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교단일기 - 살구꽃이 피는 학교에서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8
김용택 지음 / 김영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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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문에 나와있는 김선생님의 일갈로 메꾸었다.

최근 신작시집인 <그래서 당신>을 읽고, 그간 저자의 출간내력을 확인하다가 최근작인 <... 교단일기>를 서슴없이 주문, 골라들었다.  민세(민중세상, 맞지요?^^)와 민해(민중해방)가 어릴 적, 인근 지인들이 댁을 방문하고 돌아와선 하염없이 감동에 겨워하던 모습이 아련한데,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일기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밑줄긋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책을 펼치고 닫는 시간 동안 내 안에서도 시골초등학교의 사계가 함께 흘러갔다는 생각에 아주 색다른 독서경험이었다.

'어느 호로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물이겠냐' 호통으로 등장한 섬진강 시인은 시인이기보다는 오히려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갖고 있는 고유한 신념과 애정, 그리고 사유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정과 감성을, 그리고 떳떳한 외침을 다듬어내는 시인이 되신 것은 아닐지...

일기다. 아니다. 무척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이 책은 어느 한 시골 초등학교, 특이하게도 작가가 다니기도 했고, 또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도 가르치기도 했던, 약간은 '별난' 학교의 일상이기도 하지만, 우리 교육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미 여러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가장 변화와 개선이 어려운 분야가 교육계 아닌가. 그러나 그만큼 중요하기도 한....

이 책을 읽을 숱한 선생님들이 단지 2학년 학생이 여덟 명밖에 되지 않거나(2005년에는 네 명으로 줄었다), 저렇게 '놀면서' 가르칠 수 있는 여유라면 나도 갖고 싶다거나 하는 단순한 동경으로 그치지 않기를 정말 바란다. 어느덧 회갑에 가까워진 연세에도 이렇듯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려는 노력은 하나의 표상으로 굳건하다. 경륜이 느껴지는 일부 일기를 제외하면, 그리고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마도 이제 막 부임한 초짜 교사의 다짐처럼 느껴지는 대목은 이 책의 덕목이고 압권이다. 이미 40년 가까이 지내오신 저자의 일기인데...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선생님들께서 '내 아이들도 (이 책에 인용된 많은 아이들의 시처럼) 그러한 시를 쓰게 해야겠다'는 다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부디 많은 선생님들이 보셨으면 하는 책이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오는 아이를 포함하여 작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쏟는 저자의 애정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이처럼 딱딱한 교육현실에서 작은 '줄긋기'가 되지 않을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아마도 시인보다는 교사로 불리길 바라실 김선생님께 '교단을 떠나시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아쉽게 늙지 마라'(2005년 4월 14일 일기 전문)

* 김영사에서는 273쪽의 교정을 다시 봐야겠네요.^^ 단순한 실수겠죠. 그나저나 식객은 고치셨나요.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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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교단일기 - 살구꽃이 피는 학교에서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8
김용택 지음 / 김영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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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 놀이터에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내가 이 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 이 나무는 청년이었다. 이제 나무는 아름드리가 되어 늙어간다. 늙은 몸에도 꽃을 다문다문 피운다. 오래된 가지에 꽃을 피우면 때론 고졸하고, 때론 고색창연해 보인다. 살구나무 살구꽃을 보며 나는 봄마다 얼마나 까닭 없이 설렜던가. 잘살아온 나무다. 그 살구나무에 올해도 꽃이 피었다가 졌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그 땅을 달리는 아이들의 튼튼한 발길들을 나는 오늘도 바라본다.
(<책머리에>에서..)-5쪽

나는 언제나 삶은, 인생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작고 단순하고 소소하게, 그냥 조용히 나무처럼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번잡하고 쓸데없는 것들로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부질없는 것들인데 많은 시간을 그런 일에 할애하고 마음을 쓴다.
그럴 것 없다. 단순하고 작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난 늘 돌아갈 것이다. 문학을 하면서, 진메 마을에 살면서 맛보았던 그 아름다운 고립과 외로움으로, 그리고 어머니 곁으로.-24쪽

