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이와 같은 외유내협의 외교적 화법은 백화원이라는 영빈관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인사말을 할 때 더욱 두드러졌다. 김정일은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전방에서는 군인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인데, 대통령께서는 인민군 명예의장대의 사열까지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사말에 '무서움'과 '두려움',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이란 단어들을 선택하여 환영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위협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상대방을 편안하고 포른하게 환대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상대방을 긴장시키고 놀라게 하는 김정일의 화법은 대화에 주도권을 자신이 쥐어가고 상대방의 모든 신경을 자기의 말과 행동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34쪽
지난 8년 동안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깡패국가', '불량국가', '피그미' 등의 용어를 써가면서 증오의 적국이자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시는 북한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말았다. 물론 북측으로서는 이를 김정일 영도하의 선군외교가 획득한 개가이자, 전시외교로 거둔 약소국 외교의 쾌거로 여긴다.-148쪽
한국에서는 미군의 후방 배치를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전 단계로 간주해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 여론조사가 있다. 2003년 미국 폭스뉴스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북한이 1위(54%)로 꼽힌 반면, 2004년 1월 한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에서는 '한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이 2위인 북한(33%)을 제치고 1위(39%)로 꼽혔다. 9.11 이후 대량살상 무기와 핵무기의 잠재적 위협에 더없이 예민해졌던 미국인들에게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비쳤는지 여론조사 결과는 보여준다. 반면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북한보다 더 위협적인 나라로 비친 것은 '미국이 얼마든지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 탓이었다. -182쪽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기 바로 직전에 이라크 군부대를 향해 '모두 무장해제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복제된 사담 후세인의 목소리를 방송하여 이라크 군인들이 진짜로 사담 후세인이 그렇게 지시를 내린 줄 착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세인 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북한은 믿고 있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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