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토종] 금강송(金剛松)
 

화재로 무너진 숭례문 복원에 쓰일 주 목재인 ‘토종 소나무’ 금강송(金剛松)을 확보하는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흔히 춘양목(春陽木)으로 불리는 금강송은 천년을 버텨

 
 
낼 수 있을 만큼 매우 단단한 내구성과 뛰어난 탄성을 지니고 있는 목재다. 하지만 기둥과 대들보에 쓰일 지름 1m가 넘는 대형 금강송을 찾기가 쉽지 않아 숭례문의 조기 원형 복원에 차질이 우려된다.
1960년대 숭례문 해체·보수작업에 참여했고, 현재 광화문 복원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응수(66)대목장은 “금강송이 곧으면서도 속 짜임새가 엮여 있어 단단하되 부러지지 않아 기둥을 세울 때 가장 적합한 목재”라면서 “특히 나이테 사이에 송진이 골고루 들어 있어 부식이 잘 되지 않는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대형 금강송의 수급에 대해 “다행히 1층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지 않아 광화문 건립과 달리 많은 목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광화문 복원에 쓰일 대형 금강송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뒤져 간신히 26그루를 확보했다. 현재 산림청이 전국 39곳 918㏊에서 문화재 복원에 사용될 금강송 21만 6847그루를 관리하고 있지만 당장 쓸 만한 재목을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신 대목장은 “강원도 삼척의 중경묘처럼 전국에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좋은 소나무림이 적지 않게 있다.”면서 “관련 문중과 일부 환경단체들이 국가적인 사업을 위해 조금만 양보한다면 숭례문 복원에 쓰일 금강송을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며 밝혔다.
사진 글 강릉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화상 제목 달며 ‘바보야’‘삶은 계란’ 유명한 일화도
유머 넘쳤던 김추기경
 
 
한겨레 이유진 기자
 








 

»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각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7일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조문단이 합장하며 조문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을 지켜봐 온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떠올릴 때 맨 먼저 인자한 미소를 연상케 된다. 김 추기경은 암흑의 세력엔 더없이 꿋꿋했지만, 서민들에겐 언제나 유머와 웃음으로 대하는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김 추기경이 2007년 모교인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이 기념전에 그는 ‘바보야’라고 적은 자화상을 선보였다, 그러곤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인간이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겠나, 내가 제일 바보 같을 수도 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나온 김 추기경의 웃음은 많은 사람에게 힘과 희망을 주는 활력소였다.

‘삶은 계란’ 이야기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삶이 뭔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2003년 11월18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엄숙한 종교 행사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대교구 최성우 신부는 어느 수도회의 신부 서품식이 있던 날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추기경께서 수도회 쪽에서 준비한 내용대로 ‘이 신부님은 어릴 적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라고 소개를 하시다가 아래쪽을 보니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성이 그 신부의 어머니와 같이 서 있는 것이었다. 추기경께서 ‘신부님 삼촌이세요?’하고 물으시자 그 남성은 ‘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순간 긴장감이 돌고, 신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추기경을 주목했다. 그때 추기경님이 ‘아버지께서 서품식이 너무 기뻐서 부활하여 오셨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 바람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을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은 대중과의 소통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노래다. 최 신부는 “대중과의 친화력에서 노래만큼 좋은 것은 없다”며 “추기경님은 노래를 요청받으면 성가를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적절하게 선곡을 해 부르셨다”고 회고했다. 김 추기경의 한때 애창곡이었던 <향수>는 젊은 사람들도 벅찬 긴 가사의 노래였지만 김 추기경은 하룻만에 다 외워 불렀다고 한다.

대중과 함께하려는 그의 마음은 김수환 추기경 공식 홈페이지(cardinalkim.catholic.or.kr) 안의 ‘사랑의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김 추기경은 1998년 12월부터 2000년 3월20일까지 신도들과 1300여통을 직접 주고받았다. ‘혜화동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때론 어린 학생들의 진로 상담에도 응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하느님은 우리를 가이없이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 속에 사십시요. 그러면 빛 속에 살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절판


삶은 정해진 방향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저 주어진 삶은 없다. 어디에서도 삶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일 뿐이다.-2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말라야 - 그들에겐 미래, 우리에겐 희망
미국히말라야재단_리처드 C. 블럼,에리카 스톤,브로튼 코번 엮음, 김영범 옮김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1월
품절


"불교에서 가장 큰 선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고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그 존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달라이 라마)-29쪽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없어지게 만든다."(오스카 와일드)-37쪽