종현이가 배가 아파 조퇴했다.
종현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했더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운동장에 나가 있던 종현이를 싣고 부우웅 가버렸다. 종현이 아버지도, 고모도 내가 가르쳤다.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니 욕이 절로 나온다. 썩을 놈, 얼굴 좀 보고 가면 안 되나?
-43쪽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거둘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인류의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자식인 동시에 우리 인류의 아들딸이다. 아이들을 너무 감싸고 돌지 말자. 내 자식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자.-45쪽

우리 교육의 장에 사람의 따뜻한 숨소리가 들리게 해야 한다. 인간 교육, 전인 교육, 인류의 희망인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며 진정한 가치를 찾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학교에 온다.-54쪽

(2004년) 9월 16일 목요일
아침에 세찬 비, 그러나 굵은 비는 아니었음.
이슬비와 장대비의 중간 비였음.
어머니는 저렇게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비가 참 차분하게 잘도 온다고 그러셨다. 눈도 저렇게 잔잔하게 찬찬히, 차분하게 오는 눈도 있다.
비 오는 들판이, 비 오는 산이 좋다.
나도 저 비처럼 저 산처럼 저 들처럼 저 마을처럼 잔잔해지고 싶다.
(날씨 설명도 하나의 시가 되어버린듯한...)-55쪽

아침에 오니 아이들이 창문을 다 열어놓고 청소를 하고 있다. 교실이 환하다. 청소를 다 하고 또 논다. "청소 다 했으면 책 봐야지" 하니 그제야 책을 본다. 늘 이런 식이다. 아이들의 일상이 늘 이렇지 않으면 선생이, 학교가 뭣 땜시 있겠는가. 그러기에 초등학교는 아름다운 곳이다.
아이들 과자를 사왔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한 상자 남은 걸로 1학년 아이들에게 한 개씩 나누어주었더니 과자 값보다 몇 배나 좋아한다. 아주아주 흐으뭇.-55쪽

오! 이 위대한 자유여! 객관화는 사물이 남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때때로 산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산이 되던 그 순간들을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앞에 마주앉아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그 수만 송이 풀꽃들 따라 그냥 웃던 순간들이 어떻게 말이 되고 글이 되리. 나는 산에 편안히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산에 강에 살았다.-59쪽

나는 고립의 아름다움과 고립의 두려움을 모르는 채 진실의 힘을 믿고 오랜 시간 홀로 살았다. 아득한 저쪽 외로운 청년의 푸른 어깨끈을 나는 아직 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막강하고 두려움 모르는 외로움을 나는 아직 놓지 않았다.
나는 공부할 것이다. 내 삶을 가꾸어가는 데 게으르지 않겠다. 참으로 같잖고, 바르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 쩨쩨하고 옹졸한 것들과 결별하라.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아닌 것에 얽메여 연연하지 마라. 흐트러짐을 보이지 마라.-108쪽

학생들 수가 적기 때문에 한 사람만 전학을 가도 교실이 텅 빈 것 같고, 마음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평생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살았다. 어디 아이들뿐인가. 내 동무들도, 이웃도 다 떠나보내며 살았다. 항상 한쪽이 허전하게 살았다.-122쪽

한빛고등학교를 생각하면 사랑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잊지 못할, 민세에게, 나에게, 우리 식구에게 잊지 못할 곳이다. 나의 학교였으며, 그 학교를 다니지 못한 민해의 애틋한 학교였고, 그 학교를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절로 나오는, 아내가 사랑하는 행복한 학교였다. 노래 공연을 하는 동안 아내 곁에 계신 교감선생님은 내내 눈물 바람을 하셨단다.
아이들도, 나도, 아내도 선생님들도 다 그랬다. 그곳은 그렇게 눈물과 감동이 살아나는 곳이다.

