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올해 최고 만화, 고르는게 고문이네
지난 1년 사이 나온 최고 만화를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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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천만화상을 심사하러 다녀왔습니다. 이럭저럭 만화와 오랜 인연을 맺어오다보니 가끔 만화에 점수 매기기를 하게 되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그런데, 이 만화 심사라는 것이 괴로운 일입니다. 이론적으로 심사는 좋은 것을 골라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심사하는 처지로선 좋은 만화를 안타깝지만 눈 질끈 감고 밀어내야 하는 읍참마속의 과정입니다.


이번 부천만화상 심사도 수많은 작품들을 놓고 도대체 뭘 탈락시켜야 할지 괴로운 고민을 실컷 해야 했습니다.


부천만화상은 대한민국만화대상과 함께 가장 큰 양대 만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만화대상은 대통령상, 장관상 등으로 수상자를 정하고, 대상에 1천만원의 상금을 줍니다. 반면 부천만화상은 대상이 500만원이고, 부문도 대상, 일반부문, 청소년부문, 어린이부문, 기획부문 등으로 나누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런데 상금은 두번째여도 부천만화상 대상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대상 수상작가에게 이듬해 부천만화축제에서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회를 열어주는 점입니다. 좀처럼 전시회를 열기 어려운 만화가들에겐 귀중한 배려가 되는 특전입니다. 올해 부천만화축제에선 지난해 대상을 받은 순정만화가 김동화 선생의 전시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올해 부천만화상은 2007년 6월부터 2008년 5월 사이 출판된 만화와 인터넷 만화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 기준에 맞춰 모두 77종 184권이 응모를 했습니다. 이 만화들을 모두 읽어야 한냐구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심사 앞두고 밤마다 만화를 읽느라 고생했습니다. 다행히 출품작의 3분의 2 이상이 이미 읽었던 것들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다시 한번 읽어야했지요. 올해 심사위원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인 김동화 선생, 청강문화산업대 모해규 교수, 염진아 한국만화가협회 사무국장, 그리고 제가 맡았습니다.





만화상 심사의 주안점은 물론 작품성이 우선이고 책으로서의 완성도, 만화계에 미친 영향, 상업적 파급력까지 감안합니다. 그렇게 해서 뽑은 올해의 수상 결과는 이렇습니다.


대상 이희재, <아이코 악동이>

어린이만화상 이은홍,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똥퍼>

청소년만화상 김규삼,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일반만화상 윤태호, <이끼>

카툰상 지현곤, <지현곤>

기획상 최호철, <을지로 순환선>


오늘은 부천만화상 수상작들이 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만화들, 추천할만한 만화들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되살아나 반가운 악동이, 자기 길 확실히 가는 이은홍


대상이 이희재 선생의 <아이코 악동이>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무척 안전한 선택이고, 어찌 보면 의아합니다.




 


한국 리얼리즘 만화의 대표자이자 만화계 중진인 이희재 선생이란 점에서는 당연하고 안전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반면 '악동이'란 오래된 캐릭터를 아시는 분들께는 뜻밖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적 악동인데 다시 나온 만화냐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번 악동이는 옛날의 그 악동이 책을 다시 낸 것이 아닙니다. 캐릭터는 이희재 선생의 그 악동이입니다만 이번에 새롭게 창작해 다시 그린 만화입니다. 오래된 청동거울 속에서 나온 아이코와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꼬마 악동이가 펼치는 동화 같은 모험이야기입니다. 이희재 선생의 정감어린 그림은 물론 여전하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이 새롭게 창작한 우수한 어린이 만화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대상으로 꼽혔습니다.




 



다음은 어린이 부문이었습니다.


어리이 만화책들은 최근 몇 년 새 무척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저 악동이도 대상으로 빠져나갔지만 어린이 만화책이었지만 만약 어린이 부문에 남아 수상을 겨뤘다면 무척 고민을 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어린이 만화 수상작으로 뽑힌 이은홍씨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똥퍼>는 상을 받고도 남을 만한 만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는데 상을 받게 되어 저도 기뻤습니다.