세르파인들은 남체 바자르 근처에서 벌어지는 여름 축제를 즐기면서 서로에게 보리 가루를 칠하고 축원을 해준다.
"자네 부디 장수하고 흰 수염이 나길 바라네."-49쪽

"여행의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광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푸르스트)-67쪽

그 순간 나의 세계관에 뭔가 알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힘들고 단순한 삶을 살아보니 안락함에 익숙해진 나의 삶이 정말 정당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뜨거운 샤워와 난로 같은, 늘 당연하게 여겼던 편의용품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누군가 물질적 소유만을 가지고 삶을 잰다면, 이 소박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가난에 찌들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가족과 공동체의 삶, 그리고 쾌활하기 그지없는 낙천성과 행복감으로만 따진다면 이곳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부를 소유한 이들이다.-95쪽

여신의 초대는 아주 잠깐뿐이엇다. 요즘에는 내가 여신의 축복을 다 허비하고 만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 싸여 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않으면 아이들의 대학 교육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아이들도 먹고살기 위해 산에 올라야 한다. 아내는 내가 없을 때마다 가족들이 먹고살 걱정을 한다.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야 하는 세르파인들은 생명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

지난 계절, 열세 살 우리 딸 앙 니미가 뇌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딸을 잃으니 트룰시그 린포체의 말처럼 삶은 덧없고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산이나 다른 어느 곳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땔 때마다 진중해야 하고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해야 한다.

(중략)

힐러리 스탭을 기어 올라가서 눈 덮인 언덕을 마지막으로 가로질러 5월 31일, 오전 6시 35분에 마침내 우리 세 사람은 정상에 섰다.
나는 딸아이 앙 니미의 환생을 위해 기도했고 다시 한 번 미욜랑상마의 호의에 감사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세 사람은 우리들의 진정한 목적지, 우리 가족에게로 안전하게 되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아파 세르파)-129쪽

"천년이 넘게 살아온 신들에게도 나는 히말라야의 영광을 말할 수 없다. 마치 아침 햇살에 이슬이 말라버리듯, 히말라야를 보면 인류의 죄도 증발한다."(스칸다 푸리나)-227쪽

아내는 78세, 나는 81세였다. (중략)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리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양로원에 갈 수 없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요. 우리는 네팔로 다시 가야 해요.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요."
결국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세상에 베푼 것이 없다고 느끼면 그 삶은 끝난 것이다. 삶이 다할 때까지 나의 일을, 나의 진료소 가족을, 그리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고마운 환자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루크 선데 부부)-229쪽

지금도 그렇지만 힐러리 경은 내게 산을 가르쳐준 모범적인 스승이었다.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반가가 자기 인생과 유산을 바쳐 헌신적으로 세르파인들을 돕는 모습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리처드 블럼)-23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과 평화 - 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장성민 지음 / 김영사 / 2009년 1월
장바구니담기


김정일의 이와 같은 외유내협의 외교적 화법은 백화원이라는 영빈관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인사말을 할 때 더욱 두드러졌다. 김정일은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전방에서는 군인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인데, 대통령께서는 인민군 명예의장대의 사열까지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사말에 '무서움'과 '두려움',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이란 단어들을 선택하여 환영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위협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상대방을 편안하고 포른하게 환대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상대방을 긴장시키고 놀라게 하는 김정일의 화법은 대화에 주도권을 자신이 쥐어가고 상대방의 모든 신경을 자기의 말과 행동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34쪽

지난 8년 동안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깡패국가', '불량국가', '피그미' 등의 용어를 써가면서 증오의 적국이자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시는 북한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말았다. 물론 북측으로서는 이를 김정일 영도하의 선군외교가 획득한 개가이자, 전시외교로 거둔 약소국 외교의 쾌거로 여긴다.-148쪽

한국에서는 미군의 후방 배치를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전 단계로 간주해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 여론조사가 있다. 2003년 미국 폭스뉴스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북한이 1위(54%)로 꼽힌 반면, 2004년 1월 한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에서는 '한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이 2위인 북한(33%)을 제치고 1위(39%)로 꼽혔다. 9.11 이후 대량살상 무기와 핵무기의 잠재적 위협에 더없이 예민해졌던 미국인들에게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비쳤는지 여론조사 결과는 보여준다. 반면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북한보다 더 위협적인 나라로 비친 것은 '미국이 얼마든지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 탓이었다. -182쪽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기 바로 직전에 이라크 군부대를 향해 '모두 무장해제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복제된 사담 후세인의 목소리를 방송하여 이라크 군인들이 진짜로 사담 후세인이 그렇게 지시를 내린 줄 착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세인 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북한은 믿고 있다. -2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