('민중세상'을 염원하며 지은 이름이 민세고, '민중해방'을 갈망하여 붙인 이름이 민해였지요)-138~139쪽

교대를 사대와 통합하라! 교사가 될 교육대학 학생들에게 폭넓은 인간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는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교사 교육은 딱딱하게 굳어 변화를 수용할 줄 모른다.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교육대학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어떻게든 교장이 되면 그만이라는 안일무사주의와 교대는 닯은꼴이다. 둘은 함께 썩어간다. 어떤 식으로든 교대를 개선하고 교장 승진 제도와 아무런 제재 장치도 없는 교장 중임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교장 임용 제도를 하루 빨리 개선하라. 그래야 조금이라도 교육이 살아난다.

수능이 끝났다.
아이들아, 초등 6년, 중고등학교 6년, 12년 동안 애 많이 썼다. 하루 동안 몇 문제로 12년 인생을 평가받는다.
얼마나, 얼마나 애를 썼느냐. 그 펄펄한 피를 누르며 얼마나 애를 썼느냐.-153~154쪽

되게 서리가 친 날 아침의 나무들은 실가지마다 서리꽃이 피어 꽃나무처럼 아름답다. 나무야! 나무야! 서리꽃 핀 나무 아래에서 입김을 하얗게 뿜으며 땅에 금을 긋고 땅따먹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아!
지구의 축복이다.-200쪽

오후에 아이들 모두 가고 난 후에 희창이와 함께 텔레비젼으로 영화를 보았다. 둘이 맘껏 웃었다. 희창이가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던지 나는 더 크게 웃었다. 무슨 영화였나고? 영화 제목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 장면,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신나는 일입니다)-230쪽

교실에서 혼자 도시락 먹으니 참 맛있었다. 교실에 가니 마음이 놓이고 푸근하다. 산천을 둘러본다. 내가 평생을 산 곳이다. 날이면 날마다 보던 산천이 늘 새롭던 곳이다. 이렇게 유리창 문으로 산천을 보고 있으면 나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할수록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질리지 않는 산천과 그 산천을 보고 질리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다.-244쪽

아침에 출근하니 성현이, 유빈이, 선영이, 채훈이(2학년 전원의 이름입니다-옮긴이)가 운동장 고운 햇살 속에서 사방치기를 하며 논다. 풋살구 같다. 아이들은 내가 출근하면 날마다 이렇게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
"선생님 밖에서 놀아도 돼요?"
아이들은 날마다 그렇게 묻고 나는 날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조금만 놀다 들어와라."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우와! 놀다 오래" 하며 운동장으로 흩어진다. 참 좋기도 한 모양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날마다 재미있게 논다.-349쪽

나는 저 산을 평생 동안 바라보고 살았다.
아이들과 잘 지낸 날 이렇게 앉아 저 산과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환해지고 산도 환해진다. 환한 산, 환한 마음을 가진 나는 행복하다.-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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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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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최근작일 <그래서 당신>.

역시나 일상 속에 마주 대하는 자연, 아니 자연 속에 파묻혀 그 세계를 직관하는 시인의 시세계는 여전하다.

꽃(홍매/오동꽃...)과 나무와 새와 나비, 그리고 강과 산, 달과 비.. 그리고 그리움과 사랑과 '숨'!

이 시대 시와 시인의 역할과 관련하여 통렬히 외치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포구> (/는 행 바꿈)

시인들은 떠났다/시인들이 떠난 자리에/시의 시체들이 널려 있다/혁명의 찬란한 아침을 거닐자던 시인들은/자신들을 위한 혁명을 완수하고/나무 대신/새로운 세기의 양지 쪽에 등을 기댔다/권력은 부패하고/자본은 총을 들고/제국은 살찌리라/배불러 등이 썩어가는 시인들은/밑도 끝도 없는 세계를 떠돈다/시가 식어버린 세상은/얼마나 뭣 같은가/오랜 세월 희망은 시인들의 것이다/아니, 혁명은 영원히 시인들의 것이다/거부하라 저항하라 망명하라 세상의 절망에 가 닿아라/시인이 어찌 사랑을 버리랴/시가 어찌 자유를 탕진하랴/오!/지구의 푸른 포구로/은어들이 떼지어 돌아온다/경배하라/노래하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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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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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는 부드러운 면포를 잘라서 기저귀를 만들어왔다. 아내는 기저귀마다 빨래집게를 물렸다. 빨랬줄에서 기저귀들이 바람에 길게 나부꼈고, 가을빛이 기저귀 위에서 출렁거렸다. 바람은 북동풍이어서 기저귀들은 섬의 남쪽 바다를 향해 펄럭거렸다. 손바닥만한 아기 바지도 한 뻠 가랑이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항로표지>)-117쪽