 


이 만화는 똥 치워주는 아저씨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포근하고 정겨운 만화입니다. 원래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이 쓴 한문 단편소설 <예덕선생전>을 이은홍씨가 다시 만화로 만든 것입니다. 고전 콘텐츠를 오늘에 훌륭하게 아이들이 보기 좋게 되살린 점, 빼어난 그림 솜씨, 탁월한 재미 등으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내용을 전하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말투가 재미있는 점도 훌륭합니다. 예전 <술꾼> 등에서 보여줬던 정겨운 그림체가 이제 거의 완숙 단계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께 권하고픈 책입니다.


그런데 이 똥퍼에게 상을 주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 강력한 경쟁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책으로 나올 신예 만화가 하민석씨의 <열아홉 고개 옛 이야기 만화>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습니다만 아쉽게도 상을 타지는 못했습니다.




 


이 만화는 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한 만화인데, 만화이면서 빼어난 일러스트 동화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옛날이야기를 만화로 깔끔하게, 그리고 현대적이면서도 옛그림 맛을 잘 살린 그린 그림 보는 맛이 좋습니다.


비록 상은 못 탔지만 앞으로 작품과 성장세가 정말 기대되는 작가라고 하겠습니다.


이 밖에도 홍승우씨의 <빅뱅 스쿨>, 이충호씨의 <내 친구 코봇> 역시 훌륭한 후보였으나 수상은 못했습니다. 이 두 만화는 허접하고 비슷한 몰아내기식 학습만화들과 달리 그림의 정성과 만듦새가 돋보이는 좋은 만화들이라고 하겠습니다.



# 세상이 이런 학교가 있겠어? 만화보다 실제 학교들이 더 하네


청소년 만화부문은 출품작은 적었습니다만 뽑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출품작들이 숫자는 적어도 하나하나 모두 재미있고 알찬 만화들이었습니다. 면면을 보면, 배희원씨의 <수요전>, 가온비&쥬더의 <불명의 레지스>, 김인호의 <지랄발광>, 김정혁의 <버스정류장>,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 최호철의 <태일이> 등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제 개인적으로는 모두 좋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만화계에서 그 의미를 나름 인정받은 작품들이었습니다.




 

» 상큼한 농구만화 <지랄발광>. 농구를 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게 되는 동작 묘사가 일품. 파란닷컴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청소년 만화부문 수상작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입시 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였습니다. 최근 나왔던 만화 가운데 재미면에서 단연 앞서는 만화였고, 또 가장 화제가 되고 인기 높은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이 만화는 마치 북한처럼 학교를 독재적으로 지배하면서 학생들을 획일화하는 사학재단들의 어이없는 작태를 유쾌하게 비꼬는 만화입니다. 학교 만화이면서 폭력 싸움 장면도 없고, 하이틴 로맨스같은 간지러운 연애도 없지만 허무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의 개그가 일품입니다. 이 유쾌한 만화에 청소년 만화부문상을 주게 된 것 자체가 유쾌했습니다.




 



 


만화니까 그렇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말 요즘 세상에도 이런 학교가 있나 싶은 두 학교가 실제로 존재하더군요. 어느 학교가 더 개판인지 막하막하였습니다.


먼저 ㅈ고. 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78613.html)를 보시지요.


다음 ㅊ고. 정말 대단한 학교입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이상한지를 보여주고자 작정한 학교 같습니다. 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257379.html)를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 만화속 정글고는 오히려 애교스런 수준입니다. 교육감 선거가 중요한 까닭입니다. 관심 좀 갖고 투표합시다. 우리 곁에는 정글고가 아직도 존재합니다.


다시 만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한겨레21> 애독자들이나 최규석씨의 팬들은 <대한민국 원주민>이 수상 못한 것이 아쉬우실 겁니다. 이 <대한민국 원주민>은 정말 상을 받았어도 충분한 만화입니다. 그리고 이 만화는 꼭 책으로 봐야 하는 만화입니다. 주간지에 연재될 때에는 좀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묶여서 한권으로 보니 그 밀도가 배는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좋은 만화이니 한번쯤 관심 가져 주시길.




 


저 개인적으로는 빼어난 스포츠만화 <지랄발광>과 잔잔한 수채화 같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성장만화 <버스정류장>이 수상하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쉬웠던 만화는 <태일이>였습니다.




