인이었나?

코끼리 테라스.



입체적으로 찍으려고 노력했으나 조각상들의 기에 눌려... 낼롬 찍느라고 (찍고 도망치기!)
B의 손이 나와서 컷팅. B야, 그래도 난 너의 따뜻한 손을 좋아한단다.



문둥왕 테라스.
진품은 프놈펜에 있고 이분은 가짜.
옷 하나 걸쳤을 뿐인데... 남달리 보였다.

자야바르만 7세라는 추측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어쩜 한밤중에는 이분이  벌떡 기상하시어 앙코르톰을 산책하실지도 모른다. 덜덜...





스펑나무. 따프롬에 있던 그 나무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고개를 팍 젖혀야 하는데, 스콜이 오기 직전이라 먹구름이 도사리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나의 자세는... 요가를 하지 않았다면, 허리가 유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터.
몸매 자랑도 하고, 사진도 찍고! 푸힛! =3



피메아나카스 신전.
왕이 제사를 지낸 곳으로 여기는 출입 통제구역.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캄보디아인이 눈에 띄었다.
비옷으로 무장하고 신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까만 캄보디아인.
대체 저 사람은 저 신전을 얼마나 사랑하는 것일까. 저기에 두고온 누구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알고보니, 신전을 지키는 관리인이었다 -_-;;



바푸온 사원.
저 중앙에 놓인 계단은 귀족들만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귀족처럼 걷는거다. 우산으로 콕콕 도장찍으며 스카프를 목에 친친 감고 비질비질 땀을 흘리며...
귀족처럼 그렇게 걸었다!

바닥에 널린 돌들은 짓다 만 것. 어디다 올리려 했을까?



요거이 바로 바이욘 사원.
천년동안 기립박수를 보내렵니다.






역시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앙코르의 계단들은 불친절해! 아흑) 사원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천년의 미소를 뵈러 왔습니다. 꾸벅.





크메르인을 닮은 사면상들.
잠깐 이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혼자 남겨졌었는데 등골이 오싹했다.
아아. 어휘가 부족해. 오싹, 소름, 공포, 두려움... 이런 거 말고 또 없나?
나의 썩소는 어찌할꼬...
저 얼굴과 닮은 local guide 는 캄보디아에서 제일 잘생긴 훈남이었다.
키도 크고, 친절하고, 멋있고. 그애가 찍어준 사진이라 한껏 표정을 지었건만.................!
저분들 덕분에 얼굴이 작아보이기는 하데... ㅋㄷㅋㄷ





이곳은 왕비들의 목욕탕.
차를 타고 오면서 왕의 목욕탕 쓰라스랑, 을 보았는데... 웬 바다에서 목욕을 하셨담.
괜히 새침해지는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플레져 > 앙코르와트 기행 3 - 따프롬 사원



2초후에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으악. 정말. 아주 긴 2초를 훌쩍 지나 무사히 따프롬으로 들어갔다.
정말 와보고 싶었던 곳.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 의 배경이 된 그곳.



스펑(산뽕)나무.
여기의 나무들은 100년-200년 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100년도 안 된 나무도 있고.
100년도 못 살 인간들이 우글거리는데 나무의 신들께서는 어찌 바라보셨을까.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그곳.
종일 이곳에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스펑신이 나타나 위협하더라도.



어쩌면 곧, 이곳을 폐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뭐야. 자꾸 그럴지도 모른다... ~~ 할지도 모른다는 말만 떠돌고 말이야.
몰디브도 곧 사라질거라 해서 다녀왔더니만, 여전히 성업중이더군.
알고보니... 200년 후 쯤이라나.
그렇다면 나의 후손들이 내 앨범을 보며 이렇게 말하겠고나.
"우리 00대조 할머니께서는 몰디브에 허니문을 다녀오시고, 따프롬 사원을 기행하셨으며.... 그러나 그시대 사람들에게는 유행이었으니...... 유행에 민감한 분이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라고 할지도 -_-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도와줘요 타잔! 하고 외치면 큰일.
타잔도 이 나무에서 저나무로 올라타지 못하리.




무너짐도 예술이요, 예술은 곧 무형식이라.
부서진 것은 그대로 두고 있는 것도 그대로 두고.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돌이 나무를 부수는가.

- 김영하, 당신의 나무 중에서-




무화과나무.
휘감고, 뒤엎고, 퍼붓고, 가리고, 감추고...
온갖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 나무들.
처음 이 사원을 발견한 프랑스 학자들은 나무를 베어버릴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나무가 사원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자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고.

앙코르와트에서도 키가 큰, 거인같은 나무들을 몇 그루 볼 수 있는데
원래는 순 그런 나무들 뿐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지배를 받던 시절, 사원을 가리고 있는 나무들을 마이 베어내버렸다.
덕분에 시야는 트였다만, 어쩐지 그 나무들의 정령이 따프롬으로 옮겨간 것은 아닐런지.
혹은 부조를 새긴 영혼들의 혼도 합류를 한 것은 아닐까.

공명의 방, 이라고 가슴을 텅텅 치면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방이 따프롬에 있다.
만약 가슴을 쳤을 때 소리가 나지 않거나 울림이 없으면 건강하지 않은거라고 했더니
B,C,D들과 나는 무지막지하게 가슴을 치고 말았다.
건강하고 싶어서 ^^




줌-업해서 찍은 탓에 크게 보이지만,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저 나무 속의 불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웃고있다. 크메르인을 닮은 부조.

거대한 나무 용암들.
용암이 분출한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린 저 용암들은 자라고 자라고 있다.







따프롬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

앙코르에 가기 전 공부를 했고 도착해서도 공부했다.
익숙하지 않은 크메르어 때문인지 따프롬과 반띠아스레이, 앙코르와트 외에는 외워지지 않았다.
영화 내용을 조금이라도 흘렸다가 몰매맞는 스포일러들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아무리아무리 영화 이야기를 미리 들어도 영화 감상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받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장면 때문에 그 영화를 보러 가지만,
적만한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은 백지가 되고 만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영화가 아닌데. 어쩜 그리 백지가 되더냐!

나에게 만약 단 하루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따프롬에 갈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