당시의 평균 자연수명이 몇살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삼십여 년쯤 살다 죽은 여자의 뼈가 젊은 뼈인지 늙은 뼈인지조차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섭양이 부족한 생애에서 강도 높은 노동에 종사했다'는 설명도 그 뼈 토막을 들여다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뼈는 기원화의 생애에 관하여 아무런 정보도 전하지 못했다. 박물관 유리상자 속에서 깔때기를 활짝 벌린 그 골반뼈는 다만 푸르스름한 석회질의 결일 뿐이었다. 대학신문은 박물관장의 기고문에 깔때기 모양의 골반뼈 사진을 곁들였고 그 위에 '기원화, 본교 박물관에 피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렇게 해서, 골반뼈로 남은 AD6세기 여자의 이름은 기원화가 되었다. 진부한 이름이었다.(<뼈>)-163쪽

- 가족들 이외에는 암을 알리지 마십시오. 암환자라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되면 신변을 정리할 때 불이익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제가 워낙 많은 환자들을 봐서 하는 말입니다.
의사가 메모지를 꺼내서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 술 담배 섹스를 끊고 잠을 많이 잘 것,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산책을 할 것, 청국장을 많이 먹을 것, 고등어 꽁치 방어 같은 등 푸른 새애선을 많이 먹을 것... 나는 여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자궁유방검진실 앞 복도를 지나서 병원을 나왔다.(<강산무진>)-318쪽

남은 담배 몇 개비가 지나간 모든 담배를 환기시키기도 하는 것인지, 간암 판정을 받고 돌아와서 생애의 마지막 담배를 피울 때 어째서 오십 년 전 유년의 길바닥에 나뒹굴던 담뱃갑 색깔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강산무진>)-320쪽

산소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 아들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편지의 요점은 퇴직금으로 받은 돈과 주식과 아파트를 처분한 돈을 모두 가지고 LA로 와서 미국의 요양시설에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이므로 직계가족을 초청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미국의 요양시설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환경도 좋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보다 비용도 싸다고 아들은 셜명했다. 또 하루 오십 달러 정도면 한국인 간병부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갖추어 초청수속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내가 빨리 결정해줄 것을 아들은 요구하고 있었다.(<강산무진>)-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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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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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작품은 <개> 이후 처음이다. <칼의 노래> 등은 아직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회자되어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들어있던 책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읽어볼 참이었다.

여덟 편의 단편은 '당대의 스타일리스트'라고 하는 주변의 칭송에 맞춤할만한 문체를 보이고 있다. 문장의 탄탄함과 그 속에 담긴 의미의 확장성은 작가의 경륜을 느끼게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각각의 소재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 역시 그러하다.

이 작품에 담긴 단편들(발표순으로 보면 2003년의 <화장>부터 2006년의 <배웅>과 <강산무진>에 이르기까지) 속에 소설가의 주된 관심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와 그 속에 깃든 '허무'일 것이다.

'김훈은 이 허무와의 대면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국면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초월도 아니고 인내도 아니다. 다만 수락일 뿐이다. 그러나 이 수락을 통해 삶은 살 만한 것이 된다. 소설은 이 수락을 통해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위안한다.'(해설-신수정)

그런데 작가가 작중의 주인공을 통해서 나타내는수락의 '방식'이 정작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무를 통한 수락, 그 수락의 방식이 작가의 인식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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