 



저 <태일이>는 노동자의 숭고한 권리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며 자기 몸을 스스로 불사른 전태일 열사를 그린 만화입니다. 그래서 뻔하고 예상되는 이야기의 교훈적이고 도식적인 만화일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번 읽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교수 만화가 최호철의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서정적인 스토리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성장 동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고 아름답습니다. 오히려 전태일 만화란 점 때문에 오해받고 손해 보는 만화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상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만 <정글고>에게 밀렸습니다.


여기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최호철 작가의 또 다른 만화책 <을지로 순환선>과 같이 출품된 것도 요인이었습니다. 아직 연재중인 <태일이> 대신 최호철이란 작가를 제대로 조명한 작품집 <을지로 순환선>에게 기획상이 돌아간 것입니다. 한 작가가 두 상을 받기란 불가능하니 이번에는 <태일이> 차례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태일이>는 최근 나온 가장 아름다운 만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칙칙하고 교조적일 것이란 선입견을 버리고 한번 읽어보시면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될 겁니다.


# 윤태호, <이끼>가 계속 나오기를 바라며


역시 일반 부문은 가장 출품작이 많았습니다.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수상작은 역시 윤태호의 <이끼>. 1권만 나왔음에도 "역시 윤태호"라는 평가를 받았던 노작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 연출, 흡입력 강한 이야기로 모처럼 윤작가의 역량을 그대로 담아낸 빼어난 스릴러 만화입니다.


그동안 윤태호씨가 연재에 좇겨 그림을 날림으로 그렸던 <주유천하> 등 때문에 못마땅했는데 이번에는 예전 <야후>를 보는 것처럼 힘이 넘쳐 반갑기 그지없었던 작품입니다.




 


<이끼>는 상복이 많은 만화입니다. 문제는 이 만화가 연재되던 인터넷 만화잡지가 문을 닫았다는 점입니다. 빨리 새 연재 매체를 찾아 계속 이어져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요즘 만화산업은 너무 위축되어 지켜보는 제가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최후까지 남았다가 <이끼> 때문에 아쉽게 상을 놓친 경쟁작은 독특하고 강력한 김홍모씨의 만화 <항쟁군>이었습니다.




 


항쟁군은 `수묵 에스에프' 만화입니다. 일본이 아직 우리를 지배한다는 가정 하에 독립 항쟁에 뛰어든 열혈 청춘들의 모험기입니다. 붓질 특유의 느낌이 주는 그림 보는 재미가 대단합니다. 독특함을 넘는 재미가 있는 우수한 만화였지만 아깝게 <이끼>에 밀렸습니다. 이 만화가 계속 인기를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 항쟁군의 이미지. 붓으로 그려 한국화를 보는 것 같다. 펜화에선 볼 수없는 붓 그림의 힘을 만끽할 수 있다.
 


강풀의 사랑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상을 받을만한 작품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앞서 강풀이 이 만화상에서 큰 상을 받아 아쉽게도 제쳐 졌습니다. 전세훈씨의 관상만화 <신의 가면>도 상은 못 받았어도 재미만큼은 보장되는 만화라 하겠습니다.


`이보다 더 독특한 만화는 없다'는 듯한 개성파 개그만화 이경석씨의 <전원교향곡>도 수상은 실패. 만화계 전문가들은 다들 좋아하는 토마의 만화 <속좁은 여학생>도. 최강 개그만화인 메가쇼킹 고필헌씨의 <탐구생활>과 신세대 도자기 만화 <도자기>도 상 대신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가장 출품작이 적었던 카툰 부분에선 두 작품이 팽팽하게 붙었습니다. 지현곤씨의 카툰집 <지현곤>, 그리고 박근용씨의 <레인 북>.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지 정말 어려웠습니다. 두 작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만화가로선 배고픈 장르인 카툰에 매진하는 점, 그리고 두 작가 모두 몸이 불편한 작가라는 점. 하지만 그림 세계는 정반대입니다. 지현곤씨가 문제 많은 현실을 비판하는 풍자 카툰을 그리는 반면 박근용씨의 카툰은 동화처럼 아름답습니다. 결론은? 토론 끝에 오랫동안 카툰에 천착해온 지현곤씨가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 지현곤씨의 카툰 작품 하나. 손으로 일일이 그리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가히 집념의 카투니스트라 할 수 있다.
 



# , 내겐 올해 최고의 만화 가운데 하나!



마지막 기획부문은 <태일이> 대신 최호철 작가의 <을지로 순환선>에게 돌아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기획상은 책을 기획한 출판사의 역량을 보는 상입니다. 그래서 상금도 이 책을 기획해 펴낸 만화전문 출판사인 거북이북스에게 갑니다.




 


최호철 작가와 <을지로 순환선>은 제 블로그에 오신 분들께는 낯설지 않을 겁니다. 우리 시대의 풍속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 작가의 독특한 매력이 넘치는 그림이야기책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http://blog.hani.co.kr/bonbon/)을 보시면 도움이 될 듯하네요.


이번 심사에서 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가 수상을 못한 점이었습니다. 는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기업만화입니다. 그러나 귀여운 그림이 아니라 사실적이면서도 한국 만화에선 보기 드물게 서구 만화의 느낌을 잘 살린 그림 그 자체만으로도 볼 맛이 나는 만화입니다. 이 만화는 특히 기획면에서도 우수한 작품입니다. 경영을 전공한 스토리 작가와 그림 실력 좋은 만화가가 잘 결합해 탄탄한 준비로 만들어낸 우수한 만화라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기업만화로 모처럼 나온 수작이란 점도 반갑습니다. 기업만화는 박봉성, 허영만 이후 상당히 오래 주목작이 없었는데 이 작품으로 다시 명맥을 잇는 느낌입니다. 허영만의 <퇴역전선>이나 <미스터Q>가 떠올랐을 정도입니다.




 



 


한 컷 정도만으로는 이 만화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드리기 힘든데, 다행히 네이버에서 얼마든지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한번들 보시길 권합니다.


좌우지간 이렇게 수많은 만화들을 고르느라 힘들지만 즐거웠던 심사였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 언급한 만화들은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누구나 좋아하실만한 것들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수상작 여부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재미면에선 수상 못한 작품들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근 나온 괜찮은 만화들을 접하고 싶으실 분들을 위해 좀 길지만 이번 후보작들 중심으로 주저리주저리 좀 길게 소개해봤습니다. 한동안 블로그에 뜸했는데, 앞으로 좋은 만화 소식으로 자주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본준의 거리 가구 이야기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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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만난사람] “부동산 거품 붕괴, 이제 시간문제일 뿐”
‘경제 위기’ 경고하는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한겨레 정남구 기자 이정아 기자
 








 

»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IMF이후 늘어난 가계부채 ‘시한폭탄’
친재벌 정책으로 기술벤처 설 곳 잃어
노동자 임금수준 올라가는 게 ‘성장’


“사회 구성원들이 잘먹고 잘살게 하는 게 경제 운용의 기본목표인데,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이 계속 붕괴하고 있습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은 노동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니까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일자리는 없고, 미래마저 불확실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부동산과 주식 투기판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건전성이 사라지고 도박경제, 사기경제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 소장((49·[사진])은 우리 경제가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진단은 ‘저성장’이나 ‘고물가’ 같은 경제지표를 들이대는 이들과 뿌리부터 달랐다. 그가 강조하는 위기는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과 정반대로 가는 한국경제의 흐름이다. 그는 우리 경제를 재벌에 짓눌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불임경제, 생산보다 투기에 열을 올리는 투기경제, 사람을 값싼 생산도구로만 보는 머슴경제라고 지적했다. 발상의 대전환이 없이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크게 달라진 세계 경제환경 변화에 맞춰 우리 경제가 대응할 기반을 닦아야 할 시기에 정부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을 그는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위기를 조금씩 키워 왔고, 새 정부는 한단계 더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기술벤처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갑니다. 일본에도 중견 중소규모의 기술벤처 기업층이 매우 두터워 대기업과의 유기적 공생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그게 없습니다. 외환위기 때 20~60위권의 중간 재벌기업들이 거의 사라졌는데, 이 또한 기술벤처적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역동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나갈 벤처기업, 중간 허리를 맡을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그가 ‘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재벌기업들의 잘못된 지배구조’를 지목하는 것은 의외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대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고 믿는 시대 아니던가?

“한국의 재벌들은 일제 시대에 약탈적 상업자본 형태로 출발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는 정·경·관 유착에 기대 성장해 왔지요. 90년대 들어 정부의 관심이 기술개발에 쏠렸지만, 국책사업 지원의 대부분이 상위 재벌그룹에 집중됐습니다. 기술벤처 기반을 구축하고 이로부터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산업구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상위 재벌이 기술개발을 독점하다시피 한 겁니다. 설령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술벤처 기업들이 나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을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방해를 넘지 못하고 잡아먹힙니다.”




그는 우리나라엔 “기술벤처 기업이 재벌 하청기업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독자적으로 존립하기 어렵고, 그래서 역동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핵심 문제는 눈감아 버리고, 감세와 규제완화로 성장 동력을 확충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을 그는 “소수 대기업을 위한 엉터리 정책”이라고 잘라말했다. 처음부터 대놓고 재벌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금산분리 경제원칙을 무시하고 금융산업까지도 다 재벌에게 주자고 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이른바 ‘친기업’(비즈니스 프렌들리)을 주창하는 데 대해서도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제든 기업이든, 성장의 목표는 국민이 다같이 잘먹고 잘살자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수준이 올라가는 게 발전입니다. 사람을 머슴으로만 아는 경제는 일시적인 성장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절대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관료들은, 제조업은 중국에 밀려 더는 안 되니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서비스업 경쟁력을 강화하여 일자리를 만들려면 서비스업의 임금이 올라가야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발비가 괜히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게 아니죠. 서비스업을 육성하려면 서비스업의 임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부터 개발해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제유가 급등은 최근 우리 경제가 지고 있는 큰 짐이다. 하지만 그는 고유가를 내세워 경제가 어려운 핑곗거리를 찾기에 앞서 세계경제의 커다란 변화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금리와 유동성 과잉 탓에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커진 것과, 브릭스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성장축으로 떠오른 점을 주목해야 할 외부 환경으로 그는 꼽았다. 그런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후 폭증한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안의 시한폭탄이라고 그는 말했다.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한 것은 참여정부의 최대 실책이죠. 부동산으로 흘러든 그 많은 돈이 생산 쪽으로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성장 잠재력이 커졌겠습니까? 지금 일자리가 넘쳐서 고민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

그 때 어떻게 해야 했다는 것인가? 그는 “집이 얼마에 거래되든, 건설업자들이 어떻게 주택을 분양하든 이는 정부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가격을 통제하려하지 말고,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해법이 나온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정부가 법으로 수용 가능한 토지를 이용해서 임대료가 싼 질좋은 공공 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게 해법입니다. 그러면 시장 임대료가 낮아지고, 집값도 낮아집니다. 주거비용이 낮아지면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도 커집니다. 그런데, 왜 못했겠습니까? 떡고물을 떨쳐 버리지 못한 때문이었겠지요.”

그는 2005년부터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을 경고해 왔다. 그는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거품의 본격 붕괴는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2001년에서 2003년까지 부동산 붐은 시장금리 급락에 대한 가계의 부적응에 기인한 면이 큽니다. 은행도 소매 대출을 크게 늘렸지요.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재테크 붐도 일었습니다. 이 때의 부동산 투기열은 수도권에 집중됐고, 재건축 아파트, 새도시 등과 겹쳐 있습니다. 하지만 2006~2007년에 일어난 2차 부동산 붐은 수도권에서는 뉴타운과 재개발에 기댄 ‘이명박 거품’이었습니다. 지방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행정중심 복합도시·혁신도시 개발에 뿌리를 둔 거품이 일었습니다. 붐은 이미 끝났지요. 지금은 거래가 급감해 있어요. 거품 붕괴 초기단계에서는 거래가 줄고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기간이 1년 반에서 2년 가량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폭락하지요.”

적정 집값 수준을 얼마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전셋값과 집값이 같아야 정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전세가격이야말로 실수요와 공급을 반영한 값인데, 그보다 집값이 비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값 하락이 이어지면서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집값의 절반 이하로 돈을 빌려줘서 집값 거품이 터져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하자, 그가 또 피식 웃는다.

“미국에서도 다를 그렇게들 얘기했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자기기만이었지요. 우리 은행들은 지금 예금총액의 130%를 대출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은행은 160%를 빌려주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은행은 대출총액이 예금총액의 90% 가량입니다. 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외화를 단기 차입해 엄청나게 대출을 늘렸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은 자기기만이죠. 위기의식이 없는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 김광수 소장은

IMF때 대처보고서 ‘화제’

1997년12월3일, 우리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경제관료들조차 사태 전개를 잘 이해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 이틀 뒤 50여쪽짜리 한 보고서가 주요 경제부처와 청와대,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건네졌다. 외환위기는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담은 것이었다. 보고서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광수가 바로 그 보고서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노무라연구소 서울지점에서 일하던 그가 개인 자격으로 쓴 것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몇 달에 한번씩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정책결정에 참고가 될 보고서를 만들어 돌렸다.

그는 2000년 8월 주식회사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세워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일찍이 우리 사회에 없던 개인 독립연구소 실험이었다. 연구소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지식의 생산기관을”을 표방한다. 김 소장이 그동안 숱한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견뎌온 힘이 거기서 나왔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기업이나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한 연구소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구소는 연구용역과, 보고서 판매를 수익원으로 한다. 연구소가 생산한 자료들을 다 받아보는 회원에게는 연간 300만원의 회비를 받는다. 그간 나온 보고서들은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3권으로 묶여나왔는데, 단 한번도 추천사를 써 본 적이 없다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추천사를 썼다. 매주 발행하는 경제시평 등 세 가지 자료는 연 20만원에 받아볼 수 있다. 이른바 ‘시평회원’ 제도는 2006년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 회원이 본격적으로 늘고 있다. 김 소장은 “회원 증가로 연구원을 한 명 더 늘릴 수 있게 됐다”며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회원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 인력은 김 소장을 포함해 4명이다.

인터넷 카페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cafe.daum.net/kseriforum)은 연구소가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통로다. 지난해 7월 연 카페는 회원이 현재 1만2천명으로 불어났고, 방문자가 하루 3천~4천 명에 이른다. 김 소장은 “연구소가 생산하는 지식·정보의 질은 이제 충분히 인정받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연구인력을 20~30명 수준으로 늘려 세상에 본격적으로 기여하는 단계로 접어들면, 연구소를 세상에 환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광주 △진흥고 △서울대 경영학과(석사) △도쿄대 박사과정 수료 △노무라연구소


정남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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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님의 "이길준님 기자회견문... 나는 저항한다!"

"전 단지 스스로에게 인정될 수 있고, 타인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고, 그런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에요." 차분하고도 결연한 젊은 친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좋은 글 보게 해주심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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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꼭지

 

여러 날 따지 못했다

때를 놓쳤다

우리 부부는 싸웠고,

참외는 개미가 먹었다

포식을 했다

줄줄 흘러내린 과즙은

까마중이 먹었다

물관과 체관을 지나서

흰 꽃을 지났다

아까 날아오른 두엇은

씨앗 도둑이다

내장으로 가서

곧 항문을 지날 것이다

 

내 참외를 천지가 먹었다

 

도둑놈!

 

;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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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7-2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쁜) 도둑놈!'이리라. 그의 (주말농장) 밭에 가보고 싶다.

파란여우 2008-07-2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마중... 요새 사람들은 이거 잘 모르죠.
참외도 줄줄 단물 흐르게해서 먹는거도 모르죠.
예쁘게 조각내서 잘라놓은 참외를 포크로 콕 찍어 먹으니까요.

제 밭에 심어 놓은 참외는 아직도 시퍼러딩딩합니다.
나쁜놈...ㅎㅎㅎ

달빛푸른고개 2008-07-30 09:1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곧 여물어가겠지요.
 
타짜 1부 세트 - 전4권 - 지리산의 작두 허영만 타짜 시리즈
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 만화 원작의 영화들이 기억난다. <이장호의 외인구단>, 그리고 역시 이현제 원작이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 <타짜>, 그리고 지금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의 전형으로 TV드라마로 재현되고 있는 <식객>. 이 원작들이 새로운 장르와 결합되는 이유는 그 서사의 단단함과 내용의 풍성함이겠다.

구현되는 인물은 마치 살아있는 우리의 이웃들처럼 생생하고, 스토리 전개는 탄탄하다. 단지 만화가 가독성이 빠르고, 쉽게 이해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장면 하나하나의 배경에서도 그 시대의 풍경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워, 책을 잡으면 어느덧 해가 뜨고, 또 날이 저무니...

영화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으니, '영화 <타짜>가 이 원작의 뼈대만을 겨우 구현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풍부하다. 허영만 화백의 끊임없는 정진이 독자로서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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